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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44화 (44/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44화

“모두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찰 경쟁이 시작되면서 LK 그룹은 정부의 감독하에 이번 입찰에 나서는 대표들을 모두 모아 두었다.

“잘 아시겠지만, LK 금융은 국민연금 공단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 심사단을 파견해 감독한다는 점,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감독관님. 그럼 이번 심사 기준이 정확히 어떻게 됩니까?”

“금액으로만 따지지 않을 겁니다. 그 회사가 정확히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또 어떻게 경영을 할 것인지를 따져 심사 기준에 반영시킬 예정입니다.”

권오준은 예비 심사 모임에 모인 경쟁자들을 스윽 둘러보았다. 그중 몇몇은 아는 얼굴들이고, 나머지는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이 중에서 정말 구매 의사를 갖고 있는 건 베트남 기업인 비엣콤이 전부일 터.

나머지는 그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시도 하고 분탕도 칠 겸 나온 놈들이다. 그런데 비엣콤에서 나온 대표들이 심상치 않았다.

‘진상필, 저 양반이 여기 왜 나온 거야?’

국제 변호사 출신으로 M&A 쪽에서는 알아주는 이름이었다.

진상필과 그의 팀을 보낼 정도면 비엣콤이 얼마나 진지한지 알 수 있었다.

“사흘 뒤에 입찰 금액을 적어서 심사단에 보내 주시면 됩니다. 아마 각 기업마다 조사하신 바가 있겠지요. 금액을 보고 저희가 냉정하게 판단을 할 예정입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듣고 나서야 예비 심사가 끝이 났다. 하지만 권오준은 그런 얘기들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진상필뿐이었다.

저 정도의 강적을 파견할 정도면 비엣콤은 대체 인수 금액을 얼마로 적으려는 것일까.

두 사람은 심사가 끝이 나자마자 서로에게 다가가 악수를 나눴다.

“하하. 오랜만입니다, 권 사장님. 아니지, 이제 대표님이시죠?”

“변호사님을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네요.”

“저야 뭐 국제 변호사이지 않습니까. 돈 주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야죠.”

“비엣콤은 이미 금융사가 있지 않던가요? 베트남에서는 꽤 큰 은행으로 알고 있는데.”

“예. 그래서 들고 있는 캐시가 많아요. 아시아 전 지역을 꽉 잡아 보겠다는 의도겠죠.”

“그 시작이 LK 금융이다?”

“타이밍이 적절하지 않습니까? 아시아 강대국 중 손꼽히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금융사가 떡하니 나왔는데. 그것도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고 있는 피떡이 된 금융사가 말입니다.”

싼값에 나왔으니, 비엣콤이 가로채 보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그리고 아시아를 주름잡는 기업이 되겠다?

공산주의 국가인 베트남에서 그런 기업이 나온다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베트남 정부가 어지간히 눈독을 들이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마도 그렇겠죠? 거기도 중국처럼 국가가 기업을 꽉 잡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영향력을 아시아 전역에 퍼뜨리고 싶은 것이고요.”

베트남은 몇 년 전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 나라다.

마치 우리나라가 한창 개발에 열을 올렸을 때 외국 투자자들이 모여들었던 것처럼, 현재 베트남이 그런 상황이다.

유명한 투자의 거장들 모두 현재 가장 높은 잠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은 베트남이라고 말을 할 정도로 현재 많은 돈이 그쪽으로 쏠려 가고 있다.

“베트남 젊은이들은 과거 우리나라 젊은이들과 비슷합니다. 모두 꿈과 열정에 불타올라 있죠. 아마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발전할 겁니다.”

“방금 그 발언은 현재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깔보는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야 대기업이 모든 걸 독점하면서 페이도 열정으로 받고 있지 않습니까? 더 이상 젊은 패기로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는 세상은 아니죠.”

차갑게 못을 박은 진상필 변호사는 자신의 명함을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 술이나 한잔합시다. 뭐든 물어볼 것이 있다면 여기다 전화를 주시고요.”

“입찰 금액이 얼마인지도 말해 줍니까?”

“하하. 그쪽에서 먼저 깐다면 고민해 볼 순 있겠죠.”

그건 절대 얘기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권오준은 진상필이 건네준 명함을 주머니에 넣어 놓고 어디론가 전화부터 걸었다.

“이거 좀 빡시겠는데?”

* * *

예비 심사 자리에 나갔던 권오준에게서 받은 전화.

예상했던 대로 비엣콤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은 그냥 구경하려 모여든 놈들이었다.

하기야 LK 금융을 잘못 삼켰다가는 소화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같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부담감이 있을 터.

그래서 국내 기업에는 LK 금융을 먹음직스럽게 생각하는 곳이 없었다.

문제는 단 한 곳.

베트남 비엣콤 뱅크.

“오. 진상필. 나도 들어 본 적 있지.”

“그래?”

“M&A 전문 변호사일걸? 실력 좋아서 해외에서도 자주 찾는다던데. 그 양반 몸값도 더럽게 비싸. 그 정도 인력을 파견할 정도면 비엣콤도 단단히 준비를 했다는 거네.”

현식이도 진상필이란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근데 입찰 금액이 대충 어느 정도라는 제한선도 안 준 거야?”

“어. 그렇다네. 보통 미니멈이라도 알려 주는 게 맞는 건데, 아예 안 알려 줬다는 건 가격을 좀 더 후려쳐 보겠다는 뜻이겠지?”

입찰 경쟁이 시작되면 평가단이 미니멈 금액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경쟁을 붙인다. 그런데 이처럼 아예 미니멈도 안 알려 주고 시작한다는 건 의외였다.

“LK 금융 주가가 지금 휴짓조각 되려 하고 있잖아. 그 주가대로 값을 쳐 버리면 너무 헐값이 되어 버리니까, 차라리 미니멈을 없애고 가격을 올려 보겠다는 거겠지.”

“으음. 고민이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장 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현식이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넌 항상 그 고장 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라. 거기에 뭐라도 있어?”

“이거 안 고장 났어.”

“안 고장 나긴. 그거 켜지지도 않잖아.”

“······.”

“근데 이상하게 밤에 그걸 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때가 있단 말이지.”

“내, 내가?”

“그래. 저번에도 자다가 일어나서 물 마시려고 했는데, 네가 그 검은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거야. 그래서 무슨 정신병이라도 있나 했지.”

그 말에 나는 눈을 몇 번 껌뻑였다.

설마, 미래 커뮤니티 센터가 켜져도 나 말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가 않는 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아무튼, 힘든 일 있으면 이 형님한테 다 말해. 뭐든 전부 해결해 줄 테니까.”

“그, 그래. 참 힘이 나네.”

정말 나 말고는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냥 현식이가 비몽사몽에 착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무리 내 친한 친구라고 해도 미래 커뮤니티 센터의 비밀을 털어놓을 생각은 없기에 앞으로 더더욱 조심해서 봐야 할 것 같다.

[LK 금융 입찰 경쟁 돌입.]

[LK 금융 주가, 이대로 휴짓조각 되나?]

[파산이냐, 아니면 매각이냐?]

[입찰 경쟁 위해 현재 LK 금융주 거래 금지 처분.]

“벌써 기사들이 난리네.”

LK 금융 입찰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모든 언론사들이 이에 대해 크게 다루었다.

그리고 악의적으로 J&H를 공격하는 언론사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악의적 M&A? J&H의 의도는 돈이다.]

[LK 금융 분해된 다음 다시 되팔려는 의도. J&H의 의도 결코 순수하지 않아.]

[정체를 알 수 없는 해외 자본. LK 금융은 이대로 사라지나.]

매물로 나온 기업을 사들여 싹 분해해 버린 뒤, 좋은 건 팔고 필요 없는 건 없애 버리는 전문 헌터 기업들이 있다.

그런 기업에 매각이 되어 버리면 일단 그 회사는 영영 살아날 수 없다고 봐야 하며, 이를 두고 ‘악의적 M&A’라고 칭한다.

이런 식의 투자는 해외 자본, 그러니까 해외 사모 펀드로부터 시작된다. 아예 회사를 산산조각을 내 버려 쓸 만한 걸 죄다 팔아 버린 뒤 회사 자체를 소멸시켜 버리는 식의 행위는 여전히 성행 중이다.

지금 언론사들이 J&H가 바로 그런 파렴치한 놈들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라 볼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비엣콤에 대해서는 칭찬 일색이었다.

[아시아 전역으로 영향력을 뻗치고 있는 비엣콤 뱅크.]

[베트남 최고 수익을 내고 있는 비엣콤 뱅크. 한국에 출사표?]

[LK 금융, 한국 최고의 금융사로 키워 보겠다. 비엣콤 뱅크의 선한 의지, 심사단에 전달돼.]

[우리 비엣콤 뱅크는 정체도 모를 해외 자본이 아니야. J&H와는 본질적으로 달라.]

J&H는 정체도 알 수 없는 투기성 짙은 해외 자본으로 취급하고 베트남의 비엣콤 뱅크는 마치 구원자인 것처럼 선한 투자자로 둔갑되었다.

“이게 말이 되는 거냐? 베트남 새끼들이 LK 금융을 잘도 키워 주겠다. 분명 꿀만 빨고 버리려는 게 뻔하잖아. 그놈들 사상부터가 의심스러운 놈들인데, LK 금융 같은 걸 그딴 곳에 넘겨?”

언론사가 너무 노골적이다.

이 정도로 노골적이라는 건 단순히 비엣콤 뱅크가 도와주기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우리가 신화 그룹 산하라는 찌라시까지 쫙 퍼져 있는데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공격을 한다는 건······.

“이건 누가 뒤에서 봐주는 거 같지?”

“내가 봐도 그래. 너무 노골적이야.”

아니나 다를까 사무실로 돌아온 권오준 대표도 우리와 같은 생각이었다.

“기사들은 다 보셨습니까?”

“예. 심각하게 노골적이던데요?”

“저도 기사 보고 이곳저곳에 전화 좀 돌려봤습니다.”

“그런데요?”

“이번 LK 금융 입찰에 로비가 세게 들어온 모양이에요. 돈도 상당수 뿌린 것 같고. 처음부터 공정한 싸움을 할 생각이 없었던 겁니다. 이미 정부 주요 관리들까지 매수해서 LK 금융을 비엣콤에 넘기려는 것 같습니다.”

비엣콤은 입찰 경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돈을 사방에다 뿌린 상태였다.

처음부터 공정한 입찰 경쟁은 없었다.

누가 먼저 돈을 뿌려 매수를 하느냐가 승패를 결정하는 게임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비엣콤이 이 정도로 우리나라에 손닿는 곳이 많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특히 기민하게 언론사를 움직일 정도라면 대기업 중 한 곳이 비엣콤과 손을 잡았다고 봐야 합니다.”

권오준 대표의 직감은 예리했다.

그는 비엣콤이 단독으로 이렇게 일 처리를 했을 거라 보지 않았다. 이 정도로 빠르게 각 정부 기관과 언론사까지 좌지우지할 정도라면 분명 대기업의 힘이 필요했으리라고 여긴 것이다.

“문제는 거기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여러 곳에 전화를 돌려 봐도 실마리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이사님. 제가 더 열심히 알아봐서 꼭 돌파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권 대표의 표정을 어렴풋이 읽을 수가 있었다.

이미 권 대표 얼굴에는 이미 패색이 짙었다.

이렇게까지 비엣콤이 밑밥을 깔아 둔 상태라면 뒤집기가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현식이도 같은 걸 본 모양인지 고개를 저으며 내게 말했다.

“반쯤 포기한 거 같지?”

“그래 보이네. 우리도 이렇게 공격이 거셀 줄은 몰랐잖아. 완전히 우릴 투기 자본으로 몰아가고 있으니까. 거기다 제일 열정 넘쳤던 권 대표가 저렇게 꼬리를 마는 것을 보면 그 새끼들이 어지간히 발을 넓혀 놓았다는 거겠지.”

이미 전화를 수십 통 넘게 돌렸을 권오준 대표가 반쯤 체념할 정도라면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봐야 했다.

정말 여기서 끝인 건가.

금융사 하나를 삼켜 보겠다는 건 젊은 패기에 불과했나.

하지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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