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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36화 (36/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36화

“누가 봐도 북한이랑 우리가 상관이 없다는 걸 지나가는 똥개도 알 텐데, 이런 식으로 몰아가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현식이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권오준 대표는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진정하시고, 일단 앉으세요.”

나도 현식이와 같은 마음이긴 했다.

정황상 충분히 의심을 살 만한 투자이긴 했으나, 아무리 그래도 정말 우리가 북한이 세운 법인인 것처럼 몰아가는 건 도를 넘어섰다.

“억지도 정도가 있죠.”

“뭐, 완전히 억지스러운 건 아닙니다. 북한이 해외 법인을 세워 세계 곳곳에 투자금을 넣은 적이 있어요. 우리나라에다가도 돈을 넣었다가 미국 제재가 시작되면서 전부 빼앗기긴 했지만.”

“그러니까요. 미국이 완전히 꽉 틀어막고 있는데, 그놈들이 무슨 수로 법인을 세운다고.”

“두 분 다 진정하세요.”

권오준 대표는 우리 둘을 진정시킨 다음 말을 이었다.

“이미 금감원 쪽에 연락을 넣어 봤어요.”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세요?”

“하하. 저 이래 봬도 금융사에서 굴러다닌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금감원에 술친구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금감원과 검찰 쪽에 술친구 하나씩 만드는 건 필수죠.”

권오준의 짬은 무시하지 못한다.

신화 금융의 사장으로 있으면서 이곳저곳에 많은 인맥을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금융사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니까.

“그곳에서 뭐라고 합니까?”

“뻔하죠. 보여 주기식.”

“쇼라는 겁니까?”

“예. 쇼 한 번 거하게 치는 거랍니다. 지금 정부 쪽에 스캔들이 많이 터졌잖아요. 그래서 그거 덮겠다고 이 지랄을 떠는 거라더군요.”

뭔 뜻인지 알겠다.

정부에 스캔들이 터지거나, 몇몇 시끄러운 일이 터지면 이상하게 연예인 열애설이 뜨고 다른 이슈들이 불편한 소문을 덮어 버린다.

이번에도 같은 패턴이라는 소리였다.

“그래도 아예 일을 안 하고 있는 건 아니랍니다. 검찰에서 이미 정식으로 미국에 요청을 넣긴 했다고 하네요.”

“그쪽은 걱정이 없어요. 셰릴 로펌이 저희랑 계약을 했거든요.”

“오. 그래요? 셰릴이면 해외 법인 쪽이 뚫릴 일은 없겠네요.”

권오준도 셰릴 로펌이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일 터지기 전에 현식이 아버님 말씀을 따라 셰릴과 계약을 맺기 잘한 것 같다.

“금감원 쪽 얘기 들어보니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여요. 하지만 정부에서 J&H를 마냥 좋게만은 보지 않고 있다는 건 확실해요.”

“원래 다들 망하고 있는데, 한쪽에서 왕창 돈을 벌면 누구나 심술이 나기 마련이죠.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권오준 대표의 말대로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뭐든 확실한 게 낫지 않겠는가. 이따 12시가 되면 정말 우리 회사가 안전한지 알아볼 생각이다.

* * *

12시가 되자마자 고장 난 핸드폰이 다시 눈을 떴다.

볼 때마다 참 신기하다.

도대체 내 핸드폰에 무슨 짓을 해 놓았기에 배터리 충전도 안 해 놓는 핸드폰이 저절로 켜지는 거냐고.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센터장 얼굴을 한번 보고 싶다.

내게는 수호천사나 다름없는 사람이니까.

“음. 일주일 후의 기사를 확인해 보면 되려나?”

중급 회원이 된 이후로 검색 기능이 생겨 내가 원하는 시간대를 검색할 수가 있게 됐다. 그래서 호기심에 과연 어느 시점까지 검색이 가능한가 궁금해 100년 후의 커뮤니티 글을 찾아봤던 적이 있었다.

[중급 회원은 최대 5년까지만 검색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5년이라는 제한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검색 시점이 3년만 넘어가도 추가 포인트를 지불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걸렸다.

딱히 5년 후의 일을 포인트까지 지불하며 검색할 필요는 없어서 해 보진 않았다.

“음. 일단 신문사부터 찾아볼까.”

이 검색으로 아주 유용한 게 하나 더 있었다.

이것으로 나는 매주 로또 1등 당첨 번호를 알아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4,200억이나 들고 있는 시점에서 로또 1등 당첨이 또 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나 싶다. 오히려 매주 1등이 당첨된다면 의심을 살 게 뻔했기에 로또를 사진 않았다.

“음?”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후의 기사를 찾아봤는데, 신문사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우리 J&H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글자도 들어가 있지 않았고, 다들 한 이슈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뭐야, 이게?”

기사 내용을 확인한 나는 다른 커뮤니티 글들도 찾아보았다.

└역대급이다.

└우리가 짱깨냐? 전 세계 망신이다.

└미친놈들이 그거 하나 관리 못 하냐?

└이거 빼간 새끼는 잡아서 사형 시켜야 한다.

└박 모 차장이라고 했냐? 실명이랑 주소도 싹 다 공개해라!

그냥 한두 사람이 화가 난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온 국민이 분노를 터트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혹시라도 일주일 후에 J&H 한국 대표가 검찰에 소환을 당했다는 기사가 나오면 어쩌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어쩌면 이게 또 다른 기회가 될지도?”

전 국민적 큰 사건이기는 하나, 주식 시장을 배회하는 내겐 돈 냄새를 맡고 있는 코끝을 자극하는 일이었다.

* * *

“넌 걱정이 하나도 안 되나 보다.”

“응. 난 내 닭 다리를 네가 또 처먹을까 그게 더 걱정이야.”

‘두 마리 홍식이 치킨’을 시켜 놓고 나는 앙상하게 놓인 3개의 닭 다리 뼈를 허망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 새끼는 양심도 없이 닭 다리를 3개나 먹다니.

닭 다리 때문에 폭행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걸 이놈은 모르는 건가.

“오늘도 위협적인 기사들이 많이 나왔어. 당장이라도 한국 법인 털어서 권 대표랑 직원들 죄다 줄소환 칠 거 같던데?”

“권 대표님이 말했잖아. 그럴 일 없다고. 죄가 없는데, 그런 짓을 어떻게 해?”

“그래도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가 좀 막장이냐. 내가 금융사 사장 아들이잖아. 정부가 개막장 짓 부리는 걸 한두 번 본 줄 알아?”

“응. 아무튼, 그럴 일은 절대 없어. 그리고!”

나는 은근슬쩍 닭 다리를 집어 가려 하는 현식이의 팔을 붙잡고 빼앗았다.

“그렇게 닭 다리만 처먹을 거면 닭 다리 있는 것만 시켜.”

“쳇. 너 다 먹어라. 난 입맛이 없다.”

“그러면서 혼자 한 마리 벌써 다 먹었잖아. 거기서 또 입맛이 있으면 그게 사람이냐?”

나는 마지막 남은 닭 다리를 맛있게 뜯으며 현식이에게 말했다.

“얼른 먹어. 1시간 뒤에 직원들 출근하라고 했어. 다 같이 만나야 돼.”

“으응? 왜? 사무실 쓰려면 2주는 기다려야 할 텐데?”

“그럴 일이 좀 있어서. 일단 카페에 다 모이게 한 다음에 대충 할 일만 알려 주고 메일이나, 채팅으로 보고받으려고.”

“무슨 일 시키게?”

“금융 회사에서 해야 할 게 뭐 있겠냐. 투자지.”

현식이는 왜 그걸 지금 말하냐고 투덜거리며 샤워부터 하러 들어갔다.

그러게 누가 닭 다리만 쏙쏙 빼 먹으랬냐.

나도 먹은 걸 다 치우고 현식이에게 떠밀려서 산 명품 정장들을 걸쳐 입었다.

확실히 재질이 좋긴 하다. 착용감도 괜찮고.

그냥 비싼 거라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 수도 있지만.

“갑자기 다들 출근하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직원이라고 해 봤자 총 5명.

권오준 대표와 이화영, 오영식, 그 외 새로 뽑은 신참 두 명이 전부였다.

“앞으로 우리 J&H는 단기 투자를 지향하기보다는, 투자 가치가 충분한 곳에 돈을 넣을 생각입니다. 또한 단순히 주식 시장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잠재적 가치가 있는 곳을 찾아 과감한 투자를 이어갈 겁니다.”

앞으로 J&H가 나아갈 방향은 주식 시장이 아니다.

물론 주식 시장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잠재적 가치가 높은 기업을 찾아 나서서 그곳에다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잠재적 가치를 지닌 기업을 집중적으로 찾아보세요. 아마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달려들어도 그런 곳을 찾아내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래도 꼭 해야 할 일이기도 해요.”

“그것뿐입니까? 차트를 보는 일은 하지 말고요?”

“물론 그것도 해야겠죠. 그래서 분업이 필요한 겁니다. 분업은 권 대표님에게 맡기겠습니다. 또한 직원이 더 필요하면 얼마든지 지원해 드리죠. 미발굴된 기업을 찾는 팀과 주식 시장을 관찰하는 팀이 필요하겠군요.”

“음. 저희가 대형 금융사들처럼 펀드를 만들어 팔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요.”

“예. 당장은요.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비슷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금융사들은 고객을 관리하면서 수수료를 챙긴다. 그리고 그 돈들로 여러 기업을 사들여 이익을 창출하는데, 우리 J&H는 그보다 좀 더 심층 깊게 파고드는 것이다.

아직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기업을 찾아 투자금을 쏟아붓는 것.

혹시 아는가?

발굴되지 않은 인재들이 우리 회사의 투자금을 받아 공룡이 되어 버릴지.

“그리고 오늘 여기 여러분을 모은 이유는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럴 줄 알았다며 모두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현재 주식 시장에 나와 있는 카드사들을 집중 분석해 주세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여러 카드사들은 금융사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일까지 각자 분석한 내용을 제 메일로 보내 주셨으면 합니다.”

“내일이요?”

“예. 좀 빠듯하죠? 내일 저녁까지 보내 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카드사는 왜······. 혹시 카드 대란이라도 오는 건가요? 예전처럼 카드빚이 대책 없이 쌓이는 경우는 없을 텐데요.”

2000년대 초반 카드 대란이 온 적이 있다.

직장 없는 대학생, 빚만 가득한 백수에게도 제한 없이 카드를 죄다 발급해 주면서 발생한 일인데, 그로 인해 수백만이 넘는 신용 불량자가 생기고 파산자들이 줄줄이 나왔다. 결국 정부가 혈세를 들여 면책 및 회생을 해 주긴 했지만, 세금을 낭비한다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아뇨.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느낌이 좀 쎄해서요. 아무튼, 그쪽 방면으로 집중 분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단순 카드 대란이 아니다.

그보다 더한 사태가 벌어지려 하고 있다.

“대주주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아! 근데 호칭은 이제 제대로 정리를 해야겠네요. 저희가 언제까지 대주주님이라고 부를 수 없으니까요.”

“음······. 그럼 그냥 편하게 이사님이라고 불러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사님. 그럼, 저희 월급쟁이들은 그만 일하러 가겠습니다. 내일 밤까지면 빠듯하겠네요.”

마음 같아서는 식사라도 같이하고 싶었지만, 내가 내준 숙제를 끝내려면 시간이 부족할 거다. 직원들은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바삐 각자 갈 길을 갔다.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현식이가 내 팔을 툭 쳤다.

“뭔데? 대체 무슨 일인데?”

“뭐가.”

“네가 뜬금없이 카드사를 알아보라는 말을 할 리가 없잖아.”

“음. 그냥 직감이야.”

대충 직감이란 말로 얼버무리긴 했으나, 이건 결코 직감이 아니다.

나는 앞으로 벌어질 미래의 일을 알고 있다.

딱 3일만 지나면 윤곽이 나오고, 그 후 이틀이 더 지나면 사방에서 폭죽이 터지듯 시끄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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