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37화
카드사 대규모 개인 정보 유출 사건.
세상이 바뀌면서 더 이상 손으로 쓴 서류가 아닌, 컴퓨터로 제작된 개인 정보가 기업 서버에 저장되어 있다. 그로 인해 우리의 귀한 개인 정보가 외부로 노출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그 이유는 바로 해킹 때문.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 천하 그룹도 해킹으로 인해 개인 정보가 유출된 적이 있을 정도로 해킹에 의한 개인 정보 유출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그래서 한번 당해 본 기업들은 보안을 철저히 해 놓는데, 아직 해킹의 무서움을 잘 모르는 기업들은 그냥 허술하게 보안망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도 바로 그런 경우라 할 수 있다.
“전 국민 75%의 정보가 빠져나간 거면 말 다 했지.”
미래 커뮤니티를 통해 기사를 봤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 중소기업도 아닌, 대기업인 LK 카드가 뚫린 것을 시작으로 KY 카드, NJ 카드까지 죄다 보안이 뚫려 버렸다.
이로 인해 그곳에 저장되어 있던 수천만의 개인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었는데, 그 수를 따지면 전 국민의 75%라고 한다.
철저한 보안으로 신뢰와 신용을 지켜야 하는 현대 금융 시스템이 한 번에 무너진 것이었다. 해킹으로 인해 사이트가 탈탈 털리면서 몇몇 개인 정보가 빠져나간 적은 있어도, 이렇게 75% 국민의 개인 정보가 빠져나갈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 초대형 사건 아래 온 국민이 분노를 터트렸고, 허술한 보안망을 비난했다.
“내 정보도 털려 나가겠지?”
이미 오래전에 죽은 사람 정보까지 빠져나갔다고 하니,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우리의 귀중한 주민등록번호는 해외에 전부 팔려나가게 되고, 특히 중국 쪽에 대량으로 뿌려져 걷잡을 수가 없게 된다. 이로 인해 정부는 아예 주민등록번호를 바꿔 주는 법안을 통과시키기까지 이른다.
“어디 보자.”
나는 직원들이 보내 준 메일을 하나씩 열어 보며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이번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LK 카드와 KY 카드, 그리고 NJ 카드는 전부 각 금융사에 소속되어 있어 별도로 상장을 하진 않았다.
LK 카드는 원래 상장이 되어 있었는데, 지주 회사를 만들면서 법 문제로 카드사를 금융사에 통합시켰다. 최근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LK 그룹은 조만간 금융사를 처분해 그 안에 섞여 있는 계열사들을 싹 팔아넘길 거라고 한다.
“내가 본 커뮤니티 글에는 이 세 개 금융사들이 싹 다 폭락을 하던데.”
나의 유능한 직원들이 보낸 검토 보고서들은 모두 무난한 지표를 그릴 거라고 예상했다. 그들도 설마 이 정도 규모의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이 터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폭락을 한다고 해도 옵션질을 많이 할 수가 없어.”
금융사에서 발행하는 풋옵션들은 대부분 블루칩이라 불리는 대기업의 것들이다.
당연히 금융사 자체의 풋옵션을 발행하진 않는 곳이 더 많기에 폭락을 한다는 걸 알면서도 풋옵션을 살 수가 없다.
그러나 아예 없다고도 할 수가 없다.
여기 오영식 팀장이 보낸 보고서를 보면 알 수가 있다.
[현재 KY 금융은 개별 주식 옵션을 꾸준하게 발행하고 있으며, 만약 카드사의 폭락을 예측할 시 KY 금융에서 발행하는 옵션들을 구매하는 것이 좋음. 하지만 향후 2년간 금융사 폭락 가능성이 많지 않음.]
KY 금융은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큰 금융사다. 이곳에서 발행하는 풋옵션들은 자사도 포함이 되어 있다.
그다음으로 권오준 대표가 쓴 보고서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금융사 폭락을 예상할 경우, 코스피 200에 포함되어 있는 KY 금융과 천하 금융, 그리고 신화 금융을 풋옵션 구매 리스트에 올려놓을 수 있다. 또한 금융사 폭락이 거세게 이어진다면 현재 위태한 LK 금융은 회사를 헐값으로도 매각시켜야 한다.]
금융사에서 발행한 풋옵션이 별로 없어도 우리나라 대형 기업 200개를 모아 둔 코스피 200이라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그곳에는 KY 금융을 비롯해 이번 사건에 직격탄을 맞는 금융사들이 끼어 있다. 그곳에 발행되어 있는 풋옵션을 싹쓸이한다면 꽤나 큰 돈벌이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권오준 대표의 마지막 조언이 눈길을 끈다.
[LK 금융의 파산.]
만약 현 상황에서 금융사가 위기에 봉착하면 그중 LK 금융은 어쩔 수 없이 파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LK가 금융사를 파산시키려면 모든 지분을 포기하고 다른 계열사들도 전부 포기해야만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매각을 진행할 거라는 게 권오준 대표의 분석이었다.
“대충 그림은 잡혔다.”
그렇다면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까.
내가 눈을 돌린 곳은 이번 카드사 개인 정보 유출로 이득을 보는 곳과 완전 나락으로 떨어지는 곳이었다.
주식 시장에서 옵션만큼 돈 되는 투자가 없긴 하지만, 주식 투자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나는 한 달 뒤의 커뮤니티 글까지 확인하여 어느 주가가 오르는지 미리 파악을 해 두었다.
이번 사태로 인해 개인 정보를 유출시킨 카드 3사는 영업 정지까지 당하는 초유의 상황까지 치닫게 된다. 당연히 그 카드사를 소유하고 있는 금융사들은 죄다 주가 폭락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항상 우는 놈이 있으면 웃는 놈도 있는 법.
이 사건으로 보안 체계가 확실히 잡혀 있다고 평가받는 천하 카드가 어마어마한 떡상을 이룬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해킹으로 인해 발생한 일이 아니다.
개인 정보 유출의 범인은 아이핀을 관리하는 신용평가 업체인 KCB에 근무하는 박 모 차장으로 알려진다.
그는 각 카드사의 분실 및 탐지 시스템 개발 책임자로 파견돼 일을 하게 되는데, 해외 브로커와 계약을 통해 시스템 테스트라는 핑계로 카드사로부터 개인 정보를 받아 전부 USB에 담는다.
정상적인 카드사라면 테스트할 때 진짜 고객의 정보가 아닌 가짜 정보를 주는 것이 기본인데, 외부 용역에 불과한 박 씨에게 고객 정보 액세스를 허용하는 바람에 일이 커져 버린 것이었다.
날로 대담해진 박 씨는 천하 카드에도 침투하여 똑같은 방법으로 정보를 빼내려 했으나, 천하 카드사는 고객의 진짜 개인 정보를 요구하는 박 씨를 그날 바로 잘라 버렸고, 별도의 조사 지시를 내려 그 꼬리를 잡게 된 것이었다.
“2배라······.”
이 사건을 계기로 카드 3사는 모든 비난과 비판을 수용해야만 했고, 반대로 천하 카드는 돈이 몰려 한 달 만에 주가가 2배나 뛰는 기염을 토해 낸다.
즉, 이번 일로 나는 두 가지 포지션을 취할 수 있게 됐다.
폭락을 하는 곳에는 풋옵션을, 오히려 껑충 뛰는 곳에는 콜옵션을.
어느 쪽이든 모두 내게 득이 될 만한 포지션이었다.
* * *
“보고서는 아주 잘 봤습니다. 다들 가지고 계신 뛰어난 분석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더군요.”
오늘 하루 통째로 빌린 카페에서 나는 최신형 노트북을 직원들에게 하나씩 나눠 주었다.
어제 이들이 보내 준 보고서를 통해 나는 깊은 감사함을 느꼈다.
이들의 실력은 확실히 A급이다. 어디서 이런 인재들을 구할 수 있겠는가. 특히 이번에 새로 온 신참들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가졌다.
“와. 이사님. 이 노트북 그냥 주시는 거예요?”
“예. 제가 선물로 드리는 겁니다. 그걸로 며칠만 여기서 일 좀 해 주세요.”
권오준 대표부터 시작해 직원들 모두 새로 받은 노트북을 해맑은 얼굴로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이라는 게 뭐죠?”
“말씀 잘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코스피 200과 개별 주식 옵션을 파악해야 합니다. 리스트를 말씀드리자면 KY 금융, 천하 금융, LK 금융, NJ 금융, 마지막으로 천하 카드사입니다. 이 다섯 가지의 옵션들을 전부 파악해 주세요.”
내 지시에 직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권오준 대표가 나서서 깔끔하게 정리를 했다.
“다들 뭐 하고 있어. 이사님 말씀 따라야지. 코스피 200은 다 똑같지만, 특히 개별 주식 옵션 같은 경우는 금융사마다 전부 다 다르니까 꼼꼼하게 확인해야 돼. 그리고 코스피 200도 금융사에서 발행하는 숫자가 다 달라. 그것도 잘 체크하고. 다들 알겠지?”
권오준 대표는 이런 카페에서 갑자기 일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불만 한마디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구수한 커피 냄새 덕분에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는 농담을 늘어놓으며 즐겁게 일에 임했다.
다른 직원들도 맡은 임무에 충실했는데, 이들의 노력 덕분에 3시간 정도 흘렀을 때쯤에 나는 보고를 받을 수가 있었다.
“만기일이 다음 달인 풋옵션만 놓고 봤을 때 총 15억이 남아 있습니다.”
15억.
예상했던 거긴 하지만, 역시 발행된 금액이 많지 않다.
“개별 주식 옵션까지 합한 금액인가요?”
“예. 저번에 북핵 실험으로 크게 데여서 그런지, 금융사들이 요즘은 옵션을 잘 발행하지 않는다는 점도 한몫했습니다. 그리고 콜옵션 같은 경우는 22억 정도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 천하 금융 것만 놓고 본다면요?”
“음. 천하 금융과 천하 카드사만 10억입니다. 이게 천하 금융과 천하 카드사, 그리고 KY 금융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 코스피 200에서 제외되어 있는지라 발행된 걸 찾기가 어렵습니다. 각 금융사를 털어서 개별 주식 옵션으로 찾는 것밖에는······.”
천하 금융과 천하 카드사, 그리고 KY 금융은 규모가 크고 재정도 안정적이라 코스피 200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나머지 금융사들의 옵션을 찾으려면 여러 금융사를 돌아 발행되어 있는 개별 주식 옵션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총 25억이라······.”
애매한 숫자다.
그래도 옵션이 발행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이것도 꽤 많은 숫자이긴 했다.
북핵 실험 때도 끝물이라 이것저것 다 끌어모아서 40억이었는데, 특정 옵션들만 두고 봤을 때 풋옵션과 콜옵션을 합친 금액이 25억이면 썩 나쁘지 않은 숫자다.
“음. 그럼, 천하 금융과 천하 카드사를 제외한 나머지 금융사들의 풋옵션을 전부 다 매수해 주세요.”
“정확히 20일 후에 만기되는 옵션들을 전부 말입니까?”
“예.”
“외람되지만, 어떤 분석에 의한 투자인지 들어 봐도 되겠습니까?”
권오준 대표의 물음에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단순한 직감이긴 합니다만, 제 예상으로는 지금 카드사에서 정보가 빠져나가고 있는 것 같거든요.”
“카드사에요?”
“예. 대표님 이따 시간 되실 때 중국 유명 포털 사이트 들어가셔서 본인 이름이랑 주민등록번호를 한번 쳐 보세요. 아마 가관일 겁니다.”
이것도 내가 미래 커뮤니티 글을 읽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다.
중국 포털 사이트에 본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치면 수십 개의 사이트에서 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적힌 글이 뜬다.
정보 유출이 예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는 건데, 이번에 크게 펑 터지면서 공론화가 된 거라고 볼 수가 있다.
“그게 옵션에 투자를 하시는 이유입니까?”
“예.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하는 겁니다. 그리고 25억이면 그리 많은 돈도 아니니까요. 일단 그렇게만 해 주세요.”
4,200억 중에서 25억은 별로 티도 나지 않는 금액이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만 말하면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으니, 나는 다른 지시도 내렸다.
“옵션 구매가 끝나면 다른 주식들도 체크해 주세요. 분석표를 확인해 보시고 권 대표님이 독자적으로 투자를 결정해도 좋습니다.”
한국 법인을 지휘하는 건 권오준 대표가 될 것이라고 이미 약속을 해 둔 상태였다.
권오준은 아직 못미더운 표정을 짓긴 했지만, 이번에도 내 예측이 맞아떨어진 것을 보면 날 업고 다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