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29화
“총 40억이란 말이지?”
“예. 모두 같은 회사에서 쓸어 갔습니다.”
천하 금융 오강식 팀장에게 이상한 전화 한 통을 받고 나서부터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제일 금융의 황인석 과장이었다.
이틀에 걸쳐 J&H라는 곳이 갑자기 9월 9일에 만기되는 풋옵션들을 죄다 매수해 버린 것이다. 이건 마치 9월 9일이 되기 전에 뭔가 하나 터진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혹시 6자 회담이 어그러지는 걸까?
“오늘 회담 결과 나왔나?”
장이 마감되고 나서 회의를 소집한 황 과장 덕분에 팀장들이 한 자리에 모인 상태였다.
“아직은요. 그런데 곧 나올 겁니다.”
“음-. 만약 오늘 6자 회담이 엎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미 그에 대한 리스크 시나리오는 전부 마련해 둔 상태입니다. 6자 회담이 엎어진다고 해도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주 미미한 수준에 불과합니다.”
리스크 시나리오.
금융 회사에서는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특정 상황을 고려한 시나리오를 미리 만들어 둔다. 정말 최고의 상황부터 최악의 상황까지 마련해 두는데,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상황까지 시나리오를 만들어 둘 정도였다.
“거기 시나리오에서 9월 9일 전에 일이 크게 터진다는 내용은 없었나?”
“특정 날짜를 지정해서 일이 터진다고 가정하기보다는, 포괄적으로 우리 회사에서 발행한 옵션들을 두고 시나리오를 만듭니다.”
“그래. 거기서 우리가 발행한 풋옵션들이 전부 터져 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 J&H에서 쓸어 간 풋옵션들 있잖아. 그게 다 터진다고 가정했을 때.”
“J&H에서 현재 시장에 뿌려진 40억 원어치의 풋옵션들이 전부 권리를 행사한다고 쳤을 때, 오늘 주가지수가 2,020까지 올라갔으니, 최소 1,900까지는 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천하전자 풋옵션도 발행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현재 주가에서 10%만 떨어져도······.”
“아아. 복잡한 설명은 거기까지 하고, 결과만 말해. 결과만.”
“풋옵션 권리가 행사되면 최소 5배입니다.”
5배라.
40억이 200억으로 뻥튀기되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글쎄요. 아시다시피 풋옵션 매수는 이익 한도가 없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 팀장이 생각하는 최악의 경우는 어디까지냐고.”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코스피 지수가 1,500까지 떨어지고 풋옵션이 발행된 주식들도 그와 같이 폭락한다면 최대 100배까지도 가능합니다.”
100배.
5배와는 차원이 다른 금액이다.
40억이 100배면 무려 4,000억!
“어휴. 살 떨리는 숫자네.”
“그런데 그런 상황이 터질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당연히 그래야지! 그랬다간 우리 성과급 다 날아가고 당분간 보너스 생각은 접어야 돼. 우리 제일 금융에서 발행된 풋옵션이 무려 10억이야. 그게 100배로 권리가 행사된다고 생각해 봐. 1,000억 손실 나면 우리 모가지 안 날아가겠어?”
요 몇 년 동안 풋옵션이 100배 수익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없어야 한다. 긁어모으던 낙엽들이 태풍을 만나 저 멀리 날아가서는 안 되니까.
“과장님. 방금 뉴스 떴습니다.”
“무슨 뉴스?”
“6자 회담이요. 북한이 핵무기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답니다.”
* * *
6자 회담을 통해 북한이 마침내 핵무기 포기 선언을 했다.
미국이 이를 갈고 회담에 나섰다는 뉴스가 많았는데, 마침내 그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로써 세계는 다시 안전해질 겁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지속될 것이며, 북한과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할 예정입니다.”
회담 결과가 나오면서 시민들은 이제 통일이 머지않았다는 반응까지 보였다.
평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꼭 그렇지도 않다.
“우리 그냥 치킨집이나 차릴까. 나 요리 좀 하는데.”
현식이가 마음에도 없는 헛소리를 하고 있다.
“하하. 전쟁이라도 터졌으면 아주 밝게 웃으면서 총 들고 나갔을 텐데 말이야.”
“전쟁이라니. 끔찍한 소리 하지 마.”
“그래도 돈은 왕창 벌고 날아오는 포탄 맞아 죽는 거잖아. 저승길 갈 때 쌈짓돈 두둑하겠네.”
처음에는 현식이가 마음이 심란해서 저런 농담을 하나 싶었는데, 지금 침대에 누워 코미디 영화를 보며 낄낄대는 모습을 보니 또 그런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이놈이 투자금 날렸다고 질질 짤 때 어떻게 놀려 줘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뭐지? 뭐가 저렇게 해맑아? 저러면 안 되는 건데?
난 아쉬운 마음에 물어봤다.
“걱정 안 돼?”
“응? 뭐가?”
“내일 시장이 호황일 텐데? 오늘 뉴스 본 거 맞지?”
그러자 현식이가 뭔 소리를 하는 거냐며 인상을 찌푸린 뒤, 핸드폰을 끄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우리 집에 돈이 좀 많아야지. 나 하나쯤은 평생 놀고먹어도 괜찮을 거 같더라고.”
이런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거기다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조금씩 물려받은 것들 내가 다 처분하면 그 정도 투자 손실은 괜찮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것이 흙수저와 금수저의 차이란 말인가.
나는 이 돈 잃으면 그날로 끝이지만, 현식이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본과 배경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널 믿어. 내가 널 한두 번 보냐? 네 얼굴만 봐도 지금 확신에 가득 차 있잖아. 그래서 그냥 믿으려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누구나 돈을 잃는 건 속이 쓰린 일이다.
현식이는 심드렁하게 땅콩을 씹으며 물었다.
“내일 다 상한가 치겠지?”
“그렇겠지.”
“만약에 이번 옵션 박살 나면 너 내 운전기사나 해라. 월급 많이 줄게.”
“응. 안 해.”
내 단호한 거절에 현식이는 뭔가 생각났는지 입꼬리를 씰룩였다.
“근데 네 말대로 정말 다 엎어져서 주가가 폭락하면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겠다. 다 폭락할 때 우리만 땡잡은 거니까.”
글쎄.
주식이라는 건 원래 항상 등가교환의 법칙이다.
누군가가 웃으면, 누군가는 반드시 울게 되어 있다.
돈을 많이 번다는 건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기분이 엄청 업되진 않는다.
“돈을 많이 번다고 좋은 게 아니야. 이번에 옵션 중에서 네 아버지 회사 쪽에서도 10억 정도 발행한 거 알고 있지? 이번에 내 말대로 정말 주가 다 폭락하면 제일 금융도 피해가 만만치 않을걸?”
“음. 안 그래도 할 거 없어서 내가 저번에 만든 리스크 시나리오를 체크해 봤거든? 근데 정말 크게 떨어지지 않는 한, 간지럽지도 않은 수준이야.”
현재 내가 예상하고 있는 수익은 100배 이상이다.
현식이는 아마 많아 봤자 20배에서 30배라고 생각할 터.
하지만 100배가 넘어가는 순간, 제일 금융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내가 쓸어 간 풋옵션이 문제가 아니다.
그전부터 발행된 풋옵션들도 한꺼번에 물량이 쏟아져 나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 사태로 인해 피해를 보는 금융사가 한두 개가 아닐 터. 심할 경우, 파산에 이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저번에 약속한 거 잊었어? 우리 아버지 회사보다 더 크게 키워야지.”
“포부는 크네. 제일 금융처럼 되려면 진짜 열심히 하는 거로는 부족할걸?”
“맞아. 운도 잘 맞아떨어져야지. 근데 왠지 내 예감에는 네가 꼭 해낼 거 같다.”
짜식. 좀 감동인데?
이러다가 풋옵션 전부 말아먹으면 그땐 소주병을 내 뚝배기 깨는 데에 쓰진 않을까.
원래 돈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다고 하지 않던가.
* * *
-6자 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코스피 지수가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2,100을 달성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으며······.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서 다우 증시가 상승세를 타며 덩달아 코스피 지수도 연이은 상승세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6자 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후, 예상했던 것처럼 모든 주가가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이때 아니면 언제 또 상한가를 치겠냐며 직장인들은 남몰래 감춰 둔 비상금과 적금까지 털어 주식 시장에 퍼붓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지금쯤이면 미국과 대한민국 정부는 알아챘을 것이다.
북한에 속았다는 사실을.
[긴급 속보.]
[풍계리 지역에서 5.0에 해당하는 지진 발생.]
[인공 지진일 가능성이 높아 북한이 또 핵 실험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 난무.]
그날 저녁, 긴급 속보가 날아들어 왔다.
풍계리 지역에서 5.0이 넘는 지진이 발생한 것인데, 북한이 핵 실험을 하면 인공 지진이 매번 일어나던 곳이라 또 핵 실험을 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정부는 아직 조사 중에 있다며 정확한 발표를 꺼렸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결과가 나왔다.
[북한 6차 핵 실험 감행.]
[조선중앙TV, 북한 핵 실험 인정.]
[국방부 정식 성명 발표. 역대 최고 10kt 규모의 핵 실험으로 밝혀져.]
[북한 3년 만에 사상 최대 핵 실험.]
6자 회담에서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자신을 했지만, 그건 모두 북한의 장난질이었다는 것이 오늘 드러나고 말았다.
북한은 그동안 있었던 핵 실험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핵 실험을 진행했다. 연이어 들어오는 뉴스 소식에 의하면, 이 정도 규모라면 이제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실제로 이번에 있었던 핵 실험은 서울 전역을 날려 버릴 정도의 규모였으며, 이 정도의 기술력이면 한반도를 한순간에 끝장내 버릴 수 있는 핵무기가 북한에 존재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 혼란 속에 장이 오픈되었다.
“지, 진석아!!”
어제 술을 진탕 마시고 뻗어 있던 현식이는 장이 오픈하고 나서 한참 뒤인 오후 1시에 일어나고서야 상황을 알게 됐다.
“이제 일어났냐. 근무 태만으로 너 잘라도 되냐?”
“어제는 푹 자고 일어나라며! 아, 아무튼 이게 도대체 뭐야?”
“뭐긴 뭐야. 전설의 비기, 화전양면을 또 북한이 쓴 거지.”
어제까지만 해도 코스피가 2,100을 뚫을 거라는 전망이 가득했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사이드카와 서킷 브레이커까지 발동한 상태였다.
“미친. 말도 안 돼. 벌써 1,900이 무너졌어!”
현식이는 충격을 먹은 건지, 아니면 기쁜 건지 모를 목소리를 내며 안절부절못했다.
어제는 돈 다 잃어도 상관없다고 큰소리 땅땅 친 놈이.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야. 이러다가 진짜 무시무시하게 떨어지는 거 아니야? 우리 만기일이 딱 이틀 남았잖아. 그때까지 얼마나 떨어지는 거지?”
“내 예상으로는 1,500?”
내가 봤던 커뮤니티 글에는 정확히 1,530포인트까지 떨어졌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아쉽다.
이번 사태로 코스피 지수는 1,400까지 떨어지고 나서 서서히 반등을 하기 시작한다.
북한이 좀만 더 빨리 핵 실험을 해 줬다면 1,400까지 떨어진 풋옵션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들진 않는다.
이미 충분히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낸 건 확실하니까.
“이진석, 이 미친 새끼!”
다리에 힘이 풀린 현식이는 일어날 줄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