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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42화 (42/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42화

“전화기에서 아주 불 나겠네.”

LK 금융 입찰 경쟁에 J&H가 참여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권오준 대표의 핸드폰이 쉬지 않고 울려 댔다.

“갑자기 왜 그런 겁니까?”

“한국 법인 대표에 제 이름이 올라가 있으니까 지금 다들 바쁘게 저한테 전화 거는 겁니다. 특히 저와 알고 지낸 LK 금융 쪽 사람들도 미리 줄 좀 대 놓으려고 그러는 거겠죠. 제가 신화 금융에서 쫓겨났을 땐 거들떠도 안 보던 양반들이.”

권오준 대표의 얼굴에 알 수 없는 희열감이 가득 차 보였다.

그러다 다시 울리는 핸드폰을 보고는 눈가를 꿈틀거렸다.

“이 전화는 받아야겠네요.”

“누구 전화인데요?”

“LK 금융사 사장이요.”

“오-.”

권오준 대표가 전화를 받아 스피커 모드로 돌려놓았다.

LK 금융사 사장이 뭐라 말하는지 들어보라는 뜻인 것 같아, 나는 자리를 피하지 않았다.

권 대표는 바로 익살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이고, 이 사장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권오준 사장님······ 아니. 이제 권오준 대표님이라 불러 드려야겠네요? 금융계는 영영 떠나신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하. 사람이 참 간사해요. 원래는 깔끔하게 은퇴를 하려던 게 맞는데, 아직 조금이나마 젊음이 남아 있을 때 한 번 더 크게 성장해 보자는 욕심이 생기는 거 있죠?”

-그래서 J&H로 들어가신 겁니까?

“예. 요즘 금융계를 뒤흔들어 놓고 있지 않습니까. 잠재적 가치가 어마어마한 곳이죠.”

그 말에 이영석 사장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뭔가 움직임이 매우 기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시, 배후에 권 대표님이 있었군요. 언론사는 언제 그렇게 요리해 놓으셨습니까?

“허허. 요리라니요. 저 이제 그런 짓 안 합니다. 그저 언론사들은 있는 사실 그대로 기사에 받아 적어 놓을 뿐이죠. 그게 언론사의 본 역할 아니겠습니까?”

만담을 나누는 것 같으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저들 대화에 섞여 있다.

듣고 있는 나조차 팝콘이라도 하나 뜯고 싶은 심정이다.

-권 대표님. 우리 웃음기 빼고 이제 진지하게 딱 까 놓고 얘기해 봅시다.

“예. 그럽시다, 그럼.”

-J&H가 신화 그룹 소유입니까?

그 말에 권 대표도, 그리고 나도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이 권오준 대표가 신화 금융이 아니라 J&H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이거 참 어떻게 대답을 해 드려야 할지······. 아쉽지만,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예. 신화 그룹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습니다.”

-그걸 저더러 믿으라고요? J&H가 LK 금융 입찰 경쟁에 나선다는 소식이 파다한데. 그것도 권 대표님이 뿌린 찌라시 아닙니까?

“하하. 아닌 걸 어떡합니까. 못 믿으시겠다면 저야 어쩔 수 없죠.”

이영석 사장은 우리가 신화 그룹 산하 기업이라고 확신하는 듯 보였다.

합리적인 의심이긴 하다.

갑작스러운 출연부터 시작해 권오준 대표를 필두로 한 언론 플레이까지 보여 주니, 이들 입장에서는 신화 그룹이 금융권 1위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 J&H가 정말로 LK 금융사 입찰 경쟁에 뛰어드는 겁니까?

“글쎄요. 저희도 내부적으로 회의 중이긴 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요즘 우리 회사가 번 돈이 워낙 많아서요. LK 금융을 삼켜서 단번에 10위권 금융사 안으로 들어가면 그림이 참 보기 좋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영석 사장님.”

-아, 예.

“왜 전화 주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정말 LK 금융사가 우리 쪽으로 넘어오면 미리 줄을 대고 싶으신 거겠죠. 그런데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잘 알겠습니다. 나중에 술이나 한잔하시죠.

“하하. 그럽시다.”

두 사람은 그렇게 통화를 끝냈다.

“똥줄이 많이 타긴 타는가 봅니다.”

“LK 금융 쪽도 슬슬 줄타기를 해야 하니까요. 베트남 기업으로 넘어가 버리면 살아남을 가망이 없지만, 저희 쪽으로 넘어오면 자리를 보전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겠죠.”

“그런데 만약 정말로 LK 금융을 손에 넣으시면 여기 있는 직원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품을 사람은 품고, 나갈 사람은 나가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될 겁니다.”

아직 LK 금융사를 손에 넣은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곳을 소유하게 된다면 그땐 속부터 외형까지 싹 뜯어고쳐야만 한다.

LK 금융이 그룹 내에서 일어난 싸움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이미 금융 내부적으로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만큼 추락한 거라고 봐야 했다.

지금은 그냥 계획에 불과하나, 정말 칼을 들어야 할 때가 오면 그땐 가차 없이 잘라낼 건 잘라내야만 한다.

* * *

권오준 대표와 통화를 끝낸 이영석 사장.

하지만 통화 내용을 들은 건 이영석 사장뿐만이 아니었다.

“이 사장은 어떻게 생각해? 권 대표 말이 사실 같아?”

“아뇨. 이번 통화로 확신했습니다. J&H는 신화 그룹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게 분명합니다.”

금융권 쪽이 심상치 않게 움직이자 LK 그룹에서 이 일을 지휘할 책임자를 보내 놓은 상태였다. 문제는 그 책임자가 무려 LK 그룹 부회장이란 것이다.

“회장님이 지금 금융 쪽 신경을 많이 쓰고 계셔. 안 그래도 애물단지 같은 걸 계속 들고 있어야 하니 더욱 속이 타시는 거겠지.”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일 좀 똑바로 하자. 어떻게 회사를 이 지경까지 말아먹었어?”

이영석 사장도 할 말이 참 많았지만, 지금은 꾹 참았다.

“이게 어쩌면 우리한텐 큰 기회야. 국내에서는 우리 금융사 가지려고 하는 놈이 없어. 그런데 신화 금융이 나서서 이걸 빼앗아 가려 한다? 만약 이게 언론사 신문에 딱 나오면 어떻게 될 거 같냐?”

“다른 증권사들도 저희한테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겠군요.”

“그래. 신화 금융에 우리가 먹혀 버리면 그 규모가 훨씬 더 커진다는 얘기인데, 이걸 다른 증권사에서 가만히 지켜보겠어? 어떻게든 견제해 보려고 하겠지. 우리는 덕분에 가격을 더 올릴 수가 있고.”

개인 정보 유출 사건과 더불어 풋옵션 폭탄으로 인해 가치가 많이 내려간 LK 금융이었다. 그러나 경쟁 의식에 불을 붙여 서로 싸우게 만든다면 원하는 가격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팔아넘길 수 있을 것이다.

“내일 오랜만에 우리도 언론사에 돈 좀 뿌리자. 이 싸가지 없는 것들이 돈 좀 안 먹였다고 우리 까느라 바쁘잖아.”

“부회장님 말씀대로 신화 그룹이 J&H의 소유주가 아니냐는 추측 기사를 내보내겠습니다.”

“그래. 신화 그룹이 화들짝 놀랄 정도로 뿌려. 그 새끼들 반응이 어떤가 한번 보게.”

“예, 부회장님.”

* * *

나와 현식이는 새로 뽑은 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놈들 오랜만에 만나네.”

“그러게. 다들 어떻게 지내려나.”

“야. 걔네들 저번에 난리 났었어. 너 뉴스 나왔다면서.”

“그땐 나도 정신없어서 애들이랑 연락도 못 했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부터 나와 현식이는 동기들과 주기적으로 만남을 이어 왔다. 그만큼 잘 맞는 애들이기도 했고, 여러모로 같이 있으면 즐거운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나는 그 모임에 나가지 못하게 됐다.

“괜찮겠냐? 오늘 수진이도 온다던데.”

백수진.

동기 중에서 나와 연인 사이까지 발전되었던 친구다.

그러다 둘이 헤어지면서 자연스레 동기 모임에도 나가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고, 수진이에게 더 이상 미련도 없기 때문에 동기들 모임에 오랜만에 나가게 됐다.

“이야. 최현식, 이진석!”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친구들은 이미 먼저 도착한 상태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이라 다들 우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하지만 마음이 다 정리됐다고 해도 백수진과 마주하는 건 여전히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이네, 진석아. 좋아 보인다.”

“아, 응. 너도.”

우리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들 알고 있기에 애써 티를 내진 않았다.

“난 갑자기 뉴스 속보에 진석이 얼굴 나오는 거 보고 순간 잘못 본 줄 알았잖아.”

“우리 진석이 검찰청 설렁탕도 먹어 보고 출세했네, 출세했어.”

“그게 뭔 출세야. 찍힌 거지.”

“야. 우리가 투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네 이름만 인터넷에 치면 주르륵 나오더라. 투자의 신, 투자의 천재라고 불리던데. 대체 뭘 하고 다녔던 거야? 그것도 최연소로 신화 금융 사장직까지 맡았다며?”

“별거 아니야. 그리고 지금은 은퇴했고.”

자꾸 칭찬을 해 주니 부담스러워 얘기를 끊으려 했지만,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동기들이 태워 주는 비행기는 멈추질 않았다.

그러다 간신히 화제를 돌리게 됐다.

“너희들은 요즘 뭐 하고 지내?”

“난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취업 준비 중이다. 하-. 요즘 진짜 취업하기 더럽게 힘들어.”

“맞아. 그냥 처음부터 공무원을 해야 했나 봐.”

“나는 보다시피 여기 곱창집 창업했지.”

다들 먹고살기 바쁜 모양이다.

왠지 나와 현식이만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나 또한 당장 매달 생활비를 걱정하고,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런 무거운 짐이 모두 내려져 양어깨가 가볍고 모든 일에 여유가 넘친다.

예전에는 조금만 무슨 일이 있어도 인상부터 쓰고 성질을 냈던 거 같은데, 최근에는 성질 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요즘 투자도 좀 하려고. 은행에 돈 맡기는 것보다 펀드 하는 게 훨씬 더 좋다고 하더라고?”

“맞아. 그래서 진석아. 요즘은 어떤 주식에 돈 넣는 게 좋냐?”

난 피식 웃으며 아주 정석적인 답변을 주었다.

“천하 전자에 다 넣어.”

“엥? 그게 다야?”

“너희들이 개인 투자자로 컴퓨터 앞에 매일 앉아 있을 거 아니면 맘 편하게 블루칩에 넣어 두는 게 좋아.”

“블루칩이 뭔데?”

“망하지 않는 회사의 주식. 그런 곳에 넣어 두는 게 가장 좋아. 그리고 펀드도 사실 나쁘진 않지만, 그냥 제일 마음 편한 건 대기업 주식 사 두고 몇 년 묵혀 두는 거야.”

그 말에 몇몇은 실망스러운 표정을 보였고, 또 몇몇은 뭔가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이나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주식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일수록 일확천금을 노린다.

다른 사람은 안 되도 나는 될 것이라는, 나는 다르다는 생각이 난다. 하지만 주식 투자는 모두에게 냉정하고 모두에게 잔인한 세상이다.

자신감에 가득 차 있을수록 철퇴를 내려치는 곳이 바로 주식 세계다.

누구나 짧은 기간 안에 큰돈을 벌고 싶어 하지만, 주식 세상에서 매번 그런 수익률을 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나처럼 미래 커뮤니티를 통해 미래의 일을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J&H가 신화 금융의 소속이 아니냐는 주장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식당 TV에서 나오는 뉴스의 소식이 내 눈길을 끌었다.

-전 신화 금융 사장 권 모 씨가 현재 J&H 한국 법인의 대표로 되어 있어 신화 금융이 배후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데, 자세한 소식은 김대기 기자가 준비했습니다.

벌써 이놈들이 뉴스를 돌리기 시작한 건가.

LK의 속셈이 뭔지 굳이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어디서 이놈들이 통하지도 않을 꼼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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