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53화
“이건 줄기세포의 혁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장기 기증이 필요한 사람들이 더 이상 기증자를 기다릴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 외에도 신경 세포 부활로 장애를 극복할 수 있고요.”
뉴스에서는 만능 세포에 대한 내용으로 시끄럽다.
매시간 줄기세포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이어졌고, 만능 세포가 세상을 바꾸게 될 거라는 헛소리를 길게도 지껄이고 있었다.
최근 개미들의 활동이 예전보다 원활하지 않아 고민이었던 금융권은 이때가 기회다 싶어 언론에 기사를 뿌려 투자 과열을 불러일으켰다.
그로 인해 돈 좀 들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줄기세포 관련주에 관심을 기울였고, 금융권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그곳에다 돈을 넣어 놓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도 폭주하는 기관차에 탑승하게 되었다.
“근데 네 말대로 정말 줄기세포 관련주가 폭락을 하게 된다면 진짜 아쉽겠다.”
“뭐가?”
“옵션 말이야. 줄기세포 관련주 옵션이라도 있었으면 그쪽에다 투자했을 텐데.”
옵션은 딱 정해져 있는 종목들이 있기 때문에 원한다고 언제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줄기세포 관련주에 대한 옵션이 발행된 것은 없다. 그리고 지금은 나도 증권사를 이끌고 있는 만큼 옵션을 할 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제 우리 J&H 증권에서도 옵션 발행하는 건 알고 있지? 잘못 건드리면 우리까지 피해 보는 거야.”
증권사에서 옵션질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증권사는 주로 매도 포지션을 잡아 낙엽 쓸어 담기를 하는 게 전부다.
그리고 낙엽 줍는 게 생각보다 돈이 꽤 많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증권사들은 최근 여러 번 옵션으로 피해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매도 포지션을 끝까지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걸 계속하다 보면 잃은 돈을 복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 기사 하나 떴다.”
국내 언론과 해외 언론까지 다양하게 체크하고 있던 현식이가 링크된 기사 하나를 보내 주었다.
[유럽 학계, 지금은 자중해야 할 때.]
[제2의 황기석 사태 터질 수도 있어. 안정성 전혀 검토되지 않은 실험.]
황기석 쇼크 때 큰 피해를 본 유럽.
그 당시 유럽은 줄기세포 연구가 한창이었는데, 황기석 쇼크로 인해 연구들이 죄다 엎어지는 사태를 겪었다. 그래서 이번 만능 세포 건도 조심성을 더하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기사들이 올라오는 걸 다른 언론사들이 마냥 두고만 보진 않았다.
[유럽에서도 극찬! 만능 세포는 진짜다!]
[만능 세포, 새로운 시대를 위한 큰 도약!]
[유럽 부자들 줄기세포에 적극 투자!]
사실 검증도 되지 않은 찌라시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고, 당연히 학계의 부정적인 반응을 쓴 기사는 저 아래로 묻히게 되었다.
“어지간히 돈 많이 뿌렸나 보네.”
“지금 리듬을 잃고 싶지 않은 거겠지. 얼마 만에 보는 호재야.”
실적에 목이 말라 있던 증권사들은 이 호재를 그냥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설령 거짓말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라고 해도 돈만 몰린다면 상관없다는 취지인 것.
“그런데 정말 10일이야? 정말 10일 후에 폭락해?”
“그건 나도 모르지.”
정확히 말하자면 15일째부터 폭락이 시작된다.
내가 10일을 잡은 이유는 그때 주식 매도를 해야 폭락 기점 때 걸리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최대한 12일까지 끌어도 더 높은 수익률을 내놓을 순 있겠지만 내가 생각한 베스트는 10일이었다. 어쩌면 그 전에 팔아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일본은 아예 축제 분위기네. 네 말대로 저게 진짜 논문 조작으로 밝혀지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볼만 하겠다.”
현식이 말대로 지금 일본은 축제 분위기였다.
다들 어떻게 하면 하루카 박사를 더 높이 띄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 같았다.
일본 언론은 신뢰도가 굉장히 떨어지는데, 그 이유는 일본 정부가 언론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 장악이 워낙 심해 일본 국민들은 거의 세뇌를 받다시피 살고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 사고만 두고 봐도 그렇다.
체르노빌은 100년이 넘어도 여전히 출입 불가를 해 놓는데, 일본 정부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가져다 대며 위험 지역에다 일부 국민들을 살게 하고 있다.
더군다나 먹어서 응원한다는 프로젝트까지 기획 중인 것으로 알려져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안타까운 건 일본인들은 언론에 나오는 말들을 믿는다는 것이다.
한국을 이유 없이 비하하는 것도,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전부.
“이래서 세뇌가 무서워. 히틀러도 세뇌라는 무기로 국민들을 조종했었잖아. 일본도 마찬가지인 거지.”
“뭐, 우리가 남의 나라 걱정해서 뭐 해. 중요한 건 일본 정부가 열을 내서 하루카 박사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거지. 아마 며칠 동안은 투자 과열이 매우 심할 거야.”
황기석 박사 때는 우리나라 정부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투자 과열을 불러일으키진 않았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앞에 나서서 투자 열풍을 일으키고 있으니, 이게 다른 나라의 금융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앞바다 건너면 있는 우리나라도 그에 따라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고.
“우리 아버지 회사도 지금 열심히 돈 넣고 있다던데.”
제일 금융도 이런 적기를 놓치지 않을 터.
“슬쩍 말씀드려. 10일 후에는 빠지시라고.”
“아냐. 우리 아버지 그런 거 싫어하셔. 자기 회사에서 나오는 분석이라면 모를까, 외부인이 주는 정보로 돈을 버는 건 싫다고 하셨어. 그래서 너랑 무슨 종목에 투자를 하는지 자기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현식이네 아버님은 보면 볼수록 탐욕스러운 증권맨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제일 금융을 믿는 것이겠지.
그리고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금융권 쪽 정보망은 촘촘하다.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은 옛날에는 정보 상인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들이 내어 주는 정보를 비싸게 사서 상인들이 이득을 보던 시절이었는데, 지금도 그와 비슷한 것이 존재한다.
일반인이 알지 못하는 루트를 통해 정보를 사거나 파는 집단이 있는데, 이들은 해킹이나 혹은 관련 기업의 인물을 매수하여 정보를 얻어 낸다.
이런 쪽은 대부분 조폭과 연관이 되어 있고, 정보를 캐내는 방법들이 불법인 경우가 많아 외부적으로 공개되는 것을 꺼린다.
그나마 우리나라라서 이 정도지, 미국 석유 회사와 곡물 회사는 기업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인공위성들이 10개 이상이나 되어 그것들을 활용해 정보를 캐기까지 한다.
아무튼, 참 다양한 루트로 금융사들은 정보를 획득한다. 아마 만능 세포에 관한 것도 여러 방면으로 정보를 가져와 이것이 사실은 논문 조작이었다는 걸 일반인들보다 먼저 알아낼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어나는 치열한 눈치 싸움을 피하기 위해 우리 증권사가 먼저 발을 뺄 필요가 있었다.
* * *
8일.
줄기세포 관련주에 돈을 넣어 놓은 지 딱 8일째가 되었다.
오늘도 시장은 줄기세포 관련주의 폭등으로 돈 잔치를 벌였다. 또한 여러 제약 회사들도 주가 급등을 노리기 위해 일본 정부와 협약을 이어 간다는 기사를 계속해서 내놓았다.
“계속 조사를 해 보니, 아무래도 회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만능 세포에 관한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에요. 일본 쪽에서도 뭔가를 자꾸 숨기려 하는 것 같고요. 여러 학계에서 정식으로 실험 요청을 해도 전부 다 거절 중이라고 합니다.”
“예. 특히 유럽 쪽 학계의 반응을 보니, 우리 언론에서 나오는 말들과는 전혀 딴판이더군요. 실험이 전혀 검증되지 않는 데다가 논문만 봐서는 말이 안 되는 실험이라고 비판하는 중입니다.”
밤을 새워 가며 조사를 한 모양인지, 이사들의 눈가에 다크 서클이 짙게 깔렸다.
“일본 금융권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충 가설을 만들어 보았는데, 이게 정말 논문 조작이라면 하루카 박사가 어떤 세력과 손을 잡고 일을 꾸민 게 아닌가 싶네요. 황기석 박사 쇼크 때도 작전 세력이 개입했다는 얘기가 많지 않았습니까? 조사를 해 보니, 특정 기업에서 하루카 박사가 논문을 발표하기 전에 줄기세포 관련주를 싸그리 끌어모은 것이 포착됐습니다.”
정부의 지원금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황기석 박사는 논문 조작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일을 만들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작전 세력이 투입되어 함께 일을 꾸민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 참 많았다.
그러나 이것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어 그 작전 세력이 실존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주가 동향을 봤을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했고 현재 일본이 비슷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이사들에게 말했다.
“내일부터 전량 매도합니다. 한꺼번에 물량을 내놓게 되면 시장이 흔들릴 수 있으니까 적당한 타이밍을 봐서 일정량을 계속 매도하도록 합시다.”
“회장님께서 10일 동안 지켜본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다.
처음에는 10일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이사들이 조사를 해 온 것들을 보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이사들이 이 정도 알아낼 정도면 다른 금융사 분석가들도 지금쯤이면 눈치를 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제가 여러분을 자극해 정보를 갖고 오게 만든 것도 있지만, 다른 금융사들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정보 조사를 해 왔을 겁니다.”
“그 말씀은 지금쯤이면 다른 금융사들도 정보를 얻었을 거라 보시는 겁니까?”
“글쎄요. 그것까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저희가 좀 더 빨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논문이 조작된 거라는 인식을 갖고 정보를 찾아다녔으니까요. 그에 반해 다른 금융사들은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언제까지 주가가 오를까 하는 생각으로 정보를 찾아다녔을 겁니다.”
인식의 차이에서부터 우리가 한발 앞서 있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격차가 나 있을 때 선수를 쳐야 한다.
“전량 매도입니다. 수천억이나 뿌렸으니, 그에 대한 결실을 가져와야죠. 만약 지금 매도할 경우, 수익률이 총 얼마나 되는지 산출해 보세요.”
“수익률은 실시간으로 계산을 해 놓았습니다. 여길 보시면 됩니다.”
나는 권오준 대표가 준 보고서를 확인해 보았다.
오늘까지 줄기세포 관련주로 본 수익률은 총 250%.
5천억이란 돈이 1조 2,500억으로 올라갔다.
아쉽다. 8일이 아니라 2주 정도만 놔뒀어도 3배 이상은 올라갔을 텐데.
“이 정도면 아주 좋은 성과네요. 8일 만에 2.5배의 수익률을 내는 건 쉽지 않죠. 전량 매도하세요.”
“저기··· 그런데 고객들의 불만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요?”
“줄기세포 관련주에 돈을 넣지 않으면 바보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때에 갑자기 손절을 한다고 하면 고객들의 반발이 있을 겁니다.”
위탁 매매를 맡긴 고객들을 말하는 것이다.
큰손들부터 작은 종자돈으로 위탁을 맡긴 고객들.
난 그들의 돈을 불려 주고, 지켜 낼 의무가 있다.
“줄기세포 관련주에 투자하고자 하시는 고객들한테 명확하게 전달을 하세요. 우리 J&H는 더 이상 줄기세포에 투자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릴 믿지 못하고 불만을 표시하는 분이 있다면 모든 책임은 끝까지 투자를 강행한 고객에게 있다고 알려 주세요.”
이렇게까지 말을 했는데도 고객이 끝까지 투자를 원한다면 우리로써는 계속해 줄 수밖에 없다. 위탁을 하긴 했지만, 그 돈은 고객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사들에게 명확한 지침을 내렸다.
전량 매도를 하되, 고객이 원한다면 충분히 경고를 드리고 투자할 것.
“내일부터 바쁘게 움직여 봅시다.”
우리의 미션은 시장이 최대한 놀라지 않는 선에서 매도를 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조용히 빠져 나간 뒤에 시장이 요동치게 될 테니까.
* * *
9일째.
내 지시에 따라 전량 매도가 시작되었다.
무턱대고 1조 원이 넘는 물량을 쏟아낼 순 없는 노릇.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적당한 타이밍을 노려 주기적으로 물량을 흘리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우리 회사 사람들은 그런 일에 이골이 난 실력자들이라 시장이 요동치지 않는 선에서 물량을 빼내고 있었다.
“현재 물량의 30%를 처분했다고 합니다. 이 정도 속도면 오늘 안에 절반 이상은 처분할 것 같습니다.”
하루 만에 모든 걸 다 팔 순 없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팔아야 했기 때문에 나는 더욱 속도에 박차를 가하도록 주문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대망의 10일째.
시장이 끝나가는 시간대에 마지막 남은 물량을 전부 다 토해 냈다.
갑작스러운 물량 공세에 시장은 화들짝 놀란 것 같았지만, 여전히 줄기세포 관련주는 잘 나가고 있었기에 사방에서 물량을 가져가기 바빴다.
그렇게 해서 나온 수익률은 총 265%.
막판에 주가가 또 폭등을 해서 예상했던 수익률을 상회했다.
이제 폭주하던 줄기세포 기관차가 탈선을 하는 광경을 지켜볼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