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45화
띠리링-!
12시가 되면 귀신같이 깨어나는 핸드폰을 들고 나는 미래 커뮤니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검색창에 입찰 경쟁이 끝나는 날짜를 검색했다.
나는 일정 포인트를 지불하고 기사들을 확인해 보았다.
[LK 금융, 1조 9,500억에 최종 비엣콤에 매각.]
[국민들께 심려 끼쳐 죄송. LK 금융 글로벌 금융사로 재도약하겠다.]
[국내 자본이 아닌, 베트남 자본에 매각? 국민들의 원성 어쩌나.]
[막판 극적 타결. 1조 9,500억에 매각된 LK 금융의 미래는?]
1조 9,500억이라.
결국 비엣콤이 LK 금융을 가져가는 것인가.
나와 권오준 대표는 인수 대금을 2조 원으로 적어서 내려고 했다. 그런데도 그걸 차 버리고 500억 더 싼 금액으로 팔아넘겼다 이거지?
이건 분명 뭔가 부당한 거래가 있었다는 건데, 심증은 있어도 물증이 없어서 고발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그냥 이대로 포기를 해야 하나 싶어 슬슬 마음을 접고 있을 때였다.
“음?”
[오직 회원님에게만 드리는 특별한 세일 찬스!]
세일 찬스?
예전에도 이런 비슷한 찬스로 좋은 정보를 얻은 적이 있었다.
나는 반신반의하며 광고창을 눌러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 나온 정보창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KV 금융, 비엣콤 뱅크 비밀 계약서]
비밀 계약서?
이건 또 뭐야?
* * *
“뭘 하신다고요?”
“기자회견이요.”
권오준 대표는 눈을 껌뻑이며 나를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그건 현식이도 마찬가지였다.
“야. 갑자기 무슨 기자회견이야?”
“내가 생각해 보니까, 이번에 금융사 인수를 하려면 정면 돌파밖에는 답이 없어 보이더라고. 우리가 해외에 법인을 두고 있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우리가 쓰는 돈은 전부 다 국내 자본이잖아.”
“거기에 이진석이라는 이름 석 자에 담긴 값을 국민들에게 어필하시려는 것이군요.”
신화 그룹 사태 전부터 금융계에서는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도 간간이 내 이름이 거론되고 있지 않던가. 잠깐 반짝이다 사라져 버린 금융계의 신성이라고.
난 그 이름이 아직은 통할 거라 확신했다.
“기자회견을 열어 정체를 다 밝히신다고 해도 바뀌는 게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저쪽에서 워낙 튼튼하게 기반을 마련해 놓아서요.”
“원래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자는 말이 있죠. 국민들은 우리가 조세 피난처에 만든 해외 법인이라고 해도 소유주가 저라는 것에 집중하게 될 겁니다.”
“언론사가 포장을 아주 잘해 줘야겠네요.”
“들어갈 돈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죠.”
“그 정도야 문제없습니다. 언론사는 제가 잘 요리해 보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국민들이 이사님 편을 든다고 해도 저쪽에서 쌩까고 밀어붙이면 답이 없거든요.”
나는 집에서 가져온 USB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언론에 공개하세요.”
“이게 뭡니까?”
“KV 금융과 비엣콤 뱅크가 비밀리에 맺은 계약서입니다. 저희 예상대로 국내 대기업이 이번 일과 관련이 있었어요. 거기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쪽에서도 도움을 주는 것 같고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계약서를 만들 리 없죠.”
나는 어젯밤에 본 두 기업 간의 비밀 계약서를 컴퓨터에 똑같이 옮겨 적어 놓았다.
워낙 많은 내용이 담겨 있어 한꺼번에 다 받아 적진 못했지만, 핵심적인 건 알아낼 수가 있었다.
“비엣콤 뱅크는 LK 금융을 인수해서 키워 볼 생각이 없습니다. 이것들은 LK 금융을 갈가리 찢어 놔서 KV 금융이 필요한 계열사들을 비싼 값에 팔아넘기고 우리 주식 시장을 한번 흔들어 놓고 이득 좀 보려는 겁니다.”
“전형적인 투기형 자본이란 것이군요.”
“예. 보통 투기형 사모 펀드에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지 않습니까. 주식 판에서 영향력이 큰 기업 하나를 인수해서 이것저것 다 찢어서 팔아 버린 다음, 주가를 팍팍 올려놓고 싹 다 팔고 빠지는 거. 비엣콤 뱅크도 똑같은 짓을 하려는 겁니다.”
이런 투기성을 갖고 있는 자본은 주로 해외 자본에 의지하는 주식 시장에 침투한다. 우리나라도 사모 펀드를 만들어 해외 자본에 취약한 동아시아 시장에 침투하여 시원하게 깽판을 치고 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식으로 개미들을 몰아넣고 죽이는 투기 자본이 번번이 들어와 시장을 뒤엎어 놓는다.
이걸 무작정 욕할 수도 없는 게, 우리나라에서도 해외에 투기 자본을 뿌리는 일이 많아 내로남불 소리 듣기 딱 좋다.
“근데 이 계약서는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음. 제 정보통이 따로 있어요. 그게 원본은 아닙니다. 하지만 금감원에서 제대로 조사 한 번만 해 주면 금방 나올 겁니다.”
“흠-. 이건 일단 좋은 기삿거리가 되겠네요. 먼저 언론에 터트려서 금감원이 직접 움직이게 만들어야겠습니다. 기자들은 이런 소스를 매우 좋아하니까요.”
언론에 터트리면 당연히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으면 금감원도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조사를 통해 그 계약서가 발견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충분히 이목을 끌고 압박을 주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USB를 받아든 권오준 대표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이렇게 회사의 정체가 다 드러나면 여러모로 압박을 많이 받을 겁니다.”
“예. 그렇겠죠. 그런데 언제까지 숨어만 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차라리 당당하게 드러내고 실력으로 인정받겠습니다.”
“하하.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그럼, 제가 스케줄 잡아 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자신 있었는데, 정말 기자회견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긴장이 됐다.
괜히 하자고 했나?
* * *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오빠가 커피 주문하고 올게.”
“응. 기다리고 있을게.”
화창한 날씨에 오늘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가득 채운 남자친구와 함께 데이트를 나온 백수진.
간단한 식사를 하고 카페에 온 수진은 주문을 하기 위해 카운터로 간 남자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진석과 헤어지고 나서 수진은 여러 남자들을 만나 보다 마침내 정착을 하게 됐다. 그것도 무려 KV 그룹의 자제인 오현중.
첫째가 아니라 둘째인 게 아쉽긴 했지만, 그룹 회장이 누가 될지는 아직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도 수진은 뭔가가 아쉬웠다.
금빛이 나는 집안 배경과 스펙은 매우 마음에 들었지만, 수진은 만약 오현중이 아니라 이진석이 KV 그룹 자제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여러 남자들을 만나 보았으나, 이제까지 이진석만큼 기억에 많이 남는 추억을 가진 남자는 없었다. 그리고 최근 동기 모임 때문에 더더욱 이진석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하지만 수진은 진석의 곁을 제 발로 떠났다.
집안 배경과 재력이 서로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진은 재력이 매우 좋은 남자와 만나 호화스럽고 편한 결혼 생활을 바랐다. 그래서 KV 그룹의 자제와 교제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너희 부모님보다 돈이 많다던 이진석의 얘기는 대체 뭐였을까?
“안녕하십니까. J&H의 대주주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혼자 멍하니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진석이란 이름에 번뜩 정신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TV에 이진석이 떡하니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J&H에 대한 여러 의문을 풀기 위해 제가 직접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J&H는 저와 제 동업인의 공동 지분으로 이루어진 투자 회사로 이번 LK 금융 입찰 경쟁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뉴스에서 보도해 주는 이진석의 기자회견.
뉴스 채널은 금융계 최대 관심사였던 J&H의 정체에 대해 아낌없이 밝혀 냈다.
“저희 J&H는 그동안 여러 의혹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조사를 통해 J&H는 부정한 방법으로 수익을 올린 것이 아니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그럼에도 여러 언론사에서 저희 J&H를 공격하고 있기에 그 해명을 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도 목소리 한번 떨지 않고 이진석은 자연스레 말을 이어 나갔다.
“저희 J&H는 50억으로 시작해 단숨에 7,000억이 넘는 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기반으로 LK 금융을 인수하여 그간 마음 졸이셨을 고객님들의 고민을 풀어 드리려 합니다.”
“그 말씀은 LK 금융을 인수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투자 활동에 나선다는 겁니까?”
“예. 고객들의 돈을 소중히 관리하여 그 어떤 증권사보다 높은 수익률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만약 J&H가 LK 금융을 인수하게 되면 앞으로 5년 안에 대한민국 최고의 금융사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수진은 놀란 마음에 스마트폰을 들어 동기들 단톡방에 들어가 보았다.
[야 뭐야? 이진석이 왜 TV에 나와?]
[나 방금 인터넷 검색 순위 보고 알았어.]
[J&H가 진석이 회사였어? 이거 미친 새끼 아니야?]
[J&H가 100% 투자 자본이라고 내가 진석이 앞에서 엄청 깠었는데···.]
친구들도 굉장히 당황한 게 보였다.
수진은 포털 사이트에도 들어가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검색어 순위에 이진석이란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50억 자본으로 7,000억? 기적의 수익률.]
[금융계 초신성이라 불렸던 이진석. 과연 그는 누구인가?]
[밝혀진 J&H의 정체. 소유주는 금융계 천재 이진석?]
[한국 투자의 귀재, 이진석. J&H로 화려한 컴백.]
각 언론사도 이진석과 J&H에 대해 열심히 기사를 올리는 중이었다.
“수진아? 백수진?”
“아, 응?”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어?”
“응. 뉴, 뉴스. 저거 기자회견 하고 있는 거.”
TV를 확인한 오현중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맞다. 너 경영학과였지. 나도 저 방금 들었어. J&H가 그 이진석 소유였다니.”
“오빠도 이진석을 알아?”
“우리 KV 그룹이 금융 쪽에 힘이 많이 실려 있잖아. 당연히 들어봤지. 금융계에서는 아주 유명해. 그런데 저런 식으로 컴백을 하네. 해외로 튀었다느니, 뭐니 말 많았는데.”
“그래?”
“응. 거기다 이번에 LK 금융 입찰 경쟁에도 나선다잖아. 근데 저래 봐야 소용없어. LK 금융 입찰은 말만 경쟁이지, 이미 누구한테 넘어갈지 정해졌거든.”
금융 쪽을 제대로 알진 못해도 요즘 LK 금융 매각 때문에 말이 많다는 것쯤은 수진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현중은 더 많은 내용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입찰 경쟁을 하는 게 아니었어?”
“그냥 보여주기식이야. 원래 그런 입찰 경쟁은 말만 경쟁이라 하고 뒤에서 다 거래를 하지. 이진석 저 친구가 회사 월급쟁이로만 있다가 입찰 경쟁에 뛰어드니까 뭘 모르는 것 같더라.”
“LK 금융은 그럼 비엣콤? 거기로 넘어가는 거야?”
“응. 사실 우리 KV 그룹이랑 비엣콤이 비밀리에 계약을 한 게 있어. 이번 입찰 도와주는 대가로 LK 금융에 섞여 있는 계열사 몇 개 뜯어서 받기로 했나 봐. 저번에 그 일로 내가 직접 실무를 담당하기도 했었지.”
오현중은 은근히 자신이 그룹 일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걸 수진에게 어필했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오는 뉴스가 두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KV 그룹, 비엣콤 뱅크와 비밀 계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