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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40화 (40/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40화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울어야 되는 건지.”

천하 금융의 사장, 장대섭은 LK 금융의 몰락과 타 금융사의 위기를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카드사 개인 정보 유출 사태로 인해 천하 금융과 천하 카드사의 주가가 나날이 고가 행진을 이어 가고 있지만, 그로 인해 천하 금융사에서 자체적으로 발행한 콜옵션들이 만기일에 권리를 행사하게 생겼다.

“원래 금융사나 카드사 주식 콜옵션은 잘 안 사지 않나?”

“예. 거의 안 산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발행 숫자도 많지 않았고요.”

“그런데 그걸 어떤 미친놈이 다 사 갔다? 그것도 이 일 터지기 전에?”

“매수자가 J&H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 쪽에서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있었는데, 그 양반들은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천하 금융사와 카드사 모두 다른 카드사에서부터 개인 정보 유출이 된 것 같다는 의심만 하고 있을 뿐, 그것이 정말인지는 알지도 못했다. 그런데 J&H는 이걸 또 어떻게 알고 천하 금융사와 카드사 쪽 콜옵션을 전부 매수해 버렸다.

“이걸 내부 정보로 신고할 수도 없는 게, 저희가 검찰 쪽에 찌르기 전에 콜옵션과 풋옵션을 대량 매수해 갔다는 겁니다.”

“내부 정보가 아니라는 거야?”

“예. 저희 쪽에서 정보가 빠져나가 일이 이렇게 된 게 아니라는 겁니다. 무슨 방법을 쓰긴 썼겠죠. 하지만 저희가 정보를 유출한 게 아닙니다.”

“하. 진짜 어이가 없는 새끼들이네.”

천하 그룹 쪽에서 정보가 새어 나간 것도 아니라면, 대체 그놈들은 어떻게 알고 투자를 진행한 것일까.

“콜옵션 권리 행사되면 그땐 얼마 손해 보는 거야?”

“콜옵션과 풋옵션이 전부 권리를 행사한다고 가정했을 때, 1,000억은 가볍게 넘을 것 같습니다.”

천억 단위에 장대섭 사장은 찌푸려진 미간을 붙잡았다.

주가가 폭등한 건 좋은데, 이건 아무리 봐도 손해가 막심했기 때문이다.

“천억이 어디 구멍가게 이름도 아니고, 저번에 북핵 실험 때도 그 새끼들한테 왕창 털려서 배가 아파 뒤지겠는데 또 천억을 가져다 바쳐라?”

“죄송합니다, 사장님.”

여기 임원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원래 옵션이란 건 금융사가 개미들의 돈을 매달 털어먹기 위해 만든 악마의 상품이다.

정말 가끔 그 반대가 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렇게 짧은 주기로 금융사 주머니가 털려 나가는 건 전례가 없었다.

이래서 옵션 만든 놈을 잡아다 화형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걸지도 모른다.

장대엽 사장은 뭐라도 차선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일단 만기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그때까지 돈 줄일 방법을 찾아보자고.”

“차라리 언론 플레이를 좀 해 볼까요? 천하 카드사도 정보가 찌라시를 뿌려 주가를 요동치게 만드는 겁니다.”

“그건 안 돼. 이게 얼마만의 잡은 기회인데. 이번 유출 사태는 우리 카드사가 드디어 대한민국 1위 카드사가 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야. 거기다 건방진 다른 금융사들도 죄다 찍어 누를 수도 있고. 어떻게든 물타기 해서 카드사 고객들을 전부 우리가 데리고 와야 돼.”

그 많은 고객들이 천하 금융사와 카드사로 몰려온다면 천억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게 뻔하다. 하지만 생으로 천억이 넘는 돈을 날리는 것 같아 배가 심하게 아픈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방법을 모색해 보자고. 눈 뜨고 코 베일 순 없잖아?”

* * *

옵션 투자에 들어간 돈이 총 25억.

권 대표가 가져온 보고서에 의하면 예상 수익은 2,600억 원이었다.

“대한민국에 주식 시장이 첫 개장된 이후로 이런 사례가 또 있나 싶습니다.”

“예. 첫 번째 투자에 4,200억. 두 번째 투자에 2,600억이면 어마어마한 일이죠.

직원들이 일을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우린 벌써부터 한우 파티를 열고 있었다.

원래 회식 자리가 보통 불편하기 마련인데, 다들 아는 사람들이고 또 진부한 삼겹살이 아니라 최고급 한우이다 보니 직원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근데 이사님. 우리 정말 맘껏 시켜 먹어도 되나요?”

“그냥 오늘 여기 식당 재료 전부 다 거덜 낸다고 생각하세요.”

2천억이 넘는 돈을 벌었는데, 그깟 한우 가격이 뭐가 아깝겠는가.

그런데 내 옆자리에 있던 현식이의 표정이 아까부터 좋지가 않다.

“흠. 이 한우 가격이면 국밥 그릇이 몇 개인지······.”

그냥 무시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이사님. 어제 제가 보낸 보고서 보셨습니까?”

“아, 네. 잠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회사들을 추천해 드리긴 했는데, 가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나는 마시던 술잔을 내려놓고 대꾸했다.

“LK 금융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말에 옆에서 뭐라 중얼거리던 현식이와 오영식 팀장이 우리 쪽에 시선을 집중했다.

권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번에 LK 금융이 저희 쪽에 풋옵션 폭탄금을 지불해 주면 더욱 휘청거리게 될 겁니다.”

“혹시 권 대표님, 저랑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역시, 이사님도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 계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LK 카드사는 이번 개인 정보 유출 사태의 핵심이기도 하고 그 카드사를 소유하고 있는 금융사가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겁니다. 당장 우리가 행사하는 풋옵션을 맞춰 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풋옵션 금액은 반드시 지불을 해야 할 겁니다. 그러지 않고 금융사를 파산시켜 버리면 정부가 강한 제재를 할 게 뻔하거든요.”

개인 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LK 그룹이 이번 풋옵션 폭탄을 피하기 위해 금융사 파산 신청을 내놓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LK 금융은 LK 그룹의 소속이고 지배 지분이 섞여 있기 때문에 함부로 처분을 할 수도 없고, 국가 기관의 돈이 섞여 있는 곳이기도 해서 파산 신청을 냈다가는 그룹 전체가 정부 손에 아작 날 수도 있다.

예전에 한호 그룹이 그런 짓을 했다가 정부에게 집중 공격을 받아 회장이 자진 사퇴하고 지분을 내놓지 않았던가.

천하 그룹처럼 행정 기관 곳곳을 장악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억지를 쓰는 건 결코 좋지 않다. 특히 개인 정보 유출 사태를 책임져야 하는 그룹이기에 금융사 파산은 결코 쓸 수가 없는 카드였다.

“LK 금융이 최근까지 베트남 쪽과 긴밀한 협의를 나누고 있었던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되면 LK 금융을 과연 베트남 기업이 사려 할까요?”

LK 금융이 베트남과 협약 중인 금액은 3조 원.

금융사, 카드사, 캐피탈, 손해보험사까지 이렇게 4곳을 팔아넘기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꼼수는 LK가 캐피탈을 넘기면서 자체적으로 또 다른 캐피탈을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캐피탈은 은행보다 이자가 비싸기 때문에 쏠쏠하게 돈 벌기에는 이만한 게 없다.

“2조 2천억 원으로 유추되고 있는데, LK 금융이 저 정도로 휘청거리면 베트남도 분명 손을 털게 될 겁니다.”

개인 정보 유출 사태에 이어 풋옵션 폭탄까지 맞으면 베트남도 생각을 다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건 다른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것을 빌미로 베트남 측에서 더 가격을 내려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워낙 요즘 LK 금융이 많이 흔들리기도 해서 입찰 경쟁을 시켜 놔도 베트남 기업 말고는 참여하는 곳이 없을 겁니다.”

“거기에 우리가 끼어들어 보자?”

“예. 우리 J&H 기업이 한 번에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LK 금융이라는 공룡을 삼킨다면 J&H의 입지가 얼마나 커지겠습니까?”

금융사 인수라.

나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입찰 경쟁에 들어가면 3조 원까지 뛸 거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에 나도 아직은 품을 수 없는 꿈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권 대표가 이렇게 진지하게 이 이야기를 꺼낼 줄이야.

“가능성이 있을까요? 인수 금액이 3조 원 가까이 될 텐데.”

“아마 이번 사태로 3조 원은 절대 안 갑니다. 제 예상으로는 2조 원쯤에 매각되지 않을까 싶군요. 하지만 거기서 조금 더 추가 공격을 가한다면?”

“추가 공격이요?”

“원래 이런 매각 경쟁에서는 항상 언론 플레이로 상대방을 흔들기 마련이죠. 북핵 실험 때부터 이번 개인 정보 유출 사태까지 털린 돈 때문에 LK 금융은 정부의 도움 없이는 살아나기 힘듭니다.”

만약 북한 핵 실험과 이번 개인 정보 유출 사태로 내가 폭탄을 던지지 않았다면 LK 금융은 건재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베트남에 금융사를 팔지 않고 쭉 유지하고 있다가 나중에 업계가 더 커졌을 때 팔아넘겼을지도.

“권 대표님. 제가 진지하게 물어볼게요. 이번 입찰 경쟁, 저희 J&H가 참여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참여한다면 정말 거기를 인수할 수 있을까요?”

“이사님이 참여할 마음만 있으시다면 제 모든 인맥을 동원해 이번 입찰 경쟁을 화끈하게 만들어 보겠습니다.”

권 대표의 심중이 뭔지 대충 알 것도 같다.

일단 참여를 해서 가격을 팍 깎기 위해 온갖 더티 플레이를 서슴지 않겠다는 것이다.

우리들 중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신화 금융사 사장이라는 타이틀을 지녀 왔던 권 대표는 할 수 있었다.

어느새 우리가 나누던 얘기를 숨죽여 듣고 있던 직원들이 작게나마 감탄을 터트렸다.

“지, 진짜예요? 진짜 이루 LK 금융 입찰에 참여하는 건가요?”

“헐······. 저 대기업 신입 직원 되는 거예요?”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그저 서로의 의지를 확인할 뿐.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도 오늘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네요.”

우리는 각자 술이 담긴 잔을 들고 가볍게 부딪혔다.

금융사를 인수하겠다는 헛된 망상이 오늘 조금씩 손에 잡히는 듯 느껴졌다.

* * *

[또다시 터진 옵션 폭탄!]

[옵션 시장, 이대로 괜찮은가?]

[배후를 알 수 없는 의문의 투자 기업, J&H. 북핵 실험 이후 또다시 옵션 대박!]

마침내 옵션 만기일이 되었다.

내가 사 놓은 풋옵션과 콜옵션 모두 권리를 행사했으며, 각 금융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인터넷 검색어를 점령한 건 카드사 개인 정보 유출 사태가 아닌, J&H가 되었다.

└진짜 거기 뭐 있는 거 아니냐?

└이 정도면 그냥 정부랑 연관이 있는 게 아닌가 싶네.

└저번 북한 핵 실험 때도 어영부영 넘어가더니, 또 이 지랄이네

└거기 대표부터 잡아서 조사해라!!

└내가 확신하는데, 그 대표가 대통령이랑 짝짜꿍 맞춘 거다.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는 것도 참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모두 갑자기 명탐정이 되어 온갖 추측을 쏟아 냈는데, 청와대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내가 나라님 얼굴을 뵌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어느새 나는 대통령 아들, 딸 혹은 사촌지간이 되었다.

“다들 여기 소유주가 누구냐는 말이 제일 많네. 우리 정체 숨기는 건 오래 못 가겠다.”

LK 금융 입찰 경쟁에 나선다면 우리 정체가 세상에 공개되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하지만 정말 LK 금융을 매수할 수 있긴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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