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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39화 (39/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39화

“휴. 이게 뭔 난리인가 싶네.”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카드사에 줄을 서고 있었다.

역대급 규모의 개인 정보 유출 사태로 사람들이 모두 카드사에 줄을 서서 카드 재발급을 받으려 하는 것이었다.

검찰에서는 카드사 3곳을 전격 압수 수색했고, 각 대표를 소환해 현재 조사 중이었다. 또한 이 일의 핵심 용의자인 박 모 차장을 긴급 체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정보는 한참 전에 넘어간 뒤였고, 그것을 돌이킬 만한 방법은 없었다.

가만있다가는 모든 카드가 복제되어 무분별하게 쓰임을 받을 게 분명해 정부는 카드사 업무 정지라는 대책까지 만지작거리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설마 카드사를 정지시키진 않겠지?”

사람들이 저 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을 서고 있지만, 나와 현식이는 VIP라 줄을 설 필요가 없었다.

나는 직원들의 인도에 따라 VIP용 LK 카드사 창구로 들어갔다.

현식이의 말을 들은 지점장은 우리를 안심시키기부터 했다.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정부가 카드사를 정지시키면 고객들의 불편이 이만저만 아닐 테니까요.”

“뭐, 여기 정지시킨다고 해서 카드사가 없는 것도 아니잖아요. 다른 곳에 가서 만들면 되지.”

“그, 그건······.”

현식이의 말에 지점장은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이쪽 직원들은 정부가 영업 정지까지는 시키지 않을 거라 확신했지만, 내가 본 미래 커뮤니티 글에서는 영업 정지를 당한다고 했다.

“그냥 우리 재발급받지 말고 없애 버릴까?”

그 말에 화들짝 놀란 지점장이 열심히 우리 둘을 설득하고 나섰다.

“고객님들께서 한 번 더 저희를 믿어 주시면, 어떻게 해서든 이번 사태에 대한 보상을 완벽하게 마무리 짓고 더 나은 서비스로 보답해 드리겠습니다.”

일반 고객도 아니고 VIP 등급의 고객을 잃는다는 건 큰 영업 손실을 의미했다. 당연히 이들은 우리를 붙잡고 싶을 것이다.

“일단 이거부터 받으세요. 저희 본사에서 VIP 고객님들에게만 챙겨 드리는 특별 선물 세트입니다.”

“크흠. 원래 이런 거 받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 지점장이 퍼 주는 선물을 전부 다 챙기는 현식이었다.

지점장이 선물 공세를 펼쳐 간신히 현식이의 마음을 잡을 수가 있었다.

“어차피 없앨 것도 아니었으면서 왜 그렇게 튕겼냐?”

“이거 받으려고. 그렇지 않아도 집에 고기 반찬이 없었는데, 잘됐어.”

“······.”

돈도 많은 놈이 저러는 걸 보면 원래 있는 놈이 더 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적절한 보상도 없이 이렇게 무작정 기다리라는 게 맞는 말이야?”

“당신들 일 똑바로 안 해?!”

카드사 밖을 나서자 줄을 길게 서 있던 고객들이 불만을 터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뜩이나 카드 개인 정보가 다 털려 나갔다는 것에도 화가 나는데, 평일에 여기서 줄을 계속 서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더더욱 화가 났던 것 같다.

그들의 모습을 보여 현식이가 내게 말했다.

“이 엄청난 사건에도 누군가는 돈을 왕창 번다는 게 참 신기하지 않냐.”

“원래 위기에 기회가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카드사 영업 정지라는 소문이 돌고 있던데, 정말 그렇게 될까?”

“내 예상에는 할 거 같아.”

“헉! 그럼, 이 카드 괜히 발급받은 거 아니야?”

“길게는 못 하겠지. 어차피 우리 개인 정보가 다 유출돼서 카드가 복제될 게 뻔하잖아.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영업 정지는 시키는 게 맞아. 고객들 재발급이 전부 끝날 때까진 영업 정지시키고 두고 보는 게 좋은 방법이지.”

카드사 영업 정지는 초유의 사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비난할 수는 없다.

카드사 개인 정보 유출은 그만큼 심각한 일이다.

그냥 개인 정보만 흘러나갔다면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하지만, 카드사 개인 정보는 카드 번호와 비밀번호까지 싹 빠져나간 것을 뜻하기 때문에 반드시 복제 카드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미 오래전 죽은 사람 개인 정보까지 빠져나간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대다수 국민들의 개인 정보가 유출된 거라고 봐야 했다.

즉, 카드를 재발급하지 않는 한, 복제 카드로 인해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렇기에 정부는 카드사 영업 정지를 시켜 고객들이 복제 카드에 의해 피해를 받지 않게 해 주는 것이다.

“LK 금융, 가뜩이나 자본 문제로 시끄러운데 이번 일로 더 흔들리겠네. 피해 보상도 해 줘야 할 거 아니야.”

“피해 보상? 과연 그걸 해 주려고 할까?”

언제나 우리 대한민국의 법은 대기업의 편을 들었다.

이 정도로 거대한 개인 정보 유출 사태가 터졌지만, 각 카드사들은 어떻게든 보상 문제를 흐지부지 만들려고 안간힘을 쓴다. 거기다 정부도 영업 정지 말고는 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아 보상 문제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게 된다.

결국 VIP 고객들을 제외하고는 일반 고객들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게 현실이었다. 그러나 피해 보상은 못 해 줘도, 내가 산 풋옵션에 대한 돈은 꼭 지불을 해야 할 것이다.

* * *

“이, 인사는 됐고, 빨리 브리핑부터.”

LK 그룹의 회장이 움직이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사안이 급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무려 75% 국민의 개인 정보가 유출된 어마어마한 대사건이지 않은가.

LK 그룹 회장, 이영찬은 목소리에서부터 당황이 섞여 있었다.

“저희 금융사에 있던 모든 개인 정보가 유출된 건 확실합니다. 신용카드를 등록하지 않고 멤버십만 가지고 있었어도 정보가 유출된 겁니다. 현재 정부에서는 3개월 영업 정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씨발. 뭐? 3개월?”

이 회장은 속을 끓이며 물이 아니라 아예 위스키를 잔에 따라 벌컥 들이켜고 있었다.

여론이 워낙 끓고 있으니, 영업 정지 3개월이란 카드로 잠시 식혀 보려는 속셈인 것이다.

“3개월이면 그냥 금융이랑 카드 다 접으라는 거랑 뭐가 달라? 보상 문제는 어떻게 됐어?”

“일단 사과문을 게재하고 각 지점에서 재발급 신청을 받는 중이라고 알려 줬습니다. 그리고 보상 같은 경우에는 솔직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만약 피해자 한 명당 10만 원씩 돌린다고 해도 10조 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해야 합니다.”

전 국민 75%가 피해를 보았으니, 보상금을 지불하는 건 회사 전체를 파산시키지 않는 한 불가능했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3개월 영업 정지로 퉁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3개월 영업 정지는 피할 수 없다는 거네?”

“예. 영업 정지는 피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닌 것 같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피해 보상 소송이 들어와도 법원에서 손을 들어주려 하지도 않을 겁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그룹 하나를 거덜 내기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랬다간 수많은 실업자가 생겨나고 사회적 혼란이 초래된다는 이유로 대부분 대기업의 손을 들어 준다. 또한 미국보다 훨씬 심하게 정경 유착이 되어 있는 그룹일수록 최대한 덜 피해를 보게 된다.

“이 빌어먹을 금융사 하나 팔려고 해외 기업들이랑 컨택 중이었는데, 어떻게 일이 이렇게 터져? 당신들 뭐 하는 놈들이야? 이따위로 하라고 내가 그 자리 앉혀 놓은 줄 알아!”

성질낼 곳이 없으니, 임원들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보는 이 회장이었다.

“이게 쪽도 그냥 쪽이 아니야. 천하 금융에서 이거 안 찔러 줬으면 우린 계속 개인 정보를 중국에다 퍼다 날랐을 거라고. 일단 이번 일에 관련된 새끼들 다 자르고 손해 배상 청구해. 그 새끼들 사돈의 팔촌까지 다 거덜 낼 정도로. 알겠어?!”

“예, 회장님. 그런데······ 아직 더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또 뭐로 내 성질을 긁으려고?”

“사실,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에 저희 금융사부터 시작해 여러 금융사를 돌아 풋옵션을 매집해 간 세력이 있었습니다.”

“뭐, 뭐야?”

보상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다가 영업 정지 3개월로 퉁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내심 안도하고 있던 이 회장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났다.

“우리 금융에서 풋옵션을 발행하고 있었나?”

“예. 콜옵션부터 풋옵션 모두 지속적으로 발행했습니다. 워낙 돈이 쏠쏠하게 벌리는 곳이니까요. 그런데 이번 사태로 저희 쪽 금융사 주가가 폭락하면서 이대로 만기일이 되면 모두 권리 행사를 하게 될 겁니다. 원래 금융사 주가를 내건 풋옵션은 잘 안 팔리는데, J&H가 저번에 싹 다 쓸어 간 일이 있었습니다.”

“J&H? 잠깐. 그 새끼들 저번에 40억으로 100배 넘게 해 먹었다는 놈들 아니야?”

“예. 바로 거깁니다. 그놈들이 마치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저희 금융사 주가 풋옵션을 모두 매집해 가서 지금 만기일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뭐야?!”

이 회장은 벌써부터 뒷골이 당겼다.

“아니. 그 새끼들은 자꾸 무슨 수로 미리 정보를 받아 챙기는 거야? 여기 주인인 나도 일 터진 걸 아침 뉴스 보고 알았는데!”

잠시 심호흡을 하던 이 회장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그래서 만기일이 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저희 쪽에서 발행한 풋옵션을 총 5억 원이나 가져갔으니, 만약 이걸 지금 주가에 권리 행사를 하게 되면······.”

“하게 되면? 얼만데?”

“300~500억 원 가까이 추정됩니다.”

“5, 500억?!”

이런 날강도 같은 놈들을 봤나.

눈 번쩍 뜨고 있는데 500억 원을 강탈당하게 생겼다.

“그것뿐이야? 그것 말고는 다른 피해 금액은?”

“저희가 발행한 풋옵션들 중 당장 피해를 보게 되는 건 저희 LK 금융 풋옵션과 NJ 그리고 KY 금융입니다. 이것들을 다 쓸어 간 곳이 J&H이기 때문에 아마 다른 것까지 합해서 보면 600~800억 원의 손해를 각오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큰 금액이다.

가뜩이나 LK 금융이 자본으로 휘청거리고 있는 이때 풋옵션 폭탄이 또 터졌다.

“도대체 그 새끼들 뭐야? 북핵 실험 때도 풋옵션으로 우리 주머니 다 털어 가더니, 이번에 또 이렇게 털어 가려고 해?!”

“저희가 일단 이건 명백한 내부 정보 거래라고 금감원에 조사 요청을 넣긴 넣었습니다.”

“그놈들이 잘도 우리 말 들어주겠다. 풋옵션 만기일 되면 감당은 가능한 거야?”

“다행히 감당은 되긴 합니다만, 거의 파산 직전까지 몰려간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얼른 해외 기업에 팔아넘기지 않으면 그룹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풋옵션 권리 행사에 800억 원이나 되는 돈을 뜯기고 나서, 영업 정지 3개월 동안 카드사에서는 돈 한 푼도 벌어들일 수가 없게 된다. 또한 금융사도 큰 타격을 입어 고객들이 줄줄이 떠나가게 될 건 자명한 일.

형제들과 피 터지는 싸움 끝에 마침내 LK 그룹을 승계받은 이 회장은 가뜩이나 불안한 그룹의 상태가 더더욱 흔들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새끼들.”

그는 J&H가 도대체 어떤 놈들의 손에서 움직이는지는 모르지만, 또 한 번 그놈들에게 수백억이 넘는 돈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이 분하고 원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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