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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46화 (46/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46화

“비밀 계약서요?”

“예. 익명의 투서를 한 장을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KV 그룹과 비엣콤 뱅크가 맺은 비밀 계약서 사본이 들어 있었는데, 내용을 확인해 보시면 KV 그룹은 비엣콤 뱅크가 성공적으로 LK 금융을 입찰할 수 있게 도움을 주겠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비엣콤 뱅크는 이 대가로 LK 금융을 분해시켜 그곳에 있는 계열사 몇 개를 KV 그룹에 팔기로 되어 있더군요.”

“그 계약서가 진짜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그건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정황이 나온 이상,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건 공정성에 많이 어긋난 일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만약 이 계약서가 사실이라면 비엣콤 뱅크가 언론에서 밝혔던 게 전부 거짓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명백한 투기 자본이라는 게 밝혀지는 것이지요.”

투기 자본.

우리나라 국민들이 끔찍하게 증오하는 이름이다.

기자들은 웅성거리며 질문을 쏟아냈다.

그렇지 않아도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전에 KV 그룹과 비엣콤 뱅크 간의 비밀 계약서가 있다는 얘기가 나돌아다니지 않았던가.

“J&H는 투기 자본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입찰에 들어가면 저는 채권단과 확실한 계약을 맺겠습니다. 비엣콤 뱅크의 의도처럼 LK 금융을 조각내어 팔아 버리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5년 안에 LK 금융을 대한민국 최고의 증권사로 만들어 낼 자신이 있습니다.”

“오오······.”

이진석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기자들은 짧은 감탄을 터트리기까지 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질문이 이어졌고, 이진석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해 주었다.

“뭐, 뭐야. 저걸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백수진과 함께 뉴스를 보고 있던 오현중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오빠. 저 계약서가 진짜인 거야?”

“어? 아, 아니야. 설마 저게 진짜겠어? 우리 수진이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말은 그렇게 하지만 수진은 오현중의 당황한 표정을 읽어 냈다.

그렇다는 건 저 계약서가 진짜라는 얘기인데, 용케도 이진석이 그걸 가지고 기자회견에 나온 것이었다.

“아, 예. 알겠어요. 지금 갈게요.”

이윽고 오현중은 전화를 받고 수진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수진아. 미안해. 오빠가 회사 일 때문에 급하게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 괜찮지?”

“응. 괜찮아, 오빠. 얼른 들어가.”

오현중은 서둘러 일어나 카페 밖을 나섰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 수진은 다시 TV로 시선을 옮겼다.

헤어질 때만 하더라도 가진 것 하나 없던 남자가 지금은 LK 금융을 집어삼키려 드는 금융계의 거물이 되었다.

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 *

짜악-!

KV 그룹 오대현 회장은 KV 금융사 대표, 양우석의 뺨을 가차 없이 때려 버렸다.

“야이 새끼야! 일 처리를 어떻게 했기에 저 계약서가 버젓이 공중파를 타고 있어!?”

“회, 회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짜악-!

곧이어 반대쪽 뺨도 시뻘겋게 물들어 버린 양우석이었다.

“야이 미친 새끼야. 그 계약서 걸리면 그동안 들어간 돈이 다 공중분해 되는 거 알아, 몰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걸 퍼뜨리게 가만히 놔뒀어? 솔직히 말해 봐. 너 나 엿 먹이려고 일부러 그런 거지?”

“아닙니다, 회장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좀처럼 화가 가라앉지 않는 오대현 회장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지만, 일단은 전후 사정을 알고 난 뒤에 두들겨 패 놔도 늦지 않다.

그는 조금씩 화를 삭이며 임원들에게 무서운 눈빛을 보냈다.

“누구야? 어디서 새어 나간 거야?”

비엣콤 뱅크와 만든 비밀 계약서는 소수의 인원들밖에 알지 못한다. 여기 서재에 있는 7명의 임원들과 자기 둘째 아들이 전부라는 것이다.

“이번 계약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다들 잘 알고 있지? LK 금융을 다 삼킬 순 없어도 그 베트콩 새끼들 덕분에 우리가 필요한 영양분들만 쏙쏙 빼내 올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어. 그것들만 잘 삼켜서 소화시키면 KV 금융이 천하 금융의 바로 뒤까지 따라갈 수 있었다고.”

KV 그룹 회장까지 심혈을 기울이며 이번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직접 뛰어들었다.

이 계약을 통해 KV 금융은 천하 금융까지 따라잡아 대한민국 1위 금융사로 거듭나려고 했다. 이제 거의 다 된 밥인데, 누군가가 똥을 한 바가지 뿌려 버렸다.

“회장님. 저희는 결단코 아닙니다.”

“당신들이 아니다? 내가 오늘 TV로 봤어. 우리가 영문으로 쓴 계약서가 이름도 모르는 채널에서까지 잘만 떠다니고 있더만. 근데 이게 우리 쪽이 아니다?”

“꼭 저희라고 볼 순 없지 않습니까. 비엣콤 쪽에서 새어 나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큰 거래인데,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저희는 절대 발설 안 합니다.”

임원들은 한사코 자신들이 퍼뜨린 게 아니라고 잡아뗐다.

회장도 사실 임원들의 말을 믿고는 있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자신과 함께 이 자리까지 온 사람들이다. 다들 무거운 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일을 믿고 맡긴 것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 정보가 유출될 곳은 단 한 곳.

“비엣콤이 내 뒤통수를 왜 쳐? 그놈들이 무슨 이유로?”

“자세한 건 알 수 없으나, 그들이 실수로 정보를 유출시킨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의도?”

“저희 말고 다른 곳과 딜을 한 것일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는 건 그 새끼들이 우리 KV가 아니라 J&H에 들러붙었다는 거네? 동남아 새끼들이 감히 나한테 물을 먹여?”

임원들도 정말 비엣콤 뱅크가 J&H에 붙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의심을 받지 않으려면 일단 누군가를 범인으로 몰아가야 했다.

“후. 일단 라인 다 돌려서 비엣콤이 무슨 개수작을 부렸는지 알아봐. 그리고 언론에서 떠드는 것도 다 틀어막아. 이게 일이 커져서 수사까지 이어지면 알아서들 해. 알겠어?!”

“예, 회장님.”

임원들에게 호통을 쳐서 서재 밖으로 나가게 한 오대현 회장은 뉴스 헤드라인에 깔린 문구를 보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비밀 계약서 논란. 금감원, 한 치의 오점도 없이 조사에 착수하겠다.]

[금강원의 수사 착수? 비밀 계약서 명명백백 밝혀내겠다.]

“이진석 이건 대체 뭐 하는 새끼야?”

갑작스럽게 등장한 이진석이란 젊은이가 KV 그룹을 통째로 흔들어 놓고 있었다.

* * *

“이사님. 아주 멋진 기자회견이었습니다.”

밤늦게 사무실로 돌아온 권 대표는 날 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내게 힘이 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모색한 뒤였다.

“아무래도 그 계약서가 진짜이긴 한가 봅니다. KV 그룹이 급하게 불을 끄는 중입니다. 언론사 통제도 들어갔고요. 그런데 이런 큰 사건을 기자들이 안 쓸 수가 없겠죠. 거기다 이사님이 기자회견에서 펑 터트리시는 바람에 그놈들 지금 총체적 난국일 겁니다.”

“금감원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제가 알아보니까, 거기도 이번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답니다. 계약서를 확인해 보면 비엣콤 뱅크는 영락없는 투기 자본이니까요. 그랬다가 국민들의 공분을 사게 되면 애꿎은 윗사람들만 피곤하지 않겠습니까. 아참. 그런데 전화기 꺼져 있으시던데요?”

기자회견을 하고 난 뒤에 내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전화기를 꺼 두는 것이었다.

“연락 올 곳이 엄청 많을 것 같아서요. 잠깐 꺼 두었습니다.”

현식이 핸드폰만 봐도 내 전화가 켜져 있으면 어떤 꼴을 당할지 알 수 있었다.

동기들부터 시작해 신화 금융 회사 직원들과 그 외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데 현식이 저놈은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지금 포털 사이트에도 죄다 LK 금융 매각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공정한 입찰 경쟁이 될 거라고 정부에서 호언장담하지 않았습니까. 자칫 잘못하면 정치권에 불똥이 튈 수가 있어서 아마 조사는 착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로서는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저쪽에서 계약서를 없애 버리고 나 몰라라 해 버리면 답이 없다는 겁니다. 여러 정황을 따져 보았을 때 심증은 있어도 물증이 없으면 그냥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죠.”

“우린 우리대로 이미지 말아먹고요?”

“예. 거짓 선동을 하는 회사라고 몰아갈 수도 있습니다. KV 그룹이 혼자 죽으려 하진 않겠죠. 거기다 입찰 경쟁도 비엣콤에 그냥 넘어갈 수도 있고요.”

기자회견 카드를 쓴 것은 매우 좋은 선택이었지만, 이것이 만능은 아니었다.

“우린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남은 건 하늘이 도와주기를 기다릴 뿐이죠. 원래 스스로 돕는 자를 하늘이 돕는다고 하니까요.”

화살은 이미 시위를 벗어나 목표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릴 뿐.

* * *

권오준 대표의 말대로 정부는 이번 사안을 중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뜩이나 최근 여당 지지율도 좋지 않은 터라 정부는 신중하게 이번 사태를 받아들여 금감원과 검찰을 동원해 이번 사건의 전모를 알아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입찰 경쟁이 끝나는 날은 얼마 남지 않아 지금 열심히 조사를 한다고 해서 이들의 비리를 완전히 까 버릴 순 없을 것 같았다.

“이사님!!”

그렇게 며칠 동안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다.

매각 발표가 이제 딱 12시간 남았을 때 권오준 대표가 허겁지겁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나를 놀라게 했다.

“왜요? 벌써 발표라도 난 겁니까?”

“아니요. 발표가 난 건 아니지만, 굳이 발표하지 않아도 이미 승자는 정해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비엣콤 뱅크에서 방금 입찰 경쟁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예? 비엣콤 뱅크가 갑자기요?”

“예. 이번에 금감원에서 조사를 해 보니, 비엣콤 뱅크가 몇 달 전부터 사모 펀드를 개설해 부자들 돈을 모아 LK 금융 입찰 경쟁에 참여했다는 걸 밝혀냈습니다. 그걸로 압박을 한 모양인지, 바로 두 손 들고 포기해 버렸답니다.”

금감원이 아주 큰일을 해냈다.

투기 자본이란 것을 알아내자 비엣콤 뱅크가 곧바로 손을 털고 나가 버린 것이다.

“결과는 보나마나입니다. 입찰 금액을 제대로 적어서 낸 곳은 우리뿐입니다. 이건 처음부터 J&H와 비엣콤의 대결이었으니까요. 축하드립니다, 이사님! 우리 J&H가 LK 금융을 인수하게 되는 겁니다.”

나는 아직 실감이 나질 않아 얼떨떨한 얼굴로 TV를 켜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TV 뉴스 속보가 마침 채널에 나타났다.

[비엣콤 뱅크 LK 금융 입찰 경쟁 포기.]

비엣콤 뱅크의 인수 포기.

이것으로 승자는 정해졌다.

LK 증권사만 해도 연 매출 3조 원에 직원 숫자만 2천 명이 넘는 금융 그룹이 내 손에 들어왔다. 이제 J&H는 순식간에 한국 금융사 순위 10위권에 안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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