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0화
회식 한번 하러 가기 더럽게 힘들다.
사장을 만나고 나오니, 이제는 김미영 여사가 내 발목을 붙잡는다.
“이 미친 사람. 도대체 뭔 짓을 한 거야?”
아주 웃음꽃이 만개한 김 여사는 친근하게 내 팔을 살짝 때렸다.
“약속대로 잃으신 돈을 복구해 드렸습니다.”
“나는 적어도 몇 달은 걸릴 줄 알았지. 설마, 10일 만에 30억을 복구해 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이제 여사님께서 약속을 지키시면 되겠네요.”
그 말에 김 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 나 알지? 한번 밀 땐 화끈하게 밀어주는 거. 조금만 기다려. 내가 화끈하게 밀어줄 테니까.”
“사돈의 팔촌까지 말이죠?”
“물론이지. 그런데 오늘 어디 가?”
“예. 오늘 팀 회식이 있습니다.”
“아깝네. 같이 식사라도 하려고 했더니. 그럼, 가기 전에 이거부터 챙겨.”
김 여사는 지갑에서 카드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이건······.”
“한도 1억짜리 카드야. 쓰고 싶을 때 써.”
“어휴. 안 그러셔도 됩니다. 저 법인카드도 있어요.”
“괜찮아. 내 돈 불려 줄 사람한테 1억이 아깝겠어? 이 정도는 내가 내는 수수료라고 생각해.”
정말 화끈한 여사님이다.
하루 만에 갑자기 쓸 수 있는 카드가 두 개나 생겼다.
“다음에는 제대로 약속 잡고 올게.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내가 좀 놀랐어야지.”
“이러다가 돈 또 날려 먹으면 어쩌시려고요?”
“왠지 진석 씨는 안 그럴 거 같아. 내가 이런 거에는 감이 좀 좋거든?”
증권사까지 위풍당당하게 찾아온 것을 보고 오늘 회식은 끝났구나 싶었는데, 김미영 여사는 내 발목을 붙잡지 않고 쿨하게 보내 줬다.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건 분명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건데, 시원시원하게 양보를 할 줄 아는 여사님이다.
“야. 배고파 뒤지는 줄 알았다. 사장님은 눈치 없이 널 왜 그렇게 오래 붙잡고 있었던 거냐?”
회식 장소에 도착하기 무섭게 현식이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물주가 없는데 어떻게 시켜 먹고 있어. 아무리 네가 내 동기라고 해도 이제 엄연히 팀장님인데. 위아래가 있지.”
“이야. 좀 감동인데?”
“됐고. 사장님이 왜 그렇게 오래 붙잡아 뒀던 거야? 뱃가죽이 등에 붙을 뻔했네.”
“사장님 욕하지 마라. 오늘의 물주는 내가 아니고 사장님이시다.”
“응?”
나는 권오준 사장에게 받은 법인 카드를 꺼내 보여 주었다.
“오. 법카야?”
“오늘 이걸로 회식하라네.”
“내가 사장님 배포 하나는 끝내 준다는 거 이미 알고 있었지.”
현식이의 빠른 태세 전환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사장님 때문에 늦은 것도 아니야. 김미영 여사님이 갑자기 찾아오시는 바람에 또 늦었어.”
“어휴. 김 여사는 수익 300%나 만들어 줬는데, 이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면······.”
“그분이 우리 팀 밥 많이 사 먹이라고 한도 1억짜리 카드도 주셨다.”
“역시, 내가 그 여사님 화끈하고 시원시원한 거 알고 있었어. 완전 여장부잖아, 여장부.”
“네가 무슨 주식이냐. 애가 몇 초마다 상승 하락을 왔다 갔다 하고 있어.”
팀원들 모두 현식이의 행동에 박장대소했다.
“자. 얼른 시켜 먹자. 많이 배고팠지? 오늘 아주 끝장나게 달릴 거니까 긴장하고.”
“그래 봐야 술 몇 잔 못 먹고 뻗을 놈이.”
“너보단 낫거든.”
비싼 한우 고기가 나오고 지글지글 익어 가는 소리에 군침이 돋았다.
이렇게 마음껏 한우를 시켜 본 지가 언제던가. 아니. 평생 그랬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많이들 먹어. 오늘 회사에서 빠방하게 쏘는 거니까.”
“예, 팀장님!”
고기가 다 구워졌을 때면 무섭게 젓가락을 움직여 입속에 우걱우걱 끼워 넣었다. 그렇게 우리는 네 사람은 말 한마디도 없이 한참을 고기만 먹었다.
“그런데 팀장님. 노하우가 뭐예요?”
이제 슬슬 배도 부르고 술기운도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자 수다 타임이 이어졌다.
“노하우?”
“예. 대체 그 주식들이 오를 걸 어떻게 아셨던 거죠? 그것도 열흘 동안 팀장님이 점 찍어 둔 종목은 하나도 안 떨어졌어요. 우리가 다 팔고 나면 갑자기 푹 떨어졌지.”
화영 씨도 그렇고, 신입부터 현식이까지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뭐, 노하우라고 할 게 있나. 그냥 운이 좋았던 거죠.”
“와. 팀원들한테도 비밀을 숨기시는 거예요?”
그렇다고 내가 고장 난 핸드폰을 보여 주며 ‘사실 이놈이 다 알려줬던 거예요’라고 말할 순 없잖아.
“그냥 뭐랄까······. 사람의 심리를 파악한다고 해야 하나?”
“사람의 심리요?”
“예. 주식 시장은 광기와 공포고 공존하는 곳이라고 하잖아요.”
사람의 심리에 의해 주식 시장은 대호황을 맞을 수도, 대공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주식의 가격은 현재 투자자들의 심리를 보여 준다.
가격이 내려간다는 건 그 주식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이고, 가격이 올라간다는 건 그 주식에 믿음이 확고하다는 것을 뜻한다.
주식만큼 간단하면서 복잡한 세계가 또 있을까?
매도 물량이 많으면 가격이 떨어지고 매수 물량이 많으면 가격이 올라가는 게 주식이다. 이 단순한 원리가 지금의 주식 시장을 만들었고, 수많은 이론을 낳게 했다. 하지만 원초적으로 주식 시장은 심리 게임이라고 보면 된다.
“어느 주식에 투자자들의 공포가 서려 있는지, 또 어떤 주식에 투자자들의 기대가 풍부한지를 파악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게 팀장님의 분석 노하우인가요?”
“음-. 아마도?”
신입인 황지우 사원은 내 말을 열심히 수첩에 적고 있었다.
뭔가 미안한 생각까지 든다.
그래도 내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해야 투자 승리를 이뤄 낼 수 있으니까.
다만, 그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는 게 무척이나 어렵다는 게 문제지.
“팀장님은 여자친구 있으세요?”
“아뇨.”
“오. 그러시구나.”
화영 씨가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먹은 거 같은데, 2차 갈까?”
오랜만에 회식이라 그런지 현식이가 많이 들떠 보였다.
참 보면 볼수록 이상한 놈이다.
회식을 좋아하는 재벌집 아들이라니.
우리는 현식이의 리드에 따라 소고깃집을 나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3차 노래방을 마지막으로 화영 씨와 지우 씨 두 사람은 집에 돌아갔고, 우리 둘만 남게 됐다.
“맥주 한 잔만 더 하자.”
“좋지.”
현식이는 우리 둘이 자주 가는 치킨집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생맥주가 나왔을 때 운을 뗐다.
“아깝지 않냐?”
“뭐가?”
“300% 말이야. 그냥 회사 때려치우고 처음부터 네가 개인 투자자로 했으면 네 당첨금을 3배로 불릴 수 있는 거잖아. 아깝지 않았어?”
“별로.”
내 대답에 현식이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 자식은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하루아침에 사람이 바뀌었냐. 로또 1등 되고 나서 각성이라도 했어? 아니면 돈에 대한 욕심이 아예 사라졌나?”
“오히려 그 반대야.”
“그 반대라고?”
“그래. 겨우 3배? 고작 3배 불리려고 일을 때려치우고 나가? 그럴 순 없지.”
“그래도 3배는 3배잖아.”
3배는 아쉽다.
300배라면 모를까!
“그렇기에는 좀 아쉽잖아? 내가 여기서 나가면 더 이상 증권사 직원도 아니고 팀장도 아니잖아. 내가 언제 널 부려 먹어 보겠냐. 그리고 여기서 점점 더 많은 실적을 쌓으면 직책도 자연스레 올라가지 않겠어?”
“흐흐. 음흉한 새끼. 정말 신화 금융 사장이라도 해 보게?”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신화 금융의 사장이 된다라.
일 때려치우기 전에 한 번쯤은 앉아 볼 만한 자리가 아닌가?
“뭐, 네가 진짜 이번처럼 말도 안 되는 수익을 계속 올리면 회사에서 가만 놔둘 리 없지. 진짜 사장도 될걸? 그런데 지금부터 준비하는 게 좋지 않겠어?”
“응? 어떤 걸?”
“네가 무슨 수작으로 득도를 해서 투자를 잘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정말로 수익을 끝장나게 올리는 투자자가 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해외에 법인 하나 만들어 놔.”
사실, 나도 잠깐이나마 생각을 했던 부분이다.
내가 미래 커뮤니티를 통해 수백 배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면 금융사에서 당장 사표를 쓰고 나가야 한다.
금융사 직원으로 묶여 있는 한 개인 투자는 절대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미 예전에 현식이와 같이 금융 회사를 하나 만들자는 포부를 키우지 않았던가.
“조세 피난처로 해외에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아.”
조세 피난처.
우리나라처럼 세율이 높지 않은 국가들을 뜻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세금 떼먹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래도 국내에다 법인 만들면 여러모로 복잡할걸? 너도 이쪽 시장이 어떤지 잘 알잖아. 만약 네가 정말로 금융 회사 차려서 돈을 수백 배 불린 몇천억 자산가가 되었다고 쳐. 다른 금융권들이 널 가만 놔두려고 할까? 바로 압박 들어와. 그리고 해외에다가도 투자를 해야 할 거 아니야. 국내법부터 해외법까지 다 따져야 해서 머리 아파.”
현식이의 말이 맞다.
우리나라는 자유로운 경쟁을 허락하는 곳이 아니다.
정계와 선이 닿지 않으면 집중 공격을 받아 회사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기도 한다.
아니면 새로운 법안이 처리되어 특정 회사를 압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이러한 시스템은 계속될 것이다. 내가 정치권에 왕창 돈을 먹여 주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건 내가 생각을 해 볼게. 어차피 내 돈만 들어가는 게 아니고, 네 돈도 같이 들어가야 하니까.”
“그렇게 해. 나중에 법인 회사 차리고 나서 지분율 따지면 되니까. 그리고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자. 이러다 훅 떨어지면 곤란하니까. 흐흐.”
“그런 일 없게 해 줄게, 인마.”
현식이의 말대로 너무 김칫국 드링킹을 하고 있으면 곤란하다.
그리고 사실 불안하기도 했다.
이 미래 커뮤니티의 서비스가 언제 종료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서비스가 갑자기 종료되면 해외 법인은 만들어 놓아 봤자 돈 먹는 하마가 될 게 뻔하고 내 개인 투자 능력으로는 세계 제일의 투자가가 될 수도 없다. 그래서 회사를 못 그만두는 것도 있다.
결국 중요한 건 미래 커뮤니티 서비스가 끊기지 않게 해야 한다는 건데······.
“아참. 근데 네 어머니는 아시냐?”
“응? 뭘?”
“뭐긴 뭐야. 아들내미 로또 1등 당첨된 거 아시냐고.”
“어. 당연히 말씀드렸지. 의외로 차분하시더라. 난 심장마비라도 오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내가 한평생 착하게 살아서 하늘이 복을 주실 줄 알았다고 하시던데?”
“네 어머님다우시다. 나도 요즘 안 찾아뵈었는데, 조만간 시간 내서 가야겠다.”
고마운 녀석.
어머니는 현식이 덕분에 아들 하나가 더 생긴 기분이라며 기뻐하셨다.
내가 이놈한테 빚을 좀 많이 진 것 같다.
마침 오늘 금요일이니까, 좀 늦었지만 병원에 들러 어머니를 뵙고 가야겠다.
“그만 일어나자.”
“그래.”
배가 불렀어도 치킨 남는 꼴은 볼 수 없다며 우리 두 사람은 전투적으로 닭 한 마리를 다 뜯고 나서 자리를 파했다.
그리고 잠깐 화장실에 가고 있을 때였다.
띠리링-!
반가운 알람 소리에 나는 허겁지겁 고장 난 폰을 꺼내 들었다.
내게 미래의 소식을 알려 주는 수호천사의 소리였다.
[그동안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현 시간부로 베타 서비스가 종료되었습니다.]
“······뭐라고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