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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49화 (49/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49화

“이런 도둑놈 같으니. 가뜩이나 1조 원 날려 먹어서 속이 뒤틀린 놈들한테 또 네고를 쳐?”

“저희도 간당간당한 수준이었습니다. 2조 원에 부채까지 감당하려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죠.”

LK 금융을 J&H로 인수하고 나서 우리는 현식이의 아버지이자 제일 금융의 사장 최진철의 집에서 축하연을 열었다.

현식이네 집에 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이 좋은 곳을 놔두고 이놈은 왜 굳이 나랑 같이 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3천억을 후려친 건 진짜 도둑놈 심보였다. 하지만 이보다 더 통쾌한 딜이 있을 수가 없지. 네가 저쪽 심리를 잘 이용한 거야. 저놈들은 너희 말고는 팔 곳이 없었으니까.”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LK 금융이 최악으로 치달아 있는 터라 누구도 그곳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아주 싼 값에 금융사를 꿀꺽할 수 있었다.

최진철 사장은 내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아주 잘했다. 고생했어. 우리 아들이 네 덕분에 금융사 대주주 노릇도 해 보는구나.”

“아버지. 전 꼭 아무것도 안 했다는 듯이 말씀을 하시네요.”

“안 봐도 비디오지. 집구석에 처박혀서 진석이랑 권 대표 하는 일을 옆에서 지켜만 봤겠지.”

“······.”

현식이는 뭐라 반박을 하고 싶은데, 딱히 틀린 말이 아니라서 그냥 꾹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우리는 두런두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최진철 사장이 진지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이거 하나는 알아둬.”

“어떤 걸요?”

“너 정부에 찍혔어.”

“제가요? 왜요?”

“왜긴. 신화 그룹 게이트 때 물 먹인 게 너잖아. 그리고 이번 LK 금융사 매각 건도 사실상 KV 그룹이 판을 다 깔아 놓은 건데 그걸 또 엎어 버린 게 너고.”

“정부랑 깊이 관련이 되어 있던 문제들이었습니까?”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최진철 사장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정부 쪽 고위 관료들이 깊이 관련되어 있었던 일인 모양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부 쪽 관료들이 썩은 건 늘상 있는 일인데, 이번 정부는 거기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느낌이랄까? 심상치가 않아. 특히 전경련에도 몇 번 압박이 들어왔고.”

“전경련을 건드는 일은 거의 없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군부 시절 때를 제외하고는 심하게 압박을 넣진 않지. 사실상 대한민국 경제를 쥐고 흔드는 게 전경련인데.”

전국경제인연합회.

400여 개가 넘는 대기업 총수들이 가입되어 있는 우리나라 경제인 연합회다.

이런 말이 있지 않던가.

상인들이 잘 모이는 경우는 없지만, 만약 모인다면 항상 음모를 꾸민다고 말이다.

전경련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이런 연합회를 만든 이유는 로비를 넣거나, 서로 담합을 하기 위함이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대기업끼리 손을 잡는 것만큼 강력한 것이 또 있겠는가?

전경련이 하도 이런저런 말들이 많고, 거기서 가격 담합을 통해 시장 경제를 독점하는 사례도 많아 전국범죄자연합회라는 오명까지 쓰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경련이 건재한 것은 이들이 대한민국 경제를 인질로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이들과 충돌하기보다는 최대한 타협을 하려 한다.

“아무튼, 여기 건드려서 좋은 꼴 보는 경우는 거의 없어. 근데 이번 정부는 압박하는 수준이 너무 심해. 돈 많고 줄 많은 양반들 그렇게 자극하면 상당히 피곤해질 텐데 말이야.”

예전에는 나라님 눈 밖에 나면 인생이 꼬인다고 했지만, 지금은 대기업 눈 밖에 나면 굶어 죽어야 한다는 얘기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법보다 칼이 앞서는 시대가 아닌, 법보다 돈이 앞서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네가 이번에 LK 금융을 잘 안정시키면 조만간 그쪽에서 너한테 초대장을 보낼 거야.”

“초대장이요?”

“그래. LK 금융 그룹도 잘 추스르면 대기업 수준의 규모잖아. 특히 전경련은 너처럼 팍 치고 올라오는 유망주를 잘 알아보지.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바로 초대장부터 돌릴 거다.”

전경련의 회원이라.

대기업 총수들만 모인다는 그런 어마어마한 모임에 내가 끼게 된다고?

“사장님도 그쪽 회원이신가요?”

“당연하지. 우리 제일 금융 그룹도 엄연히 대기업이야. 특히 금융 쪽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고. 옛날에는 건설업이 최고였지만, 지금은 금융업이 최고잖냐.”

그렇다고 들뜨진 않았다.

오히려 호랑이 아가리 속에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그들의 치열한 눈치 싸움에 끼어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니. 벌써부터 피곤해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 판에 끼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서 돌고 있는 정보를 건지는 건 미래 커뮤니티 창을 뒤지는 것보다 훨씬 더 이득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서 정보를 건진 다음 앞으로의 상황을 유추해 미래 커뮤니티를 활용한다면 효율이 몇 배는 더 높은 전략을 짤 수 있을 것이다.

“안 올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저한테 뒤통수 맞은 분들이 몇몇 있을 거 같거든요.”

“흐흐. 그 양반들 무서운 점이 뭔지 아냐? 돈 앞에서는 과거의 일 같은 건 싹 다 잊는다는 거야. 돈이 눈앞에 걸려 있으면 악연도 금방 천생연분으로 만들 수 있는 게 그 양반들이니까. 돈 앞에서는 사적인 감정을 넣는 게 아니야. 그냥 갖고 싶다, 이런 욕망 하나면 충분하다는 거지.”

배워야 할 점인 건지, 아니면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해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다.

“진석이 이제 너도 엄연한 금융 그룹 총수이니, 그런 마음가짐을 이해해 보는 게 좋을 거야.”

무조건 재벌이라고 해서 나쁜 놈이라 몰아가는 건 몰상식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돈이 크게 관련되어 있을수록 정부와 유착될 수밖에 없고, 남이 알아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곤 한다.

만약 그런 상황이 나에게도 닥치게 된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 * *

J&H 금융 그룹.

이제 이 세상에 LK 금융이란 이름은 없다.

그것을 대신해 J&H라는 이름이 간판을 대신했으며, 나는 J&H 금융 그룹 초대 대표가 되어 취임식을 열게 되었다.

이미 각 재계에서 사람을 보내거나, 혹은 회장이나 사장이 직접 찾아와 새로운 금융사의 드리블러가 누구인지 염탐하러 왔다.

“난 자네가 꼭 큰 인물이 될 줄 알고 있었어. 하늘은 스스로 돕고 정직한 사람을 돕는다고 했네. 분명히 자넨 지금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 될 게야.”

한라 그룹 회장, 이강철은 내게 축하의 악수를 건넸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모든 자본금을 J&H에 맡기고 싶다고 귓속말을 남기는 건 덤이었다.

“사장님. 아니죠. 이제 대표님이시죠? 아닌가? 회장님이라 불러 드려야 하나요?”

“회장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냥 사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편한 대로 부르세요.”

“회장이란 이름이 더 있어 보이니까 앞으로 회장님이라고 불러 드릴게요.”

이강철 회장을 따라 이한별도 같이 취임식을 축하하기 위해 왔다.

우리 둘의 대화를 슬쩍 듣고 있던 이강철 회장이 갑자기 버럭 화를 냈다.

“나이도 비슷한 것들이 무슨 회장님이야! 그냥 서로 정겹게 누구누구 씨라고 부르면 되잖아.”

“하, 할아버지. 그래도 엄연히 그룹 회장님이신데······.”

“허어-. 비슷한 나이 또래의 남녀 사이에 그런 건 필요하지 않다니깐?”

나는 이강철 회장의 말을 잘 받아들였다.

“괜찮아요, 한별 씨. 저도 맘 놓고 불러 주시는 게 더 편합니다.”

“그, 그런가요? 제가 한 번도 진석 씨라고 불러 본 적이 없어서요.”

“지금부터 그렇게 해 주시면 되죠.”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어느샌가 어머니가 내 옆에 와 계셨다.

“이분들은 누구시니?”

“아, 예. 인사 나누세요. 여기는 한라 그룹 이강철 회장님이시고, 이쪽은 손녀 되시는 이한별 씨에요.”

“어머. 한라 그룹 회장님이셨구나. 어디서 많이 뵌 듯한 얼굴이었는데, 기억 못 해 죄송해요.”

“허허. 아닙니다. 그런데 이진석 사장 어머님 되십니까?”

“예. 박희영이라고 합니다.”

“아이고. 참 좋은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이런 젊은이가 요즘 세상에 흔치가 않은데, 어머님께서 잘 키우셨네요.”

“감사해요. 손녀분도 참 고우시네요. 그렇지, 진석아?”

“예? 아, 예.”

내가 떨떠름하게 대답하자 이강철 회장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제 손녀 혼처를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여기 이진석 사장만큼 훌륭한 사람이 없어서 말이죠. 난감하기 그지없더군요.”

“어머. 그래요? 우리 진석이도 제발 여자 좀 만나라는 말을 그렇게 안 듣더라니까요?”

“허허. 그렇습니까? 이거 절묘한 우연이로군요. 안 그러냐, 한별아?”

이한별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면서 뭐라 대답도 하지 못했다.

갑작스럽게 이상한 분위기로 흘러가자 나는 적당한 핑계를 대며 슬쩍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어후. 더 있었다가는 신혼집까지 알아봤겠네.”

그런데 그때 내 앞에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KV 그룹의 오현중 실장이라고 합니다.”

오현중?

잠깐 생각을 해 보니 오 회장의 아들이었다.

직책은 실장이지만, 오너의 핏줄이니 거의 사장만큼의 대우를 받고 있을 것이다.

“아, 예. 반갑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남자에게 시선을 빼앗긴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바로 오현중 옆에 여자가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축하해, 진석아.”

그 여자는 다름 아닌 백수진이었다.

새로운 남자친구가 무려 KV 그룹의 핏줄이었다니.

정말 자기가 원하는 대로 돈 많은 남자를 만나게 되었구나.

“두 사람이 동창이었다는 걸 듣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겸사겸사 같이 축하를 드리려고 데려왔습니다. 저희 회장님도 오고 싶어 하셨는데, 일정 때문에 절 대신 보내셨어요.”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오 회장님은 이 자리가 매우 불편하셨을 겁니다. 저번에 만나 뵈었을 땐 양쪽 다 좋은 결과를 얻어가진 못했거든요.”

“하하. 저희 회장님은 과거에 연연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축하할 생각이 없었다면 절 보내지 않으셨겠죠.”

이 새끼가 무슨 의도로 수진이까지 여길 데려온 거지?

우리가 동창이란 걸 알았다면 예전에 연인 사이였다는 것도 알았을 텐데?

그걸 뻔히 알면서도 데려왔다?

무슨 개수작이야.

“저도 KV 금융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 서로 경쟁하는 위치이긴 하나, 기업끼리 힘을 합칠수록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법이니까요.”

“그렇게 하죠.”

“그럼, 두 사람 잠깐 얘기 나누세요. 오랜만에 만났으니, 할 얘기도 많을 테니까. 전 잠깐 저쪽에 가서 인사 좀 드리고 오겠습니다.”

얼씨구.

자리까지 비켜 주네?

분명 순수한 의도는 아닌 것 같았다.

뭐지? 네 옛 연인을 이제 내가 데리고 있다는 걸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던 건가?

정말 그런 의도라면 제 아비를 털끝만큼도 닮은 놈이 아니라는 뜻이다.

오 회장은 시원하게 부딪히기라도 했지, 이렇게 쪼잔한 짓을 벌일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이 놀랐어?”

“응? 아니야. 그런데 오 회장 아들을 만나고 있을 줄은 몰랐네.”

“나도 네가 J&H의 오너인 줄은 몰랐어. 그래서 저번에 그렇게 말했던 거구나.”

“어떤 걸?”

“이제 우리 부모님보다 돈이 많다는 거.”

그땐 내가 괜한 말을 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사과하는 것도 모양새가 웃기긴 했다.

오히려 뻔뻔하게 나간다면 모를까.

“응. 사람 인생이라는 게 정말 모를 일이야. 아무튼, 축하하러 와 줘서 고마워. 나도 이제 가 봐야겠다. 다음에 또 애들이랑 만나서 얘기하자.”

“아, 응. 그래.”

오현중 저 새끼 때문에도 그렇고, 수진이랑 얘기를 그리 길게 하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 옛 연인에 연연할 만큼 내가 찌질한 놈도 아니고 말이다.

최진철 사장도 말하지 않았던가.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고.

돈 앞에서는 사적인 감정을 넣지 말라고 말이다.

그래도 오현중 저놈의 뺨을 갈겨 버리고 싶은 충동은 아주 조금 들고 있었다.

기회가 온다면 저놈을 한번 맛깔나게 요리해 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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