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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23화 (23/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23화

“우리 이 사장. 아침부터 출근도 안 하고 어딜 다녀오는 거야?”

회의실에 먼저 도착해 있던 신 이사는 넉살스럽게 말을 건넸다.

내게 감시를 붙여 두었으니, 내가 어딜 다녀오는 길인지 이미 알고 있을 터. 그러면서 모른 척 저렇게 물어보는 것을 보면 역겹기까지 하다.

“한라 그룹 이강철 회장님을 만나 뵙고 오는 길입니다.”

6.25 전쟁 때 사방에 포탄이 날아다니고 있는데도 이강철 회장은 사업의 열정을 불태우며 마침내 대한민국을 개발시킨 전설적인 인물들 중의 하나다.

당연히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이곳에 없을 것이다.

“오호. 우리 이 사장. 이강철 회장이랑 친분이 깊은가 보네.”

“아시다시피 그분이 제게 수백억의 돈을 맡기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종종 찾아뵙고 있었습니다.”

“아. 맞네, 맞어. 나도 이제야 기억이 나네. 그 양반이 그 많은 돈을 이진석이란 이름만 믿고 툭 던져 주지 않았나. 그쪽 손녀딸이랑도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아닙니다. 그저 모두 제 고객들일 뿐입니다.”

이것으로 신 이사의 의심을 조금 풀 수 있었다.

이번 사모 펀드와 이강철 회장의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없으니, 의심은 깊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 사장의 포트폴리오는 잘 봤어. 내일 오후 1시에 주주총회가 있을 텐데, 총회가 열리기 10분 전에 모든 작업을 끝내 놓는다고?”

“예. 조금이라도 더 빨랐다가는 그쪽에서 눈치를 챌 여지가 큽니다.”

“눈치를 챈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최악의 경우를 각오하셔야 합니다.”

“응? 최악의 경우라니?”

“신 부회장, 만만치 않은 사람입니다. 제가 미리 말씀을 드리진 못했지만, 신 부회장 쪽에서 저한테 먼저 컨택이 왔었습니다.”

신 이사는 눈가를 꿈틀거리며 불편한 침음을 흘렸다.

“크흠. 우리 형님이 벌써 우리 이 사장한테 손을 뻗었나?”

“예. 그래서 제 대리인을 보냈죠. 직접 만나는 건 아무래도 부담이 커서요.”

나는 신 이사의 표정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는 내가 이미 신용일과 모종의 만남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내 주변에 사람을 참 많이도 깔아 놓았구나.

현식이한테도 감시를 붙여 내 행동을 살피고 있었다니.

신 이사, 참 지독한 놈이다.

“그래. 우리 형님께서 뭐라 하던가?”

회의실 안이 꽁꽁 얼어붙은 것처럼 찬바람이 불었다.

임원들은 모두 숨을 죽이며 내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저한테 얼마면 넘어올 거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얼마를 주실 거냐고 물어봤습니다.”

신 이사는 재밌다는 듯 내게 되물었다.

“그랬더니?”

“신화 그룹 주요 임원직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연봉은 지금의 3배로 올리고요.”

“그걸 받았나?”

“아니요. 신 이사님께서 제게 더 큰 걸 줄 거라는 걸 믿기 때문에 아직 받지 않았습니다.”

“뭐, 뭐야? 아직? 하하하-!”

신 이사는 박장대소하며 날 손으로 가리켰다.

“저 친구가 저래. 젊어서 그런가 아주 패기가 넘쳐흐르지 않아? 내 젊었을 적 모습을 보는 것 같다니까.”

글쎄. 당신 젊었을 적이 얼마나 망나니 같았는지는 여기 모두가 아주 잘 알고 있다.

“좋아. 우리 이 사장이 형님 쪽으로 푸드덕 날아가기 전에 내가 잡아 놔야겠네. 자네 뭘 원하나?”

나는 일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신화 그룹 부회장직.”

그러자 반응을 보인 건 신 이사가 아니라 다른 임원들이었다.

“이런 미친!”

“저, 저런!”

그들은 오랫동안 신 이사의 곁을 지켜 온 자들이다. 그런데 내가 부회장직을 달라고 요구하니, 임원들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던 자리를 내가 날로 먹겠다고 선포한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

“부회장직이라······.”

“이사님. 저 주제도 모르고 까부는 놈을 언제까지 데리고 계실 겁니까?”

“지금이라도 저런 새끼는 쳐내야 합니다!”

“이런 건방진 새끼.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부회장 직책을 입에 담아!”

임원들의 고성이 이어졌지만, 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신 이사를 쳐다보았다.

그는 아우성을 치고 있는 임원들에게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자네들이 우리 이 사장 대신해서 사모 펀드 지휘해 볼 거야? 어제 보고 들었지? 이 사장이 벌써 사모 펀드 수익률을 22%로 만들어 놨어. 그것도 고작 일주일 만에! 당신들은 이게 가능할 거 같나? 마이너스 22% 안 당하면 다행이지.”

현재 내가 운용하고 있는 사모 펀드의 수익률은 22%.

일주일 만에 내놓은 아주 큰 성과다. 그로 인해 신 이사는 내 실력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드러냈고, 임원들은 날 쫓아내고 싶어도 그럴 만한 건덕지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즉, 지금 이들 중에 나를 대신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항상 말하지? 난 실력주의야. 실력 없는 놈은 내 옆에 얼마나 오래 있었든 간에 신경 쓰지 않고 잘라 버린다는 거지. 그러니까 다들 긴장해. 언제 그 자리 뺏길지 모르니까. 그리고 이진석 사장처럼 실력만 있으면 누구든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거야. 알겠어?”

“······예. 이사님.”

임원들은 모두 숙연해진 채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불만을 깔끔하게 정리한 신 이사는 이제 내게 시선을 옮겼다.

“좋아. 내가 신화 그룹 다 먹을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사람인데, 부회장 자리가 아깝겠어? 우리 이 사장, 베팅 잘한 거야. 내가 신화 그룹 회장이 되면 이 사장은 차기 부회장 떼 놓은 당상이니까.”

신 이사는 흔쾌히 허락을 하며 내게 부회장 자리를 주겠노라 호언장담했다.

이것으로 신 이사의 두 번째 의심이 걷혔다.

나는 신 부회장과 대리인을 통해 만남을 가졌다는 걸 처음부터 공개해 신 이사의 의심을 조금이나마 피했다. 거기다 부회장 자리라는 거래 대상까지 던져 주어 내가 완전히 욕심에 눈이 먼 놈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기까지 했다.

물론, 완전히 의심을 던져 버린 건 아니겠지만 난 결코 이번 프로젝트에서 빼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부회장 자리를 줘?

말은 저렇게 해도 진짜 그 자리를 주려고 하겠는가?

엿이나 먹으라지.

* * *

“다들 이제 인상 좀 풀어. 이 사장 나갔다.”

이진석 사장을 먼저 밖으로 내보낸 신용권 이사.

그의 말에 임원들도 그제야 환하게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어휴. 이사님. 전 진짜로 저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한테 부회장 자리를 주시는 건 아닌가 걱정했지 뭡니까.”

“저도 연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너무 생생하게 연기를 잘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하하.”

임원들의 말에 신용권 이사는 짧게 혀를 찼다.

“쯧쯧. 내가 한 말 사실 진심이었어.”

“예?!”

“이, 이사님!”

임원들이 놀라는 것도 잠시.

신용권 이사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저 새끼 실력이 뛰어난 건 모두가 인정하잖아. 그러니까 저놈이 콧대가 높아져서 건방지게 부회장 자리를 요구하는 거지.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거니까. 솔직히 저놈 부회장으로 세워 놓으면 신화 그룹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거야.”

“이사님!”

“하지만 저 새끼는 이번 프로젝트 끝나면 쳐낸다.”

“예? 방금 전에는 실력이 뛰어나다고······.”

“그래. 뛰어나지. 무서울 정도로. 근데 그게 문제야. 너무 실력이 뛰어나면 부회장 자리에서 과연 만족을 하려 할까? 저놈이 나중에 나까지 잡아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그 말에 임원들은 헛웃음을 지었다.

“서, 설마요.”

“그래 봐야 부회장이란 직책에 불과합니다. 결국 회사는 지배 지분으로 돌아가는 곳 아닙니까.”

“그렇지. 그런데 우리 신화 그룹은 순환 출자로 운영되잖아. 이게 참 간편하면서도 위험하단 말이지. 외부에서 작정하고 공격 들어오면 우린 꼼짝 없이 당할 수도 있어. 지주 회사 구조로 바뀌지 않는 한 말이야. 만약 우리 내부에서, 그것도 이 사장처럼 실력 뛰어난 놈이 배신을 때려 회사를 꿀꺽하려 든다면 어쩔래?”

“······.”

임원들이 아무런 대답이 없자 신용권 이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건 발톱 감춘 호랑이야. 삼국지의 여포 같은 놈이지. 가까이 두고 싶지만, 가까이 두면 내가 위험한 그런 놈. 이런 쪽에서는 내 직감이 틀린 적이 한 번도 없어.”

“저희야 이사님 말에 적극 찬성입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확 쫓아내고 싶습니다.”

신 이사는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저 새끼는 지금쯤 자기가 부회장 될 생각에 들떠 있을걸? 그런데 이걸 어쩌나. 이번 합병 건 전부 끝나면 저 새끼는 바로 쇠고랑이야. 내가 이미 검찰 쪽에다 손을 써 두었지. 그러니까 자네들은 우리 이 사장 잘 대해 줘. 우리 대신해서 징역살이해야 하는 살신성인이니까. 으하하!”

“역시, 우리 이사님. 거기까지 미리 손을 써 두시다니.”

“하하. 저희는 이사님밖에 없습니다.”

신 이사와 임원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 * *

“대충 그럴 거라 예상은 했습니다.”

“예. 신 이사 그놈, 이 사장님을 구렁텅이에 처박아 두려고 함정을 잘 파놓았더군요.”

도청을 우려해 이태호 검사가 따로 마련해 준 핸드폰으로 나는 검찰청 소식을 받을 수 있었다.

신 이사는 처음부터 날 잠깐 쓰다 버리는 장기 말로 여겼다. 그놈은 이번 사모 펀드가 끝나면 날 아예 묻어 버릴 작정으로 금감원과 검찰에 설계까지 해 놓은 놈이다.

그런 놈이 잘도 내게 부회장 자리를 주겠다.

“그래도 이 사장님이 행동만 잘 해 주신다면 문제 될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오늘 엿 먹는 건 제가 아니고 신 이사니까요. 그럼, 나중에 검찰청에서 뵙겠습니다, 검사님.”

“하하. 예. 제가 꼭 영웅 대접 받으실 수 있게 판을 잘 깔아 놓겠습니다.”

어차피 이 일의 끝은 회사가 아니라 검찰청이다.

내가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도 난 결국 내부 고발자.

참고인 조사를 받고 내부 고발자라는 오점을 영원히 짊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이 나라는 내부 고발자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 악의를 호의로 바꿀 수 있는 건 오로지 돈, 또 돈이다.

“사장님. 모두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쯤 긴급 주주총회에 사람들이 바삐 모이고 있을 테고, 앞으로 5분 후에 모든 주식을 매입하여 신 이사를 신화 중공업 대주주로 만들게 된다.

일찍이 작업을 위해 로지텍과 합병에 관련된 주가들을 폭락시키려고 여러 찌라시를 뿌려 둔 상태였다. 이제 잔뜩 매집하여 태풍이 몰아치듯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가면 된다.

그리고 약속의 시간이 되었다.

나는 매집을 위해 대기 중인 직원들을 위해 사내 방송을 돌렸다.

-사모 펀드 프로젝트를 위해 현재 대기 중인 직원 여러분께 알려 드립니다.

직원들은 빠르게 매수와 매도 클릭을 반복하기 위해 긴장하며 대기하는 중이었다. 그들 중에는 내 팀원들도 있지만, 절반 이상이 신 이사 쪽 사람이었다.

여기서 내가 허튼짓을 하면 곧바로 신 이사에게 연락이 가고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매입을 실시하게 뻔했다.

하지만 그들이 오늘 컴퓨터를 쓸 일은 없다.

신 이사보다 내가 먼저 손을 써 놨기 때문이다.

-이 시간부로 검찰에서 압수수색을 진행할 예정이니, 모두 컴퓨터를 종료하시고 사무실 밖으로 나오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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