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38화
요즘 게임을 참 많이 하는 것 같다.
핸드폰 게임부터 컴퓨터 게임까지.
취업을 하고 나서부터는 감히 잡지도 못했던 것들이다.
내가 유독 게임에 한번 빠지면 정신을 못 차리는 타입이라, 괜히 게임에 빠졌다가 돈도 날리고 시간도 날릴 것 같아 아예 붙잡질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생활이 매우 풍요롭고 다급하게 뛰어갈 필요도 없지 않은가.
4,200억을 현찰로 굴리는 회사의 대주주이니, 당연히 시간에 쫓길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오늘도 침대에 누워 핸드폰 게임에 푹 빠져 있을 때였다.
“중국 포털 사이트에 퍼져 있는 개인 정보 보고 투자를 결심했다며?”
그림자 하나가 내 위로 드리워졌다.
슬쩍 곁눈질로 보니, 현식이가 미묘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내가 금융사 풋옵션에 베팅을 걸었다는 걸 권 대표를 통해 들은 모양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하는 거야.”
“그게 카드사에서 빠져나간 건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빠져나갔는지 네가 어떻게 알아.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25억을 썼어?”
현식이의 말도 일리가 있다.
권 대표에게는 카드사에서 정보가 새는 게 아니냐는 말을 괜히 한 것 같기도 하고.
“생각 이상으로 정보가 많이 빠져나간 것처럼 보이더라고.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에도 개인 정보 유출이 너무 심한 것 같다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는 추세야.”
“뭐, 나도 그건 저번에 기사로 잠깐 봤어. 해외로 유출되는 개인 정보량이 심상치 않아서 조사에 착수했다는 거.”
“그래. 나는 그 정도로 많은 정보가 새어 나가려면 카드사 쪽이 아닐까 싶었거든. 게임 회사들도 여럿 털리긴 했지만, 거기서 방대한 양을 가지고 있진 않으니까. 근데 그것만으로 추론을 하기에는 부족하거든. 너 어디서 들은 거 있는 거지?”
“응? 아니야.”
“맞네, 맞아. 어디서 들은 게 있으니까 거기다 돈을 부은 거겠지. 말하기 싫으면 말 안 해도 돼. 그런 정보는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좋으니까. 근데 내부 정보법에 걸려서 잡혀가면 안 된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현식이는 내 어깨를 몇 번 두드리며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누구한테 들은 게 아니라 미래의 신문 기사를 통해 봤다고 하면 믿으려나.
그리고 이번 투자가 성공하면 또다시 나는 내부에서 정보를 얻은 게 아니냐는 괜한 의심을 사게 될 게 뻔하다. 그러나 증거가 없으면 범인으로 내몰 수 없지 않은가.
갑자기 머리가 좀 복잡해졌다.
난 핸드폰 게임을 끄고 컴퓨터 앞에 앉아 여러 기사들을 찾아보았다.
[LK 금융, 베트남에 매각 준비 중?]
[LK 금융, 국내에서 매수 인사 밝힌 기업 없어.]
[금융의 공룡 하나가 이대로 사라지나?]
내 눈길을 끈 것은 바로 LK 금융이었다.
이미 권 대표와 오영식 팀장에게 받은 보고서에 의하면 LK 금융은 LK 그룹의 확실한 지배 구조 개편을 위하여 금융사 매각을 준비 중이다.
LK 그룹이 캐시가 빵빵하게 들어오는 금융사를 팔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미 그곳도 몇 년 전 후계자들끼리 크게 싸움을 벌이면서 그룹이 조각조각 나뉠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다행히 첫째가 모든 걸 수습하면서부터 지배 구조를 바꾸게 된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다수 순환출자 형식의 지배 구조를 이뤄 오다가 외부 공격에 취약하다는 이유로 정부가 법을 바꾸면서부터 지주 회사를 만들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로 바뀌어 왔다.
LK 그룹도 예전 지배 방식을 버리고 지주 회사를 만들기 위해 모든 지분을 정리하는 단계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다 금융사에 꼬여 버린 지분 구조와 지주 회사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 마련을 위해 금융사를 팔아넘기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당분간은 그들의 주력 회사인 유통과 화학 쪽을 키워 탄탄한 기반을 다지겠다는 의도였는데, 문제는 국내에 LK 금융을 사려는 기업이 없어 현재 해외 쪽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이들은 금융사를 팔아 요즘 잘 나가고 있는 캐피탈 사업을 통해 캐시를 충전할 생각인 것 같았다.
“만약 여기서 옵션이 터져 버리면 어떻게 될까?”
LK 금융은 이번 유출 사건의 핵심이 되는 곳이다.
어마어마한 피해 보상금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물론, 옵션 금액까지 지불하려면 그룹 전체가 휘청거릴지도 모른다.
금융사 하나 때문에 그룹 전체가 무너지는 건 결코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미 이들은 북핵 실험 때문에 큰 대가를 치른 적이 있다. 그래서 더더욱 LK 금융을 처분하려는 것이고.
“이참에 금융사 하나 챙겨 볼까?”
만약에, 정말 만약에 LK 금융사가 자본에 허덕이고 있을 때 내가 손을 뻗으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금융사를 꿀꺽하는 건 무리겠지?”
혹시나 하는 망상으로 행복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 * *
“뭐라고? 어디서 뭘 가져가?”
“J&H요. 이틀 전부터 풋옵션들을 다 쓸어 담아 가고 있습니다.”
J&H란 이름만 들으면 심장이 덜컥거리는 LK 금융의 이영석 사장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회사라고 무시했다가 풋옵션으로 금융사들의 주머니를 거덜 내 버린 곳이 아니던가?
북핵 실험 이후 계속 잠잠하던 그 회사가 다시 한번 활동을 이어 갔다.
“풋옵션이면 어떤 종목?”
“일단 코스피 200에서는 KY 금융의 풋옵션을 전부 사들여 갔고, 개별 주식 옵션에서는 LK와 KY, 그리고 NJ 금융 쪽의 풋옵션들을 죄다 사들였습니다.”
“또 있어?”
“예. 콜옵션도 여러 종목 사 갔는데, 천하 카드사와 천하 금융입니다.”
기이한 투자 전략이었다.
KY 금융, NJ와 LK 금융의 풋옵션들을 죄다 사 갔다니.
LK 금융은 요즘 매각이 된다는 말이 많아서 하향세를 타고 있으니 이해는 한다지만, 다른 것들은 왜 사들이고 있는 걸까?
“그놈들이 왜 갑자기 그것들만 골라서 사 가고 있는 거야?”
“저희도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만기일이 2주 내로 끝나는 거라 그 안에 무슨 사건이 크게 터지지 않는 한, 풋옵션으로 돈을 벌 순 없을 겁니다.”
“큰 사건이라면 어떤 거?”
“저희도 그것까진 아직······. 천하 금융은 상승세를 타고 나머지 금융사들은 하락세를 탈 사건이 뭔지 상상이 가질 않습니다.”
이영석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천하 금융과 천하 카드사는 콜옵션을 사고 나머지 금융사들은 전부 풋옵션을 사들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도를 뜻하는 것일까?
“우리 LK 금융이 요즘 말이 많다고 해도 풋옵션으로 꿀 빨 수 있을 정도는 아닐 텐데.”
“예. 오히려 해외 자본에 더 탄력을 받고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습니다.”
LK 금융이 지금 심각한 상황까지는 아니었다.
언론 플레이를 잘해 놓아 해외 자본 유입은 LK 금융에 큰 기회가 되어 한 발자국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는 것이 사람들의 평가였다.
“일단 좀 더 알아봐. 혹시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수도 있어. 그놈들은 우리 나라님도 모르는 북핵 실험 정보까지 미리 받아서 풋옵션에 다 때려 박은 새끼들이야. 우리보다 정보망이 훨씬 넓어. 그러니까 잘 알아봐.”
“예, 사장님.”
J&H가 고작 40억으로 4,200억의 수익을 낸 건 대한민국 주식 세계에서 벌써 전설이 된 이야기다. 이미 금융사 내부에서는 J&H가 엄청난 정보망을 가진 게 분명하다고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즉, 그들이 이렇게 움직였다면 필시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게 이영석 사장의 생각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그룹 임원들에게 알려야 하는 건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정말 J&H의 예상대로 LK 금융이 풋옵션 폭탄 배달을 받게 될 경우, 그땐 그룹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 * *
-검찰이 오늘 낮 NJ 카드사를 압수 수색했습니다. 검찰은 현재 카드사로부터 정보가 해외에 팔려 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미 NJ 카드사 대표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상태입니다.
옵션 만기일 5일째가 되는 날 드디어 일이 터졌다.
박 모 차장이 정보 유출을 시도한 정황을 가장 먼저 포착한 천하 그룹이 검찰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부터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카드 3사의 대표들이 전부 검찰로 끌려가 조사를 받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거······ 생각보다 일이 심각하게 돌아가는데요?”
권오준 대표는 TV 앞에서 떠나지 않은 채 계속해서 뉴스를 시청했다.
그러다 점점 사건의 윤곽이 잡히고 마침내 카드사에서 어마어마한 정보가 해외에 유출되었다는 속보가 뜨자 그는 만세를 외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로 인해 인테리어가 마무리되어 우리의 첫 사무실로 들어온 직원들 모두 깜짝 놀라 권 대표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기까지 했다.
“됐어! 터졌어! 터졌다고!!”
“뭐가 또 터져요?”
“보면 몰라? 우리 이사님이 또 마법을 부렸다는 거야!!”
권 대표는 소파에 앉아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는 내게 달려왔다.
“이사님! 뉴스 보셨습니까?”
“예. 저도 방금 봤어요. 하루 종일 뉴스만 보고 계시는데 제가 어떻게 몰라요.”
“아이고, 이사님!”
권오준 대표는 날 꼭 껴안으려다 마지막에 선을 지켰다.
“흠흠. 방금 뉴스가 사실이라면 이거 정말 엄청난 일입니다.”
“저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이 정도로 사건이 심각하게 터질 줄은 몰랐네요. 방금 보니까 전 국민 75%에 해당하는 정보가 유출되었다고 하던데.”
“예. 아직은 추측에 불과하지만, 저게 정말 공식 발표로 확정 나면 저희가 투자했던 풋옵션들이 전부 권리 행사를 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게 될 겁니다.”
권 대표의 말에 화영 씨가 박수를 치며 제자리에서 통통 튀어 올랐다.
“어머! 우리 보너스 받는 거예요?”
“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보너스 타령이야. 그런데 진짜 받나요?”
오 팀장까지 눈동자를 반짝였다.
뭐, 실질적으로 따져 보면 모든 투자 결정은 내가 내렸으니 보너스는 전부 다 내가 챙기는 게 맞는 것 같긴 하나, 여기 직원들도 분석을 위해 노력을 한 공을 인정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지금도 열심히 잠재적 가치 투자를 위해 여러 회사를 찾아내고 있는 중이다.
“예. 아직 풋옵션 권리 행사를 하진 못했지만, 사건이 크게 터지면 소고기 회식도 할 수 있겠네요.”
직원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지를 때였다.
“야!! 뉴스 봤냐? 이거 또 터졌어!!”
고함을 지르며 들어오는 현식이를 모두가 짜게 식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음? 뭐야, 이 분위기는. 다들 알고 있는 것 같네.”
“뒷북쳤어. 그냥 조용히 자리 가서 앉으면 돼.”
“으응.”
현식이는 자연스럽게 소파에 쏘옥 들어가 앉았다.
그 모습에 모두 웃음을 터트리며 뉴스 장면을 해맑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현식이가 여기서 또 초를 치는 말을 툭 던졌다.
“근데······ 마냥 웃을 일이 아니야. 여기 있는 우리들 정보도 다 털린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제서야 다들 뭔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굳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