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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8화 (18/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8화

“장 오픈하는 시간인데, 이렇게 나 만나러 와도 되는 거야?”

“괜찮습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미리 지시를 내리고 왔거든요.”

“진석 씨는 단타 매매를 좋아하잖아.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다니. 의외네? 그래. 무슨 일로 이 아침부터 다 늙은 여자를 만나러 오셨을까?”

“그런 섭한 말씀을 하시다니요. 여사님 아직 젊어 보이십니다.”

“호호. 됐어, 이 사람아. 나도 내 주제는 알아.”

프로필상으로는 나이가 50인데, 언뜻 보면 서른 후반에서 마흔 초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많은 돈을 쏟아부어 자기 관리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저 피부가 어딜 봐서 오십 먹은 아줌마의 것이라고 생각하겠는가.

“혹시, 금감원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으신가요?”

“금감원?”

“예. 혹시 없으신가요?”

“금융업 쪽에서 일하는 사람이 금감원 쪽 사람을 찾는다라······. 보통 일이 아닌가 보네. 뭐, 라인이라도 하나 만들어 두려는 거야? 그게 아니면 뭔가를 신고해야 해서 나한테 묻는 거야?”

“후자입니다.”

“음. 그럼, 금감원 쪽 사람 말고 내가 검찰청 쪽에 아는 사람이 하나 있어. 그 사람 소개해 줄게.”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정말 시원시원한 여자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안 물어보시나요?”

“안 물어봐. 각자 사정이 있는 거지. 그리고 그런 쪽 일은 되도록 모르는 척하는 게 신상에도 좋긴 하고.”

“현명하시네요.”

“이것만 말해 줘. 혹시 회사를 나갈 정도인가?”

나는 잠깐 고민하다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아쉽네. 그래도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 같긴 했어. 진석 씨처럼 실력 있는 사람이 회사에 붙어 있을 리 없지. 스스로의 능력으로 영역을 늘리고 싶어 하는 게 모든 인간들의 본성이거든. 그래서 언젠가는 진석 씨가 떠날 거라고 생각했어.”

“죄송합니다.”

“아니야. 내 돈을 몇 배로 불려 준 사람한테 고맙다고 절을 하기는 모자랄망정, 욕을 할 순 없지. 그동안 고마웠어. 나 내일부터 돈 뺀다?”

“펀드는 제가 알아서 해지를 할 테니, 그때까지 놔두세요. 최대한 벌 수 있는 만큼 버시다가 빼는 게 좋잖아요?”

“그래. 좋아. 그리고 이 명함 받아. 내가 그쪽에다 미리 말을 해 놓을게. 시간 잡아서 만나.”

나는 김미영 여사가 건네는 명함을 받았다.

“이태호 검사입니까?”

“그 친구, 검찰 쪽에서는 사이코라는 소리 듣나 봐.”

“사, 사이코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불의를 보면 못 참아서 아예 들이받아 버린다고 해야 하나? 보통 그런 쪽 애들은 얼마 못 가 지방으로 발령 나거나 옷 벗거든. 그런데 그 친구는 아직도 멀쩡해.”

검찰도 암묵적인 룰이라는 것이 있다.

워낙 재벌 쪽에서 돈을 뿌리기도 하고 장학생으로 키워 검찰에 투입하다 보니, 재벌들은 거의 건드리지를 못한다. 설사, 건드렸다고 해도 얼마 못 가 흐지부지되며 그 칼을 뽑은 검사는 책임지고 옷을 벗어야 한다.

그리고 라인을 잘못 타면 승진도 할 수가 없어 탈락한 검사들은 변호사 사무실 하나 차려 노년을 보내는 게 전부다. 운이 좋으면 로펌 같은 곳에 들어가 그나마 편한 생활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벌들에게 찍히는 순간, 변호사 사무실을 차렸다고 한들 그곳에다 의뢰를 넣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미친놈처럼 날뛰고도 여전히 검찰청에 잘만 붙어 있는 사람이 있다라······.

어떻게?

“이태호, 그 친구 배경이 무시무시하거든. 그쪽 사람들이 전부 법조인들이야. 이태호 할아버지가 검찰총장이었으니, 말 다 했지. 거기다 이태호 아버지도 부장 판사고. 외가 쪽도 다 알아주는 법조인들에 외국에서 로펌까지 운영 중이라 재벌들도 거긴 안 건드리나 봐.”

오. 재벌들까지 벌벌 떠는 집안이라.

아무리 돈으로 찍어 눌러도 법조인들이 한곳에 뭉쳐 버리면 재벌들도 답이 없긴 할 것이다. 그런 집안에서 이런 정의로운 검사가 배출되다니.

항상 그런 쪽 사람들을 안 좋게 본 내 편견을 속으로 꾸짖었다.

“좋은 인연이 될 것 같네요.”

“그 친구도 아마 진석 씨 많이 좋아할 거야. 물어다 주는 게 보통 일이 아닐 테니까.”

“감사합니다, 여사님.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잊어도 돼. 내 돈 불려 준 걸 갚은 것뿐이야.”

김미영 여사의 호쾌한 도움 덕분에 나는 어렵지 않게 이태호 검사의 전화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인지는 몰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태호 검사에게서 먼저 전화가 왔다.

“신화 금융 이진석 과장님 되십니까?”

젊은 남자의 목소리에 매우 힘이 넘쳐흘렀다.

“아, 예. 제가 이진석입니다.”

“지금 여의도이시죠? 제가 20분 후면 도착합니다. 신화 금융 건물 앞에 있는 큰 카페 하나 있지 않습니까? 제가 그쪽으로 가죠.”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금융사와 가까운 건물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검찰청 쪽 사람을 만나면 누군가가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하고.

이윽고 훤칠하게 생긴 남성이 내가 미리 잡아 놓은 자리에 와서 앉았다.

“이태호 검사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저라는 걸 단번에 아셨나 보네요?”

“하하. 이 과장님은 모르시겠지만, 금감원도 그렇고 저희 검찰에서도 이진석 과장님 신상을 전부 다 꿰놓고 있습니다. 워낙 유명해서 말이죠.”

“제가요?”

“예. 모른 척하시는 건 아니겠죠? 금융계의 천재, 금융계의 미다스 등등으로 불리시는 분이잖아요. 김 여사님 전화 받고 제가 깜짝 놀라 이렇게 할 일 내버려 두고 달려온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러다 제가 갑자기 체포되진 않겠죠?”

“물론이죠. 제가 혹시 뭔가 있을까 하고 파 봤는데, 정말 먼지 한 점 없으시더군요. 그런데도 그런 수익률이 가능하다니. 금감원도 그렇고 저희 검찰 쪽에서도 그저 감탄만 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상이 이리저리 털리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도 건덕지 잡을 만한 구석이 없다고 말해 주는 것을 보면 다행이다.

“그런데 저희 이런 곳에서 만나도 되나요? 혹시라도 우리 둘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보기라도 하면······.”

“혹시라도 문제가 될 것 같으면 그땐 이걸로 변명을 하세요.”

이태호 검사는 서류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게 뭐죠?”

“최근에 있었던 주가 조작 사건을 조사하던 중이었습니다. 뭐, 흔히 있는 작전주죠. 근데 이놈들 규모가 커요. 정도껏 했어야 하는데, 선을 넘어 버렸지 뭡니까. 그런데 몇 주 전에 이진석 과장님도 이걸 샀다가 팔았던 적이 있더라고요.”

그 말에 나는 얼른 서류를 확인해 보았다.

“황성 테크면······.”

“뭔지 아시죠?”

“예. 대충은요.”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통해 봤던 종목이다.

잠깐 치고 빠진 종목인데, 그 이유는 이 종목이 너무 티 나게 작전을 하고 있기에 괜히 불똥이 튈까 봐 빠르게 손절을 해 버렸다.

“이진석 과장님도 눈치를 미리 채셨는지 손절을 바로 하셨더라고요. 그래서 혐의는 없지만, 대충 참고인 조사라는 변명을 하시면 될 것 같네요.”

괜한 오해를 사는 걸 방지하기 위해 이런 것도 준비해 오다니.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미영 여사님께 듣기로 제게 부탁이 있으시다고······.”

“예. 한 가지 조사를 해 주셨으면 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잠시만요. 이거 하나만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제가 지금 다른 사건을 맡을 짬이 나지 않아요. 방금 보여 드린 황성 테크 작전 건 있죠? 규모가 700억이 넘습니다. 이 정도 금액이면 어지간한 미친놈들이죠. 분명 정권에도 관련이 있을 거고요. 전 이 사건 놓치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래서 거절하려고 이 자리에 나온 겁니다.”

그렇군.

하지만 내가 부르는 금액을 들으면 눈이 번쩍 뜨일 거다.

나는 태연한 척하며 받아들였다.

“아쉽네요. 그럼, 저도 다른 분을 알아봐야겠습니다.”

“하하. 저도 정말 아쉽습니다. 이진석 과장님과 함께 손발 맞출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그런데 어느 정도 규모의 사건입니까?”

“음. 별로 안 됩니다. 한 2조 원?”

“······예? 어, 얼마요?”

“최소 2조 원이 투입되는 사모 펀드입니다.”

200억도, 2,000억도 아닌 무려 2조 원이다.

사건을 좋아하고, 상대가 누구든 물어뜯는 걸 좋아하는 이런 사냥개 스타일의 검사라면 이 정도 규모의 사건을 그냥 흘려보낼 리 없다.

아니. 이태호 검사는 분명 이 사건을 잡게 될 것이다.

“2조 원이라니······. 대체 어떤 겁니까?”

“제가 곧 운용하게 될 사모 펀드의 규모가 최소 2조 원. 국민연금을 포함해 여러 기관들이 섞여 들어가 있는 어마어마한 돈놀이입니다. 물론, 저 윗대가리들이 원하는 대로 이번 사모 펀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신화 그룹의 차기 회장이 결정되고 죄 없는 국민들은 생돈을 날려 먹어야겠죠.”

“시, 신화 그룹에 국민연금까지 포함되어 있단 겁니까?”

나는 짐짓 실수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 이런. 제가 바쁘신 분을 두고 쓸데없는 말을 했네요. 관심 없다고 하셨으니,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이 사건에 흥미를 가질 만한 분이 또 있겠죠.”

난 천천히 일어나 서류를 들고 카페를 나가려 했다. 그러자 이태호 검사가 벌떡 일어나서 내 팔을 붙잡았다.

“이 세상 어떤 검사도 그 사건을 맡으려 하지 않을 겁니다. 국가 기관까지 연관이 되어 있다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다 알고 있을 테니까요. 최악의 경우, 정권 깊숙한 곳까지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어요. 어쩌면 청와대까지.”

“저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김미영 여사님께 부탁을 드린 겁니다. 이번 사건을 맡아 주실 만한 분이 없나 하고.”

“제대로 찾아오신 것 같군요.”

“아까는 황성 테크 때문에 바쁘시다고······.”

“하하. 이거 참······.”

나는 은근슬쩍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이태호 검사가 다음 말을 하길 기다렸다.

“사실은 이진석 과장님이 금융계에서 너무 잘나가고 계신 분이라 저한테 의도적으로 접근해 무슨 이득을 보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절 이용해 회사를 위한 작전을 벌이려는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네요. 2조 원이란 금액도 함정이란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함정이라고 하기에는 금액이 너무 크네요. 거기다 김미영 여사님이 이진석 과장님은 믿을 만 하다는 말씀을 하신 것도 있고.”

내가 보기엔 다른 건 그냥 다 MSG고, 2조 원이란 금액에 확 끌리는 것처럼 보였다.

“당분간 제가 야근하면서 살아 보죠, 뭐. 제가 맡고 있는 700억 황성 테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인 것 같은데.”

“예. 이거 성공하면 배부른 놈만 더 배불러지게 됩니다.”

“국민들은 피눈물 흘리고?”

“그럴 가능성이 높죠. 국민의 세금이 애먼 곳에 굴러 들어가는 거니까요. 아마 물어뜯을 곳이 엄청 많을 겁니다.”

이태호 검사의 얼굴에 점점 미소가 번져 나갔다.

지금만큼은 사냥개 이태호가 내 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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