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20화
띠리링-!
정각 12시가 되면 울리는 고장 난 핸드폰의 벨 소리.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익숙한 문구와 함께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축하드립니다, 이진석 회원님. 이제 회원님의 등급이 중급으로 상승했습니다.]
[모든 튜토리얼을 종료합니다. 다양한 미션이 생겨나며, 의무가 아닌 선택제로 운영되므로 고객님이 원하시는 미션들을 마음껏 수행하실 수 있습니다. 단, 미션의 난이도가 조정됩니다.]
금융사 사장이 되었으니, 나는 자연스레 초급에서 중급으로 승급이 되었다.
또한 포인트도 두둑이 챙길 수 있었는데, 이번에 내가 성공시킨 미션은 총 3가지였다.
[금융사 사장으로 승진하십시오.]
[김미영 여사를 만나 새로운 인연을 소개받으십시오. 그 새로운 인연은 공권력을 이용해 당신을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해외 법인을 세우십시오.]
처음에 이 미션들이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미래 커뮤니티 센터가 미션을 통해 내게 새로운 인연을 연결하여 사모 펀드 건을 해결하고 회사를 무사히 나갈 수 있게 해 주려 한다는 것을.
그래서 신 이사의 제안을 승낙해 금융사 사장이 되었고, 김미영 여사를 만나 공권력과 관련 있는 인연을 만들려 했다. 또한 현식이와 함께 해외 법인 설립도 추진 중이다.
이 모든 건 내가 무사히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 투자자로서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길이 될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중급으로 상승하면서 다음으로 펼쳐지는 미션들이 나를 매우 혼란스럽게 했다.
-담당하는 사모 펀드의 수익률 150% 달성하기 (+500,000포인트)
-신화 로지텍 합병 건 성사시키기 (+1,500,000포인트)
-신화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하기 (+500,000포인트)
“내가 진짜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하길 원하는 건가?”
[각 미션을 클릭해 세부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급으로 승진하면서 세부 사항도 알아낼 수가 있었다.
나는 ‘신화 로지텍 합병’ 건을 클릭해 보았다.
[신화 금융을 소유하고 있는 신용권 이사는 이번 합병 프로젝트가 성사되면 더 많은 지배 지분을 활용하여 신화 그룹의 새로운 회장으로 취임될 것입니다. 그를 도와 합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면 회원님께서는 무한한 신뢰를 받게 되실 겁니다.]
그다음으로는 ‘신화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하기’를 눌러 보았다.
[합병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신용권 이사를 회장으로 옹립하면 그만한 보상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모든 건 회원님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나의 선택이라.
분명 방금 전에 문구가 나오지 않았던가.
딱딱 정해진 미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닌, 내가 미션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 3개 말고도 그 밑으로 더 많은 미션들이 존재했다.
-사모 펀드의 투자를 철저히 실패시켜 절반 이상의 돈이 손실되도록 만드십시오. (+10,000,000포인트)
사모 펀드 투자를 실패시키는 미션도 있었다.
그 미션을 클릭해 보자 이런 세부 사항이 나왔다.
[사모 펀드에 포함되어 있는 돈은 절반 이상이 국민의 것입니다. 만일 이번 펀드에서 큰 손실을 보게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될 겁니다. 당신은 그들이 흘리게 될 피눈물을 외면하시겠습니까? 단, 그 보상은 클 것입니다.]
돈을 버는 건 어려우나, 잃는 건 전혀 어렵지가 않다.
이 악마 같은 미션은 사모 펀드에 있는 돈을 절반 이상 날려 먹는 대신, 더 많은 보상 포인트를 주겠다고 날 꼬드겼다.
“이거 등급 상승이 보통 일이 아니었네.”
미션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닌, 선의 길로 갈 것인지 악의 길로 갈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자유성이 보장되었다. 만일 내가 사모 펀드를 망쳐 놓으면 무려 1,000만 포인트를 단번에 얻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생각을 해 보자.
내가 정말 사모 펀드를 망쳐 놓는다면 어마어마한 공분을 살 게 뻔하고 어떤 결과가 뒤따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저 1,000만 포인트는 그에 대한 위험 수당이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리스크는 크고, 동시에 보상도 크다는 것이다.
“1,000만 포인트라······.”
미래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는 정보 가격이 20~30만에 머물고 있다는 걸 감안한다면 결코 적은 포인트가 아니었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나는 미션창에서 잠시 벗어나 정보를 살 수 있는 화면으로 들어갔다.
중급으로 올라가면서 미션 선택지가 매우 다양해졌으니, 정보 구매창도 다양해졌을 거라 예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보통 10개밖에 없었던 정보 상품들이 상당히 많이 늘어났다.
한국 사이트뿐만이 아니라 해외 사이트의 커뮤니티까지 볼 수가 있었고, 검색창이 생겨 내가 원하는 날짜의 정보를 구매할 수 있게 리뉴얼이 되었다.
“워······. 장난 아닌데.”
이제 진짜로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활용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쭉 내리거나, 옆으로 화면을 옮기다 보면 접근 금지가 되어 있는 곳도 있었다.
[고수 등급 이상부터 열람할 수 있습니다.]
“고수 등급은 어떤 정보를 엑세스할 수 있는 거지?”
궁금한 마음에 가볍게 살펴보았다. 접근 금지가 되어 있다고 해서 쓰여 있는 제목을 보지 못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백악관 미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통화 녹화본 (30,000,000포인트)
-중국 극비 생화학 무기 프로젝트 원본 (100,000,000포인트)
-미국 핵무기 론치 코드 (500,000,000포인트)
-민주당 원내대표 스캔들 증거물 원본 (30,000,000포인트)
“······.”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이건 차원이 다른 정보들이지 않은가.
“내가 핵무기 론치 코드를 알아서 어디다 쓴다고······.”
론치 코드를 안다고 해서 핵무기를 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그 코드를 알아내는 비용이 무려 5억 포인트. 거기다 중국 생화학 무기 프로젝트라니.
알아내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것들이다.
하지만 여기서 알아낸 건 미래 커뮤니티 센터는 단순히 미래의 커뮤니티 글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세상 모든 걸 알고 있는 무시무시한 센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수 등급의 정보창에서 벗어나 여러 커뮤니티 글을 확인하며 정보를 긁어모았다.
어떤 날짜를 픽해야 나한테 이득인지를 고르는 것도 쉽지가 않다.
그동안 내가 회사를 나가지 않고 버틴 건, 미션 때문도 있지만 큰 거 한 방 터트리기 위해 기다렸던 것이 아닌가?
“차근차근 살펴봐야 하나.”
차근차근 살펴보기에는 들어가는 포인트가 너무 많다.
이번 사모 펀드 건만 잘 해결되고 바로 회사를 나가야 하는 건가- 라고 생각할 때쯤.
[고객님을 위한 특별 세일이 진행됩니다!]
갑자기 시끄러운 벨 소리와 함께 광고성 멘트가 짙은 창 하나가 핸드폰 화면을 가득 채웠다.
[300,000포인트에 행운을 걸어 보시겠습니까? 잘 맞으면 대박, 아니면 쪽박. 선택은 오로지 고객님의 몫입니다.]
이건 또 무슨 경우야.
다른 사람이 봤으면 스팸성 광고에 잘못 걸린 줄 알겠다.
잠깐 고민을 했지만, 나는 홀리듯 ‘GO!’라고 쓰여 있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내가 구매하지 않았던 날짜의 커뮤니티 게시글들이 나타났다.
“음?!”
그곳에 가득한 내용들은 차마 눈을 뗄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래. 이거다.
그동안 고대하고 고대하던 큰 거 한 방이 나타났다.
* * *
사장직을 맡은 지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사모 펀드는 3일 전에 개설되어 투자를 시작하였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많은 직원들이 동원되었다.
수많은 직원들이 가져오는 포트폴리오와 분석표를 확인해 투자 방향을 정한다.
방향이 정해지면 전략을 짜서 국내와 해외에 분산하여 투자를 실시한다.
이것이 보통 사모 펀드가 갖는 행보다. 하지만 내가 운용하고 있는 이 사모 펀드는 달랐다.
“보는 눈은 거의 없어. 국민연금이 이번 사모 펀드에 참여한다는 걸 알고 금감원에서도 감시를 느슨하게 하는 모양이야. 거기다 청와대에서도 재가가 떨어진 일이라 문제 될 건 없어. 대신, 손실이 있어서는 안 돼. 무조건 수익률을 내서 합병 때문에 빵꾸 난 돈 채워야 된다. 그게 우리 이 사장이 해야 할 일이야.”
양아치도 이런 양아치 새끼가 없다.
강제 합병을 위해 투입하는 1조 2천억 원을 내가 펀드로 돈을 벌어 메꿔 놓으란다.
“할 수 있지?”
“그럼, 제가 운용할 수 있는 금액은 총 얼마인 겁니까?”
“1조 2천억 빼도 8천억이 남아. 그걸 잘 굴려서 손실을 없던 거로 만드는 거지. 더 많은 수익을 내면 좋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잖아? 우리 이 사장 보너스도 왕창 가져가고.”
사장이 되면서 연봉 20억을 약속받았다.
거기다 보너스는 별도라, 이미 지난 성과급도 10억 원이 넘게 쌓인 상태였다.
내가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가도 로또 1등 당첨금과 합치면 30억은 투자할 수 있다는 뜻이다. 거기다 현식이 돈까지 합치면 50억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서 내가 굴려야 할 돈은 총 8천억 원.
나머지 1조 2천억 원은 신화 중공업과 로지텍 쪽 지분을 매입하는 데에 사용해야 한다.
최대한 외부의 눈에 들키지 않게 은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건데, 보통 이럴 땐 어느 정도 텀을 두어 매수를 해야 가격이 폭등하는 일을 사전에 방지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건 일사천리로 몰아쳐야 하는 작전이기 때문에 뭉그적거리며 매수 타이밍을 노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 사랑스러운 형님이 5일 뒤에 외국으로 가거든. 그때 움직이는 거야. 이 사장, 잘할 수 있겠지? 이거 타이밍 싸움이다. 조금이라도 때 놓치면 이도 저도 안 돼. 형님이 방비할 시간을 절대 주면 안 된다는 거, 명심해.”
“누가 더 빠르게 움직이느냐의 싸움이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8천억 원도 잘 굴려서 최대한 수익률을 만들어 놓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시원시원하고 아주 좋아. 내가 이래서 우리 이진석 사장을 좋아한다니까?”
계획의 윤곽이 정해졌다.
이번 작전의 이름은 빈집털이.
신용일이 잠깐 해외 출장을 나가 있는 사이를 노려 지분을 매입하고 주주총회를 열어 합병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것이다.
“손발을 최대한 잘 맞춰야 하니, 제가 팀을 꾸렸으면 합니다.”
“아. 물론이지. 대신, 내가 추천하는 사람들도 팀에 넣어 줘. 내가 그 사람들 설득해서 데려오는 것도 쉽지 않았어. 사모 펀드 끝날 때까지 임시로 팀 만들어서 운영하자고.”
추천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날 감시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신 이사의 수작이 뻔히 보여도 나는 태연하게 받아쳤다.
“좋습니다. 실력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환영이죠.”
“내가 곧 명단 넘겨줄게. 이 사장이 추천하는 사람들이랑 잘 합을 맞춰 봐.”
회사 내에서도, 그리고 회사 밖에서도 치열한 신경전을 벌여야 한다.
신용권, 이 사람 의심이 많다.
날 사장으로 올려놓긴 했지만, 나에 대한 감시를 절대 느슨하게 하지 않는다.
내 개인 비서도 매수를 해 놓은 것을 보면 아주 철저히 감시를 하겠다는 건데, 삐긋 줄타기를 잘못하면 내가 된통 뒤집어쓸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는 신 이사가 모르는 무기가 있지 않던가.
결국 승자는 내가 될 것이고, 신 이사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 채 모든 걸 빼앗길 것이다.
국민의 돈으로 장난을 치려 했으면 그 정도는 각오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