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30화 (30/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30화

-정부가 급히 사이드카를 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주가는 멈출 줄 모르며 내려가기만 하고 있습니다.

-네 마녀가 동시에 날뛴다는 ‘쿼드러플 위칭 데이’까지 겹치면서 더욱 주가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2,000을 넘어섰던 코스피 지수는 어느새 1,600까지 떨어졌으며 그 하락세는 매우 빠른 템포를 보이고 있다. 이 정도 속도라면 얼마 가지 않아 1,500선도 붕괴될 것이라는 흙빛 전망이 터져 나왔다.

분명 어제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모두 남북한의 평화 개선으로 인해 주가가 상승 고지를 찍을 거라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는데, 지금은 과연 이게 어디까지 떨어지는 건지를 걱정해야만 했다.

이미 정부는 사이드카와 서킷 브레이커까지 발동한 상태.

금융 위기가 아니면 절대 걸지 않는 장치이지만, 오늘은 이 두 가지 모두 발동하여 어떻게든 폭락하는 주가를 잡으려 들었다.

하지만 이런 것으로 이 열기를 꺼뜨리는 건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한 치 앞도 바라볼 수 없다는 쿼드러플 위칭 데이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겹치면서 그야말로 광란의 시장이었다.

“이거 이러다 진짜 1,400까지 떨어지는 거 아니야?”

“그럼, 우린 좋지. 초대박일 테니까. 근데 이제 이거 시간 다 됐어. 풋옵션 전부 권리 행사해야 돼.”

내 예상대로 코스피 지수 1550~1560 사이에서 풋옵션 만기가 되어 권리 행사에 들어갔다.

현식이는 온통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는 풋옵션들을 바라보며 넋을 놓았다.

“105배. 도대체 이게 다 얼마야······.”

“북한이 좀만 더 빨리 핵 실험을 해 줬으면 훨씬 더 많이 벌었을 텐데, 조금 아쉽지?”

“이미 105배로도 말이 안 돼. 40억의 105배면 대체 얼마냐고.”

4,200억.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진석아.”

“왜?”

“넌 진짜 말도 안 되는 새끼야. 어떻게 40억을 4,000억으로 만드냐? 부탁인데, 우리 뜨겁게 포옹 한 번만 하자.”

“응. 안 돼.”

“차가운 새끼.”

몇 번이나 현식이는 모니터를 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하지만 나는 마냥 웃을 수가 없었다.

TV에 나오는 뉴스에는 주가 폭락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들을 다루었다.

“북한발 주가 폭락으로 인해 오늘 하루에만 수십 건의 투신자살이 벌어졌습니다.”

“대출을 받아 투자했던 A 씨가 오늘 아침 종목을 추천해 준 증권사 직원에게 원한을 품고 회사로 찾아가 흉기 난동을 일으켰습니다. 경호원들과 출동한 경찰에 의해 인명 피해는 없으며······.”

지금 여기는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우리 빼고는 전부 상황이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이 핵미사일로 인민들의 식량을 죄다 날려 먹은 것처럼, 돈을 생으로 날린 셈이 되었으니까.

투신자살, 흉기 난동 등등.

갑작스러운 주가 폭락으로 있어선 안 될 사건들이 여럿 벌어졌다.

그런 사건들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 앞으로도 이런 짐을 등에 지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

* * *

각 금융 회사들은 초비상이 걸렸다.

주가가 떨어진 것도 떨어진 거지만, 문제는 풋옵션들이었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개미들의 돈을 끌어모으기 위해 발행한 풋옵션들이 원자폭탄이 되어 돌아왔다.

제일 금융의 사장, 최진철은 해외에 나가 있다가 급히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 지금은 회사로 가는 차에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코스피 200 풋옵션부터 각 블루칩에 발행된 풋옵션들이 전부 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피해 금액만 수백 배에 달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최진철은 피해 금액을 확인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2,000억이라······.”

풋옵션이 100배 이상으로 뛰어 권리를 행사하게 되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만약 만기일이 좀만 더 뒤로 미뤄졌다면 2천억이 아니라 4천억을 훌쩍 뛰어넘었을 겁니다.”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이미 2천억이 날아가게 생겼는데.”

“죄, 죄송합니다.”

다행히 제일 금융 전체가 휘청거릴 정도의 금액은 아니었지만, 당분간 허리띠를 졸라매고 전투적으로 돈을 끌어모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젠장. 그 돼지 새끼는 왜 하필 이럴 때 핵으로 장난질을 치는 건지.”

최 사장은 자회사의 피해 보고뿐만이 아니라 경쟁사의 피해 보고도 잊지 않고 들었다.

“대형 금융사들도 전부 2천억 이상의 손실을 바라보고 있고, 이번에 가장 풋옵션 발행을 많이 한 KY 금융이 4천억 이상의 피해 금액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순위가 바뀌긴 했습니다. KY 금융이 한 단계 내려가고 제일 금융이 그 위의 순위로 올라갈 듯 보입니다.”

5대 금융 회사를 들라고 하면 첫째가 천하 금융, 둘째가 신화 금융, 셋째가 KY 금융, 넷째가 제일 금융, 마지막 다섯 번째가 대한 금융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KY 금융이 가장 큰 피해를 입어 그 순위가 바뀌게 생겼다.

“이걸 좋다고 웃어야 할지, 망했다고 울어야 할지 모르겠네.”

경쟁사를 따라잡았다는 쾌감보다 뼈아픈 손실이 눈에 더 밟혔다.

그렇게 비서실장에게 보고를 받으며 여러 서류를 확인하던 중, 특이한 점을 발견한 최진철이었다.

“근데 이건 뭐야?”

“어떤 것 말입니까?”

“여기. 핵 실험이 있기 며칠 전에 J&H라는 회사에서 풋옵션을 미친 듯이 사들인 동향이 있잖아. 이 회사 들어 본 적 있나? 난 처음 들어보는데.”

최진철 사장과 함께 해외에 있다가 일이 터져서 급히 서류를 받고 검토하느라 놓친 부분이었다. 하지만 최진철의 날카로운 눈썰미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투자 동향을 놓치지 않았다.

“저도 처음 들어 봅니다. 그런데 서류만 보면 타이밍이 너무 묘하네요.”

“그렇지? 마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딱 다 사갈 수가 있나?”

“이건 제가 잠깐 전화를 좀 돌려 보겠습니다.”

비서실장은 여러 곳에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최진철은 혼자 서류를 보며 생각에 빠졌다.

가장 심각한 범죄라는 ‘내부 정보에 의한 투자’인 건가?

하지만 그렇게 단정 짓기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이 모든 상황을 발생시킨 것은 북한이지 않은가?

곧이어 비서실장이 전화를 끝내고 최진철에게 보고했다.

“사장님. 알아 왔습니다. 사장님이 회사에 도착하시면 임원들이 제대로 보고를 드리려 했답니다.”

“일단 여기서 먼저 말해 봐.”

“예. 현재 여러 루머가 떠돌고 있답니다. J&H이 정치권과 연합하여 일을 저지른 게 아니냐는 말도 있고, 일각에서는 북한이 해외 법인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작업한 게 아니냐는 말도 있습니다.”

최 사장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치권에서는 이렇게 일 벌이지는 못하지. 그랬다가는 청와대가 가만히 있겠냐고. 그런데 북한?”

“예. 충분히 가능한 얘기 아닙니까. 북한 놈들이 해외 법인 하나 차려서 핵 실험 하는 타이밍에 풋옵션 매집해서 팡 터트린 게 아니냐는······.”

“쯧.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북한 돈줄 다 막혀 있는 거 몰라? UN이 아예 다 막아 버렸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중국이 알게 모르게 도와주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이 해외 법인으로 돈세탁했던 적이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요.”

실제로 북한이 여러 번 해외 법인을 이용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와 해킹을 통해 돈을 벌려 했던 정황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정보망을 총동원해 북한의 돈줄을 원천차단하면서 최근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조금 다르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회사가 핵 실험 며칠 전에 나타나 풋옵션만 죄다 매수해 가서 100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미국이 절대 북한이 해외에서 돈을 벌지 못하게 막아 두고 있긴 해도, 작은 틈새를 활용해 작업을 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금감원 쪽에서는 별말 없어?”

“아직 그쪽까진 연락을 돌려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워낙 난리가 나서 지금 다들 정신이 없어서요.”

“하긴. 보통 난리가 아니긴 하지. 그래도 한번 알아봐. 어떤 놈들인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야. 지금 이 난리 통에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 흘리고 있어. 분명 이 일로 누군가는 희생양이 될 게 뻔해. 그게 우리가 돼서는 안 되잖아?”

“예. 안 그래도 다른 금융사들도 전부 몸을 사리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책임을 정부 쪽에 돌려서 풍파를 피해 보자는 심산인 거죠.”

이렇게 한번 일이 크게 터지면 국민들은 희생양을 찾게 된다. 그리고 가끔 재수 없으면 특정 회사가 그물망에 걸리는데, 그 불똥이 튈까 두려운 금융사들은 언론을 이용해 어떻게든 책임을 다른 쪽에 두려고 한다.

“좋은 욕받이가 될 수 있을지 잘 알아보겠습니다. 그런데 사장님. 이정구 부장이 꼭 사장님과 통화를 해서 보고할 게 있다고 합니다.

“이 부장이? 연결해.”

“예.”

이 부장이라면 시키는 일은 우직하게 잘 해내는 사람이다. 보통 큰일이 아니면 부장급이 사장에게 전화 연결을 하는 일은 없다. 최진철은 직함만 사장이지, 실상은 금융 그룹의 회장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목소리가 많이 무거운 것을 보니, 보통 일은 아닌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2천억의 손실을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더 머리 아픈 일이 있는 건가?

“되도록이면 좋은 소식이었음 하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라.

최 사장은 나름 각오를 하고 이 부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 할 얘기가 뭐야?”

“사장님. 사실, J&H가 풋옵션을 매집하기 전에 제가 이상한 전화 한 통을 받았었습니다.”

“무슨 전화?”

“저······ 셋째 아드님으로부터······.”

“셋째? 우리 현식이 말하는 거야?”

“예. 갑자기 저희 금융사 말고 다른 금융사 쪽에서 발행한 풋옵션들이 더 없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몇 군데 알아보고 연락을 주었죠.”

“알려 주고 나서 J&H가 그것들을 전부 매집했다는 거네?”

“예. 귀신같이 알고 달려와 전부 다 가져가더군요.”

그 말에 최 사장은 허탈한 침음을 흘렸다.

안 그래도 잘만 다니고 있던 신화 금융 회사를 다 때려치우고 나온 셋째 아들놈이다.

제대로 일 배우겠다고 다른 금융사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참 기특했는데, 뜬금없이 그만두었다는 말이 조금 이상하긴 했었다.

일이 워낙 바빠 따로 얘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 처신을 잘 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설마, J&H와 제 아들이 관련되어 있을 줄이야.

“요즘 다들 나한테 왜 이래? 사람 놀래켜서 죽이려고 환장한 거야?”

“죄송합니다, 사장님. 제가 미리 보고를 올려 드렸어야 했는데.”

“아니야. 알려 줬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었겠어? 지금이라도 말해 줘서 고마워. 그만 일하러 가.”

“예, 사장님. 그럼······.”

이 부장과 전화를 끊고 나서 최 사장은 뒷목이 살짝 당기는 게 느껴졌다.

“이놈이 도대체 밖에서 뭔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혹시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에 엮인 건 아닌지 최 사장은 걱정이 앞섰다. 이러다가 아들놈이 쇠고랑을 차게 되면 사태가 더욱 커지게 된다.

그뿐인가? 줄줄이 엮여 제일 금융까지 한꺼번에 두들겨 맞을 수도 있다.

최 사장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한 다음, 핸드폰을 들어 셋째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그래. 우리 예쁜 아들! 지금 뭐 하고 있어? 오늘 오랜만에 이 아빠랑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갈까?”

그러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에게 다짜고짜 호통을 칠 수 있는 아빠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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