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24화
“이게 무슨 방송이야?”
“저거 사장님 목소리 맞죠?”
“압수수색? 진짜야? 갑자기 왜 압수수색을 한다는 거지?”
사내 전체에 울려 퍼지는 방송에 직원들은 크게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모두 컴퓨터를 끄고 회사 밖으로 나가라는 명령이 떨어지긴 했지만, 정말 그 명령대로 밖에 나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거 자료 다 삭제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저번에 작전주랑 같이 해 먹은 거 걸리면 좆 되는데?”
“민감한 서류도 많아서 이거 공개되면 곤란해요.”
방송에서는 분명 사모 펀드와 관련된 직원들을 두고 말했지만, 그와 관련이 없는 직원들도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안절부절못했다.
“과장님. 정말 다 내려놓고 갑니까?”
“방송 못 들으셨어요? 검찰이 압수수색 진행한다잖아요.”
“하지만 이거 10분 안에 매집 안 하면 그동안 우리가 준비했던 거 다 날아가는 거잖아요. 그 고생이 아깝지 않으세요?”
“예. 별로 안 아까운데요?”
“······.”
최현식 과장은 직원들을 모두 일으키며 얼른 사무실을 나가라고 재촉했다. 하지만 신 이사가 뿌려 둔 직원들은 그의 말에 따르지 않았다.
“저희는 갈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매집 진행해서······.”
“아아. 잠깐만. 지금 마우스 클릭 한 번이라도 했다가는, 김 팀장님 바로 쇠고랑 차시는 건 알고 있죠?”
“그게 무슨······!”
“이보세요. 우리가 사모 펀드 준비하면서 솔직히 모른 척하긴 했지만, 이거 엄연한 불법이에요. 손해 볼 거 뻔히 알면서 회사 지분을 죄다 매집해 놓고 합병을 진행한다? 아, 물론 내 개인 돈이면 뭘 하든 상관없지. 그런데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국가 기관의 돈을 이따위로 쓰면 당연히 처벌받을 수밖에 없는 거야. 그러니까 알아서 해요. 대신, 지금부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다. 처벌받는 건 당신들이지, 내가 아니에요.”
마우스를 클릭하는 순간, 모든 걸 덤터기 써야 한다는 최현식의 협박 아닌 협박에 직원들은 섣불리 움직이질 못했다.
다른 층의 직원들은 부장부터 시작해 몇몇 임원들까지 재빨리 움직이면서 자료 제거에 나섰는데, 이곳 층의 직원들은 누구도 그와 같은 짓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무실 밖으로 나서지도 않고 있는 이 애매한 상황을 정리해 줄 사람이 나타났다.
“다들 아직도 여기 계셨네요?”
* * *
“사장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검찰의 압수수색이라니. 저희는 그런 정보를 사전에 전달받은 적이 없습니다!”
“이건 공권력의 횡포에요, 횡포!! 도대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압수수색을 진행한답니까!”
임원들이 아우성을 치며 사장실로 모여들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다 대꾸했다.
“검찰이 언제 ‘나 압수수색 하러 가니까 미리 파일 다 지워 주세요’ 하고 광고한 적 있습니까? 그냥 들이닥치는 거지.”
“당연히 미리 경고를 하죠! 신화 그룹에서 검찰청에 돈 뿌려 둔 게 얼마인데!”
“검사들이 이런 건 매너상 사전에 경고를 해 줍니다! 늦어도 이틀 전에는 말이에요.”
임원들은 여러 경험이 있던 모양인지, 이번 검찰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이 바뀌었나 보죠. 더 이상 재벌들의 개가 아닌, 정말 국민들의 지팡이가 된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사장님. 지금 그걸 말이라고······.”
“아무튼, 검찰이 수색을 하는 건 이번에 진행 중인 사모 펀드 건입니다. 다른 것들은 일절 건드리지 않을 테니 모두 안심하고 돌아가십시오.”
그 말에 임원들의 표정이 싹 달라졌다.
한층 더 무섭게 변했다고 해야 할까?
“잠깐만. 지금 그 말은 사장님은 검찰과 미리 연락이 되어 있었다는 겁니까?”
“예.”
“설마, 사장님이 찌른 겁니까? 신 이사님을?”
“음. 틀린 말씀은 아니네요. 맞습니다. 제가 찔렀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사모 펀드를 검찰에 전부 고발했고, 지금 조사하기 위해 검찰에서 오는 겁니다.”
그제서야 임원들이 돌변했다.
“당신 미쳤어?! 감히 건드릴 게 없어서 신 이사님을 건드려? 지금 큰 실수 하는 거야!”
“사장 되니까 아주 눈에 보이는 게 없지? 그래 봐야 넌 월급쟁이야. 그런데 머슴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주인을 건드리다니. 아주 미친놈이구먼!”
그동안 내게 하지 못했던 울분을 여기서 다 풀어내려는 모양이다.
난 짧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 어린 충고, 아주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삿대질하며 열심히 욕하신다고 한들, 달라질 건 없어요. 지금 여기서 이러실 게 아니라 다들 살길을 찾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뭐야?”
“저, 최연소로 신화 금융사의 사장이 된 놈입니다. 그리고 미친놈인 것도 맞습니다. 그 미친놈이 과연 신 이사 하나만 물어뜯었을까요? 아니면 신 이사와 동참한 여러분도 함께 물어뜯었을까요?”
“이, 이 새끼. 서, 설마 우리까지······.”
“그러니까 어서 대비를 하시라고요. 다들 찔리는 구석이 하나쯤은 있으실 거 아닙니까. 제가 이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우리 임원님들 약점 하나씩 안 찾아봤을까요?”
“······.”
임원들의 안색이 또다시 돌변했다.
더 이상 분노에 찬 모습이 아닌, 두려움으로 바뀐 얼굴이다.
“크흠. 사, 사장님. 우리 이러지 말고 찬찬히 대화를 통해 풉시다. 피차 같은 입장인데, 서로 피 보는 건 보기 안 좋지 않습니까?”
방금 전까지는 개새끼 소새끼 다 나왔으면서 자신들이 불리해지자 말을 높여 준다.
“전 할 얘기 다 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정말 시간 별로 없습니다. 검찰 들이닥치기 전에 다들 숨기고 싶은 거 있으면 얼른 숨기세요. 아셨죠?”
나는 날 연신 부르짖고 있는 임원들을 놔두고 현식이가 있는 부서로 내려가 보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직원들끼리 서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다들 아직도 여기 계셨네요?”
그러지 직원들 모두 하던 말을 멈추고 내게 고개를 숙였다.
“아마 지금 상황이 잘 이해가 안 되실 것 같아 제가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우리 모두 속은 겁니다.”
“······예?”
“김 팀장님은 신 이사님이 꽂아 준 분이죠?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만약 우리가 오늘 프로젝트 진행했으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범죄자가 되어 검찰에서 국밥 먹고 있었을 겁니다. 신 이사는 이번 합병이 모두 끝나면 우릴 전부 고기 방패로 쓸 생각이었어요.”
“사장님. 그, 그게 정말입니까?”
“믿기 어려우시다면 나중에 참고인 조사하러 가실 때 한번 물어보세요. 검찰 쪽에서 이미 함정까지 다 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순순히 그 구덩이에 빠져 줄 순 없잖아요. 그래서 당하기 전에 선제공격을 한 거라고 생각하세요.”
신 이사의 유혹에 넘어간 직원들이 많을 거다.
승진의 유혹, 보너스의 유혹, 그 외 등등.
하지만 그것들이 사실은 덫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을 땐 보통 늦은 경우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다르다. 오늘 내가 여기 있는 직원들의 미래를 살렸다.
“이번 경험을 보물 삼아 다음에는 꼭 유혹에 빠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주식 시장이라는 곳이 단순히 돈만 버는 곳이 아니라 온갖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곳이니까요.”
“······.”
직원들도 이번 일로 깨닫는 바가 클 것이다. 하지만 과연 누가 상사로부터 건네지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승진과 연봉 인상.
빠듯한 사회생활에 참으로 단비 같은 일이다.
그냥 눈 한 번 꾹 감으면 더 나은 삶이 기다린다는 기대감에 대부분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나라도 아른거리는 어머니의 병원비에 그 손을 잡았을지도.
* * *
“야 이 개새끼야! 너 뭐 하는 놈이야! 왜 내 지시대로 안 하고 쓸데없는 곳에 돈을 다 투자한 거야!”
회사를 나와 앞에 있는 카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빨고 있을 때였다.
목소리가 터질 것만 같은 신 이사의 걸쭉한 욕설이 핸드폰에서 흘러나온다.
“국가 기관이 연루되어 있는 사모 펀드이지 않습니까? 그 돈을 차마 허튼 곳에 쓸 수가 없어 최대한 이익이 되는 곳에다 투자를 했습니다. 아마 2~3주 정도 있으면 꽤 날 겁니다.”
“이 새끼가 지금 장난하나. 내가 그딴 거 물어봤어?! 오늘 주주총회 때 네 새끼 때문에 나만 개쪽 봤어. 알아?!”
“지금 그쪽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사님.”
“뭐?”
“신화 금융의 전권을 맡겨 주시는 바람에 제가 투자금을 전부 운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익도 나지 않는 로지텍의 지분도 전부 팔아 다른 곳에 투자했습니다.”
충격이 컸는지 신 이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신 이사는 사모 펀드를 이용해 신화 그룹을 꿀꺽 삼키려 들었다. 그리고 그 사모 펀드 운용을 위하여 모든 자원을 그곳에 집중시켰다.
즉, 신화 금융에서 사모 펀드를 지휘함과 동시에 신 이사의 목숨줄을 붙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
당연히 신 이사는 자신이 신화 금융을 지배하고 있으니 상관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그 사모 펀드를 운용하는 총 책임자는 바로 나였다.
검찰의 압수수색이라는 미끼로 직원들의 시선을 다른 곳에 분산시킨 뒤, 그동안 나는 빠르게 움직여 사모 펀드에 묶여 있는 돈을 골고루 나눠 여러 종목에 투자했다. 또한 로지텍에 있는 지분도 모조리 팔아넘겨 신 이사가 가진 신화 그룹 지배 지분을 훨씬 더 낮추었다.
“너, 너 이 새끼 대, 대체 언제부터······.”
“그러니까 사람을 잘 보고 뽑으셨어야죠. 이사님이 이번 일 끝나면 절 가마솥에 처넣으려 했다는 거 모를 줄 아셨습니까?”
“이, 이봐. 이 사장. 그거 다 오해야. 내, 내가 왜 이 사장을 팽하겠어? 우리 이 사장은 차기 신화 그룹 부회장으로······.”
“됐습니다. 그리고 사표도 제출해 놨으니, 알아서 처리해 주십시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야! 끊지 마! 야 이 새끼야! 잠깐 기다려 보······.”
뚝-.
전화를 끊자 내 앞에서 팝콘을 씹듯이 재밌게 상황을 관람하던 최현식이 말했다.
“신 이사 아주 죽으려고 하지?”
“지금 정신이 아주 번쩍 들 거다. 내가 로지텍에 있는 지분까지 건드렸다는 걸 방금 알았으니까.”
“크흐. 그놈은 자기가 제일 똑똑한 줄 알았을 거야. 그런데 이렇게 뒤통수를 맞네.”
신 이사가 안일했던 것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올인을 해서 형님보다 먼저 신화 그룹을 집어삼켰어야 했으니까.
“야. 마침 기사도 뻥뻥 터지고 있네.”
현식이는 인터넷을 통해 현재 검색어를 점령하고 있는 신화 금융을 클릭해 보며 그와 관련한 기사들을 재밌게 찾아보고 있었다.
내 부탁으로 넷컴뷰에서 기사를 크게 터트려 준 덕분에 다른 신문사들도 하나둘 그 소스를 가져가 기사를 써내고 있는 중이다.
“신나냐?”
“그럼, 안 신나? 일반인도 아니고 재벌의 뒤통수를 씨게 쳤는데?”
“우리가 다니던 회사가 엿 된 건데도?”
“야. 그 소리 모르냐? 직장인들 퇴근할 때마다 회사 벽 한 번씩 때린다는 거? 언젠가는 제발 무너지라고 그러는 거래.”
“하긴. 회사 좋아하는 직장인들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2년 동안 열심히 다닌 회사인데, 떠나기 전 제대로 큰 칼을 꽂았다.
“이제 우리 백수네.”
“네가? 아닌데? 넌 우리 J&H의 대표잖아. 이제 우리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셔야죠, 대표님.”
“아, 네. 그쪽도 일 겁나게 시킬 거니까, 각오하세요.”
“대주주한테 너무하시네.”
“지분은 내가 더 많거든요? 그러니까 까라면 까세요.”
그렇게 농담 따먹기를 하다 현식이가 슬쩍 물어보았다.
“근데 우리 언제부터 일해? 내일부터?”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3일 후부터.”
“응? 왜? 그때 뭐 있어?”
“있지. 엄청난 거.”
코스피 시장을 크게 흔들 사건이 곧 터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