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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천재가 되었다-3화 (3/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3화

“흐흐. 진석아. 나는 네가 참 좋다. 앞으로 우리 쭉 계속 베프인 거지?”

“이 새끼가 제대로 취했나 보네.”

나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현식이를 부축해 가며 간신히 택시에 태웠다.

원래 잘 취하지 않는 놈인데, 오늘은 정말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퍼마셨다.

“내가 항상 널 볼 때마다 그냥 마음에 걸렸어. 괜히 널 속이는 거 같고.”

“뭘 그게 속이는 거라고. 그냥 평소 했던 대로 하면 돼, 인마.”

“흐흐흐.”

나는 일단 가장 가까운 우리 집으로 데려가 놈을 내 침대에 눕혔다.

어후. 술 냄새. 저러다 토하는 건 아니겠지.

하긴. 돈도 많은 놈인데, 혹시라도 토하면 새로 사 주겠지.

“어디 보자 시간이······.”

벌써 시간은 오후 11시가 넘었다.

로또 추첨이 이미 끝난 시간이라는 것.

나는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며 스마트폰을 켰다. 그리고 집 성경책 밑에 고이 모셔 둔 로또 용지를 꺼내 바코드를 찍어 보았다.

[축하합니다!]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여러 개의 풍선과 축하한다는 큼지막한 글씨였다.

그리고 첫 번째 줄에 1등 당첨이라는 글자가 붉게 쓰여 있었다.

“으아아아-!!”

나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포효했다.

다행히 현식이는 세상모르고 잠에 빠져 있었다.

* * *

“차 있는 거 왜 얘기 안 했냐?”

“밑바닥에서부터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회사에 취직했으면, 다른 직장인들처럼 살아야지.”

무려 제일 금융 회사 사장의 아들이라는 놈이 다른 금융 회사에 취직한 것도 모자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살다니.

거기다가 이놈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작은 평수의 오피스텔에 들어가 그곳에서 생활을 했다. 누가 이놈을 금융사 사장 아들이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런데 차가 없는 건 아니었다.

떡하니 포르쉐 한 대를 끌고 온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 로또 1등 되면 보통 다른 사람한테는 말을 안 하지 않나?”

“넌 돈 많잖아. 내가 1등 당첨금 받아도 네 계좌에 들어 있는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야.”

“음. 그런가? 로또 당첨금이 그렇게 적나? 내가 그쪽은 잘 몰라서.”

이렇게 보면 또 재수 없는 다이아 수저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놈이기에 나는 내가 로또 1등에 당첨되었다는 걸 현식이에게 알렸다.

다른 친구였으면 절대 말하지 않았겠지만, 현식이라면 마음이 놓였다. 그만큼 친하기도 했고, 이놈은 또 돈이 많으니까. 로또 당첨금쯤은 껌값으로 보일 정도로!

“고맙다. 태워 줘서.”

“이 정도는 해 줘야지. 대신, 소고기로 갚아라.”

“야. 한우로 사 줄게. 말만 해.”

일요일 밤은 거의 뜬눈으로 지새우고 나서 월요일 아침에 현식이가 일어나자마자 이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이놈은 처음엔 내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다가 사실이라는 걸 알고는 침착하게 어디선가 포르쉐 한 대를 끌고 와 농협 본점까지 태워 주었다.

나같이 덜렁대는 놈은 분명 지하철이나 택시를 타다가 로또 용지를 잃어버릴 게 뻔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잘 받고 와라. 난 카페에서 기다릴 테니까.”

“좀 오래 걸릴 텐데.”

“어차피 우리 둘 다 병가 냈잖아. 카페에서 커피나 여유롭게 마시련다.”

말이 병가지, 사실은 그냥 우리 둘에게 있는 휴가를 깎은 셈이다.

아마 내일 돌아가면 팀장한테 한 소리 들을 게 뻔하다. 갑자기 병가를 내고 두 사람 모두 잠수를 타 버렸으니까.

“어서 오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은행에 들어서자 로비에 있는 직원이 정중하게 물어 왔다.

나는 속삭이듯 말했다.

“저··· 로또 1등 당첨금 받으러 왔는데요?”

“아, 네.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직원은 빙긋 웃으며 카운터에 있는 어느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무섭게 생긴 두 남성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같이 가시죠.”

“······예.”

흡사 죄를 짓고 끌려가는 기분이다.

난 이들의 반강제적인 인도에 따라 소문으로만 들었던 VIP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도착한 층에는 어느 노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그들도 당첨금을 받으러 온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여기 앉으세요.”

무섭게 생기신 어깨 형님들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시고, 여직원 하나가 내게 밝은 미소를 보이며 다가왔다.

“드시고 싶은 차 있으세요? 메뉴판이 있으니, 천천히 골라서 말씀해 주세요.”

“아. 전 아이스티로······.”

“예.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생각보다 그리 딱딱한 곳은 아니었다.

당첨자들이 편하게 기다릴 수 있게 원형 테이블이 각각 놓여 있었고, 직원들은 고객이 원하는 음료를 가져와 대접해 주었다.

아이스티 한잔에 쿵쾅거렸던 심장이 조금 진정되었다.

“월요일에는 당첨자분들이 많이 오세요. 그래서 시간이 꽤 걸릴 거예요.”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당첨 후기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보통 4시간 정도 기다렸다고 한다.

“젊은이도 당첨이 돼서 오셨수?”

아이스티를 조금씩 마시면서 심호흡을 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있던 노부부가 내게 말을 붙였다.

“아, 예. 운이 좋았어요.”

“허허. 나도 운이 좋았다오. 우리 각시가 어디서 로또 한 장을 가져왔는데, 그게 일등이 됐지 뭐요?”

“축하드립니다, 어르신.”

“이 나이에 축하는 무슨. 지금 돈이 왕창 생긴다고 해서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젊은이는 좋겠수. 그 돈을 즐겁고 뜻깊게 쓰시구려.”

“예. 어르신도 아직 창창하시잖아요. 분명 즐겁게 쓰실 곳이 있을 겁니다.”

“허허. 난 이미 어디다 쓸지 여기 각시와 결정했다오. 전부 기부할 거야.”

전부 기부를 한다고?

나 같은 놈은 절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대, 대단한 결정을 내리셨군요.”

“내가 젊은이처럼 젊었다면 다른 결정을 내렸겠지. 근데 이 나이에 무슨 영광을 보자고? 그러니까 젊을 때 감사하면서 즐겨요. 생각보다 세월이 참 빠르더라고.”

“명심하겠습니다.”

참 대단한 분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할머니는 아무런 말씀도 없이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계시다. 그런 내 시선을 의식한 탓인지, 할아버지가 푸근하게 미소를 지었다.

“우리 각시가 기억력이 참 좋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냥 어린애가 됐어.”

“아······ 예.”

“그랬더니 나도 덩달아 회춘한 기분이 들더라고. 허허허.”

말은 저렇게 해도 마음은 찢어지실 텐데, 정말 밝은 할아버지였다.

“어르신. 이제 들어오셔도 됩니다.”

“그래요. 고마워요.”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조심스레 일으킨 다음 여직원을 따라나섰다.

난 두 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원래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그래도 결코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난 절대 저 할아버지처럼 못 할 것 같다.

자신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당첨금을 전부 다 기부하다니.

그게 가능한 얘기인가?

아니면 저 할아버지가 여의도에 빌딩 몇 채를 갖고 있는 부동산 부자일 수도 있다.

[야. 언제 나오는 거냐? 3시간이 지났는데?]

그렇게 아이스티를 3잔째 마시고 있을 때였다.

현식이가 기다리기 힘들었는지 문자를 보냈다.

[곧 들어갈 거 같아.]

[와. 아직도 기다려? 당첨된 사람이 많긴 많은가 보네.]

[좀만 기다려. 미안하다.]

1등부터 2등까지 당첨금을 받기 위해 여기로 달려오니, 여러모로 사람이 몰린다.

나 혼자 있던 대기실이 절반 정도 찬 상태였다.

“고객님. 준비됐습니다. 같이 가실까요?”

그리고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잠시 멀쩡했던 심장이 다시 쿵쾅댄다.

나는 여직원의 안내에 따라 지점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안경을 쓴 중년의 남성이 환하게 날 반겨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자. 앉으시겠어요?”

“아, 예.”

“그리고 신분증과 당첨된 용지를 주시면 됩니다.”

지점장은 내 신분증과 용지를 건네받으면서 동시에 제 명함도 함께 건넸다.

김용일 지점장.

그는 직원들과 함께 당첨 용지와 신분증을 확인했다.

“확인되셨습니다.”

혹시 뭔가가 잘못된 건 아니겠지?

“1등 당첨을 축하드립니다, 이진석 고객님. 당첨금은 약 38억으로 세금을 제하고 나서 약 25억을 수령하실 겁니다.”

25억.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숫자다.

“본인 명의로 된 농협 통장이 있네요. 여기다 바로 넣어 드릴까요?”

“예. 그,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테니까, 잠깐 인터뷰를 해도 괜찮을까요?”

“인터뷰요?”

“예. 원래 저희가 1등에 당첨되신 분들은 꼭 인터뷰를 하거든요.”

이것도 인터넷에서 본 듯한 내용이다.

지점장은 여직원 하나와 함께 내게 혹시 1등에 당첨되기 전에 꿈은 무엇을 꾸었으며 보통 로또를 일주일에 몇 번을 사는지 등에 대해 물어보았다.

나는 그냥 적당히 포장을 해서 말했다.

고장 난 핸드폰이 미래의 커뮤니티 글을 보여줘서 1등이 되었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혹시 저희 은행에서 운용 중인 펀드에 가입할 의향은 없으신가요? 전문 투자사와 함께 재테크를 하시면 더 크게 돈을 불리실 수 있을 겁니다.”

난 딱 잘라 거절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제가 갚아야 할 빚이 있어서······.”

“아. 금액이 크신가요?”

“······.”

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구구절절 말하기보다는 침묵을 지키는 게 더 좋은 방법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지점장도 내 표정을 보고는 더는 권유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신다면 언제든 제 명함에 적힌 번호로 연락 주십시오. 저희 은행 VIP 이신만큼 확실하게 모시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윽고 여직원이 내게 다가와 VIP라고 쓰여 있는 통장을 건넸다.

“고객님. 전부 입금되었습니다. 확인해 보시겠어요?”

여기 은행은 오랫동안 쓰질 않아 어플로 등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어플도 깔지 않아 입금 문자도 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날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통장을 열어 보았다.

2,587,416,870원.

이게 꿈이라면 제발 깨지 말아다오.

“안녕히 가십시오, 고객님.”

나는 극진한 지점장의 인사를 받으며 은행 밖을 나섰다.

경호원들은 내가 무사히 은행 밖까지 나갈 수 있도록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기다리다 지쳐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던 현식이가 날 발견했다.

“야! 어떻게 됐어?”

난 멍한 얼굴로 현식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 한 대만 쳐 줘라.”

“그래.”

짜악-!

“으악!”

치라고 했더니, 정말 망설이지 않고 쳤다.

그래도 녀석의 싸대기 덕분에 정신이 확 들었다.

꿈이 아니다. 그리고 이 통장에 찍힌 25억은 이제부터 내 돈이다.

“으아아아-!!”

난 속에서 끓어오르는 뭔가를 주체하지 못하고 크게 포효했다.

“깜짝이야.”

그러자 현식이는 주변을 살피더니, 얼른 내 곁에서 멀어져 날 모르는 사람인 척 행동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가 봐도 로또 1등이 되어 당첨금을 찾은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기쁜 걸 어떡한담?

내 인생에 이렇게 행복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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