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33화
이곳 강서구는 목동 쪽을 제외하면 집값이 그다지 비싸지 않은 축에 속한다. 또한 강서구에는 행복 주택과 임대 아파트들이 많아 부동산을 하기에는 별로 좋은 곳도 아니었다. 특히 목동 말고는 돈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건물을 사 가려 하지도 않기 때문에 부동산 업자들이 하나둘 이 동네를 떠나고 있었다.
만약 대학이라도 곁에 있었다면 원룸 파는 재미로 쏠쏠하게 수수료 좀 챙겼을 것이다.
“집을 보러 오셨다고요?”
오늘도 부동산 사무소에서 날아다니는 파리만 잡고 있던 함은희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두 남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후줄근한 옷에 슬리퍼를 신고 있는 것을 보아 오피스텔, 혹은 원룸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아뇨. 정확히는 사무실 건물요.”
“아. 사무실. 근데 저번에 저희 부동산에 오지 않으셨나요?”
“오. 사장님. 저희 기억하시네요. 저기 블루 오피스텔 계약할 때 여기서 왔었어요. 2년 가까이 된 일인데, 아직도 기억하세요?”
블루 오피스텔이라면 직장인들이 딱 들어가기 좋은 투베이 구조로 되어 있다.
“호호. 제가 기억력이 좀 좋아요.”
자신의 부동산을 통해 계약한 고객이라면 최대한 얼굴을 잊어버리려 하지 않는 버릇이 몸에 배어 있는 함은희였다.
“그런데 사무실? 혹시 두 분 사업이라도 하시려고요?”
“비슷해요.”
“음. 몇 평 정도가 알맞으려나? 그렇지 않아도 요즘 불황이라 이리저리 사무실 임대 나온 게 많긴 한데.”
보통 월세로 들어 살면 보증금 3천에 70~100만 원 정도 들어간다.
블루 오피스텔에서 월세를 주고 사는 거라면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뜻일 테니, 경제적 사정에 맞는 사무실들을 추천해 주려 했다.
그런데 넉살스럽게 떠들고 있는 최현식 뒤에서 현재 임대로 나온 목록들을 찬찬히 살펴보던 이진석이 함은희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는 함은희에게 다가와 목록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건물들 시세가 맞는 건가요?”
“아. 이건 사무실이 아니라 건물이 통째로 나온 건데요?”
“그러니까요. 이 건물들 시세를 정확히 알아보고 싶은데.”
이진석이 가리킨 건물들의 가격은 최소 20억에서 100억 단위가 넘어가는 것들이었다.
처음에는 뭘 하자는 건가 싶었으나, 손님이 원하는 정보를 불친절하게 알려 줄 순 없기에 함은희는 자신이 아는 모든 걸 알려 주었다.
“일단 이 건물은 곧 경매에 넘어간다고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건 패스하고, 이건 위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싸요. 제일 가성비가 좋고 위치도 괜찮은 곳을 고르라고 하면 여기 골든 스테이트를 추천할게요. 주변에 맛집도 많고 교통도 괜찮고 특히 주차 시설도 잘 되어 있어요. 물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는 좀 거리가 있지만.”
“음. 현식아. 여기 한번 보러 갈까?”
“직장 근처에 맛집은 당연히 있어야지. 가 보자.”
“그럼, 제가 같이 가 드릴게요.”
이 남자들이 그 건물을 정말 사려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 주자는 마음에 함은희는 이 둘을 차에 태우고 골든 스테이트 건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총 7층으로 되어 있는 건물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보다시피 전부 다 비어 있어요. 그런데 여긴 아쉽게도 사무실 딱 하나만 들어올 수가 없어요. 여기 주인이 하루 빨리 팔아 버리고 싶어 하거든요.”
“팔고 싶어 하는 이유라도 있을까요?”
“급전이 필요한 거죠. 원래 이렇게 건물 장사하는 사람들이 돈 굴리다 막히면 건물들 전부 다 팔아 버리고 빚부터 청산하거든요. 그래서 보통 시세보다 조금 더 싸게 내놓은 거예요.”
7층짜리 건물의 가격은 55억.
일반 직장인이 사기에는 너무 큰 돈이었다.
함은희는 두 사람이 주눅 들지 말라고 조언까지 해 주었다.
“여기 월세가 보통 300~400만 원은 나와요. 특히 1층은 500만 원까지 뽑을 수 있을 거예요. 나중에 두 분이 사업하다 돈 많이 벌어서 딱 15억만 모아 오세요. 그럼, 이런 건물을 충분히 소유할 수 있어요.”
대한민국 건물주들의 투자 방식이 이렇다.
만약 건물 가격이 50억이라고 한다면 그중 30%를 자부담하고 나머지 70%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오는 게 가능하다.
지방 같은 경우는 거의 70%까지 대출을 해 주고 수도권은 50~60% 가까이 대출을 해 주는데, 보통 이 방식으로 대출을 당겨 임대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다 또 돈이 쌓이면 다른 건물을 똑같은 방식으로 사들여 수입을 늘리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돈이 돈을 벌어들이게 되면서 금방 부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삐끗 잘못 건물을 사게 되면 오히려 빚더미에 눌러앉아 파산을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생각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방법으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고, 정말 파산까지 치닫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이걸 조금 더 응용을 하면 부동산 갭투자도 가능하며, 이로 인해 약삭빠르게 돈을 챙기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렇다고 이걸 손가락질할 수도 없는 것이, 법에 어긋나는 행동이 아니고 그저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것이라 그렇다.
“굳이 7층까지 되는 건물이 필요할까.”
“여기 전체 면적만 450평이야. 내가 이런 쪽 좀 아는데, 면적 450~500평 정도 되면 70억까지 가. 여기가 확실히 다른 곳보다 싸긴 해.”
“그래도 우린 사무실만 필요한 거잖아.”
“뭐, 1층이랑 2층에 음식점이나 카페 같은 거 들어와도 괜찮지. 우린 맨 꼭대기 층에 자리 잡아서 직원들 일 시키면 되고. 사내 카페를 만들 순 없어도 밑의 층에 만들 순 있잖아.”
“흠. 그런가.”
함은희는 두 사람의 얘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뭔가 들어 보니 매우 구체적인 것 같은······.
“여기로 할게요.”
“······예?”
“여기 매매하겠다고요.”
함은희의 눈동자가 번뜩 커지면서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부동산을 해 오면서 이토록 큰 건을 중개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잘해 주세요, 사장님. 저희가 수고비도 두둑이 챙겨 드릴 테니까요.”
두 사람은 그렇게 빙긋 웃으며 명함 하나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명함에는 ‘신화 금융 사장, 이진석’이라고 쓰여 있었다.
* * *
“신화 금융 나온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때 명함을 들고 다니냐.”
“그러게. 찾아보니까 그거밖에 없더라고.”
건물주와 연락이 닿지 않아 일단은 명함만 남기고 부동산을 나섰다.
한국 법인을 세우기 위해서는 건물부터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온 건데, 벌써 지출이 50억이 넘게 나가게 생겼다.
“세금도 떼야 하고 시설도 다시 해 놓으려면 돈 많이 깨지겠다.”
“4,200억에서 60억이면 싸게 먹혔네.”
한강 물 바가지로 푸는 수준이라고 해야 하나.
무려 60억을 두고 싸게 먹혔다고 중얼거리는 스스로가 놀라울 따름이다.
“다른 건물들은 안 봐도 되겠어?”
“그냥 저기가 느낌적으로 딱 좋았어. 네 말대로 밑에 맛있는 식당도 들어오게 하고 카페도 들어오게 해서 자주 이용하면 좋잖아.”
“원래 커피숍은 스벅인데. 그거 하나만 들어와도 건물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오른다잖아.”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아.”
건물 문제는 대충 해결이 됐으니, 우리는 그다음 행선지를 결정했다.
“크으. 우리 진석이가 이제 차를 다 타고 다니는구나.”
나는 가볍게 국산 차 아무거나 사려고 했는데, 현식이는 기어코 외제 차를 사야 한다며 아우성을 쳐 댔다.
“야. 내가 허세 부리려고 외제 차 추천하는 게 아니야. 국산 차도 물론 좋지. 그런데 만약에 사고라도 나 봐라. 에어백이라도 제대로 터지면 다행이지. 거기다 국산 차들은 대체로 차 내구성이 그리 좋지가 않아. 그냥 박으면 바로 찌그러진 캔처럼 된다는 거지.”
“외제 차는 다르고?”
“독일 애들이 만든 거 한번 봐. 그 새끼들은 무슨 탱크의 나라 아니랄까 봐 차체를 더럽게 두껍게 만들어. 에어백도 빵빵 잘 터지고. 좋은 차 타고 다니면 수명 늘어난다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니깐?”
그런 현식이의 그럴싸한 논리에 빠져들고 말았다.
확실히 이놈이 재벌집 아들은 맞는지, 비싼 외제 차들을 진열해 놓은 판매점에 나를 데리고 왔다.
“이런 곳 자주 와 봤어?”
“몇 번. 친구들이랑도 와 봤고.”
“친구들?”
“태어나 보니 수저에 다이아몬드 박혀 있는 새끼들 있잖아.”
“······.”
자기는 아닌 척하네.
“어······ 저기 어떻게 오셨는지.”
우리 복장이 너무 프리하긴 하다.
이곳은 어느 특정 브랜드만 파는 곳이 아니라 여러 외제 차 브랜드들을 판매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언뜻 봐도 돈깨나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매장에 있었는데, 그중 우리만 잠자다 나온 취준생들 같이 생겼다.
판매점 직원들은 우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현식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가오는 직원에게 물었다.
“SUV를 중점으로 보여 주세요. 가격대는 상관없고. 그리고 여기 사장 좀 불러 줘요.”
“사, 사장님이요?”
“예. 최현식이 왔다고 하면 알 겁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현식이의 태도에 나는 내심 감탄했다.
저건 뻔뻔한 행동이 아니다. 그냥 태어날 때부터 재벌집 자식이라 몸에 습관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어딜 가도 당당한 인생.
흙수저로 태어나 순간순간 주눅이 든 채로 사는 기분을 현식이는 과연 알까.
“뭐야. 여기 사장이라도 아는 사이야?”
“어. 동네 형이지 뭐.”
이윽고 두툼한 뱃살을 자랑하는 남성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나타났다.
“이야. 이게 누구야? 내가 그렇게 와서 차 좀 사 가라고 할 땐 들은 척도 안 하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거지?”
“내 차 말고 여기 내 친구 차 사려고 왔어.”
“응? 아. 친구분? 근데 네 친구분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헉! 혹시 신화 금융 사장님 아니세요?”
나는 여기 사장이라는 사람과 얼떨결에 악수를 나눴다.
“아이고.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금융계에서는 아주 전설적인 분이라고 하시던데.”
“아, 아니요. 신화 금융은 그만뒀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수익률을 어마어마하게 터트려 놓고 나갈 땐 또 쿨하게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셨다면서요? 크-. 아깝네요. 저도 신화 금융에 돈 좀 넣어 놓으려 했었는데.”
얘기가 이상한 곳으로 빠질까 봐 현식이는 그 남자 사장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일 이야기하지 말자, 형. 애가 타고 다닐 만한 차 좀 추천해 줘.”
“아. 그래야지. 이쪽으로 오십시오.”
하준형이란 이름의 이곳 판매점 사장은 아버지가 유명한 부동산 재벌이라고 한다.
인천에 있는 땅은 그 양반이 다 굴리고 있을 만큼 대단하다고 하다는데, 사실상 이곳 판매점도 하준형이 차를 좋아해 취미로 만든 곳이라고 했다.
참 취미로 이런 걸 세울 수도 있다니.
역시, 재벌들의 클래스는 남다르다고 해야 할지.
“부러우면 너도 나중에 이런 거 취미로 세우든지.”
“음······. 난 별로.”
차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보니, 결국 현식이가 추천하는 차량으로 구매를 마쳤다.
그리고 취미로 이런 곳을 세우는 건 나와 맞지 않는다.
차라리 맛있는 고깃집이나 카페, 아니면 당구장이나 PC방 정도면 모를까.
“나가자. 오늘 만나 볼 사람 있어.”
“누구? 그런 말 없었잖아.”
“갑자기 생겼어.”
“누굴 만나는데?”
내 물음에 현식이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J&H 한국 법인 대표 할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