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31화
“흠-.”
“뭔 전화인데 그렇게 떨떠름한 표정이야.”
현식이는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말했다.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깜찍한 목소리를 내실 때면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거거든.”
“까, 깜찍한 목소리?”
“있어. 우리 아버지만의 특유 목소리. 아무튼, 보통 그런 목소리를 내실 때면 무슨 목적이 있다는 건데······. 오늘 갑자기 나한테 맛있는 저녁을 사 주시겠다네.”
“야. 뭔 목적 타령이야. 그냥 아들이랑 오랜만에 저녁 식사 한번 하고 싶으신가 보지.”
“아니야. 우리 아버지는 그렇게 아까운 시간 쪼개서 나한테 허비하실 분이 아니야.”
“······.”
부자간의 신뢰가 이렇게도 없다니.
아니. 이게 현식이와 현식이 아버님만의 신뢰라고 봐야 하나.
“아무래도 우리 아버지가 눈치채신 것 같다.”
“무슨 눈치를 채?”
“저번에 내가 풋옵션 죄다 끌어와서 너한테 몰아줬잖아. 그때 다른 금융사에 박아 두고 있는 풋옵션들 더 없나 싶어서 내가 아는 제일 금융 부장님한테 전화 돌렸었거든. 솔직히 그땐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모르고 정보만 달라고 부탁한 거였는데, 그 부장님이 오늘 아버지한테 얘기를 했나 봐.”
“J&H가 너랑 관련이 있다는 거?”
“내가 정보를 받고 나서 J&H가 남아 있는 풋옵션들을 전부 매집했잖아. 빼박이지.”
“그러네.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하겠네.”
자신이 큰 실수라도 저지른 것처럼 현식이가 머리를 빡빡 긁었다.
“어쩌지? 아니라고 발뺌해 볼까?”
“그럼, 속일 순 있고?”
“뭐, 심할 경우 우리 아버지가 사람 풀어서 나 미행하고 뒷조사까지 시킬걸?”
“······대체 너네 집안은 뭐가 문제야.”
“흐흐. 재벌들 무서운 거 모르냐. 아무리 자기 아들이라고 해도 잘 믿어 주지를 않아. 우리 아버지도 돈 앞에서는 한없이 냉정하시고. 그러니까 내 위에 있는 두 형님들이 어떻게든 이쁨받으려고 금융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거고.”
현식이네 아버님도 슬슬 후계를 결정해야 할 테니, 모든 것이 신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일 금융을 맨손으로 키워 지금의 위치까지 올린 인물이지 않던가.
“그냥 솔직하게 말씀드려.”
“괜찮겠어?”
“그럼, 어떻게 하게. 네가 속여 봤자 다 네 아버님 손바닥 안이잖아. 그냥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우리가 도움받을 거 있으면 받는 게 낫지.”
“괜히 화를 내진 않으실까? 우리 때문에 손실도 어마어마하게 봤을 텐데?”
“뭐, 그건 싹싹 빌어야지. 네가 내 몫까지 다 맞고 와라.”
“······그래. 지분 30%나 가지고 있으면서 한 것도 없는데, 내 몫을 다 하고 와야지.”
현식이는 짐짓 비장한 표정까지 지으며 얼른 옷부터 갈아입었다.
저놈이 정장 입고 나가는 건 왠지 오랜만에 보는 것만 같다.
“가기 전에 유언장이라도 하나 작성하고 갈까? 내 지분 다 너한테 옮겨 달라고 하게.”
“시끄럽고. 얼른 다녀오기나 해.”
현식이를 보내고 나서 나는 살짝 후회했다.
만일을 위해 유언장을 쓰게 놔둘 걸 그랬나.
* * *
“아들. 여기야.”
최현식은 제 아버지인 최진철이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을 보며 굳은 표정을 지었다. 오늘 아버지가 단단히 각오를 한 게 분명하리라.
“많이 기다리셨어요?”
“아니야. 나도 방금 왔어. 그래. 우리 아들 뭐 먹고 싶어?”
여기는 최현식이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던 아버지의 치밀한 준비성에 최현식은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음식을 대충 시킨 뒤, 최진철은 이런저런 말로 시간을 끌었다.
그렇게 신변잡기를 계속 나누다 최진철이 물었다.
“회사는 갑자기 왜 그만둔 거야? 혹시 신화 금융 게이트 때문이니?”
“예. 신화 금융 게이트 때문에 그만둔 것도 있죠.”
“너랑은 관련이 없었을 텐데?”
“있었어요.”
“있었다고?”
최현식은 물 한 컵을 들이켠 다음, 먼저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버지. 뭐 때문에 절 부르셨는지 압니다. 그냥 편하게 물어보세요.”
“흠흠. 그래? 우리 아들 눈치가 빠르네. 그런데 그전에 이거부터 물어보자. 정말 신화 금융 게이트에 너도 관련되어 있어?”
“예. 그거 저랑 제 친구가 까발린 거니까요.”
“뭐야?!”
밝았던 목소리가 갑자기 거칠어졌다.
“그걸 왜 지금 말하는 거야? 신화 금융 게이트는 잘못 건드리면 다 쓸려나가는 거였어. 그런데 네가 내부 고발자였다고?”
“뭐, 주도를 한 건 제 친구라서요. 저는 그냥 옆에서 시팅만 했어요.”
“그 친구라는 게 누군데?”
“이진석이요. 아마 모르실 거예요. 제 가장 친한 친구인데, 소개를 드린 적이 없······.”
“네 친구가 그 이진석이었어?!”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놀란 표정을 짓는 최진철이었다.
“아, 예.”
“그걸 또 왜 지금 말하니? 그 친구를 내가 어떻게 몰라. 금융사에 일하는 놈들 중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이진석이란 이름 들어 본 적 없냐고.”
“맞네요. 그 녀석이 좀 유명하긴 하죠.”
“좀이 아니라 많이 유명하지. 안 그래도 그 친구 신화 금융 나갔다는 얘기에 다들 스카우트하려고 간 보고 있었어. 우리 쪽에서도 한번 슬쩍 제의를 넣어 볼까 했었지.”
“그런데 안 넣으셨네요?”
“아무래도 걸리는 게 있으니까. 너도 알다시피 내부 고발자잖아. 아무리 실력 좋아도 내부 고발자라는 경력이 있으면 다들 꺼릴 수밖에 없지. 그래도 그 친구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우리도 고민 중이었다.”
내부 고발자의 문제점이다.
신변이 보호된다고 하지만, 막상 까 보면 보호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게 잘 끝나도 내부 고발자라는 주홍 글씨를 달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해당 업계에서는 자연스레 퇴출이 될 수밖에 없다.
“근데 넌 왜 그 친구 따라서 나간 거야? 너도 내부 고발자로 찍혔어?”
“그런 건 아닌데, 친구랑 같이 사업하려고 나갔어요. 예전부터 약속했던 거라 저한테 있는 사비 전부 다 털어서 투자했죠.”
“무슨 사업?”
“투자 사업이요. 진석이가 투자 능력 하나만큼은 대한민국 최고라 꼭 성공할 것 같았거든요.”
“설마, 그 회사 이름이 J&H?”
“예. 이번에 풋옵션으로 금융사들 돈 싸그리 털어 간 그 회사가 바로 저희들입니다.”
최진철은 잠시 넋을 놓은 채 멍하니 제 아들을 바라만 보았다.
저러다 입에서 침이나 떨어지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아버지?”
“······안 그래도 내가 J&H랑 네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오늘 알아보려고 온 건데, 그게 사실 네 회사였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제 지분은 30%고, 진석이가 70% 지분을 가지고 있죠.”
“둘이 공동 경영을 하는 거냐?”
“그런 셈입니다.”
“하아-.”
그냥 소속 직원이거나, 아니면 브로커 형식으로 일만 도와준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회사를 세운 것이었다니.
최진철은 그저 헛웃음만 터트렸다.
“이번에 정확히 얼마나 벌었냐?”
“4,200억이요.”
“어마어마하게 벌었네. 고작 40억으로. 그중 우리 회삿돈도 있겠네.”
“예. 아버지 회사 덕분에 많이 벌었어요. 저 중 1,000억은 제일 금융에서 나온 거니까요.”
그 말에 최진철은 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일을 거하게 친 아들이 대견하다는 생각까지 든 것을 보면, 역시 핏줄은 못 속이는 것 같다.
“죄송해요, 아버지. 제가 미리 귀띔이라도 드렸어야 했는데. 사실 저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어요.”
“아니야. 이 아빠가 항상 말하잖아. 저 서부에서 12시 딱 되면 먼저 총 꺼내서 방아쇠 당기는 게 승부만은 아니라고. 주식 시장에선 항상 그런 일들이 벌어져. 이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는 감정을 섞어서는 안 돼. 잘한 거야. 만약 네가 나한테 미리 말을 해 줬으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문제가 됐을지도 몰라.”
“문제요?”
“그래. 이번에 주식 시장이 개판 났잖아. 이럴 때 정치권에서는 항상 애꿎은 사람을 붙잡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거든. 너희 회사가 잘하면 그 꼴 날 수도 있어.”
이번에는 최현식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정부에서 벌써 작업 치고 있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니지만, 조만간 그렇게 될 확률이 높지. 요즘 루머들이 많이 떠돌고 있거든. J&H는 북한 정부가 비밀리에 만든 해외 법인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
“와. 진짜 가지가지 하네요.”
“억지스러운 의심은 아니야. 충분히 그럴 만한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지. 너희들이 핵 실험 며칠 전에 갑자기 풋옵션을 미친 듯이 사들였으니까.”
최진철은 제 아들에게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
“뭐 하고 있어. 얼른 불러.”
“예?”
“오늘 네 친한 친구 한번 만나 보자.”
* * *
저녁은 간단하게 컵라면이나 먹으려고 물을 끓이고 있었다.
웃기지 않은가.
4천억이 넘는 돈을 벌어들였는데, 저녁 식사는 겨우 컵라면이다.
에이. 혼자 기분이라도 내게 삼겹살에 소주라도 혼자 먹으러 갈까?
그때 현식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 지금 나오라고?”
“미안. 그렇게 됐다. 근데 너도 와서 꼭 들어야 할 얘기인 거 같아서.”
그냥 아버지를 소개해 주려고 그러는 것 같진 않았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아 나는 현식이가 보내 준 주소로 가 보았다.
나도 오랜만에 정장을 입고 멀리서 봐도 굉장히 비싸 보이는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하하. 이거, 금융계 초신성께서 이렇게 내 아들과 인연이 있는 줄은 몰랐네. 반가워요. 최진철이라고 해요.”
불편한 자리는 아니었다.
금융게에서 최진철 사장을 존경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훌륭한 투자 안목으로 제일 금융이라는 회사를 만든 인물이니까.
나름 존경하고 있던 분이었기에 오히려 이 만남은 내게도 매우 뜻깊었다.
“말씀 편하게 해 주십시오, 사장님.”
“아. 그래도 될까? 하하. 이진석 사장 이름을 직원들한테 귀가 닳도록 들어봐서 말이야. 무슨 아이돌 스타를 보는 기분이라니깐?”
최진철 사장은 참 유쾌한 성격이었다.
현식이와는 조금 반대라고 해야 할까.
그러다 음식이 나오고 어느 정도 배를 채운 뒤에야 본론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음. 아들한테 얘기는 들었어. J&H를 둘이서 세웠다고?”
“예. 맞습니다.”
“우리 이 사장, 신화 금융에서도 크게 수익을 내더니, 밖에 나가서는 말도 안 되는 수익률을 냈더구만.”
“과찬이십니다.”
“아니야. 정말 대단한 거지. 내가 그 나이 땐 그 정도 수익은 내지도 못했어. 그런데 대체 어떻게 안 거야? 마치 이건 북한이 핵 실험을 할 줄 아는 것처럼 풋옵션을 매집해서 말이지.”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 좋았다라······.”
최진철 사장은 와인으로 가볍게 입을 축인 다음 말을 이었다.
“그 말을 과연 다른 사람들도 믿어 줄까?”
“예?”
“자네 회사가 북한이 만든 해외 법인이 아니냐는 말이 나돌고 있어.”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순간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지만, 고작 40억으로 4,000억의 수익을 냈으니 누구라도 그런 의심을 할 만했다.
그래도 설마하니 그런 루머가 떠돌고 있을 줄이야. 이런 걸 미리 대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 잘못이다.
“그래서 말인데, 내가 하나만 물어볼게.”
“예.”
최진철 사장은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자네 혹시 북한 간첩인가?”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