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2화
환상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난 금방 현실로 돌아와 피식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떤 놈이 이딴 장난을.”
이틀 뒤의 주식 시장을 알 수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핸드폰을 이것저것 만져도 사라지지 않던 미래 커뮤니티 어플이 120분의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나서야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아! 물론, 또다시 블랙아웃이 된 채로 말이다.
“장난하냐?”
핸드폰은 또 작동을 하지 않는다. 보이는 건 까만 화면 속 일그러진 내 얼굴이다.
왠지 120분 동안 헛것을 본 듯한 기분마저 든다.
“아니. 방금 전까지는 잘 되다가 왜 이래?”
귀신에 홀린 건가 싶다가도 나는 컴퓨터를 켜서 주식 갤러리에 들어가 보았다.
날짜는 6월 1일.
주식 갤러리는 별 쓸모없는 얘기들로 가득했다.
내가 핸드폰을 통해 봤던 그건 대체 뭐였을까?
궁금증에 이번에는 인터넷에 IOC 일렉트릭을 검색해 보았다.
“음······.”
연이은 호재.
IOC 일렉트릭 기업은 해외 기업과도 계약을 체결했다는 기사를 크게 내보냈었다.
규모가 조금 큰데, 내가 아까 어플을 통해 본 미래의 갤러리에서는 규모가 과장되게 부풀려졌다는 게 밝혀졌다고 한다. 물론, 그 정보가 확실하다고 볼 순 없다.
누가 미래 일을 알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알고 있다면 난 일단 로또 번호부터 알아내서 살 것이다.
“내일 맡기든가 해야지.”
방금 전 있었던 일은 금방 기억에서 잊고 난 술기운에 잠을 청했다.
오늘은 참 이상한 하루였다.
* * *
정확히 이틀이 흐른 뒤.
“지, 진짜였잖아.”
나는 멍한 얼굴로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6월 3일 금요일.
IOC 일렉트릭 기업의 조세현 대표가 횡령죄로 기소되었다.
이 미친놈은 일부러 연이어 거짓 호재를 날려 주가를 올려놓고 한 번에 돈을 삥땅 쳐서 해외로 도주하려 했다가 꼬리를 밟혀 붙잡히고야 만 것이다.
“뭘 그렇게 멍 때리고 쳐다보고 있어? 회삿돈 횡령하는 놈 처음 봐? 정신 차려.”
넋을 놓고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내 뒤통수에 대고 오 팀장이 짧게 혀를 찼다.
“에휴. 그리고 지금 박 과장님 기분 안 좋으니까 비위 잘 맞춰라. 조세현 대표, 저 새끼가 사고 하나 쳐서 우리 쪽 고객들도 피해 좀 봤다더라.”
박 과장은 펀드 매니저로 꽤 많은 자금을 운용하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 팀은 박 과장 아래에 돌아가고 있는데, 그가 만든 펀드를 파는 것이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성질 더러운 놈이 더 더러워질 수 있다니.
아무래도 그가 만든 펀드에 IOC 일렉트릭이 포함되어 있는 모양이다.
괜히 불똥 튀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그리고 사실, 지금 박 과장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후. 이게 뭐라고 심장이 떨리냐.’
이틀 전 나는 IOC 일렉트릭 주가가 폭락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 고장 난 스마트폰을 통해서 말이다.
당연히 나는 고장이라 여겨 수리를 맡겼는데, 수리 비용이 너무 많이 나와 그냥 포기하고 싼 보급형 스마트폰을 사 놓았다.
그 고장 난 스마트폰은 현재 우리 집 서랍에서 잘 주무시고 계신 상황.
누군가에게 해킹이라도 당했나 싶었는데, 정말로 미래의 정보를 주는 거였다니.
아냐. 침착하자.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일 수도 있다.
“야. 오늘 오랜만에 소주에 삼겹살 고?”
내 동기인 최현식이 퇴근하려는 나를 붙잡았다.
“미안. 내일 먹자, 내일.”
난 현식이의 손을 뿌리치고 집으로 달려가 서랍에 있는 핸드폰을 꺼냈다.
여전히 아무런 화면도 뜨지 않는다.
이것저것 눌러 보았지만, 그래도 계속 화면은 까맣다.
배터리를 충전시켜 보아도 잠잠하다.
혹시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잠깐 켜졌던 것은 아닐까?
“멍청한 새끼. 세상 딱 한 번 찾아오는 그 기회를 놓치냐!”
그날이 유일한 기회였나 보다.
나는 한심한 스스로를 탓하며 애꿎은 벽을 쿵쿵 치고 있었다.
그때 뭐라도 했었어야 했는데!
띠리링-.
바로 그때였다.
핸드폰이 켜지는 소리와 함께 까맣던 화면이 밝게 돌아왔다.
나는 혹시라도 꺼질라 후다닥 핸드폰을 집어 올렸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료 베타 기간 동안 많은 이용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의 커뮤니티는 네이스 포털 사이트에서 운영 중인 대박 주식 카페입니다. 날짜는 6월 5일입니다.]
[이용 시간은 총 120분입니다.]
“떠, 떴다!”
6월 5일이면 저번과 똑같이 이틀 단위의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다모여 사이트가 아니라 네이스 포털 사이트에서 운영 중인 주식 카페였다.
뭐, 그렇다고 해서 정보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성인이라면 누구나 스마트폰 하나로 주식 시장에 참여 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에, 주식 카페는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이번에 산 종목이 3% 떨어졌는데, 내일 개장하면 팔까요??]
[현재까지 7% 상승했습니다.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상따 하시는 게 맞습니다.]
[대한 제약이 호재를 냈네요. 회원님들의 분석이 궁금합니다.]
주식 갤러리보다는 뭔가 약간 차분한 느낌의 글들이다.
하지만 저번처럼 큰 이슈는 없어 보였다.
대개 자잘한 것들을 토론하고 있는데, 나는 어떤 종목이 상승하고 혹은 하락을 하는지 읽고 공책에 적어 놓았다.
115분 동안 글들을 쭉 따라 들어가다 보니, 어느새 내게는 20개의 종목이 손에 쥐어졌다. 이들 중 7개는 상승하고, 나머지 13개는 하락한다.
[남은 시간 05:35]
기대가 좀 컸던 탓일까.
약간 실망스러웠다.
IOC 일렉트릭처럼 크게 뭔가 터질 줄 알았는데.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이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20개의 종목을 건졌고, 어떤 게 상승세를 타는지도 알아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보는 게 맞겠지?”
카페라서 그런지, 갤러리만큼 글이 대량으로 올라오진 않는다. 그러나 이 정도면 일정한 수익을 올릴 수가 있다.
그런데 그때 내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로또 번호 확인해 보셨나요? 번호 확인하시라고 가져왔습니다!]
잠깐만.
로또?
나는 홀리듯 가장 아래에 있던 글을 클릭했다.
* * *
“뭘 그렇게 실실 쪼개고 있냐?”
어제 미뤄 두었던 소주에 삼겹살을 주말 낮부터 즐기게 되었다.
최현식은 무슨 낮부터 소주를 마시냐면서 핀잔을 주다가도 벌써 2병을 혼자 다 처마셨다.
웬일로 내가 소주를 다 산다고 하니, 이때다 싶어 연신 퍼마시는 모양이다.
그래. 그동안 네가 나 많이 사 줬으니까, 오늘은 맘껏 먹거라.
“오늘은 뭘 해도 그냥 기분이 좋다.”
“왜? 로또라도 됐냐? 아니지. 이번 주 거 아직 추첨 안 했잖아.”
순간 뜨끔해서 잠깐 표정 관리가 안 됐다.
왜냐하면 난 오늘 로또 1등 당첨자가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어제 봤던 카페 글을 통해 나는 오늘 추첨될 로또 번호가 뭔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벌떡 일어나 로또부터 샀고, 그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흠흠. 넌 만약에 수십억이 생기면 뭘 하고 싶냐?”
나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면서 화제를 돌렸다.
“수십억? 진짜 로또라도 됐냐?”
“그냥 물어보는 거잖아, 인마.”
“음······. 글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보통 사람이라면 그 정도 생각은 한 번쯤 다 하지 않냐?”
“내가 보통 사람이 아니긴 하지. 흐흐.”
현식이와 나는 대학 시절 동기다.
뭐, 동기라고 해서 갑자기 친하게 지낸 건 아니고 저놈과 친해지게 된 계기는 군대에서였다.
군대 훈련소에 들어가 보니 나와 같은 생활관에 최현식이 있었고, 훈련소 훈련이 끝나고 나서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도 똑같은 곳에 배치를 받았다.
그 계기로 우리 둘은 친해져 어찌어찌 흘러가다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놈 집안 사정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우리 아버지가 무슨 일 하는지 너 한 번도 안 물어봤잖아. 우리 집안 얘기도 안 물어봤고.”
“그야······ 우리 집안 사정이 워낙 막장이라서. 괜히 다른 집안 쪽 캐물으면 나까지 까야 되잖아.”
“알아. 네가 저번에 술 취해서 줄줄이 말했잖아. 아버지 어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너 혼자 키우신 거. 거기다가 지금은 병원 신세 지시고 있고.”
다행히 어머니가 큰 병에 걸리신 건 아니다. 그냥 나이가 드시면서 젊었을 때 고생한 게 한꺼번에 몰아치고 있는 건데, 제발 더 커지지만 않았으면 한다.
“넌 내 호구 조사 다 하고 있었네. 그러니까 나도 호구 조사 한번 하자. 네 아버지 무슨 일 하시냐?”
“회사.”
“회사? 직장 다니시는구나. 직급이 좀 되시나 봐?”
이놈은 정말 자주 내게 고기를 사 먹이는 놈이었다.
내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해도 자신이 돈을 내는 데에 별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그래서 집안이 좀 잘산다고 추측만 했다.
“음. 많이 높지. 금융 회사 사장이시니까.”
“아. 금융 회사 사······ 뭐라고?”
하마터면 아까운 술을 바닥에 흘릴 뻔했다.
“제일 금융. 거기 사장이셔.”
“뭐어?! 아니. 그걸 왜 지금 얘기해?”
“네가 안 물어봤잖아.”
맙소사.
내 친구가 제일 금융 회사 사장의 아들이었다니.
이건 보통 금수저가 아닌 놈이었잖아.
제일 금융 사장이라면 밑바닥부터 시작해 지금의 제일 금융을 만들어낸 사람이 아니던가?
우리나라 5대 금융사에 들어가 있을 정도로 제일 금융은 덩치가 꽤 컸다.
그런데 이놈은 나한테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런 티를 냈어야 내가 조금이라도 눈치를 채든가 하지.
차 한 대 없이 나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놈인데.
“내가 왜 너랑 제일 친한 줄 아냐? 다른 놈들은 내가 제일 금융 회사 사장 아들이라는 배경을 보고 접근하는데, 넌 처음부터 몰랐잖아. 그래서 나도 네가 가장 편했나 봐.”
“와-. 진짜 식스센스급 반전을 뛰어넘네.”
난 잔에 담긴 소주를 원샷했다.
“그래서 수십억이 생기면 뭘 할지 고민해 본 적이 없구나. 그럴 돈은 처음부터 있었으니까.”
“그런 셈이지.”
“크-. 재수 없는 새끼.”
“흐흐. 이제 이 형님이 좀 달라 보이냐?”
“그래봤자 군대에서 훈련할 때마다 얼타던 놈이랑 똑같지 뭐. 네가 부자든 아니든 난 상관없어. 너한테 돈 빌려 달라는 소리는 죽을 때까지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니야. 정말 필요하면 말해. 너한테는 빌려줄 수 있지. 대신, 이자가 좀 있겠지만.”
“됐어, 인마. 술이나 마셔.”
저 말은 진심이었다.
오늘 로또 1등이 되면 돈을 빌릴 필요가 없거든.
그리고 그 카페에서 말했던 것처럼 당첨금은 45억이나 된다.
물론, 내가 새로운 당첨자로 추가되면서 당첨금이 줄어들게 될 것이고 세금도 떼야 한다. 그래도 수십억이 다음 주에 내 계좌에 들어온다는 건 변함이 없다.
“잠깐만. 근데 너 군대는 왜 온 거냐? 그 정도 집안이면 충분히 다른 곳으로 빼도 되는 거잖아.”
나와 이놈은 23사단에 배치를 받았었다.
23사단은 최전방으로 한겨울에 잠도 자지 않고 GDP에서 보초 근무를 서야 하는 빡센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건 사고가 많았는데, 아군에게 수류탄을 던지고 탈영하는 미친놈도 있었다. 하지만 제일 금융의 재력이면 면제를 받거나, 상근으로 빠질 수 있지 않은가.
면제받는 게 어려웠다면 쉬운 보직이라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보통 재벌집은 다 그렇게 하지 않나?
“말도 마라. 우리 고조할아버지의 할아버지부터 뼛속까지 군인이셨다. 6.25 참전에 베트남 전쟁도 나가셨고, 아버지도 장교 출신이셔서 군에 대한 자부심이 크셔. 우리 집안사람들은 돈으로 군대 빼려고 하면 그날로 호적에서 파여.”
“헐······.”
오늘 제일 금융을 다시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