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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43화 (43/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43화

“요즘 저거 말 많더라고.”

“J&H 대체 거기 뭐 하는 곳일까? 북한 핵 실험 때도 기가 막힌 타이밍에 풋옵션 매수해서 돈 싸그리 챙겨 갔다며. 그 정도 수익이면 금융권 새끼들이 공매도 하는 것보다 더 짭짤한 거 아니야?”

다들 경영학과라서 그런지 이런 뉴스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보다 지식도 많아 어려운 용어도 금방 알아듣는다.

“내가 궁금해서 J&H에 대해 조금 알아봤거든. 딱 보니까 거기 조세 피난처로 만든 법인이더만. 그냥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유령 법인. 그게 한국으로 온 걸 보면 보나 마나 한국에 있는 누군가가 만들었다는 거지.”

거기다가 눈치도 좀 있다.

“뻔한 거 아니냐? 정치권 높으신 양반들이 돈놀이하려고 만든 거지. 안 봐도 뻔해.”

“그렇겠지?”

“그래. 생각을 해 봐라. 저게 정치권과 아무 관련도 없는 일반인이 만들었다고 하면 누가 믿겠어? 진짜 일반인이 만든 거라면 탈세니 뭐니 엄청나게 털려 나갈걸?”

나와 현식이는 슬쩍 눈빛 교환을 한 뒤 서로 웃음을 작게 터트렸다.

“근데 요즘은 뭐해? 회사도 그만뒀잖아. 너랑 현식이 둘 다.”

“음. 그냥 투자?”

“투자? 개인 투자자로 활동하는 거야?”

“뭐, 그런 셈이지. 잠재적 가치가 있는 회사에 투자금을 넣기도 하고.”

“오. 돈 좀 많이 벌었나 보다?”

“회사 다닐 때 받은 보너스랑 사장 퇴직금이 꽤 되더라고. 흐흐.”

친구들은 내 말에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말이 투자지, 평소에는 그냥 백수처럼 놀고 있다는 듯 들린 모양이다.

그렇게 틀린 말이 아니기도 하고.

하루 일과를 되돌아보면 현식이는 게임에 푹 빠져 있고, 나도 간간이 게임을 하며 책을 읽거나 아니면 가만히 누워서 음악을 듣곤 한다.

특별히 할 일 없으면 하루 내내 잠만 자기도 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나 정말 황제 백수 생활을 하고 있었구나.

“에휴. 부럽다. 나는 가게로 근근이 벌어 가며 대출금 갚고 있어. 치킨 장사 하려다가 너무 치킨집이 많아서 곱창으로 튼 건데, 이게 남는 게 별로 없네.”

“넌 그나마 가게라도 있지. 난 지금 집에서 눈치 보며 생활 중이야.”

“여기서 제일 잘난 놈은 진석이랑 현석이었네. 누구는 대기업 사장도 해 보고.”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이들과 다른 점은 단 하나.

미래 커뮤니티라는 사기적인 아이템이 있다는 것뿐.

만약 그게 없었다면 나도 이들처럼 똑같이 소주에 맥주를 말면서 신세 한탄이나 했을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나보다 더 똑똑하고 재능도 많은 놈들인데.

난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벌떡 일어났다.

“다들 일어나.”

“엥?”

“왜 갑자기?”

“2차 가야지. 오늘은 내가 다 쏠게. 이런 싸구려 술 말고, 진짜 비싼 거로만 먹자. 다 따라와.”

“오오오-!”

비싼 양주를 다발로 사 주겠다는데 싫어할 놈은 없었다.

대학 다닐 때, 이놈들은 시험 기간 때도 정신을 맑게 해야 한다며 소주 팩에 빨대 꽂고 다닌 놈들이지 않던가.

오늘 아주 양주로 샤워를 시켜 버릴 작정이다.

그렇게 한 명씩 가게 밖을 나갈 때였다.

마지막으로 나서는 게 하필이면 수진이었다.

나는 멋쩍게 말을 건넸다.

“부모님은 잘 지내셔?”

그러자 수진이가 묘한 미소를 보였다.

“안 그래도 돼.”

“응?”

“우리 부모님 때문에 너랑 내가 헤어진 거였잖아.”

“······.”

수진이와 내가 헤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수진이 부모님은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분들이라 당연히 돈이 많은 집안이다. 그에 반해 나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는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가난한 놈이라 우리 둘 사이를 아니꼽게 보셨다.

결국 부모님의 반대로 우리 둘 사이는 끝이 났다.

하지만 과연 그게 부모님만의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말 부모님 때문이야?”

“······아니.”

“그래.”

뒷이야기는 별로 듣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얼른 가게 밖을 나가려는데, 그런 내 등 뒤에다 대고 수진이가 말했다.

“나도 우리 집처럼 돈 많은 남자 만나고 싶었어.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진 말아 줘.”

“괜찮아. 이미 지난 일이니까. 별로 신경 안 써.”

이래서 내가 지금까지 연애를 하지 않았던 거다.

돈 없이 연애를 한다는 건 정말 끔찍하니까.

그 기억 때문에 지금까지 이성과 교제를 시도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더 이상 돈 때문에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던 시절의 내가 아니다.

* * *

“뉴스 보셨습니까?”

어젯밤까지 동기들과 오랜만에 달리느라 무리를 한 듯하다. 그래도 소주와 맥주를 마신 게 아니고 양주만 통으로 마신 터라 숙취가 심하진 않았다.

권오준 대표는 어제 나온 언론 기사들을 서류로 뽑아와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난 그것들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우리가 신화 그룹의 산하라고 철저히 몰아가려는 것 같더군요. 신화 그룹 쪽에서는 뭐랍니까?”

“처음에는 부정을 하려 했는데, 이상 현상이 일어나 일단은 보류하는 것 같습니다.”

“이상 현상이요?”

“예. 신화 그룹 쪽 계열사들 주가가 갑자기 오르고 있답니다. J&H가 정말 신화 그룹 쪽에서 만든 법인이라고 투자자들이 믿기 시작한 거죠.”

“하하하!”

나는 아침부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래서 주식 시장이 재밌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표를 보류한답니까?”

“뭐, 사태가 정말 심각해지면 그때 대응에 나설 생각인 모양입니다. 지금은 이걸로 꿀 좀 빨아 보겠다는 거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신화 그룹도 이걸 적절히 이용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우리한테 유리한 겁니까, 불리한 겁니까?”

“전 유리하다고 봅니다.”

“그래요?”

“만약 우리가 LK 금융 입찰에 나선다면 채권단과 국가 기관 쪽에서는 신화 그룹이 정말 배후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근데 이게 또 문제가 있긴 합니다.”

“어떤 문제요?”

“신화 금융이 모든 걸 독점하려 든다고 정부에게 안 좋은 시선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거죠. 만약 그런 사태가 오면 그땐 우리 쪽에서 절대 아니라고 변호를 해야 할 겁니다.”

“양날의 검이다, 이거군요.”

“예. 근데 좀 더 유리한 게 맞긴 합니다. 아무래도 대기업의 이름을 공짜로 얹고 가는 거니까요.”

대기업 파워는 무시하지 못한다.

특히 신화 그룹이라면 더더욱.

금융계 2위를 달리고 있는 신화 금융이 LK 금융 입찰 경쟁에 나선다는 소문이 퍼지면 투자자들이 누구 손을 들려 하겠는가?

“아무리 여러 곳의 지분이 섞여 있다고 해도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진 못합니다. 외국 쪽에 기업을 팔아넘기느니 차라리 국내 기업이 그것을 가져가 주길 바라죠. 국민들이 비록 주식 한 주 가지고 있지 않아도 단체로 목소리를 내면 정부는 귀담아들을 수밖에 없어요.”

권오준 대표의 말이 맞다.

이제까지 여러 기업들이 입찰 경쟁에 뛰어들며 국가의 통제를 받아 왔다.

아무리 속이 능구렁이 같은 재벌이라고 해도 국민들은 국내 기업이 해외에 팔려나가기를 원치 않는다. 차라리 국내 재벌들이 그 기업을 사들여 운영하길 바란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베트남 기업들보다 앞서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LK 금융에 대한 안 좋은 찌라시들을 뿌려 대고 있습니다. 언론사에서도 정말 날 선 비판을 이어 가고 있고요. LK 그룹 계열사들 주가가 15% 내려갔다고 합니다. 1조 원이나 되는 돈이 한순간 사라진 거죠. LK 그룹은 최대한 금융 매각을 서두르려 할 겁니다.”

여러모로 부는 바람이 좋다.

이제 이 순풍을 타고 어떻게 항해를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LK 금융의 주가가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인수 금액은 싸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인수해야 할 지분들의 가격이 쭉쭉 내려간다는 얘기니까. 그래서 권오준 대표가 이런저런 찌라시를 뿌려 LK 금융을 몰아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인수 금액은 과연 얼마일 것인가.

“1조 2천억. 그 이상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인가요?”

“예. 현재 우리 J&H가 보유 중인 돈이 약 7,000억 원입니다. 만일 우리가 입찰에 나선다면 그중 절반은 대출과 채권으로 감당을 해야 한다는 건데,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거기다 LK 금융을 덜컥 맡게 되면 시스템을 다시 잡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좀 있습니다. 그 기간 동안은 회사가 적자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아 빚에 허덕여 죽을 수도 있다는 거죠.”

또 하나의 리스크는 은행과 채권단이 과연 절반의 돈을 받지 않고도 매각을 승인할지였다.

“그리고 LK 금융을 인수하고 나서도 문제가 많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워낙 많은 고객들이 빠져나가고 있어서요. 제대로 된 신뢰를 주지 못하면 우리 금융도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얘기를 듣고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이거 내가 괜히 한다고 깝친 건가?

그러나 내게는 누구도 가지지 못한 무기가 있지 않은가.

“그건 염려 마세요. 회사를 인수하면 제가 꼭 J&H를 대한민국 최고의 금융사로 키워 낼 겁니다.”

“하하. 사실, 그 걱정은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채권단과 은행을 잘 요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죠.”

내가 그렇듯, 권오준 대표도 나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 * *

“안타까운 결정을 내리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LK 금융의 경영 악화와 고객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책임을 지기 위해 금융사 매각을 결정했습니다.”

LK 금융 주가가 폭락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LK 그룹에서 공식적인 발표를 했는데, 그 내용은 바로 LK 금융 입찰 경쟁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같이 금융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별 감흥이 없었지만, 일반 개미 투자자들은 다르다.

그들은 그래도 LK 그룹이 LK 금융을 끝까지 데리고 가지 않겠냐는 일말의 희망을 품었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LK 그룹은 LK 금융 매각을 조속히 마치고 그룹 정상화에 시동을 걸 예정입니다.”

정상화에 시동을 건다는 건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회사가 우는소리를 할 땐 수천 명의 직원들을 잘라 버려도 크게 비난하질 못한다. 오히려 지금은 그룹에 큰 기회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눈엣가시 같았던 팀들을 죄다 없애 버리고 직원들도 모조리 잘라 버리는 기회.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사람들은 정부에게 호소를 해 보겠지만, 그 정부마저도 눈 감고 넘어가 버리는 그 절호의 기회를 LK 그룹이 맞이한 것이라고 봐야 했다.

한동안 그룹 내부가 무척 시끄러울 것이다.

“현재 입찰 경쟁에 참여 의사를 나타낸 곳은 총 5곳입니다. 추후에 더 자세한 소식을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5곳 중 1곳은 우리 J&H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나머지 4곳 중 3곳은 그냥 훼방 한번 놓으려고 참여한 놈들이고, 정말 입찰 의사가 있는 곳은 단 한 곳.

베트남 기업이자 현재 빠른 성장세를 보여 주고 있는 비엣콤 뱅크였다.

연 매출액 3조 2천억.

직원 수 2,500명에 달하는 LK 금융이란 공룡을 삼키는,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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