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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28화 (28/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28화

옵션.

주식 투자는 도박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이 선물/옵션이 주식 투자라는 것을 도박으로 만든 주범이다.

주식 투자를 잘 몰라도 선물과 옵션에 대해서는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터.

한 번 터지면 대박, 삐끗하면 쪽박이라고 대충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무조건 맞는 말도 아니다.

옵션이라는 게 설명을 해 줘도 이해를 못 하는 것이 대부분.

무척 난해해 보이는 투자 방법이다. 그러나 몇 번 해 보다 보면 금방 감을 잡게 되고 그때부터 호기심에 옵션 투자에 손을 대기 시작하는데, 주식 투자에 잔뼈가 굵은 사람들은 옵션과 선물을 절대 건들지 말라고 조언해 준다.

“꼭 그런 생각들을 하지. 난 괜찮아.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거야. 난 반드시 대박을 터트릴 거야. 그리고 결과는 어떻게 됐지? 다 쪽박 찼지. 한강 물 온도 체크나 하고 말이야.”

현식이는 탄식을 하며 선물과 옵션의 위험성에 대해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아. 물론, 옵션 매수자는 권리를 포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손해가 무한대는 아니야.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차라리 주식에 투자를 했으면 손절을 해도 절반은 건질 텐데, 옵션은 그러지도 못한다는 거지.”

옵션 매수자는 프리미엄이라는 돈을 내고 옵션 매도자에게서 권리를 산다.

옵션에는 각각 만기일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만기일이 되었을 때 매수자는 권리를 행사할 수도 있고, 아니면 포기를 할 수도 있다.

만약 자신이 원하는 대로 수익이 나오지 않았다면 권리를 포기해 미리 지급한 프리미엄만 손해를 본다. 반대로 수익이 나와서 권리를 행사하게 되면 매도자는 그에 따른 값을 전부 지불해 주어야만 한다.

즉, 옵션 매수자의 이익은 무한대이고 손해는 한정적인 반면, 옵션 매도자는 이익이 한정적이고 손실은 무한대에 이른다.

그럼에도 기관과 금융사가 항상 옵션을 발행하면서 매도 포지션을 잡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옵션들은 매도 포지션 쪽이 이길 확률이 매우 높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사에서는 계속해서 옵션을 발행하는 것이고, 한 방을 노리는 개미들은 그것을 사들이게 된다.

금융사에서는 이것을 낙엽 긁어모으기라고 부를 만큼, 옵션을 사는 놈들은 그냥 호구들이라고 부를 정도다.

“내가 회사 들어갔을 때도 옵션으로 크게 수익 본 사례가 거의 없었어. 그런데 이번이라고 해서 다를까?”

옵션은 로또 1등 당첨이 우습게 보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낼 수가 있는 곳이다.

국가에서 허락한 도박장이라는 것인데, 역사상 가장 큰 수익률을 낸 것이 49,800%.

바로 9.11 테러가 터졌을 때다.

“응. 달라.”

“에휴. 그래. 나 같은 머슴은 대감마님 말씀을 따라야지.”

“음. 일단 발행된 게 생각보다 많이 없어. 합치면 총 30억 정도네.”

나는 만기일이 9월 9일인 옵션을 전부 찾아 놓았다.

9월 9일쯤에는 모든 주가지수가 폭락한다는 것을 난 알고 있기에 발행된 풋옵션들만 모아 두었다.

옵션은 크게 콜옵션과 풋옵션으로 나뉘는데, 쉽게 정리를 하자면 기초자산의 가격이 오를수록 비싸지는 옵션이 바로 콜옵션이고, 기초자산의 가격이 내릴수록 비싸지는 옵션이 풋옵션이다.

그런데 만기일이 별로 남지 않아서 그런지, 9월 9일 날 만기가 되는 풋옵션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30억도 충분히 많은 돈이긴 하나, 지금 내가 들고 있는 돈이 총 50억.

여기서 20억을 더 넣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아직 부족해. 남은 20억도 전부 쏟아붓고 싶은데.”

“안 부족해. 여기서 30억이 그냥 날아갈 수도 있잖아. 20억은 세이브 해 두는 게 맞지 않아?”

“아니야. 좀 더 알아보자. 분명 긁어모을 수 있는 곳이 있을 거야.”

“쯧. 기다려 봐.”

한숨을 푹 쉬면서도 현식이는 제 할 일을 다해 주었다.

녀석은 여러 곳에 전화를 걸어 발행된 옵션이 없나 더 알아보았다.

“아. 그래요? 그럼, 그쪽 금융사에서 9월 9일 날 만기되는 걸 가지고 있다는 거죠? 예. 감사합니다.”

현식이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하여 각 금융사에서 발행 중인 옵션들을 긁어모았다. 또한 현식이 아버지가 운영 중인 금융사의 힘을 빌려 정보를 모았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되었다.

“딱 10억, 억지로 구했다. 더는 없어.”

이리저리 긁어모아 준 덕분에, 나는 총 40억의 옵션을 매수할 수가 있었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대출까지 껴서 있는 돈 없는 돈 죄다 투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기에는 발행되는 옵션들이 적다.

“다 됐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돼.”

“······.”

현식이는 등에 의자를 기대고 있는 날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고는 끊었던 담배를 만지작거렸다.

“이거 실패하면 40억이 그냥 날아가는 거야.”

“알아.”

“남은 10억이 있긴 하지만······ 아니다. 난 널 믿는다.”

말은 믿는다고 하면서 표정은 그렇지가 못하다.

만약 현식이가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내가 옵션을 하든 말든 크게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은 옵션의 위험성을 잘 모르니까.

하지만 금융사의 직원이라면 보통 옵션 매수자가 패배를 하고 나온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매일 같이 밤을 새우며 금융사 직원들이 향후 주가를 예측하고 옵션을 발행한다. 그에 반해 개미들은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찌라시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박을 하게 된다.

당연히 승률은 금융사가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99%의 승률을 자랑할 정도로, 금융사가 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자만하는 주식 전문가들도 한 번쯤 큰코다치는 경우가 있다.

어떤 미친놈이 쌍둥이 빌딩에 비행기를 처박는 것도 그렇고, 저 북쪽에 있는 또라이가 핵무기를 팡팡 터트리는 경우도 있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은 오만한 자들의 콧대를 부러뜨리곤 한다.

“북한이 노동 신문을 통해서도 세계 각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 갈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청와대는 내일 있을 6자 회담에서 반드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현식이는 심란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TV를 켰다. 그러나 나오는 게 하필이면 장밋빛 미래를 알려 주는 남북한 이야기였다.

그것을 보고 현식이가 해탈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내일 6자 회담에서 북한이 정말 핵무기 포기한다고 선언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음. 아마 주가가 많이 오르겠지?”

미 정부는 이번 6자 회담에서 무조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해 협상의 대가들을 모두 파견시킨 상태였다. 그래서 각 언론에서도 이번만큼은 북한이 꼬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강했다.

“담배 좀 피우고 올게.”

축 늘어진 채로 밖을 나가는 현식이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참 우습게 보였다.

며칠 있으면 저 어깨에 이제 힘이 잔뜩 들어가게 될 것이다.

* * *

천하 금융의 팀장, 오강식은 오늘 올라온 보고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러니까 우리 금융사에서 발행한 9월 9일 자 풋옵션들이 전부 나갔다?”

“예. 안 그래도 10억이나 남아서 이번 달은 보너스 포기하고 있었는데, 누가 고맙게도 전부 다 쓸어 갔습니다.”

오강식 팀장이 있는 팀은 앞으로의 시장 상황을 전망하여 옵션을 발행하는 일을 한다.

가끔 손해를 보긴 하지만, 그닥 큰 손실은 아니기 때문에 이 팀은 매달 보너스를 두둑이 들고 나간다. 개미들에게 옵션을 많이 파면 팔수록 회사는 이익을 보게 되고 동시에 보너스까지 주어지기 때문이다.

요즘 시장 상황이 좋기도 하고 남북한 관계가 개선되면서 앞으로의 전망도 좋아 풋옵션은 많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특정 법인 하나가 풋옵션을 죄다 털어가 버렸다.

“이상하네. J&H? 이건 또 무슨 회사야?”

“저희도 처음 보는 회사입니다. 뭐, 저희야 고맙죠. 지금 상승세를 보면 9월 내내 분위기 좋을 것 같던데요?”

“안 그래도 남북한 관계 개선된 것 때문에 콜옵션 발행을 많이 안 해 두고 있었는데, 다행이네요.”

“어디 있다가 튀어나온 회사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보너스 챙겨 가게 생겼습니다.”

팀원들의 분위기는 해맑았다. 그러나 오강식 팀장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뜬금없이 나타난 정체불명의 법인 하나가 10억이나 되는 풋옵션을 쓸어 간다?

한꺼번에 가지고 들고 갔다는 건 일절 고민하지도 않았다는 건데, 그 말은 풋옵션만 계속해서 긁어모으고 있다는 뜻이 된다.

“잠깐만 기다려 봐.”

오 팀장은 다른 금융사에 알고 지내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려 보았다. 그렇게 여러 군데에 있는 사람들과 통화를 하고 나서야 오 팀장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방금 몇몇 알고 지내는 애들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다들 똑같은 소리를 해.”

“어떤 소리요?”

“J&H라는 회사가 9월 9일에 만기되는 풋옵션만 잔뜩 털어갔다는데? 들어보니까 있는 거 없는 거 다 털어갔어.”

“전부 9월 9일에 만기되는 풋옵션들만요? 도대체 왜요?”

“모르지. 그냥 미친놈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팀원들도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다.

이름도 모르는 회사가 갑자기 등장해 옵션만 싹 쓸어 간다는 건 결코 주식 시장에서 좋지 못한 징조이기 때문이다.

“이거 설마, 정치권이랑 관련된 회사 아닙니까? 그런 경우 왕왕 있잖아요. 사전에 정보 얻은 다음에, 언론에서 팡 터트리기 전에 작업 들어가는 거.”

“그럴 가능성도 있긴 한데, 보통 그런 작업 할 때는 옵션을 건드리진 않지. 너무 눈에 띄잖아. 이러다 주가가 크게 폭락이라도 해 봐. 그럼, 풋옵션 수익이 뻥 튀면서 금감원 조사부터 들어간다.”

풋옵션이나 콜옵션으로 수십, 수백 배의 수익을 보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옵션을 싹 쓸어 가면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수익을 보지 못하면 상관이 없지만, 만약 수익을 크게 보게 된다면 내부 정보 위반에 걸려 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 팀장이 말했던 것처럼 옵션으로 작업질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무래도 이상하니까, 너희들 다른 곳에다 전화 돌려서 알아봐. 나한테 계속 보고하고.”

“예, 팀장님.”

팀원들은 팀장의 말에 따라 빠른 행동에 나섰다.

그러면서 오강식 팀장은 TV에 나오고 있는 남북한 소식에 눈을 돌렸다.

“아무리 봐도 호재밖에 없는 상황인데.”

6자 회담이 어그러진다고 해도 주가가 갑자기 폭락을 하는 사태가 벌어지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러 전문가들이 내놓고 있는 앞으로의 주식 시장 상황은 매우 밝았다.

“그놈들은 그냥 한 방 노리는 투기꾼들인가?”

가끔 이렇게 생각 없이 무조건 돈부터 넣고 보는 투기꾼들이 있긴 하다. 그런데 수십억 단위의 투기를 할 정도라면 진심이라는 건데?

“만약 풋옵션이 모두 권리를 행사하게 된다면······.”

순간 오 팀장은 있을 수 없는, 아니.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을 상상하고 말았다.

“에이. 아니겠지.”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로 무시무시한 상상이었지만, 결코 현실이 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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