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6화
“과장님. 오늘 얼굴이 더 잘생겨 보이십니다?”
현식이가 장난스레 내 팔을 툭 치며 말을 건넸다.
“말도 마라. 되지도 않는 메이크업까지 받았다.”
“흐흐. 인터뷰잖아. 인터뷰. 언제 이런 걸 해 보겠어. 요즘 네가 좀 잘나가냐?”
과장으로 승진한 지 이제 한 달째.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박 과장이 남겨 두고 간 펀드까지 모두 도맡느라 총 7개의 펀드를 운용 중에 있다. 보통 펀드 매니저가 펀드를 최소 3개에서 많으면 5개까지 운용을 하는 걸 감안했을 때, 7개는 너무 많았다. 거기다가 이제는 인터뷰까지 해야 했다.
“안녕하세요, 이 과장님. 넷컴뷰의 최하영 기자입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인터뷰라.
처음에 인터뷰 제안이 들어왔을 땐 그냥 싫다고 넘겨 버렸다. 그런데 미래 커뮤니티 센터 어플이 인터뷰를 하라는 미션을 올리는 바람에 이번 인터뷰 건은 거절하지 않고 받게 되었다.
“총 7개의 펀드를 운용하시고 있는데, 그럼 운용 중인 자산이 얼마 정도 되는 건가요?”
“도합 650억 정도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수익을 좀 많이 내서 현재 1,300억까지 불어났습니다.”
“듣기로 현재 이진석 과장님이 운용 중인 펀드들은 전부 상승세를 탔다고 들었어요. 특히 어떤 펀드는 수익률이 한 달도 채 안 돼서 2배가 넘었다고 하죠?”
650억의 펀드.
박 과장이 버리고 간 펀드까지 합하여 650억의 규모였지만, 지금은 딱 2배인 1,300억이 되었다.
무려 한 달도 안 되어 이루어 낸 성과인데, 이로 인해 전 금융계에 소문이 나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래 커뮤니티 센터는 내게 이런 미션을 남겼었다.
-넷컴뷰 기자, 최하영에게 인터뷰 받기 (+300,000포인트)
이 여자는 다른 기자들과 뭐 다른 게 있나?
왜 하필 이 여자한테 인터뷰를 받으라고 한 걸까.
넷컴뷰라고 하면 2년 전에 생긴 신생 인터넷 신문 사이트로, 여론 조작에 휘둘리지 않고 최대한 중립적으로 기사를 내는 곳이다. 그래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어떤 소식이 뜨면 넷컴뷰를 통해 확인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는 말까지 떠돌았다.
“요새 금융계에서 이 과장님의 이름이 정말 많이 들리고 있어요. 고객들도 이 소식을 듣고 신화 금융에 엄청나게 많이 몰리고 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리고요.”
저 말은 사실이다.
펀드는 보통 30%만 넘겨도 괜찮다는 소리를 듣는데, 그 많은 금액으로 한 달도 안 돼서 2배를 만들어 놓았으니, 충분히 화제가 될 만했다.
“그건 맞습니다. 작년보다 고객 수가 2배 늘었다고 하더군요.”
“그게 모두 이 과장님 덕분이겠죠?”
“그럴 리가요. 저보다는 저희 회사 직원들 덕분이죠. 직원들이 주식의 가치를 평가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들면 제가 최종 검토를 통해 같이 만들어 나가는 겁니다. 절대 저 혼자만의 업적이 아닙니다.”
“그렇군요. 신화 금융에 인재가 그만큼 많다는 뜻으로 알아듣겠습니다.”
약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는 마무리가 되었다.
“과장님. 혹시라도 저한테 제보할 게 있으시면 언제든 이쪽으로 연락 주세요.”
최하영 기자는 떠나기 전 내게 명함 하나를 건네주었다.
“금융계 쪽에서 일하는 사람이 기자한테 연락을 한다는 건 별로 좋지 않은 일이라는 뜻일 텐데요?”
“그러니까요. 은근 기대하고 있어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최하영 기자는 밝게 웃으며 사무실을 나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권오준 사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눈도 맑고 얼굴도 예쁜 여자랑 같이 인터뷰하느라 그렇지 않아도 기가 빨린 것 같은데, 권오준 사장이 또 날 못 괴롭혀서 안달이 난 것처럼 보였다.
“뭐야? 번호 주고 갔어?”
“예. 특종감 있으면 연락 달랍니다.”
“흐흐. 그냥 말 돌려서 번호 준 건 아니고?”
“아니에요, 그런 거.”
얼굴을 보니,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신데요?”
“으음. 오늘 이 과장이 만나 뵐 분이 있어.”
분?
말을 높인다는 건 권오준 사장보다 위에 있다는 뜻이다.
“그게 누구신데요?”
“우리 신화 금융을 소유하고 계신 분이지.”
그 말에 나는 짧게 탄성을 내질렀다.
신화 금융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
그게 누구겠는가?
바로 신화 그룹 회장, 신태황의 둘째 아들 신용권이다.
현재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신태황은 3명의 아들이 있는데, 그냥 한 사람한테 몰아 주면 될 것을 세 사람 모두에게 회사를 찢어 나눠 주었다.
“현재 신화 그룹의 이사직을 맡고 계신 분이지. 이 과장도 알지? 우리 회장님 돌아가시면 왕자의 난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거.”
지겹게도 들어온 얘기다.
회장이 후계자를 제대로 정하지 않으면 매번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그룹이 벌써 지분 이동을 시작해 세 사람에게 다 찢어졌다는 것도요.”
“맞아. 우리 신화 금융은 신용권 이사님한테 넘어갔지. 근데 이거 말고는 받은 게 없어. 워낙 금융이 알짜배기라서 그런지, 회장님이 이것만 주고 다른 곳은 일절 넘겨주지 않았나 봐. 그리고 내가 여기 묶여 있는 이상, 나는 신 이사님 라인이야.”
권오준 사장도 마음을 정한 듯 보였다.
하긴. 다른 라인에 붙어먹는다고 해도 신용권 이사가 금융사를 꽉 잡고 있는 이상, 자리보전하기는 힘들다. 설사, 다른 왕자가 금융사를 빼앗는다고 해도 권오준 사장을 그 자리에 계속 놔두려 하겠는가?
“한 달 전쯤에 말한 사모 펀드 있잖아. 그 이야기 때문에 오실 거야. 그러니까 웬만하면 잘 맞춰 드리자고. 나나, 이 과장이나 회사 붙어 있으려면 라인 꽉 잡아야 돼. 그래야 이 과장도 나중에 내 후임으로 이 자리 앉지 않겠어?”
그 말에 미션 하나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신화 금융 사장으로 승진하기 (+1,000,000포인트)
권오준 사장의 후임이라.
아직 권오준 사장이 은퇴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때까지 꼼짝없이 여기 회사에 박혀 있어야 한다고?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난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회사를 박차고 나가 투자 활동을 시작하고 싶다만, 그렇게 하려면 포인트가 무조건적으로 필요하다.
포인트 없이는 그 어떤 미래 정보도 살 수가 없다. 그리고 포인트를 쓰면 쓸수록 점점 정보의 가격이 올라간다.
즉, 미션을 클리어해 포인트를 수급하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미래 커뮤니티 센터는 내 수호천사이면서 동시에 족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단기간 안에 사장 자리를 꿰차고 앉아 회사를 나갈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는 건데······.
‘대체 이놈의 커뮤니티는 내게 뭘 원하는 거지?’
굳이 날 왜 사장 자리에 앉히려는 것일까?
미래 커뮤니티 센터가 날 이끄는 곳의 끝은 과연 어딜까?
“곧 오실 거니까, 잘 만나 뵙고 오자고.”
“아, 예.”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내 능력을 인정해 주니까 차기 회장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 날 찾아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과연 무슨 내용의 이야기가 오고 가냐는 것이다.
보통 이런 왕자들의 싸움에는 죄 없이 피 보는 사람이 많다.
신 회장 그 양반, 이왕 죽을 거 깔끔하게 한 명한테 몰아주면 될 것을.
자기 마음 편하자고 이런 난장판을 만들어 놓다니.
나는 잠깐 사무실에 대기하고 있다가 권오준 사장의 연락을 받고 고급 한식집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사진으로만 봤던 인물이 앉아 권오준 사장 앞에 앉아 있었다.
“오. 그래. 그쪽이 우리 신화 금융의 보물이라고 불리는 이진석 과장인가?”
“아, 예. 이사님. 처음 뵙겠습니다.”
“하하. 그래. 반가워. 요즘 경제 신문 보면 이진석 과장 얘기밖에 없는 거 같아. 별명이 미다스의 손이라며? 만지는 종목마다 다 금덩이 된다고 해서.”
“과찬이십니다.”
이제 곧 오십 줄에 접어 든다는 신 이사는 덩치가 크고 꽤나 호쾌한 척을 했다.
재벌집 핏줄들이 거의 그렇다.
능력은 남들에 비해 훨씬 떨어지지만, 그 배경이 주는 자신감이 상대를 압도한다.
“자자. 일단 일 얘기하기 전에 먼저 음식부터 들자고. 여기가 진짜 끝내주게 맛있어. 그러니까 이 과장도 많이 먹어.”
신 이사는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나누며 시간을 끌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후식으로 수정과가 나올 때였다.
“이 과장. 이번에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사모 펀드에 대한 얘기는 들었지?”
“예.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에 봤던 거라 지금은 어떤지 잘 모릅니다.”
“그렇군. 잠깐만 기다려 봐.”
신 이사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 최 비서. 가지고 들어와.”
이윽고 비서가 룸 안으로 들어와 서류 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한번 읽어 봐. 시간은 많으니까.”
한 달 전과는 과연 뭐가 달라졌으려나.
나는 비서가 건넨 서류를 펼쳐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러는 동안 신 이사와 권 사장은 조용히 날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20분 정도 봤을까.
딱 직감이 왔다.
‘이거 제2의 온스타 게이트구나!’
2000년도 초반을 흔들어 놓은 온스타 게이트.
IMF 외환위기를 이용해 온스타라는 회사가 우리나라 외환 회사를 헐값에 사들여 비싼 값에 팔아넘긴 사모 펀드를 뜻한다.
보통 사모 펀드는 헐값에 회사를 사들이고 비싼 값에 파는 것이 주목적이다. 문제는 정치권을 비롯해 외환 은행에 있는 간부들이 BIS를 조작하여 의도적으로 값을 낮춰 말도 안 되는 차익을 온스타가 남길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이 일로 한동안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였는데, 여전히 이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지금 내가 건네받은 이 사모 펀드의 서류 또한 온스타 게이트와 조금 비슷한 구조를 가졌다.
“우리 신화 그룹이 가진 신화 중공업 쪽 지분을 대량 매수한 다음에, 신화 로지텍 쪽이랑 합병을 시켜 버릴 거야. 그때 들어가는 금액이 약 3조 5천억. 그중 1조 5천억은 내가 이미 준비를 해 놨고, 나머지 2조 원은 이 사모 펀드를 통해서 이뤄 나갈 예정이지.”
국가 기관. 특히 국민연금 기관의 돈이 섞여 있는 신화 중공업.
그곳은 신 회장의 첫째 아들인 신용일이 맡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갑자기 돈을 쫙 뿌려 공격적으로 그곳의 주식을 매입하면 어떻게 될까?
특히 지분이 많은 국민연금 기관이 신용권의 편을 들어 지배 구조를 흔들어 버리면서 동시에 합병을 진행해 버리면 신용일은 눈 뜨고 코 베이는 격이 된다.
“내가 파 보니까 신화 로지텍에서 꽤 재밌는 게 나왔어. 거기 지배 지분이 4%나 섞여 있는 거야. 현재 우리 큰 형님이 가진 지배 지분이 32%거든? 근데 난 28%밖에 안 돼. 거기 있는 지분 4%를 내가 가져간 다음에 합병을 해서 중공업 지분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지.”
신화 그룹은 다른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순환출자 시스템으로 회사를 지배하고 있다.
적은 자본으로 회사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순환출자 시스템의 약점은 막대한 자본을 이용한 투기에 집을 홀라당 털어 먹힐 수 있다는 것이다.
신용권은 신화 로지텍에 있는 4% 지배 지분을 자신이 가지고 와 대주주의 권리를 이용해 중공업 계열과 합병을 진행한다. 당연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 말도 안 되는 합병을 막으려 들 터.
그 논란을 국가 기관인 국민연금이 막아 준다면 이 합병은 성사될 것이고 신용일이 가지고 있는 지배 지분이 흐려져 결국 신화 그룹 경영권은 신용권 손에 들어가게 된다.
“문제는 이걸 적절한 타이밍에 해야 한다는 거야. 그리고 외부의 시선을 피하려면 이 사모 펀드로 이익을 내야 돼.”
이 사람이 왜 날 찾았는지 알겠다.
그가 원하는 건 연막이다.
사모 펀드로 어느 정도 수익을 내면서 뒤로는 신용일 모르게 로지텍을 인수하고 합병을 추진하려는 것이다.
“내 배에 타면 이 과장 인생은 내가 끝까지 책임진다. 어때? 내 손 잡고 싶지 않아?”
그저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통해 자잘한 투자만 해 왔던 내가 이제는 경영권 싸움의 승패를 가르는 지휘관 자리에 다다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