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5화
펀드 매니저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주식을 파는 펀드 매니저. 다른 하나는 채권을 파는 펀드 매니저.
당연히 수익률은 주식이 더 높고 채권 쪽은 수익률이 낮은 대신에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채권이란 게 그렇다.
만기일에 일정한 금액을 받게 되어 있으며 이자까지 나온다. 그 이자가 통장에 넣어 놓는 것보다 수익이 좋아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이라면 은행에 묵혀 두기보다 절대안정형 채권펀드에 투자하여 수익을 얻는다.
하지만 채권이라고 해서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채권을 발행한 기업이 망하면 그 채권은 그냥 종이 쪼가리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통 안정성을 추구하는 채권 같은 경우에는 국가가 발행하는 채권을 사 놓거나, 망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기업의 것을 받아 놓는다.
거기서 약간 더 수익을 올리고 싶다면 대기업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나름 안전성을 갖춘 기업을 찾아내 채권을 사들이는 경우도 있다.
현재 박 과장이 운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채권 펀드다.
그는 여러 가지 펀드를 운용하고 있는데, 전부 채권에 관련된 것이며 특히 중국 쪽 채권이 많이 섞여 있다.
현재 중국은 상해종합지수가 끝없이 올라가고 있어 장밋빛 미래만 펼쳐져 있다. 그래서 요즘은 중국에 투자하지 않으면 병신 소리를 듣는다는 말이 떠돌 만큼, 중국 투자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개인 투자자들은 중국에 바로 투자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펀드를 통해서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채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하지만 곧 다 떨어지겠지.”
내가 본 정보에 의하면 그렇다.
미래 커뮤니티 어플에서는 6월 20일자 커뮤니티 상황을 보여 주었다.
그곳에는 온통 갖가지 욕설이 쓰여 있었는데 대다수가 중국을 욕하는 것이었고, 나는 그들이 스크랩해 온 기사도 읽을 수가 있었다.
[중국 버블 붕괴!]
[6,000선을 돌파하게 될 거라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모두 틀렸다!]
[끝없는 추락의 시작인가? 아니면 반등을 위한 준비인가?]
[더 이상의 상승은 없다.]
5,100선을 마침내 돌파한 상해종합지수는 갑자기 하락세를 타면서 2퍼센트나 떨어졌다.
어찌 보면 다시 반등을 하기 위해 잠깐 쉬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무려 8월 25일자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때의 커뮤니티 상황은 그야말로 절망이었다.
끝을 모르고 치솟던 상해종합지수는 46%나 폭락해 5,100이었던 것이 2,900까지 떨어진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아직 모른다. 여전히 중국이 6,000까지 도달할 거라는 희망에 사로잡혀 있다.
“상해종합지수가 계속 떨어지는 중입니다, 팀장님. 현재 1.5% 떨어졌습니다.”
오영식 팀장은 팀원의 보고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내가 있는 쪽을 슬쩍 바라보더니, 나 들으라는 식으로 소리쳤다.
“반등 몰라, 반등? 잠깐 쉬어 가는 거야. 내일이면 또 오를 거다. 그러니까 고객들이 다른 곳에 정신 팔지 못하게 잘 단속해. 알겠어?”
“예, 팀장님.”
박 과장이 어찌어찌 큰손 고객을 달래서 펀드를 팔지 않게 했다고 한다.
신입 직원의 실수라고 변명을 했다는데, 과연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을까?
박 과장은 어제 나를 호출해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발생하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눈깔이 달린 놈이라면 오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 것이다.
“야. 근데 진짜 올랐더라?”
현식이가 내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뭐가?”
“네가 저번에 어떤 고객한테 제약 회사 주식 하나 사라고 했잖아. 근데 그거 진짜 올랐던데? 6%나. 어떻게 알았어?”
아. 그거?
“후후. 이것이 다 이 형님의 뛰어난 분석 덕분 아니겠냐.”
“지랄하지 말고. 내가 널 모르냐?”
“쓰읍-. 그런 말은 좀 섭섭하다.”
뭐, 사실 내가 분석한 건 하나도 없긴 하지.
“그런데 고객들한테 아직도 펀드 판매 안 하고 있냐?”
“응. 중국 쪽은 쳐다도 보지 말라고 못을 박았어. 중국 쪽 채권 안 섞인 펀드들만 추천하는 중이야.”
“어휴. 고집 한번 대단하다.”
“두고 봐. 내 말이 틀리나. 오늘 종합지수 떨어진 거 봤지? 저거 이제 시작이야.”
“퍽도 그러겠다.”
현식이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잠시 쉬어가는 타임이라 생각했다.
내일이면 다시 반등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되고 또 다음 날이 되었다.
5,100 상해종합지수가 전부 한순간의 꿈만 같았다.
갑작스러운 폭락에 중국 시민들은 겁을 집어먹고 전부 매도에 나섰다. 그로 인해 더욱 폭락 속도가 가속되어 손 쓸 틈이 없을 정도였다.
“이런 미친······.”
미친 듯이 떨어지는 종합지수에 결국 중국은 서킷브레이커를 걸어 열기를 잠시 식혔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중국 대륙에 퍼져 나간 공포를 잠재울 순 없었다.
마침내 7월에 종합지수가 3,000에 진입하면서 오영식 팀장은 하루 종일 욕설만 내뱉었다. 그리고 그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야. 어떻게 된 거야, 이거?”
그에 반해 현식이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가질 않는다. 내가 오영식 팀장한테 한 방 먹인 게 통쾌한 모양이다.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말도 안 돼. 이거 진짜 대박인데? 다른 사람들은 다 틀렸는데, 어떻게 너만 맞췄냐?”
“주식 시장의 흐름을 맞추는 건 다 운이야. 그 똑똑한 아이작 뉴턴이랑 다재다능했다던 레오나르도 다비치도 돈 다 말아먹고 주식 시장은 절대 예측할 수 없다고 했잖아.”
“아니. 그런데 넌 어떻게 맞췄냐고.”
“그냥 운이 좋았어.”
“아닌 거 같은데······.”
현식이는 내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그런 눈빛을 보낸다고 해서 내게 알아낼 수 있는 건 없다.
“여기 이진석이 누구예요?”
그때 아주 깐깐해 보이면서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한 귀부인 하나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고객이라도 규모가 있는 고객이 아니라면 들어올 수 없는 사무실을 말이다.
현식이는 내 어깨를 툭 치며 손으로 저 아줌마를 가리켰다.
“너 찾는데?”
“왜지?”
“몰라. 표정만 보면 네 머리카락 다 뜯으려고 온 거 같기도 하고?”
“어째서?”
내가 혹시 저런 여사님과 척을 질 만한 행동을 했던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런 적이 없는데?
“이진석 씨. 여기 없어요?”
“아. 접니다.”
“그쪽이 이진석?”
“예. 처음 뵙겠습니다.”
나는 조심스레 명함을 건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성이 대신 그것을 건네받았다.
아무래도 이 여사님의 개인 비서인 것 같다.
개인 비서까지 있는 정도면 돈 좀 만지는 분이라는 건데······.
“저번에 우리 비서한테 재밌는 얘기를 했다면서요? 중국은 곧 버블이 펑 하고 터질 거니까, 지금이라도 박 과장이 운용하는 펀드 다 팔으라고.”
박 과장한테 난리를 쳤다던 큰손 고객이 바로 이 여사님이었나?
그때 내게 전화를 건 것은 남성이어서 당연히 남성분이 투자자인 줄 알았는데, 비서를 시켰던 모양이다.
“우리 비서한테는 8월까지 절반 가까이 떨어질 거라고 했다면서요?”
“맞습니다.”
“어떻게 알았던 거예요? 내가 아는 전문가들은 6,000까진 꼭 오를 거라고 호언장담을 하던데.”
“그냥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운이 좋았다? 단순히 운만을 믿고 나한테 감히 그런 조언을 했다?”
“죄송합니다, 여사님. 다음부터는 조심하겠습니다.”
내 정중한 사과에 이 여사님은 피식 웃더니, 날 째려보던 눈빛을 거두었다.
“젊은 사람이 겸손하네. 보통 그쪽처럼 실력 있는 사람들은 자기 PR하기 바쁘거든. 그런데 자기 실력을 내세우기보다는 그냥 운으로 치부한다? 겸손한 건지, 아니면 뻔뻔한 건지.”
“겸손한 것도 아니고, 뻔뻔한 것도 아닙니다. 정말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주식 시장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여사는 내 위아래를 훑어보며 뭔가를 탐색하는 듯 보였다.
그런 눈동자가 슬슬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였다.
“아이고, 여사님. 여기까지는 직접 오시다니요.”
박 과장이 능글맞게 허리를 숙이며 다가왔다. 하지만 여사의 표정이 결코 밝지 않다.
“우리 박 과장이 그때 이 친구 조언을 무시하는 바람에 내 30억이 공중 분해됐잖아요?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에요.”
30억!
30억을 날렸다고?
내 통장 계좌에 있는 돈이 25억인데.
박 과장은 얼른 읍소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그때 이 친구의 말을 무시한 게 아닙니다. 항상 모든 사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충분히 검토 후에 결정을 내리는 겁니다. 이 친구도 그때 수긍을 했고요. 그렇지?”
이 양반 봐라.
은근슬쩍 책임을 회피하겠다?
어림도 없지.
“어- 그러셨나요? 제가 기억하기로는 그때 한 번만 더 이 지랄 떨면 가만 안 놔두신다고······.”
“······?!”
박 과장이 눈을 크게 뜨며 ‘이 새끼가 죽고 싶어 환장했나’라는 신호를 보냈다.
당연히 난 가볍게 씹어 주었다.
여사님은 그런 내 행동이 웃긴지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이 친구 겁도 없네. 강단도 있고. 그래요. 어떻게 할지 결정했어. 이봐요, 박 과장.”
“예. 여, 여사님.”
“내 남은 돈 20억 있죠?”
“예, 여사님.”
“그거 다 이 친구 줘.”
“······예?”
박 과장은 순간 제 귀를 의심했는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직원들도 여사님의 폭탄 발언에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여사님은 무섭게 눈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못 들었어? 무능한 당신은 필요 없으니까, 내 돈 다 이 친구한테 맡기라고! 만약 이 친구 말고 다른 사람이 맡았다가는 가만 안 있을 줄 알아. 알겠어요?!”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사님은 옆에 있던 비서에게 눈짓해 내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혹시 개인적으로 맡고 있는 고객 있어요?”
“없습니다.”
“잘됐네. 내 돈 만지게 되면 그 명함으로 연락해요. 알겠죠?”
“아, 예.”
총총걸음으로 여사님이 사라지면서 박 과장은 그제야 허리를 펼 수 있었다.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간 것만 같다.
박 과장은 내 멱살을 붙잡고 욕지거리부터 퍼붓기 시작했다.
“너, 너 이 새끼!”
“과장님. 참으세요.”
“참으세요, 과장님.”
“이거 놔! 이거 안 놔?!”
주먹이라도 날아들 것 같아 직원들이 만류하면서 내게 재촉했다.
“진석 씨. 뭐해? 죄송하다고 사과드려. 얼른!”
“그래. 그리고 여사님께 달려가서 못 하겠다고, 죄송하다고도 빌어. 어서!”
딱 박 과장이 원하는 대로 그림이 그려진다.
내가 이대로 사무실 사람들의 등쌀에 못 이겨 여사에게 달려가 모두 취소해 달라는 말을 해 주길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왜?
“제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했나요?”
“뭐야?!”
“전 우리 회사의 모토를 따랐을 뿐입니다. 언제나 정직하게, 고객을 위해서. 이게 우리 회사의 방침이지 않습니까?”
“이, 이 새끼 진짜 완전 미친놈 아니야?”
“과장님이 원하셨던 대로 거짓말을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렇게는 못 해 드릴 것 같네요.”
나는 가방과 옷을 챙기고 박 과장과 팀원들에게 대충 인사를 올렸다.
“마침 폐장도 했고, 대충 업무는 다 끝났는데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
박 과장은 넋이 나간 얼굴로 사무실 밖을 나서는 내 뒤통수만 쳐다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