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27화
*이 글에 나오는 사건들은 모두 작가가 각색한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
“자. 우리의 새로운 사무실.”
“······.”
난 할 말을 잃었다.
감동 먹어서?
아니. 내가 잠깐 이놈을 믿었다는 생각에 치가 떨려서.
“여기가 어딜 봐서 사무실이야. 그냥 네가 사는 집이잖아.”
현식이가 날 데려온 것은 자기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방이었다.
그곳에는 컴퓨터 모니터 4개가 달린 컴퓨터가 있었는데, 날 여기다 앉혀 놓고 일을 시킬 작정인가 보다.
“이쪽은 네 컴퓨터고, 이건 내 컴퓨터. 각자 자리 앉아서 차트 분석하고 즉석 회의도 하는 거지. 그러다 힘들면 여기 침대에 누워서 쉬면 되고.”
“에휴. 널 믿은 내가 미친놈이지.”
“야. 고작 두 사람 있는데 뭔 돈 아깝게 사무실을 차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럴 거였으면 사무실로 데려간다는 말을 하지 말든가.
“그래서 우리 이제 뭐 하면 돼?”
“뭐 하긴.”
나는 카드 하나를 현식이에게 던지며 말했다.
“커피나 사 와. 여긴 사내 카페도 없잖아.”
“하하. 우리 대표님이 그러실 줄 알고 제가 최신형 네스프레소 기계도 준비한······.”
“그거 카페모카 돼?”
“······아메리카노만 되는데요?”
“그럼, 나가서 사 와.”
“젠장.”
현식이는 하는 수 없이 카드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나는 투덜거리는 현식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다가 침대에 누워 TV를 켰다.
-오늘 정부는 북한이 회담에 참여할 것이라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미 정부는 회담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조속히 실행시킬 거라는 강한 의지를 보였으며······.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던 북한이 최근 들어 평화 모드로 전환하면서 국제 정세가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면에 담긴 북한의 전술이 뭔지 이미 알고 있었다.
“5일 남았나.”
9월 둘째 주 화요일과 목요일.
이 두 개의 날이 코스피 시장을 크게 흔들어 놓을 것이다.
사모 펀드 때문에 한참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미래 커뮤니티 센터는 갑자기 이벤트라는 명목으로 내게 정보 하나를 팔았다.
정보 날짜가 9월 9일.
나는 그날 본 정보들을 바로 메모해 두었는데, 수첩을 꺼내 그때 보았던 커뮤니티 글들을 떠올렸다.
[이 씨발 빨갱이 새끼들!]
[좆 같은 돼지 새끼. 언제 뒤지는 거냐?]
[그냥 전쟁했으면 좋겠다.]
[오늘 한강 물 온도 체크 좀요.]
9월 9일의 게시판 상황.
코스피는 매일 주가 조작부터 시작해 여러 종목들이 반등을 하거나 하락을 거듭한다. 하지만 무슨 큰 사건이 터지지 않는 이상, 주식 시장은 눈치 싸움에 의한 가격 상승과 하락을 반복할 것이다.
지금까지 봐 온 미래 커뮤니티 글들은 대다수 비슷했다.
오늘 하루 종목별 그래프를 보여 주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드라마틱하게 상승세를 타거나 하락세를 겪는 종목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9월 9일의 글은 조금 많이 달랐다.
[오늘 다 접습니다.]
[주식 인생 10년. 오늘 손 턴다.]
[한강 같이 가실 분 구합니다.]
한강 물 온도 체크해 달라는 글은 장난스럽게 매번 올라오는 글이라 그러려니 넘겼다. 그런데 이번 건 진지한 듯 보였다.
└그 새끼 때문에 돈 다 날렸다.
└외국인 새끼들은 도대체 뭐가 문제냐? 고작 실험 하나 한 거 가지고 돈을 다 빼?
└아직도 우리나라가 불안한 건가? 그놈들이 지랄하는 거 한두 번이 아닌데, 또 이렇게 돈을 다 빼 간다고?
중국 버블로 인해 조금 충격이 있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그래도 꽤 괜찮게 흘러갔다. 코스피 지수가 2,000선을 돌파해 점점 더 올라갈 거라는 희망까지 봤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누군가가 올린 통계를 보니, 코스피 지수 2,000이 고작 이틀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곧 있으면 2,100을 뚫을 거라고 전망했던 코스피 지수가 갑자기 이렇게 고꾸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3년 만에 충격적인 핵 실험.]
[미군 항공 모함 출격. 전폭기로 위협 비행 감행.]
[북한 지도자 김정은. 한국 향해 서울 불바다 발언.]
[불안감 큰 한국 시장. 전쟁 위협에 외국인 투자자 전부 팔자 전환.]
북한이 무려 3년 만에 핵 실험을 진행했다.
그동안 잠잠했던 놈들이, 그것도 6자 회담 참여로 평화 분위기를 만들던 놈들이 갑자기 핵 실험을 진행했다. 거기다가 북한 지도자 김정은은 한국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며 협박까지 해 댔다.
북한과 평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한국 정부는 큰 충격에 빠졌고, 미국을 비롯해 일본과 중국도 이에 대해 큰 우려를 드러냈다.
그로 인해 외국인 투자자들은 남북 전쟁이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모두 팔자로 전향해 버렸다.
우리나라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상당수 많이 끼어 있다.
기관 못지않은 그들의 힘은 코스피 시장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북한이 저렇게 불바다를 외치며 난리를 쳐도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한두 번 겪어 보는 일인가?
그러나 외국인 투자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 그냥 말만 했다면 외국인들도 또 북한이 지랄을 떠는구나 하고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핵 실험을 감행했다. 이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란과 미국의 갈등으로 인해 세계 분위기가 매우 험악스럽지 않았던가.
거기에 북한이 기름을 끼얹어 버린 것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미국 정부는 항공 모함을 파견하여 전폭기를 띄웠고, 위협 비행을 통해 힘을 과시했다.
그것을 보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당장이라도 전쟁이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고, 매도 물량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됐다.
“단 며칠 만에 1,400까지 떨어진 거면 말 다 했지.”
3년 만에 일어난 북한 핵 실험.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한국 시장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 게시판을 통해 생생히 전달되었다.
[사이드카 발동되고 서킷 브레이커까지 발동됐지만, 결국 이대로 쭉 떨어지려나 봅니다.]
[이 정도면 이 새끼들 노린 거 아니냐? 어떻게 쿼드러플 위칭 데이 있을 때 이 지랄을 떨어?]
[진짜 확 전쟁이라도 났으면 좋겠다. 차라리 다 부숴 버리게.]
한국 시장이 이렇게 요동을 친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쿼드러플 위칭 데이.
속칭 네 마녀의 날 때문이었다.
9월 7일 북한 핵 실험 감행.
9월 9일 쿼드러플 위칭 데이 시작.
정말이지 북한이 일부러 노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아. 그렇고 보니 곧 있으면 네 마녀의 날이지? 하. 벌써 생각만 해도 빡치네.”
커피와 케잌을 사 온 현식이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며 끌끌 혀를 찼다.
쿼드러플 위칭 데이란 무엇인가?
주가지수 선물과 옵션, 개별 주식 선물 및 옵션.
이 총 4가지의 만기가 겹치는 날을 뜻한다.
이 중 3개가 겹치는 날은 트리플 위칭 데이라고 칭하고, 4개가 한꺼번에 겹치는 날은 쿼드러플 위칭 데이라 칭하는데, 이때 옵션과 선물 만기일로 인하여 미친 듯이 물량이 쏟아져 나와 버린다.
우리나라에서는 3월, 6월, 9월, 12월의 두 번째 목요일이 쿼드러플 위칭 데이에 속해 있으며, 말 그대로 네 마녀가 시장을 흔들어 놓는다고 하여 네 마녀의 날이라고 부른다.
이땐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라고 해도 시장 상황을 전혀 예측할 수가 없게 된다.
숨어 있던 파생상품의 현물 주식 매매가 정리 매물이 시장에 쏟아져 나와 예상하기 힘든 주가 변동성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매수 차익, 혹은 매도 차익에 의해 주가가 급등할 수도 있고, 반대로 급락을 할 수도 있다. 금융사 직원들은 이날 단 한 순간도 차트에 눈을 떼지 못하게 되며 그야말로 영혼까지 불태우면서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에 따라 움직여야만 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우리 이제 회사 안 다니잖아.”
“회사 안 다녀도 관련은 있지. 이번 투자와 깊은 관련이 있거든.”
자기는 커피 대신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었다며 쭈쭈바를 맛있게 빨아 먹고 있던 현식이가 갑자기 행동을 멈췄다.
“잠깐. 너 설마, 옵션이나 선물 쪽에 손대려는 거야?”
“이런 쪽으로는 눈치가 참 빨라.”
“뭐야. 진짜야? 너 펀드 할 때도 옵션이랑 선물 쪽에는 관심도 안 줬잖아.”
“무슨 펀드에서 옵션질을 해. 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안 한 것뿐이야. 금융사에서 언제 옵션질 하는 거 봤냐?”
금융사에서는 주로 옵션을 발행해 매도 포지션을 잡는다.
옵션이라는 것이 원래 사는 사람은 손해가 한정적이고 수익은 무한대인 것에 반면, 매도하는 사람은 손해가 무한대고 수익은 한정적이다. 그런데도 금융사가 매도 포지션을 잡는 이유는 열의 아홉은 매도 포지션이 승리하기 때문이다.
“무슨 옵션을 하려고?”
“뭐, 눈에 띄는 건 다 만져 보려고.”
“무슨 근거로?”
“저거.”
나는 켜 놓은 TV를 가리켰다.
뉴스에서는 북한에 대한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북한 애들이 평화 무드 잡고 있잖아. 그것 때문에 오늘 주가도 많이 올라갈 테고. 다들 긍정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데.”
“너 군대 안 갔다 왔냐?”
“응?”
“군대에서 우리 지겹게 들었잖아. 화전양면 전술.”
화전양면(和戰兩面).
군대에 가면 꼭 배운다는 바로 그 전설의 비기.
앞에서는 평화를 얘기하지만, 뒤에서는 전쟁을 준비하는 전술로, 위장평화 공세라고도 부른다.
적을 방심하게 만들어 뒤통수를 친다는 건데, 현대에 들어 북한이 매우 즐겨 쓰는 전술이 되었다. 그래서 군대에 가면 정신 교육을 할 때마다 우리나라의 주적은 북한이며, 화전양면 전술로 항상 우리나라를 농락하려 든다고 배웠다.
아마 군대 다녀온 사람들 중에는 화전양면 전술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네 말은 저게 쇼라는 거네?”
“응. 내 생각은 그래. 요즘 들어 저러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분명 뒤에서 뭔가 일을 꾸미려고 시선을 다른 곳에 옮기는 것 같아.”
“음······. 그렇다고 해도 북한이 지랄 떤 게 한두 번이야? 도발 조금 한다고 과연 주가가 요동칠까?”
“마침 네 마녀의 날이 껴 있잖아. 이땐 주가가 올라가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많이 떨어지더라고. 왠지 난 북한이 네 마녀의 날 전에 한번 크게 터트려 줄 거 같은데?”
내 의견에 현식이는 고개를 저었다.
“에이. 설마. 그 새끼들이 진짜 노리고 터트리지 않는 한, 그럴 일 없어.”
아마 지금 대한민국에 있는, 전 세계에 있는 투자자들이 현식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린 정말 많은 시간 동안 북한의 화전양면 전술에 속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또 속게 되어 애꿎은 한국 개미들만 피해를 보게 될 게 뻔하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속에 항상 희망의 불빛이 있는 법.
네 마녀는 금융사와 개미들을 전부 빗자루에 두들겨 패고 있을 때, 오직 나에게만은 황금이 가득 담긴 호박을 던져 줄 것이다.
“그만 처먹고 일하자.”
“야. 진짜 옵션 하려고?”
“응. 지금 발행되고 있는 옵션들 전부 알아 와.”
현식이는 약간 멘탈이 나간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 유리 같은 멘탈이 강철로 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