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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34화 (34/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34화

“그러니까 대체 누군데?”

“보면 안다니깐.”

“미리 말해 주면 좋잖아.”

“흐흐. 네가 깜짝 놀랄 만한 사람이라는 정도?”

현식이는 미리 약속을 잡아 놓은 한식집으로 날 데려왔다.

도대체 우리 J&H 한국 법인 대표가 될 사람이 누구기에 이 난리를 피우는 건지 모르겠다.

“만약 J&H를 한국에다 세우게 되면 앞으로 논란거리가 많아질 거야. 이번에 우리가 옵션으로 번 돈들도 스멀스멀 언론에 퍼지게 될 테고. 그럼, 우리 회사가 주목을 많이 받겠지.”

그런 주목을 받지 않으려면 한국 법인의 이름을 바꿔 세우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름을 바꾸는 것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법적으로도 처리해야 할 것이 많고, 어차피 이름을 바꾼다고 해도 그 뿌리가 J&H라는 건 잠깐만 파 봐도 알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쓸모가 없다.

“멘탈이 엄청 강하고 이런 쪽에는 경험이 많은 사람이 아무래도 우리 법인을 맡아 주는 게 낫지 않겠어?”

“그런 사람이 정말 있다고?”

“응. 그분이 내가 신화 금융 직원들을 통해서 우리가 법인을 세우려 한다는 걸 들었나 봐.”

“잠깐. 그분? 너보다 높은 사람이었어?”

“어. 너보다도 높았던 분이지.”

아. 설마 그 사람인가?

“이런. 먼저 와 있었네. 최대한 빨리 와서 세팅하고 있으려 했더니만.”

현식이가 부른 사람은 바로 전 신화 금융 사장 권오준이었다.

“권 사장님?”

“하하. 이제 사장 아니야.”

“신화 금융에 복직한 게 아니었습니까?”

난 신 부회장에게 권오준 사장을 다시 불러들여 신화 금융을 이끌게 하라고 조언을 했었다. 신 부회장도 긍정적으로 내 제안을 고려했었고. 그런데 이 양반이 왜 여길 온 거야?‘

“음. 제안이 오긴 했었지. 그런데 이미 쿨하게 옷 벗고 나온 곳을 다시 들어가고 싶진 않더라고. 거기다가 그쪽 생활이 슬슬 지겹기도 했고.”

“그럼, 완전히 은퇴하셨던 겁니까?”

“그러려고 했지. 그런데 아직 내가 은퇴할 나이는 아니잖아. 거기다 내가 재밌는 소문을 하나 들어서 말이야. 너희들도 잘 알지? J&H라는 회사가 아주 거하게 한 방 터트려서 금융판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았던 거.”

“그게······.”

“누구는 그게 북한의 짓이라는 말도 하고, 정치권에 관련된 누군가의 짓이라는 말도 많았지.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딱 감이 오더라고. 어쩌면 이건 내가 아는 누군가가 벌인 판이라는 걸.”

그냥 하는 말일까. 아니면 정말 감이 좋은 걸까.

“타이밍이 절묘하잖아. 이 사장이 신화 금융 때려치우고 나서 갑자기 이런 일이 터졌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서 나도 기다렸지. 내가 만약 너희들이라면 해외에 있는 법인을 한국에도 세워서 거기 묶여 있는 돈을 가져올 거거든. 너희들도 똑같이 그럴 거라 생각했고.”

나는 내심 감탄하며 권오준에게 물었다.

“그런 게 경험에서 나오는 직감이란 겁니까?”

“음. 직감도 직감이지만, 이런 곳에서 오래 구르다 보면 머리 나쁜 새끼도 눈치라는 게 생길 수밖에 없어. 아무튼, 내 말이 어느 정도는 맞다는 거네?”

옆에 있던 현식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소름 돋게 하나도 틀리지 않으셨어요.”

“하하. 이럴 줄 알고 내가 신화 금융에 있는 직원들한테 연락 좀 돌렸지. 너희들이 한국에 법인을 세우면 꼭 필요한 인재들이 있을 테니까. 그러다 연락이 닿아서 내가 여기 있는 현식 씨한테 연락을 넣은 거야. 나 좀 뽑아 주면 안 되냐고.”

역시, 권오준 사장은 그냥 무늬만 사장인 사람이 아니었다.

어떤 연줄도 없이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신화 금융의 사장이 된 사람이다. 당연히 그 실력이 바탕에 있었다는 것.

만약 권오준 사장이 J&H 한국 법인의 대표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나 오늘 면접 보러 온 거야. 옷 입은 거 보이지? 예전 느낌 살려서 아주 점잖게 입고 왔어.”

“괜찮으시겠습니까? 저희 밑에서 일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월급쟁이들은 사장이 갓난아기라고 해도 일단 넙죽 엎드려 보는 거야. 거기다 나이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면 안 돼. 저번에도 말했지만, 난 실력주의거든. 특히 이진석이라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존경하고 따를 만하지.”

“······전 존경할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하하. 같은 업계에서 뛰는 선수끼리 그 정도의 수익을 내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지. 축구로 따지자면 메시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랄까?”

권오준 이 사람, 벌써부터 혀를 놀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윗사람이 나이가 많든 어리든, 자신의 상사라는 건 변치 않으니 상대의 기분을 맞춰 주겠다는 건가.

“신화 금융에서 무려 사장직을 맡으셨던 분이 이런 작은 법인에 들어오면 적응이 안 되실 텐데요.”

“흐흐. 그건 모르는 일이지. 솔직히 이대로 은퇴해도 괜찮지만, J&H라는 잠재가치가 높은 회사에 들어가 신화 금융을 뛰어넘는 걸 꼭 한번 보고 싶거든. 만약 이진석이라는 사람이 끝까지 함선의 키를 놓지 않는다면 이 회사는 분명히 세계 제일의 금융사가 될 거야.”

전부 진심이 담긴 말로 들렸다.

“어때? 신입이니까 시키는 건 뭐든 할게. 청소를 하라면 청소라도 해야지.”

“그럴 리가요. 아쉽지만, 저희는 권오준 사장님을 신입으로 키울 생각이 없습니다.”

“아······ 그래?”

권오준 사장은 많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옆에 있던 현식이도 이런 인재를 놓치는 거냐며 내게 눈빛으로 욕설을 날리고 있었다.

나는 빙긋 웃으며 권오준 사장에게 손을 건넸다.

“신입 사원은 필요 없습니다. 저희 법인의 대표가 되어 주십시오.”

“으응? 잠깐. 날 대표로 쓴다고?”

“예. 앞으로 권 사장님이 J&H 한국 법인의 대표가 되실 겁니다. 저희는 그냥 대주주고요. 투자에 대한 결정권도 권 사장님께 드릴 거예요.”

“4,000억이 넘는 돈을 다 나한테 맡길 생각은 아니지?”

“예. 그중에서 일부만 한국 법인에 놔두고 해외 법인에 있는 돈들은 제가 운용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한국 법인에서 발생하는 수익률만큼의 보너스도 지급할 겁니다. 돈으로 드릴 수도 있고, 원하시면 저희가 들고 있는 지분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권오준 사장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그 정도로 파격적인 제안이라면, 언제든 실적 안 좋으면 자를 수도 있다는 거네?”

“예. 저희도 실력주의라서요.”

“흠. 좋아. 오랜만에 피가 펄펄 끓는구먼.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 있어.”

“잘 아시겠지만, 저희 J&H는 시작부터 거하게 사고를 쳐서 아마 여러 군데에서 공격을 받게 될 겁니다. 시작부터 어려운 부탁을 드리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우나, 권 사장님이라면 충분히 잘 버텨 내실 거라 믿습니다.”

“하하! 정말 마음이 무거운 거 맞아? 시작부터 아주 피 터지게 싸우겠는데? 지루할 틈이 없겠어.”

권오준 사장은 내 손을 꽉 힘을 주며 잡았다.

신화 금융의 첫 인재가 들어왔다. 그것도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는 굉장한 실력자를 말이다.

* * *

“이 사장님이랑 같이 일하고 싶어서 회사도 때려치우고 왔단 말이에요!”

“음······. 그, 그랬구나.”

현식이의 활발한 구인 활동에 우리 회사에 문을 두드리고 나타난 인재들이 몇몇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화영 씨였다.

그녀는 신화 금융이라는 대기업을 고민도 하지 않고 때려치운 다음, 나와 현식이를 만나 당장 일부터 시켜 달라며 아우성을 쳐 댔다.

“우리 엄마가 저 신화 금융 그만둔다는 얘기 듣고 쓰러질 뻔하셨어요.”

“저, 저런. 굳이 무리해서 안 나와도 되는데······.”

“안 돼요! 한 번 팀은 영원한 팀이라고 최 과장님이 그러셨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둘이서 남몰래 법인이나 세우고 말이야.”

“크흐흠-!”

나는 현식이한테 귓속말로 조용히 물어보았다.

“화영 씨한테는 따로 연락 안 넣었냐?”

“응······. 경력 좀 있는 사람들 위주로 연락을 넣다 보니.”

“화영 씨도 실력은 괜찮지 않아?”

“나쁘진 않지. 시키는 건 다 잘하니까.”

그래. 화영 씨 정도의 사람이라면 나쁘지 않지.

특히 특유의 성격 덕분에 항상 팀 분위기가 밝았던 거로 기억한다.

“우리 회사 이름은 아시죠, 화영 씨?”

“예! J&H라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혹시 그 J&H인가요? 아니죠?”

“음. 안타깝게도 맞아요. 그 J&H입니다.”

“진짜요? 그 J&H였어요?! 우와. 진짜 신화 금융 때려치우기 잘했네. 이번에도 역시 이진석 사장님이 금융계 역사를 새로 쓰신 거죠?”

“역사까지야······.”

그렇게 정신없는 면접이 끝났다.

화영 씨의 밝은 기운이 좋긴 한데, 기가 쭉 빨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다음 면접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이진석 사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내가 신화 금융에 들어갔을 때 내 팀장이었던 오영식이 면접을 보러 왔다.

“오 팀장님도 오셨어요?”

“하하. 예. 그렇게 됐습니다.”

“신화 금융은······.”

“오늘 면접 잘 보면 그만두려고요.”

오영식 팀장이 나타난 건 좀 의외였다.

현식이가 미리 귀띔을 주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말이다.

“팀장님. 예전처럼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제가 J&H 회사에 들어가려면 윗사람부터 잘 모셔야죠.”

오영식 팀장은 회사 내에서도 인정받는 실력자였다. 하지만 회사 생활에서 중요한 라인 타기를 잘 하지 못해 팀장으로만 남은 케이스인데, 주식 세계를 들여다보는 눈은 뛰어나다.

이 사람이라면 권오준 대표에게도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다.

“오 팀장님이라면 면접을 길게 볼 것도 없어요. J&H로 와 주시면 저희가 최대한 연봉도 맞춰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마음이 놓입니다. 그리고 돈 욕심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저 이진석 사장님이 보여 주시는 그 마법 같은 투자를 보고 싶은 마음에 지원한 겁니다.”

“마법이라니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죠.”

“40억으로 4,000억을 만드는 건 단지 운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영식 팀장도 J&H가 이번 사태의 핵심인 바로 그 회사라는 걸 눈치챈 듯 보였다.

이렇게 오영식 팀장까지 우리 회사로 들어오게 되어 나름 구성원들이 마련된 듯하다.

조금 더 인재를 채우면 좋겠지만, 현식이가 가로막았다.

“더 빼 올 순 있긴 한데, 오늘 보니까 아는 사람들을 자꾸 불러 모으는 건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다.”

“왜?”

“우릴 너무 잘 알잖아. J&H가 우리 소유라는 것도 알고 있고. 만약에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우리 회사 털려고 하면 너랑 내 신상도 같이 털려 나가. 우리 정체는 숨겨야 하지 않겠어?”

“오. 웬일로 네가 옳은 말을 다 하냐.”

“권오준 사장, 오영식 팀장, 이화영 사원. 이 세 사람으로 족해. 나머지는 우리가 아는 사람들 말고 신입으로 뽑아 놓자. 이 세 사람한테 입단속 잘 하라고 주의도 주고.”

“눈치가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 정도는 잘 알아들을 거야.”

현식이의 말대로 이 회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거기다 지금 당장 한국 법인을 크게 키우는 것도 아니라서 직원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다.

차라리 때때마다 직원을 보충해 줘서 인원수를 맞추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제 우리 쇼핑하러 갈까?”

“음? 갑자기 뭔 쇼핑.”

“법인을 세웠으면 가구도 놓고 컴퓨터도 사야 할 거 아니야. 그 황량한 곳에 세 사람 던져 놓으면 끝날 줄 알았어? 가자. 이 형님이 좋은 곳이 어딘지 잘 알고 있으니까.”

나는 현식이에게 끌려나가 차에 올라탔다.

만약 이놈 없었으면 한국에 법인을 어떻게 세워 놓고도 참 난감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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