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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4화 (4/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4화

“천천히 마셔라. 그러다 훅 간다.”

“야. 오늘 같은 날은 마셔야지.”

나는 소맥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이렇게 맘 놓고 마셔본 적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내일부터 출근 안 하려고? 사표 휙 쓰고 나가게?”

“음. 글쎄. 아직은 좀 더 있어야 될 거 같아서.”

“그래? 의외네.”

“회사에서 여러모로 배울 게 많아. 난 투자 쪽으로 갈 거니까. 실전 경험을 더 쌓아야지.”

“야. 투자회사에서 일하면서 개인적인 투자를 하게 되면 잡혀가는 거 알고 있지?”

“그걸 모르겠냐?”

투자 회사에서 일하게 되면 회사 자체에서 계약서를 받게 된다. 그건 어떤 회사 정보도 누설하지 않겠다는 것과 절대 개인적인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불법 내부정보 거래법에도 걸려 개인적인 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 물론 가족 명의를 이용해 투자를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대다수 금융위에 걸리거나 회사 내부 감시 시스템에 걸려 적발되곤 한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다 때려치우고 개인 투자를 하고 싶은데······.”

“싶은데?”

“아직은 좀 더 배워야 할 거 같아서.”

“오. 제법인데?”

“너보다는 내가 아직 한참 아래지. 넌 재벌집 아들이면서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거잖아. 난 그게 더 대단해 보인다.”

나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스스로를 숨긴 녀석이다.

그 정도로 일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큰 것일까?

“나는 그냥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하는 거지.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배워서 올라오라고 하시잖아. 그 말을 따라야지. 어쩌겠어? 그리고 지금 생활이 썩 나쁘지는 않아.”

“그래. 그러다 나중에 질리면 내가 회사 나갈 때 같이 나가자. 뭐, 각자 돈 투자해서 법인 회사 하나 차린 다음에 투자하면 되잖아?”

“흐흐. 너 하는 거 보고. 나도 들고 있는 자금이 좀 있거든. 나중에 그때가 되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 볼게.”

그냥 농담 삼아 던진 말이었는데,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그래도 어차피 그건 나중 일이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아직 회사를 떠날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내게는 미래를 보여 주는 어플을 이용해 여러 가지 시도해 볼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신이 생겼을 때 밖으로 나가 날개를 활짝 펼 것이다.

* * *

“어후. 이 새끼는 나보다 덜 마셨으면서 또 혼자 곯아떨어졌네.”

술은 내가 더 많이 마셨는데, 업혀 온 건 현식이었다.

나는 현식이를 침대에 누인 다음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하아-.”

깊은 한숨이 쉬어 나온다.

결코 절망적인 한숨이 아니었다.

감사함의 한숨이었다.

나는 가방에서 통장을 꺼내 들었다. 한 수십 번은 본 거 같은데, 매번 볼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 통장에 찍힌 25억의 숫자를 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찌릿하게 올라온다.

지금까지는 힘든 인생을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밝은 미래만 내 앞에 펼쳐져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시작은 바로 이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걸 나한테 보내 주는 걸까?”

미래 커뮤니티 어플이 켜지기 전까지는 그냥 이건 고장 난 핸드폰에 불과하다.

그리고 언제 나타난다는 규칙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자기 마음대로 팍 켜졌다가 다시 팍 꺼져 버린다.

미래를 본다는 것만큼 대단한 일이 또 어디 있을까.

그런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이 핸드폰 너머에 있다.

“외계인?”

외계인이 할 일 없어서 나한테 이런 걸 보냈겠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정부의 은밀한 프로젝트?

개꿀잼 몰카?

사실 전 국민이 TV를 통해 날 보고 있고 난 이 세상이라는 극장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망상이 좀 심했군.”

백날 생각해 봤자 그 어플의 정체가 뭔지 알아낼 수 없을 듯하다.

분명한 건 날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난 떨어지는 꿀을 아주 잘 받아먹을 생각이다.

“긴 하루였다. 긴 하루였어.”

나도 현식이 옆에 누워 눈을 감으려 했다.

술기운에 잠이 솔솔 오려는 찰나.

띠리링-!

익숙한 벨 소리에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료 베타 기간 동안 많은 이용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수호천사가 돌아왔다.

* * *

“예. 고객님.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한양 화학 주식을 들고 계시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파신 다음에 일광 제약 쪽을 노리시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이번에 알츠하이머 신약 개발에 정부가 투자한다는 얘기 들으셨죠? 일광 제약이 거기서 좀 앞서간다고 하더라고요.”

로또 1등이 당첨된 지 2주일이 지났다.

처음에는 흥분감에 잠도 오지 않았는데, 인간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

고작 며칠도 안 돼서 흥분감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한 가지 좋은 게 있다면 더 이상 꿀릴 게 없다는 것과 더는 돈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제 예상으로는 한 번에 6%가량 오른다고 봅니다. 그러다 좀 떨어졌다가 다시 반등하겠죠. 그리고 현재 갖고 계신 펀드는 중국 쪽 기업 채권이 너무 많아요. 그 펀드는 지금이라도 손을 떼시는 게 어떻습니까?”

나는 그동안 미래를 알려 주는 핸드폰을 통해 여러 정보를 받았다.

항상 이틀 뒤의 정보만 주는 줄 알았는데, 무려 한 달 후의 커뮤니티 사이트에 접속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언제 핸드폰이 켜져서 어플을 작동하는지에 대한 패턴은 알아내지 못했다. 그냥 자기 마음대로 켜져 버린다.

“예. 감사합니다, 고객님. 투자상담사 이진석이었습니다.”

하루에 보통 수십 통의 전화가 온다. 많으면 백 통 이상 오는 경우도 있다.

절반은 쓸데없는 전화고 나머지 절반은 어떤 종목에 투자를 해야 하는지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다. 앞서 말했다시피 펀드 매니저는 극히 한정되어 있는 숫자이기 때문에 그 매니저를 대신해서 우리 같은 브로커들이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펀드 매니저가 운용 중인 펀드를 판매하거나, 회사 방침에 따라 필수 종목을 선정해 그것을 사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 전부터 회사 방침과는 완전히 다른 루트를 타고 있었다.

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을 활용해 고객에게 알려 주고, 고객을 대신해 트레이드하여 그에 대한 수수료를 챙겼다.

생각보다 이거 짭짤하다.

내가 입을 좀만 더 잘 터는 놈이었다면 더 많은 금액이 쌓였을 것이다.

“야! 이진석! 이진석 이 자식 어디 있어?!”

그때 오영식 팀장이 씩씩거리며 내게 다가와 상을 내려쳤다.

“너 이 새끼 박 과장님이 운용 중인 펀드 손절하라고 고객한테 말했다며? 그것 때문에 지금 큰손 고객 하나가 개지랄 떨고 있잖아! 너 대체 뭐라고 씨부린 거야?”

난 별로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아. 그거요? 박 과장님이 운용 중인 채권 펀드가 중국 기업 쪽 채권이 많이 섞여 있잖아요. 그런데 최근 중국 동향이 매우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조언을 살짝 드렸을 뿐입니다.”

“뭐, 뭐야? 너 미쳤어? 너 따위가 뭔데 그따위 조언을 하고 앉았어?! 넌 그냥 회사가 팔라고 하는 것만 팔면 되는 거야! 근데 감히 독단 행위를 해?”

“고객의 돈을 지키는 것이 저희의 일이지 않습니까? 전 적절한 조언을 해 드렸을 뿐이고 선택은 고객의 몫입니다. 혹시라도 정말 중국 쪽 채권에 문제가 생기면 저흰 조언을 분명히 드렸다고 변명할 수가 있잖습니까.”

내가 조목조목 반박하자 오영식 팀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하-. 이 새끼 보통 또라이가 아니었네. 중국 쪽 채권이 안 좋아? 지금 중국은 호황이야, 호황! 내일이면 그것들 상해종합지수가 5,100을 넘어! 무슨 말인지 알아? 5,100이라고. 5,100!”

지금 중국은 어마어마한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중국 정부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책으로 시민들을 투자 세계에 끌어들인 결과다. 작년 10월 기준으로 2,000대를 서성이고 있던 상해종합지수는 현재 5,000을 돌파해 5,100구간을 노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상승세가 계속되어 6,000을 돌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로 인해 국내 투자자들도 현재 중국 쪽에 많이 몰린 상태였다.

우리나라에 몇 배나 되는 크기를 자랑하는 만큼, 어마어마한 자본이 쏠려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중국발 버블이다.

예리한 전문가들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 버블이란 말을 쏙 뺀 채 고객의 돈을 유혹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이 버블이 5,800에서 6,000까지는 이어질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내가 어플을 통해서 본 미래는 달랐다.

중국 버블은 곧 터져 버리고 만다.

“너 이거 어떻게 책임질 거야? 펀드를 내다 팔아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펀드에서 손을 떼게 해? 네가 제정신이야?! 너 하나 때문에 소문 잘못 퍼져서 펀드 나가리되면 어쩔 거냐고!”

솔직히 내가 박 과장의 메인 고객에게서 전화를 받은 건 어제까지 합쳐서 세 명밖에 없다.

보통 펀드 매니저에게 직통으로 전화를 걸지 않고 회사 전화로 걸어 박 과장 팀의 팀원들에게 현황 보고를 듣는다. 정말 중요한 일이 있으면 그땐 매니저에게 직접 전화를 하기도 하는데, 보통은 우리가 대신 받는다.

그러다 내가 펀드에서 손을 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그 얘기가 박 과장 귀에까지 들어간 모양이다.

“이대로 안 끝난다. 명심해. 회사 차원에서 네 독단 행동에 대한 징계가 있을 거야.”

오영식 팀장은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서 자리로 돌아갔다.

슬쩍 눈치를 보고 있던 현식이가 다가와 물었다.

“야. 어쩌자고 그랬어?”

“뭐가?”

“박 과장 고객들! 그러다가 너 잘린다? 아니. 너 설마 일부러 잘리려고 이러는 거냐? 당첨금도 있겠다, 이제 슬슬 바닥 뜨려고?”

“아니야. 그 사람들 돈 지켜 주려고 한 거지.”

“넌 진짜 중국이 붕괴할 거라 보는 거야? 뭐, 솔직히 아줌마들이 애기 업고 쌈짓돈 들고 오는 거면 이제 붕괴 시기가 다가왔다는 건 맞긴 한데, 6,000까지는 다들 갈 거라고 하잖아?”

“음. 내 분석은 좀 달라. 이거 곧 있으면 터져. 그것도 세게.”

“언제?”

“한 이틀 후에 터지지 않을까?”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현식이는 내가 헛소리를 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녀석이 저런 반응을 보일 정도로 현재 중국의 미래는 매우 밝다.

딱 차트만 보면 말이다.

그러나 나는 현재의 차트를 믿지 않는다. 어차피 차트를 보고 미래를 예측할 순 없으니까.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정보를 믿는다.

그리고 정확히 이틀 후에 중국 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한다.

그때 오영식 팀장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

나한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러 올까, 아니면 그냥 모른 척 넘어갈까?

뭐가 되었든, 벌써부터 그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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