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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6화 (6/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6화

“이제 들어온 지 1년 반밖에 안 된 놈한테 얼마를 줘?”

“20억이요. 무려 20억입니다, 사장님.”

“누가? 어떤 미친놈이?”

“김미영 여사님 있지 않습니까? 그 부동산 많다는.”

신화 금융의 사장, 권오준은 익숙한 이름에 짧게 박수를 쳤다.

김준형 과장은 신이 나서 입을 나불댔다.

“그 여편네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서?”

“이번에 박 과장이 운용하던 펀드가 중국 버블로 아작 나 버렸답니다. 거기 고객이 김 여사였는데, 그 일로 돈을 다 회수하고 그 초짜한테 전부 넘겼답니다.”

“그 여자 깐깐한 거 같던데. 그리고 중국 버블로 펀드 아작 난 게 한둘이야?”

“그렇죠. 여기서 웃긴 건, 그 초짜가 중국 버블을 정확하게 예측했다는 겁니다.”

“예측이야 다들 했지. 차트 보는 새끼들 중 중국이 버블 잔뜩 끼어 있다는 거 모르는 새끼도 있었나?”

그 말에 김준형 과장이 씨익 미소를 보였다.

뭔가가 더 있다는 것을 알아챈 권오준 사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그 표정은.”

“그 초짜가 말입니다. 글쎄 중국 버블이 정확히 언제쯤 터지는지 예측했다고 합니다.”

“뭐어-? 그게 사실이야?”

“예. 그놈이 자다가 조상님 꿈이라도 꿨는지 중국 주가가 어디서 꼬꾸라지는지 딱 알아맞혔더라고요. 그놈한테 전화 돌린 고객들 중 상당수가 조언을 듣고 미리 주식을 처분한 덕분에 손해를 면했다고 합니다.”

1년 반밖에 되지 않은 초짜 브로커 얘기를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몇몇 고객들은 대체 자기한테 그런 조언을 해 준 사람이 누구냐고 전화가 왔답니다. 자기 돈 그 사람한테 다 맡기고 싶다면서요.”

“김미영 여사도 그중 하나다?”

“예. 20억을 통으로 맡긴 걸 보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게 우연일 수도 있잖아.”

“그렇긴 하죠. 하지만 운이 좋은 놈인 것 같습니다. 몇 번 예측을 한 게 다 들어맞았다고 하더라고요.”

주식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아는가?

차트를 보는 실력?

시장을 꿰뚫는 눈?

아니. 바로 ‘운’이다.

귀신같이 돈 냄새를 맡고 그 돈을 자신한테 끌어당기는 놈들이 있다. 그들이 단순히 실력이 좋아서 돈을 끌어모았겠는가?

시간과 장소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운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주식을 하기 전에 사주팔자부터 알아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음-. 그놈 얼굴 한번 봐야겠네.”

“정말 20억을 맡기실 겁니까?”

“고객이 원하는데 어떡해? 대신, 경고는 해 둬야지. 모든 건 고객의 선택이라고. 일단 그놈 데려와 봐. 좀 모자란 놈 같으면 혼자 일하게 놔둘 순 없지.”

“예, 사장님.”

권오준 사장은 오랜만에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벌써부터 기대가 되었다.

* * *

“사장님이 너 찾으신다.”

오영식 팀장은 저번에 있었던 일 때문에 아직도 날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큰손 고객이 내게 돈을 전부 맡기겠다고 선언한 이상, 팀에서 쫓아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중국 버블 이외에 여러 개의 주가를 맞춰 낸 덕분에 나를 찾는 고객들이 늘어났다.

듣기로는 주식 커뮤니티 사이트에 내 이름이 돌고 있다고 한다.

“어후. 사장님이 신입이나 다름없는 애를 만나겠다고 초청까지 하시고. 출세했네, 출세했어.”

“그러게. 몇 주 전만 해도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었는데. 사람 일 참 몰라.”

“야. 넌 이제 꿀릴 것도 없잖아. 편하게 만나고 와.”

“이상하지? 긴장도 안 된다.”

계좌에 수십억의 돈이 있어서 그런가 전혀 주눅이 들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사장님 말 한마디에 벌벌 떨었을 텐데 말이다.

“진석 씨. 사장님이랑 저녁 식사하러 간다면서요?”

그때 누군가가 내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가져다 놓으며 말을 걸었다.

누군가 했더니, 우리 신화 금융의 얼굴마담을 하고 있는 이화영 사원이었다.

“아, 예. 그렇게 됐어요.”

“어머. 좋겠다. 아참. 그거 봤어요? 주식 커뮤니티 사이트에 진석 씨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거?”

“잠깐 얘기만 들었어요.”

“제가 읽어 봤는데, 지금 난리에요. 진석 씨가 예언한 건 다 맞았다면서 인증 글을 회원들이 올리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당장 신화 금융에 돈 넣으러 간다는 사람들도 꽤 있었어요.”

뭐, 아주 잠깐 반짝하는 정도겠지.

그 정도로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다.

거기다 이화영은 조심해야 할 인물이다.

저 예쁜 얼굴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여러모로 소문이 많은 여자이기 때문이다.

뭐, 그냥 얼굴이 예쁜 탓에 헛소문이 도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사장실로 가던 중 박 과장과 만나게 됐다.

그는 크게 헛기침을 한 번 뱉으며 내 인사를 받지도 않고 지나가 버렸다.

어지간히 내가 쌓인 게 많은 듯 보인다.

그리고 김미영 여사가 이리저리 소문을 또 퍼뜨렸는지, 박 과장 고객들이 썰물처럼 다 빠져나갔다고 하니 좀 딱하기도 하고.

이래서 큰손들이 무섭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네크워크망이 있어 잘못 보이면 그냥 훅 가는 거다.

“안녕하십니까. 이진석이라고 합니다.”

“오. 그래. 반가워요. 난 신화 금융 사장, 권오준.”

사장실로 들어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권오준 사장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도 처음이다. 그와 가볍게 악수를 나눈 뒤, 우리는 고급 일식집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나눴다.

나이 든 양반들이야 묻는 게 뻔하지 않은가?

아버지 무슨 일 하시냐, 어머니는 어떠시냐 등등.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는 대답을 내놓자 사장은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이윽고 술이 나오고 음식이 갖춰지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김미영 여사님이 우리 이진석 사원한테 큰돈을 맡기려는 거, 잘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음-. 20억이 적은 돈은 아니야. 거기다 김미영 여사님 정도라면 돈 굴리는 액수가 꽤 커. 20억을 잘만 운용해 준다면 더 많은 돈을 가져온다는 거지.”

“여러 군데 팔이 닿으시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 돈 많은 사람들일수록 아는 것도 많고 연결된 선도 많지. 그래서 지금 우리가 매우 조심스러워.”

신화 금융은 3대 금융사들 중 하나에 속한 곳이다.

운용하는 자금만 몇조 원에 달한다는 것.

회사 입장에서 20억은 솔직히 큰돈이 아니다. 하지만 무시해선 안 된다.

큰손들끼리 소문이 잘못 나기라도 하면 20억이 2,000억이 되어 빠져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금융 회사들이 너도나도 치고 올라오는 마당에, 큰손들이 다른 회사에 붙어 버리는 건 타격이 크다. 그래서 권오준 사장도 무척이나 조심을 하고 있는 것일 터.

“20억 정도면 펀드 매니저가 펀드 하나를 만들어 운용하는 수준이야. 하지만 이진석 사원은 펀드 매니저가 아니잖아?”

“예. 그냥 사원입니다.”

“그래도 필요한 자격증은 있지?”

“필수 자격증은 갖추고 있습니다.”

필수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덜컥 펀드 매니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먼저 실무 쪽에 경험을 오랫동안 쌓아야 하는데, 회사마다 펀드 매니저를 삼는 기준이 달라 회사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교육 과정과 시험도 통과해야 한다.

펀드 매니저는 정말 되기가 힘들다.

오영식 팀장처럼 실력 있는 양반이 아직도 팀장직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말 다 했다.

“그렇다고 갑자기 이진석 사원을 펀드 매니저로 앉힐 순 없어. 그만한 실적도 있어야 하고 경험도 필요해. 우리 회사에서 진행하는 교육 과정도 이수해야 하고.”

“예.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어. 고객이 이진석 사원한테 돈을 맡기고 싶어 하니까. 그것도 수십억을. 그래서 난 회사 차원으로 조치를 취해야 돼.”

“어떤 조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둘 중 하나야. 이진석 사원을 팀장으로 세우는 거지. 아니면 오영식 팀장이 진두지휘를 하든가.”

하나는 내게 전권을.

다른 하나는 날 그냥 얼굴마담으로 세우겠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 마음에 들어?”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래. 요즘 젊은 사람들은 털털하잖아. 딱 까 놓고 말해 봐.”

“음-. 어떤 결정을 내리셔도 딱히 상관없습니다. 전 그냥 제 할 일만 쭉 하는 것뿐이니까요.”

내 대답이 의외였는지, 권오준 사장의 얼굴빛이 달라졌다.

“혹시 수십억이란 돈이 부담스러운가? 일한 지 별로 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큰돈을 맡게 돼서?”

“아니요. 부담감을 느끼진 않습니다. 제가 그 돈을 말아먹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오호. 자신 있다는 거네? 얘기를 들어보니까, 이제까지 예측한 게 다 들어맞았다며? 그것도 최근에 말이야. 그전에는 위에서 하라는 대로 딱딱 했으면서 갑자기 바뀐 이유가 뭐지?”

“그전까지는 공부를 하면서 감을 키운 거고, 이제는 그 감을 활용할 때가 왔다고 느낀 겁니다.”

조금 내 대답이 교만하게 들린 걸까.

권오준 사장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주식을 감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 텐데?”

“물론입니다. 저만의 알고리즘은 당연히 있죠. 그러나 감 또한 필수적인 요소이지 않나요?”

“알고리즘이라······. 정확히 어떤?”

난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영업 비밀입니다. 그런 중요한 걸 함부로 공개할 순 없죠. 아무리 사장님이시지만요.”

내 알고리즘이 미래의 커뮤니티라는 걸 알랑가 몰라.

“하하.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패기가 있네. 그런데 거기서 조금 엇나가면 패기가 아니라 그냥 겁대가리를 상실한 새끼라는 거 알지?”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단순한 경고인 것 같았다

“언짢게 해 드렸다면 사과드립니다.”

“아니야. 김 여사도 그 젊은 패기를 보고 돈을 맡기겠다고 말한 거겠지.”

“그래서, 결정은 내리신 겁니까?”

“아직. 오늘 생각해 보고, 내일 말해 줄게. 뭐, 여의도 증권맨이 굴러들어온 돈을 오래 썩혀 두면 안 되지. 그리고 그 돈을 다 잃더라도 우리 회사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게 나와 자네가 할 일이야. 알지? 나도 따지고 보면 자네처럼 월급쟁이에 불과해.”

신화 금융은 신화 그룹의 계열사 중 하나다.

권오준 사장도 신화 그룹이 뽑아 앉힌 월급쟁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신화 그룹 안에서 후계 문제 때문에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들었다.

거기서 누가 황제가 되느냐에 따라 권오준 사장의 미래도 달라진다.

누구에게 패를 걸어야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을지 여러모로 고민이 많을 것이다.

사장은 이제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갑자기 화제를 돌렸다.

“원래 팀장급도 내 얼굴은 단둘이 못 봐.”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내 잔에 술을 따라 주며 말했다.

“아마 오늘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야. 아니지. 만약 내일부터 팀장을 달게 되고 좋은 실적을 내게 되면 또 보게 될지도.”

“이런 고급스러운 일식을 공짜로 먹으려면 꼭 실적을 좋게 만들어야겠네요.”

“하하. 그런 셈이지. 앞으로 잘해 보자고.”

“예, 사장님.”

나는 그와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했지만, 난 이미 권 사장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난 내일 입사 1년 반 만에 신화 금융 회사 팀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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