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9화 (19/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9화

[이진석 사장님의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어마어마한 파격적인 인사가 단행되었다.

입사한 지 이제 1년 반밖에 되지 않은 내가 무려 신화 금융사의 사장으로 임명받은 것이다. 차기 사장 자리를 노리고 있던 금융사 임원들은 모두 똥을 씹은 표정이었지만, 그들 중 몇몇은 앞으로 진행될 사모 펀드의 규모가 얼마인지 알고 있기에 그것을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다.

“이렇게 오늘 새로운 태양이 이곳 신화 금융에 떴습니다. 앞으로 모든 직원들은 새로 항해사를 맡게 된 우리 이진석 사장님을 열심히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금융사 사장 취임식은 장이 오픈하기 전인 이른 아침에 진행을 한다.

일분일초가 아쉬운 주식 시장이기에, 취임식은 결코 길게 하지 않았다.

얼른 빨리 사무실로 들어가서 장이 오픈하기에 맞춰 열심히 최전방에서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

“자. 이진석 사장님? 이리로 와서 한 말씀 해 주시죠.”

신 이사는 내가 무슨 일을 꾸미는지도 모른 채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게 자리를 당상을 건네주었다.

“신화 금융 사장으로 새로 취임하게 된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 절 잘 아시는 분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신화 금융은 오직 실력으로 자리를 결정한다는 것이 오늘 증명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모두 열심히 성과를 올려 더 높은 자리를 향해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임원도 거치지 않고 바로 사장실로 스트레이트 직행을 했기 때문에 언론에서도 대단히 큰 이슈가 되고 있었다. 당연히 언론사 기자들이 취임식을 진행하고 있는 강당에 잔뜩 모여 있는 건 덤이다.

간단한 취임식 연설이 끝나고 다시 마이크를 잡은 건 신 이사였다.

“자. 이제 취임식도 끝이 났습니다. 곧 장 오픈 시간이니, 모두 얼른 돌아가서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론 기자들 앞이라 그런지, 아주 친절한 재벌집 후계자 나셨다.

취임식이 끝나고 나서 기자들이 내게 몰려들었다.

“대형 금융업계 최연소 사장님이 되셨는데, 지금 기분이 어떠십니까?”

“최초로 20대 신화 금융 사장님이 되셨습니다. 소감 한마디 해 주세요!”

일단 기자들의 물음에 대충 답을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책임감이 더욱 늘어난 것 같아 양어깨가 많이 무겁습니다.”

“지금까지 보여 준 수익률이 대단하십니다. 따로 노하우가 있으십니까?”

“정말 노하우가 있다면 그걸 발설하지 않는 게 맞겠죠?”

그러다 기자 하나가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금감원과 검찰 쪽에서 이진석 사장님을 별도로 조사 중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혹시 주가 조작에 참여하거나, 작전주에 참여하여 이득을 보신 것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검찰 쪽에서 한 번 연락이 온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아무런 혐의도 없다는 것이 밝혀졌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전 절대 부정적인 짓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만약 하나라도 제 잘못이 밝혀진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엄격히 치를 겁니다.”

기자들이 좀처럼 놔 주질 않자 신 이사가 앞으로 나섰다.

“자자. 기자님들. 곧 있으면 시장 오픈입니다. 우리 이 사장님이 곧 얼마나 바빠질지 다들 아시죠?”

“이사님. 이번에 권오준 사장을 내쫓고 이진석 사장을 새로 취임시킨 이유가 있을까요?”

“허어-. 거참, 그만하라니까. 뭐, 그거에 대해서는 딱 말씀드릴 수 있어요. 권오준 사장은 이진석 사장의 능력을 알아보고 차기 사장 자리를 미리 점 찍어 두었습니다. 우리 회사의 미래를 위해 직접 사표까지 쓰고 나간 권오준 사장의 희생 정신에 감복할 따름입니다.”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여기 있는 누구도 신 이사의 말을 믿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신화 그룹에서 나눠 주는 광고를 먹고 사는 언론인들이다. 그렇기에 신화 그룹 후계자 후보들 중 하나인 신 이사의 신경을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

신 이사도 그걸 잘 알기에 기자들을 달랬다.

“자. 이쯤에서 합시다. 우리 기자님들 펜대 꺾이지 않게 내가 이미 다 조치도 해 놨어요.”

“하하. 감사합니다, 신 이사님.”

“저희는 잘 포장해서 기사 올리겠습니다.”

“그래 주면 나야 고맙고. 우리 잘생긴 이진석 사장 얼굴 잘 나가게만 해 주세요.”

이런 일에는 이미 도가 튼 신 이사였기에 그는 기자들을 잘 조련한 다음, 내 어깨에 팔을 걸쳤다.

“자. 우리 이 사장은 나랑 얘기 좀 하러 갈까? 사장실 구경도 해야지?”

“아, 예.”

나는 신 이사와 함께 사장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미 여러 임원들이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들은 신 이사에게 먼저 인사를 올린 뒤, 내게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만 숙였다.

다들 나이 40~50은 넘으신 분들인데, 한참 어린놈한테 고개 숙이는 것도 못 할 짓일 거다. 그것도 2년도 안 된 신입한테 말이다.

“오늘 다들 모인 이유는 잘 알고 있겠지? 우리 이진석 사장이 우리가 계획 중인 사모 펀드를 진두지휘하기로 했어. 그러니까 다들 이 사장의 말이 곧 내 명령이라고 생각하고 따르도록 해. 이번 사모 펀드 건 엎어지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모가지 날아가는 거야.”

신 이사는 이번 펀드에 사활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권오준 사장을 밀어 버리고 나를 이 자리에 앉힌 게 아니겠는가?

다른 이들이 보면 미친 짓이나 다름없는 거지만, 신 이사는 그만큼 절박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간당간당하는 신 회장이 죽게 되면 첫째 아들 신용일이 회사를 장악해 나갈 게 뻔했다.

현재 갖고 있는 지분도 신용일보다 낮은 터라, 이 프로젝트를 무조건 성사시켜야만 신화 그룹을 점령할 수 있었다.

그래. 거기까진 다 좋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합병을 진행해 모든 주식을 휴지 쪼가리로 만들어 버리면 그 종목을 들고 있던 개미들은 떼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뿐인가?

국민연금도 상당한 손해를 보게 되어 애꿎은 세금이 생으로 날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프로젝트는 성공하면 안 된다.

“이 사장도 부담 갖지 말고 여기 있는 임원들한테 시킬 거 있으면 다 시켜.”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오전까지 필요한 서류들 전부 가져와 주세요. 대충 사모 펀드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그림을 봐야겠습니다.”

“다들 들었지? 이 사장 말대로 해.”

신 이사가 눈짓을 보내자 임원들은 다시 인사를 올리고 전부 밖으로 나갔다.

아마 저들을 여기에 다 모은 건 내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함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사장.”

“예, 이사님.”

“내가 좀 이상한 얘기 하나를 들었는데. 혹시 검찰 쪽 사람이랑 만난 적 있나?”

역시, 신 이사.

내 뒤에 꼬리를 붙여 놓았구나.

하긴. 제 인생이 걸린 일인데, 뭐든 철저히 하고 싶겠지.

“예. 아까 기자들한테도 말했듯이, 검찰 쪽에서 절 만나기 위해 왔었습니다.”

“음. 무슨 이유로?”

“작전주에 관한 내용인데,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제가 서류를 따로 확인을 해 둔 상태입니다.”

“그 서류, 한 번 볼 수 있나?”

나는 가방에 넣어 두었던 서류를 꺼내 신 이사에게 건네주었다.

“음-. 나도 이거 얘기는 들었어. 이 새끼들 좀 많이 해 먹었더라고. 혹시, 문제 있는 건 아니지?”

“아, 예. 저도 너무 대놓고 작전을 하고 있기에 미리 치고 빠진 종목입니다. 그런데 검찰 쪽에서는 어떻게든 트집을 잡고 싶은 건지, 참고인 조사라는 명목으로 이것저것 캐묻더군요.”

“흐흐. 요즘 이 사장 인기가 하늘을 찌르잖아. 언론에서도 말이 많으니까, 당연히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지. 그런데 다음부터 이런 일 있으면 나한테 즉각 보고해. 괜한 의심 사는 건 좋지 않으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아차. 내가 바쁜 사람 오래 붙잡았네. 얼른 일 봐.”

오늘은 이렇게 넘기긴 했지만, 신 이사는 의심의 눈초리를 절대 거두지 않을 것이다.

이거, 좀 쫄리는데.

여기서 까닥 잘못하면 내가 전부 뒤집어쓸지도 모르겠다.

“괜히 한다고 했나.”

그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어이. 이 사장!”

현식이가 사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비서는 뭐 해. 저 미친놈 들어오는 거 막지 않고.

“아. 네 비서? 신 이사가 잠깐 데려간 거 같던데?”

그래. 비서도 신 이사와 당연히 한통속이겠지.

중요한 서류 같은 건 절대 사장실에 두면 안 되겠다. 그리고 여긴 도청이 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기에 나는 현식이를 건물 옥상으로 데려갔다.

“어후, 뭐야. 사람 무섭게. 학창 시절에 옥상 따라가면 꼭 누구 한 명은 쥐어 터지던데.”

“됐고. 무슨 일이야?”

“야. 그렇게 말하니까 섭하다? 당연히 우리 친구 출세한 거 축하해 주려고 왔지.”

나는 진지하게 현식이에게 말했다.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절대 사장실로 찾아오지 마. 문자로 보내. 나 핸드폰 새로 개통 하나 더 할 거니까, 그쪽에다 보내라.”

내 말에 현식이도 뭔가 수상하다는 걸 느낀 모양이다.

“뭐야. 무슨 일 있어?”

“내가 갑자기 사장 된 게 넌 이상하지 않냐?”

“그거야 네가 실력 있으니까······.”

“뭐, 실력 때문이긴 하지. 그런데 모종의 거래가 있지 않은 이상, 건재하던 권오준 사장이 저렇게 옷을 벗는 게 말이 되냐고.”

“오. 뭔가 냄새가 나는데. 나 이런 거 본 거 같아. 수목 드라마에서. 그 제목이······.”

“아무튼, 내가 지금 줄타기하는 중이거든. 사방에서 날 감시하고 있는 터라 회사에서는 이렇게 편하게도 얘기 못 해.”

현식이도 재벌집 아들이다.

당연히 신화 그룹만큼은 아니어도 이쪽 세계가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지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내 말을 금방 알아들었다.

“후계자 싸움이 아주 팽팽하던데, 너 그쪽에 발 담갔구나? 신 이사 그 새끼가 가만 안 있을 줄 알았지.”

“어. 그래서 해외 법인 쪽 알아봐 달라고 한 거야.”

“그거 안 그래도 준비는 다 해 놨어. 돈만 넣으면 돼.”

“벌써?”

“그래, 인마. 내가 사실 몇 주 전부터 해 놨던 거야. 언제든지 네가 회사 나가면 같이 따라 나가려고.”

항상 장난기 가득한 녀석이지만, 눈치도 빠르고 머리도 좋다.

그래. 돈만 넣으면 된다 이거지?

“해외 어디 쪽인데?”

“세상 제일 안전하다는 스위스. 알지?”

“거길 모르는 놈이 어딨어?”

돈 숨길 곳이 필요하면 스위스 계좌를 이용하라.

이건 예전부터 재벌들 사이에 떠돌던 말이다.

일단 전쟁 불가 지역이기도 하고, 외부에서 조사가 들어와도 스위스 쪽에서 거의 공개를 하지 않아 돈의 출처를 숨길 수도 있다. 물론, 미국이 깽판을 한번 크게 쳐 놔서 북한 스위스 계좌가 전부 압수당하는 일이 발생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 때문에 최근에는 스위스 말고 다른 루트를 이용한다고 하던데, 우리의 현재 최선은 스위스였다.

그곳에 법인을 세운다면 확실히 한국 쪽 공권력의 힘이 닿지 않는다.

“아참. 그리고 당분간 과장 자리 좀 맡아 줘라.”

“어휴. 마침내 회사 승진을 하는데, 조만간 떠나게 생겼네?”

“그래도 팀이 돌아가긴 해야 하니까. 거기 잘 맡아 봐.”

“알겠습니다, 사장님. 분부하신 대로 해야죠.”

해외 법인도 돈만 넣으면 바로 세워진다.

이제 남은 건 사표 던지고 회사를 나가는 건데, 맘 같아서는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미래 커뮤니티 센터의 다음 등급으로 승급하는 문제도 있고, 이번 사모 펀드 건을 어떻게든 잘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권 사장이 말했던 대로 이것도 하나의 큰 경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오면서 나도 나의 본성을 느끼게 됐다.

보통 이런 복잡한 싸움에 얽혀 버리면 공포를 느끼고 달아나기 마련인데, 나는 왠지 스멀스멀 올라오는 스릴을 즐기고 있었다.

나 원래 상대방의 뒤통수를 치는 걸 좋아하는 놈이었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