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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35화 (35/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35화

“여긴 참 오랜만이네.”

나는 현식이와 함께 헬로 마트라는 가전 제품 판매점에 들어섰다.

“예전에는 가전 제품 사려고 하면 무조건 헬로 마트부터 찾았는데.”

“맞지. 근데 요즘은 그냥 인터넷으로 사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리고 요즘 제품을 잘 안 바꾸려 하잖아.”

예전에는 가전 제품 사려고 하면 무조건 헬로 마트를 찾았는데,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부터 상황이 뒤집힌 듯했다.

뉴스에서는 항상 대한민국 경제가 불황이라고 광고했고, 호황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언론에서는 당장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들어 대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각자의 인생을 잘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가구점이나 전자 센터는 예전만 못하다.

최신형 전자 기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매번 열광했는데, 요즘에는 다 비슷비슷하게 굴러가서 그런지 그냥 슬쩍 들여다보고는 구매를 꺼린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전자 제품을 만드는 회사의 주가도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헬로 마트가 우리 동네에 있었네. 하도 다 문 닫아서 없는 줄 알았어.”

우리나라 최대 가전 제품 판매점 헬로 마트는 팍 식어 버린 구매 열기에 의해 현재 점포 숫자가 현저히 떨어지는 중이었다. 이러다가 정말 회사가 폭삭 망하는 건 아니냐는 괴소문까지 나돌고 있는 상태.

직원들의 얼굴만 봐도 매장 상황이 어떤지 알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그때 우리 둘에게 여직원 하나가 다가왔다.

“찾으시는 거라도······.”

표정을 보니 별로 기대하는 얼굴이 아니다.

그냥 물건만 슬쩍 보고 돌아가는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하지만 우린 아니다.

오늘 여기에 온 이유는 우리 J&H 사무실에서 쓸 가전제품들을 사기 위함이니까.

나는 에어컨, 냉장고, 거기다 천만 원이 넘는 TV를 아무렇지 않게 가리켰다.

“지금부터 제가 손으로 가리키는 것들은 다 구매하려는 겁니다. 잘 받아 적으세요.”

“에··· 예? 자, 잠시만요.”

당황한 여직원이 어디론가 헐레벌떡 뛰어가더니, 여기서 유일하게 정장을 입고 있는 남직원이 우리에게 총알처럼 달려와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이곳 매장의 점장인 황윤식이라고 합니다. 제가 도와 드릴 게 있을까요?”

나는 여직원에게 말했던 걸 똑같이 반복했다.

“제가 가리키는 거로 다 가져다주세요. 그리고 데스크톱도 좀 사고 싶은데.”

그런 내 말에 현식이가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야 네가 돈을 쓸 줄 아는구나.”

“꼭 필요한 거니까 사는 거야. 누구처럼 필요도 없는데 단순히 구매욕 때문에 사진 않아.”

“허어. 그게 왜 나쁜 거지? 사람은 욕망의 동물이야. 갖고 싶으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거 아니야? 능력이 되면 말이지.”

“그래. 너 사고 싶은 거 다 사라.”

나는 황윤식 점장을 옆에 끼고 물품을 하나씩 가리켰다.

“이거랑 이거. 그리고 이것도 주세요.”

“아, 옙!”

그는 내가 가리킨 목록을 적어 놓느라 바빴다. 하지만 표정은 좋아 죽겠다는 얼굴이다.

“이왕 사는 거 어머니 세탁기도 바꿔 드려야겠다. 예전부터 세탁기 바꾸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셔서.”

“TV도 좋은 거 사 드려. 근데 사무실에 저렇게 좋은 TV를 사 줘도 되는 거야?”

“휴식도 필요하니까. 그리고 금융 회사에서 뉴스를 안 볼 수 없지. 매일 TV 켜서 뉴스 보게 해야지.”

“어후. 저 좋은 TV로 하루 종일 뉴스만 봐야 하다니. 벌써부터 소름 끼쳐.”

현식이는 다른 가전 제품들에 별 관심을 드러내지 않더니, 유독 데스크톱에는 크게 관심을 드러냈다. 점장에게 그래픽 카드부터 CPU와 그 외 세세한 부품들까지 물어보며 진땀을 빼게 했는데, 나도 가장 좋은 컴퓨터를 고르고 싶었기에 현식이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요즘 게임들의 발전 속도가 장난 아니야. 그래픽 카드 조금만 삐끗하면 게임 못 돌려.”

“······결론은 게임이었냐?”

“게임이 잘 돌아가는 컴퓨터가 문서 작업할 때도 최고인 거야.”

틀린 말은 아니라서 반박을 하진 못했다.

“그리고 직원들이랑 같이 스타 한 판 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스타가 언제 적 게임이야.”

“뭐, 우리 회사의 나이 많은 사람들밖에 없잖아. 권오준 사장도 스타는 할 줄 알걸?”

J&H 스타 대회를 여는 상상을 잠깐 해 본 우리 두 사람은 이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재미는 있겠네.”

그렇게 언젠가 열 수도 있는 스타 대회를 기약하며 우리는 가전제품 쇼핑을 마쳤다.

티비부터 에어컨, 컴퓨터들을 죄다 최신형으로만 사서 그런지, 계산서는 1억이 훌쩍 넘었다. 황윤식 점장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우리가 혹시라도 취소를 하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불량이 아닌 이상, 구매 철회는 없다.

“안녕히 가십시오! 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 저한테 연락 주세요!”

황윤식 점장은 매장 밖을 나서는 우리에게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인사를 올렸다.

이렇게 돈을 왕창 써 본 난 기분이 좋고, 실적을 빵빵하게 올린 황윤식 점장도 오늘 하루 콧노래가 차고 넘칠 것이다.

* * *

“역시, 사람은 명품을 걸쳐야지.”

가전제품을 다 사고 나서 어디를 데려가나 싶었는데,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명품점이었다.

“난 이런 거 싫다니깐?”

“싫어도 어쩔 수 없어. 이런 명품들은 꼭 걸쳐야 돼. 너 사람 만나러 다닐 때마다 싸구려 정장만 입고 다닐래? 요즘 세상은 옷이 곧 무기고, 널 증명하는 수단이야.”

“너도 명품 안 입고 다니잖아.”

“그거야 회사 다닐 때만 그렇지. 회사 밖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 걸치고 다녔어. 뭐, 평소에는 후줄근하게 있어도 집안 모임이나 재벌들 모이는 파티에 갈 때면 항상 고급스럽게 입었다고.”

현식이가 뭘 말하려는 건지 알겠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금융사 사원이 아니다.

4,000억이 넘는 자산을 운용하는 법인 소유자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차츰 영향력이 커지면 여러 모임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모임에서 아무리 네가 돈 많아도 옷 제대로 못 입고 나돌아다니면 욕 왕창 먹는다. 신뢰도 전혀 주지 못하고. 괜히 부자들이 명품만 고집하는 게 아니야. 그걸 걸치지 않으면 도태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거지.”

“음······. 반박할 말이 없네.”

“그러니까 너도 이제 이런 취미 좀 들여. 남자는 시계라는 말 알지? 명품 시계만 모아서 네 집에 진열해 놔도 좋고. 예전처럼 살기에는 이제 상황이 너무 많이 달라졌어.”

현식이의 말이 전혀 틀린 게 아니라서 그런지, 나도 진지하게 명품 시계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입고 있는 명품 정장도 꼼꼼히 확인을 해 보았지만, 솔직히 뭐가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다른 정장에 비해 조금 더 편하다는 정도?

오히려 다른 정장들은 숨이 막혔다.

“그래. 이래서 옷이 날개라는 거야. 명품 하나 걸치니까 애가 달라 보이네. 이것도 한번 차 봐.”

현식이는 역시 이런 삶에 익숙하다. 그리고 내게 어떤 옷과 시계가 어울리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현식이 말만 듣고 이것저것 사다 보니 결제 금액이 7천만 원이나 되었다.

“미친. 아까 가전제품에서 산 거랑 별반 다를 게 없잖아.”

그냥 싹 다 반품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으나, 현식이는 대꾸도 하지 않고 카드를 긁어 버렸다.

“오늘 별로 산 것도 아니야. 우리 어머니는 한 번 이런 곳 방문하실 때마다 3억은 기본이었어.”

“······.”

다른 분도 아니고 너희 어머니랑 비교하는 건 좀······.

그래도 내 옷만 산 것은 아니었다.

평생 명품 한번 끼고 살아 보신 적이 없는 내 어머니를 위해서도 명품 백과 지갑, 시계 등등을 구매했다.

분명 기겁하시며 도로 가져가라고 난리를 치시겠지.

하지만 이 옷들을 입고 거리에 당당히 걸어 다닐 어머니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앞으로 이런 옷들을 많이 사 드려야지.

* * *

시끄러운 벨 소리에 나는 무겁게 눈을 떴다.

“으으-.”

그러자 현식이도 부스스 눈을 뜨며 짜증을 냈다.

“알람 좀 꺼.”

“알람 아니고 전화야, 인마.”

“누가 새벽부터 전화질이야.”

“벌써 해가 중천이다.”

어제 너무 달렸나.

현식이 놈이 갑자기 폭주하는 바람에 나까지 휘말려 간이 헐 정도로 술을 퍼마셨다.

“권 대표님이네?”

아직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해 J&H 한국 법인은 그냥 서류상으로만 남아 있는 상태다. 아마 2주 정도면 시설도 다 갖춰져 정상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미 그에 대한 사항을 권 대표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에게도 알려 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걸까?

“대주주님. 권오준 대표입니다.”

정식으로 우리 회사에 대표가 된 후부터 권오준은 내게 절대로 반말을 하지 않았다. 무조건 존대를 하며 나를 깍듯하게 모시려 했다.

몇 번이나 말을 편하게 해도 된다고 해 봐도 요지부동이다.

“예. 무슨 일이세요?”

“혹시 기사 보셨습니까?”

“기사요? 무슨 기사요?”

“지금 핸드폰으로 인터넷 들어가서 한번 보세요. 그리고 다시 전화 주십시오.”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 거지?

“왜 전화했대?”

“인터넷 들어가서 기사 찾아보라는데?”

우리는 권오준 대표 말대로 각자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들어가 보았다.

“응?”

“엇!”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들어가자마자 왜 권 대표가 전화를 했는지 알아챘으니까.

[북한이 만든 해외 법인? 핵 실험은 풋옵션을 위한 작전이었나?]

[핵 실험에 들어간 비용, 풋옵션으로 한꺼번에 벌어들인 북한 정권?]

“뭐야. 이거.”

“우리가 진짜 북한 정권이랑 관련이 있는 것처럼 몰아가고 있네.”

예상은 했다만, 모든 언론사가 이렇게 단합하여 J&H를 공격할 줄은 몰랐다.

마치 J&H가 정말로 북한의 소유라도 되는 것처럼 기사를 써 댔는데, 네티즌들은 그것에 홀랑 넘어가 댓글로 불만을 표시했다.

└조사해라!

└정말 북한 측 법인이라면 전부 몰수해라.

└진짜 가지가지 하네, 이 새끼들

└이것들이 왜 갑자기 핵 실험을 하고 자빠졌나 했더니, 우리나라에서 돈 다 뜯어 가려고 그랬던 거냐?

└요즘 쌀 안 준다고 난리를 치더만, 이런 식으로 돈을 벌어가네. 이게 창조 경제 아니야?

└핵 실험 하나로 일타쌍피 지렸다

이에 각 금융사들은 J&H가 정확히 어디서 시작된 법인인지 알아보기 위해 금감원에 조사 신청을 넣은 상태라는 것도 기사에 나왔다.

“금융사들도 다 단합을 했구나.”

“그 새끼들이야말로 제일 잘 알고 있을 텐데. 우리 회사가 절대 북한 법인이 아니라는 걸.”

“한번 찔러만 보는 거지. 이렇게라도 언론 플레이 해서 잘 되면 자기들이 손해 본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어쩌면 예상했던 공격이다.

이렇게 날 잡고 한꺼번에 터질 줄은 몰랐지만.

[금감원, 모든 걸 명명백백 밝히겠다.]

[금감원 조사 착수.]

후속 기사로는 금감원이 조사에 착수했다는 것이 나왔다. 그리고 검찰도 거기에 동참하면서 J&H가 있는 미국에다 수사 요청을 넣겠다는 공식 성명까지 밝혔다.

이 정도면 정부가 이번 사태의 책임을 어디에 물으려는지 딱 그림이 나왔다고 봐야 한다. 이들은 이참에 우리 J&H를 북한 기업으로 몰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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