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25화
-신화 금융이 국민연금과 사모 펀드를 오픈하여 신화 그룹 지배를 위한 강제 합병을 이루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검찰이 조사에 나섰습니다.
-신화 금융 게이트로 인해 검찰은 신화 그룹 후계 구도 2순위에 있는 신용권 이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사모 펀드에 모인 금액만 3조 원이 넘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사전에 합병을 막지 못했다면 피해 금액은 최소 1조 원이 넘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판단했습니다.
-신화 금융 게이트를 최초 폭로한 것은 신화 금융의 사장이자 이번 사모 펀드를 총 책임지고 있던 이진석 사장으로 알려졌습니다.
사방에서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이제 국민들도 신화 금융이 저지르려 했던 더러운 짓을 모두 알게 되었다.
아. 정확히 말하자면 신용권이 하려 했던 더러운 짓을 말이다.
-진석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네 얼굴이 뉴스에 나와! 너 혹시 무슨 큰 잘못 한 거니? 검찰에서 널 소환한다는데? 사실이야?
어머니는 내 얼굴이 아침 뉴스에서부터 아주 큼지막하게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전화를 거셨다.
“아니에요, 엄마. 내가 잘못을 한 게 아니라······.”
-이 녀석아! 엄마가 그랬잖니. 갑자기 회사에서 너한테 그 큰 자리를 주는 건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아니. 그러니까요, 어머니. 제 말은······.”
덕분에 나는 어머니를 다독이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뒤늦게 오해를 풀게 된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우리 아들이 호구를 잡힐지언정, 어디 가서 나쁜 짓을 할 아이는 아니지.
“······.”
-그래도 다음부터는 이런 일에 끼어들 생각도 하지 마! 너 말고 다른 사람이 하게 해!
“아이고, 엄마. 이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런 일은 무서워서 못 해요.
저 말은 진심이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이 벌렁거려서 난리도 아니었다.
특히 신용권 이사 앞에서 뻔뻔하게 거짓말을 해야 했을 땐 더욱 심했다.
거기다 누가 항상 날 감시하고 있다는 걸 신경 써야 하니, 이러다가는 정신병에 걸릴 것만 같았다.
“나 오늘 검찰청 포토존에 서야 되니까, 엄마 또 내 얼굴 보고 깜짝 놀라서 난리 치면 안 돼.”
-무슨 이유든 그런 곳은 발 들이는 게 아니야. 이번에 다녀오고 나서 두 번 다시 가지 마. 알겠어?
나도 검찰청에 들락날락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거기서 먹는 설렁탕이 그렇게 맛이 없다던데.
나는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곳에는 차 한 대가 대기 중이었는데, 이태호 검사가 특별히 날 위해 보내 준 전용 차량이었다.
“이진석 사장님 되십니까?”
“아, 예. 그런데 이제 사장 아닙니다.”
“타시죠. 증인 보호를 위해 특별히 경호해 드릴 겁니다.”
검찰에 이런 시스템이 있는 줄은 몰랐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대비해 증인 보호를 위하여 차량까지 내어 주다니.
뒷좌석 문을 열자 그곳에는 이미 듬직하게 생긴 경호원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뭔가 보호를 받는 거 같으면서도 어디론가 끌려가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장님. 도착했습니다. 기자들이 전부 대기 중이라 아마 정신없을 겁니다.”
“예. 이미 각오하고 있습니다.”
나는 깊게 심호흡부터 했다.
내 평생 검찰 포토존에 서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저 TV에서만 보던 일이 현실로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왔다!”
뒷좌석 문이 열리고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벌써부터 정신이 없었다.
“이진석 사장님! 지금 소감이 어떠십니까?”
“신화 금융 게이트를 진두지휘하신 거로 알려졌는데, 그걸 갑자기 폭로하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신화 금융 게이트가 실패할 것을 염려해 폭로를 하신 겁니까?”
원래 이런 사건이 한번 크게 터지면 나도 모르는 수많은 루머가 만들어진다.
신화 금융 게이트는 나로 인해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다. 만약 내가 입을 다물고 진행했다면 아마 오랫동안 국민들은 이 사실을 몰랐을 게 뻔하다.
그러나 나로 인해 신화 금융 게이트가 폭로되었고, 언론에서는 국민의 혈세가 엉뚱한 곳에 빠지는 것을 막은 영웅으로 날 포장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에서는 내가 일을 주도했다가 틀어진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그 외에도 참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었는데, 이런 거짓된 소문들이 무성해져도 결국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저는 신화 금융에서 국민연금과 함께 사모 펀드를 진행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이것을 반드시 막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그룹을 지배하기 위해 국민의 눈을 속이는 재벌들의 행태를 이로써 바로 잡을까 합니다. 제 작은 용기가 부디 세상을 바뀌는 데에 일조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는 건 이진석 사장님께서는 이번 사모 펀드를 폭로하기 위해 프로젝트에 참여하신 겁니까?”
“처음에는 그룹 지배를 위한 사모 펀드인 줄 몰랐습니다. 프로젝트 진행 중에 알게 되었고, 꼭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준비를 해 왔던 겁니다.”
기자들은 쉽사리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금융계 쪽에서 이진석 사장님에 대한 소문이 정말 자자합니다. 놀라운 수익률로 신화 금융 최연소 사장에 오르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폭로로 인해 금융계에서는 퇴출당할 수도 있을 텐데, 괜찮으십니까?”
“저는 한 회사의 직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 나라의 국민이기도 합니다. 이 업계에서 퇴출을 당한다고 해도 후회는 없습니다. 저희 부모님과 제 미래의 자식을 위해서라도 이번 일은 꼭 바로 잡아야 했습니다.”
나는 마지막 멘트를 남기고 포토존을 떠났다.
“이 나라에 언제나 정의로운 재벌들만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 * *
증인 자격으로 검찰에서 5시간 동안 길게 조사를 받는 동안, 나는 사모 펀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모아온 자료를 이태호 검사에게 전부 넘겨주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신용권 이사를 완전히 짓밟아 버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재벌들이 어떤 족속인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1심에서는 징역형을 받아도 2심에서 형량이 낮춰지고 결국 3심에서 집행유예가 떨어질 겁니다. 이미 검찰 내부에서도 천천히 말을 맞추고 있는 기색이 보였어요.”
“그렇습니까? 좀 씁쓸하네요. 이렇게까지 준비를 했는데.”
“재벌은 사람 죽여도 잘 풀려납니다. 누군가 대신 누명을 써서 빠져나가곤 하죠. 그 예전에 폭행 사건 못 들어보셨어요? 재벌 그룹 회장이 사람 하나 반 죽여 놓은 다음에 3천만 원 수표 던져 놓았다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증거 불충분으로 그냥 풀려났습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재벌들의 폭행 사건 전례를 들어보면 참 다양하다.
재벌 그룹 회장이 자기 아들이 클럽에서 맞고 왔다고 조폭들을 동원해 가해자들을 모조리 붙잡아 산에 묻어 버린 사건도 있고, 회사 앞에서 시위하는 노동자를 사무실로 불러들여 죽을 때까지 주먹으로 때려눕힌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종료된 사건들이다.
“신화 그룹에서도 아마 어떻게든 징역형은 막으려 할 겁니다. 신 회장님이 하루 이틀 한다지만, 아직 살아는 계시잖아요. 그 입김이 적용되는 거겠죠. 거기다 이번 강제 합병도 사실 미수에 그친 거라서 징역으로 끌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긴 합니다.”
나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내가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차단했기 때문에 실상을 들여다보면 피해를 본 건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사모 펀드의 수익률이 늘어났을 뿐.
즉, 이건 미수에 그친다는 것이다.
그나마 내게 미리 제출한 증거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죄로 인정하여 형량을 내릴 순 있다. 하지만 감방에 몇 년 썩게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검찰 안에서도 미친개라고 불린다는 이태호 검사가 집행유예로 끝날 거라고 장담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정말 큰일을 하신 겁니다. 이 사장님 아니었으면 정말 많은 돈이 엉뚱한 곳에 쓰였을 거예요.”
“저도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태호 검사는 서류를 정리하고 나서 내게 손을 건넸다.
“오늘 조사는 이것으로 마무리된 듯합니다. 아마 재판이 이어지면 증인 자격으로 참석을 하셔야 할 겁니다.”
“고생길이 훤하네요.”
“괜찮습니다. 빠르게 끝낼 수 있도록 제가 노력해 보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사장님.”
나는 이태호 검사와 악수를 나누고 검찰청을 나섰다.
처음 들어왔을 땐 기자들이 연신 플래시를 터트려 정신이 없었지만, 나올 때는 조용히 뒷문으로 나오게 해 줘서 어수선함을 겪지 않아도 됐다.
원래는 현식이를 불러 나 좀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려 했지만, 뉴스 보고 어머니가 혹시 쓰러지실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이 돼서 어머니가 있는 곳에 현식이를 보낸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혼자 택시라도 불러서 쓸쓸하게 집에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검은 세단 3대가 모여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는데, 순간 불안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신화 그룹에서 나온 경호원들입니다. 신태일 회장님께서 이진석 사장님을 뵙고자 저희들을 보내셨습니다.”
“누구요? 신태일 회장님이요?”
신태일이란 이름에 현식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 회장님이면 이번 달 안에는 죽을 거라고······.”
난 현식이의 어깨를 툭 치며 입을 다물게 했다.
“정말 신 회장님께서 보내신 분들입니까?”
“예.”
대답이 매우 짧다.
신 회장이 아니라 신용권이 보낸 사람들이라면?
이대로 끌려가서 저기 이름도 모를 야산에 묻히게 되는 건 아닐까?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최대한 매너 있게 모셔 오라고 했지, 그렇게 겁을 주라고 했나?”
그때 경호원들 뒤에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신용일이었다.
“혹시 신화 그룹 부회장님······?”
“내가 여기 검찰청을 제일 싫어하는데, 우리 이 사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왔네. 이렇게 얼굴로 보는 건 처음이죠?”
나는 신용일의 얼굴을 사진으로만 알고 있었다.
“부회장님께서 여기까진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아까 우리 경호원 하는 말 못 들었어요? 병상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이진석 사장을 꼭 한 번 봐야겠다고 하셔서 말이에요.”
“저를요?”
난감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제 둘째 아들을 보기 좋게 검찰청으로 보내 버렸으니, 신 회장은 필시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을 것이다. 둘째 아들을 대신해 보복을 하려는 건 아닐까?
그런 내 우려를 읽은 부회장은 날 안심시켰다.
“이 사장이 생각하는 그런 일 때문이 아니니까, 한번 만나 봐요. 우리 아버지를 독대하는 게 생각보다 많이 어려운 일이거든.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신화 그룹 회장을 독대하는 건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재계 순위 2위를 달리고 있는 대기업의 회장이지 않은가.
그런 사람이 나를 보겠다고 병상에서 일어나 기다리는 중이라니.
“신 회장님이 많이 편찮으시다고 들었습니다만. 의식이 없으시다고 듣기까지 했는데······.”
“언론을 너무 믿지 말아요, 이 사장. 언론만큼 조작하기 쉬운 게 또 없으니까.”
부회장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내가 탄 차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차량은 묵묵히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