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1화 (1/200)

금융계 천재가 되었다 1화

“이진석 사원. 오늘도 쪽박이야? 새해 밝은 지 반년이나 됐는데, 슬슬 돈 벌 때 되지 않았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오영식 팀장이 오늘도 날 놀리듯 잔소리를 퍼부었다.

“전광판을 좀 봐라. 저기 양 사원은 오늘도 왕창 팔아먹었잖아. 나도 제발 팀 보너스 좀 거하게 받아 보자.”

수백 명이 모여 있는 이 넓은 사무실 중간에 떡하니 설치된 전광판.

그곳에서는 장을 마감하기 전까지 누가 가장 많이 고객에게 주식, 혹은 채권을 팔아 이익을 남겼는지 보여 준다.

일주일 동안 톱 5를 유지하게 되면 회사로부터 보너스를 받게 된다. 만약 한 달 동안 톱을 유지하게 되면 더 큰 보너스를 받는다.

“그 입을 털어. 입을! 우리 하는 일이 주가 예측하는 거 같냐? 아니야. 어떻게 하면 더 잘, 효율적으로 개미들의 등골을 빼 먹을까 궁리하는 게 우리 일이야.”

주식투자상담사, 혹은 금융투자상담사.

말이 상담이지, 실상은 주식 브로커다.

시대가 바뀌면서 모두 인터넷 혹은 어플을 통해 개미들은 개인 트레이드를 한다. 그로 인해 주식 브로커들은 싹 사라질 거라 예상했지만, 다른 직종으로 변질되었다.

우리의 일은 펀드 매니저가 만든 펀드를 다른 고객에게 파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주식에 관련된 잡다한 것들을 고객에게 팔아치우는 직업이라는 것.

펀드 매니저가 일일이 모든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 순 없지 않은가?

그들의 자잘한 업무를 우리가 대신 맡고 있다.

은행에서 고객을 응대하며 업무를 보는 은행원도 비슷한 일을 한다.

돈이 좀 있어 보이는 고객에게 각종 상품을 파는 것이 그들의 일이다.

‘그게 쉬웠으면 내가 벌써 다 팔아먹었지.’

펀드 매니저처럼 우리가 펀드를 만들어 고객의 돈을 마음대로 운용할 순 없다. 대신,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펀드를 홍보하거나, 특정 주식을 사시라고 설득할 수는 있다.

개미들의 등골을 어떻게 빼먹을까 궁리하는 것이 우리의 직업이란 것이다.

입을 잘 털어야 성공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주식 브로커다.

당연히 주가 예측을 잘 해서 이익을 남기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주식은 하나님 말고는 예측할 수 없는 도박판이라고 했던가.

내가 속해 있는 이곳 신화 금융도 예측할 수 없는 판에 돈을 걸기보다는, 차라리 예측 가능한 시장에 돈을 거는 것을 선호한다.

신화 금융처럼 거대한 투자 회사일수록 정보 수집이 빠른데, 미리 그것을 공개하지 않고 회사 내부에서 검토한 뒤에, 최대한 회사가 이익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투자를 시작한다.

그로 인해 고객들이 크게 피해를 입는 경우도 생기지만, 투자 회사라는 곳이 본래 스스로의 이익을 챙기고자 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고객의 안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2007년에 서브프라임이 터졌을 때, 개미들만 모두 죽어 나가고 거대 금융계 회사들은 건재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어차피 주식 시장은 전부 사기꾼들이 판을 치는 곳이야. 누가 더 사기를 잘 치느냐에 따라서 주가가 변동하는 거지. 그러니까 최 매니저도 어떻게 하면 내가 저 새끼를 속여 먹을까- 하고 고민을 잘 해 봐.”

오영식 팀장도 한때 톱을 유지하며 주식판 위를 날뛰던 사람이기에 그의 조언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맞다.

우리들은 독단적으로 투자를 할 수 없는 곳이다.

최대한 회사가 지정해 주는 곳에 고객이 돈을 투자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영 탐탁지 않게 여기는 고객을 설득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결국 누가 고객를 잘 속여서 회사가 원하는 곳에 돈을 많이 넣었느냐에 따라 톱 순위가 바뀐다는 것이다.

“그만 퇴근하겠습니다.”

“그래. 오늘 일찍 자고 내일은 좀 잘 해 보자고.”

“예, 팀장님.”

장이 끝나는 시간은 15:30이지만, 시간외 종가와 시간외 단일가가 남아 있기 때문에 18:00까지는 계속 긴장을 해야 한다.

그 이후에는 자잘한 서류 작업이 이어지고 만약 급한 것이 아니라면 19:00에 칼퇴근을 할 수가 있다.

오늘은 도저히 회사에 남아 있을 기분이 아니라서 나는 빠르게 일을 마무리 짓고 퇴근했다. 저기 먼저 앞서가고 있는 양우혁 매니저는 팀원들과 함께 회식을 하러 가고 있었다.

일주일 스코어에 팀원 중 하나가 톱 5에 들어가면 그 팀은 회식비를 지원받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기 때문이다.

참 이 회사도 여러모로 사람 굴릴 줄을 아는 것 같다.

“후우-.”

담배를 끊었는데, 오늘따라 담배가 그립다.

편의점 앞에서 몇 번 서성이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렵게 끊은 담배다. 다시 피우게 된다면 그땐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그 돈으로 차라리 로또를 사는 게 낫지.”

편의점 옆에 있는 복권방이 눈에 들어와 나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로또도 결국 나에 대한 투자이지 않은가?

매주 만 원씩 투자해서 꼭 1등이 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사실 그건 개소리고, 그냥 절박하기 때문에 산다.

“1등 당첨되세요.”

로또 용지를 건네는 점원의 말에 조금 힘이 난다.

그래. 로또만 되면 내가 다 때려치우고 하루 종일 게임만 하면서 펑펑 놀 거다.

개그 컨셉을 잡고 BJ를 하면 꽤 잘 먹히는 거 같던데, 나도 그거나 해 볼까?

어차피 로또 1등 되면 기본 10억에서 20억은 넘는다. 그걸로 먹고사는 데에는 문제없잖아? 엄마 병원비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고.

아직 추첨도 하지 않은 로또를 쥐고 오늘도 난 망상에 빠져들었다.

빠아아앙-!

그리고 망상에 잠긴 대가를 오늘 혹독하게 치르려는 것 같다.

신호등이 빨간불이라는 것도 모른 채 횡단보도를 건너다 급브레이크를 밟는 화물차 한 대를 만났다.

화물차가 바로 앞까지 다가오고 있었지만, 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람이 순간 놀라면 몸이 경직된다는 게 이런 거였나?

거기다 주마등이 스치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호랑이는 가죽이라도 남기는데, 난 죽으면 남길 게 빚밖에 없다.

병상에 누워 있는 우리 엄마는 누가 돌봐 주겠는가?

그래도 뭔가 마음의 짐이 전부 내려지는 듯하여 순간 편안하다는 생각마저 든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야 이 새끼야! 뒤지려고 환장했어?!”

하지만 신은 아직 내 목숨을 원하지 않았다. 잠시 내려놓았던 마음의 짐도 다시 내 어깨 위에 올라왔다.

요즘 차가 좋긴 좋은지, 저 무거운 화물차도 무식하게 달리는 와중에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금방 서는 모양이다.

나는 당장이라도 차에서 삽을 하나 꺼내 휘두를 것처럼 생긴 중년의 남성에게 연신 허리를 숙이며 용서를 빌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정신이 없어서요. 정말 죄송해요.”

내가 거듭 사과를 하자 다행히 남성분도 화가 풀린 듯 보였다.

“거 젊은 양반이 뭘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어요? 그러다 내가 박기라도 했으면 나만 철창행이야.”

“예. 정말 죄송합니다.”

“어후. 간 떨어질 뻔했네. 아무튼, 조심 좀 하고 삽시다.”

화물차가 다시 지나가고 나서야 나는 내가 스마트폰을 떨어뜨렸다는 걸 알아챘다.

“아-. 고장 났네.”

아직 할부도 끝나지 않은 스마트폰인데, 화면이 블랙아웃 돼서 다시 켜지질 않는다. 떨어뜨렸을 때의 충격으로 맛이 완전히 간 거 같다.

이걸 어쩌나.

지금 시간에 A/S 센터가 열었을 리도 없고.

“젠장.”

나는 혼잣말로 욕지거리를 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자고 싶었지만, 어찌어찌 가까스로 일어나 샤워를 하고 밖을 나왔다. 그런 뒤 버릇처럼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쭉 들이켰다.

담배는 끊어도 이놈의 술은 끊을 수가 없다.

고생한 하루를 이 맥주 한 캔으로 보상받는 기분이다.

“진짜 맛이 갔나 본데.”

여전히 핸드폰은 켜지지도 않는다.

충전기에 꽂아 봐도 그대로다.

내일 잠깐 시간을 내서 센터에 맡기고 오든가 해야······.

띠리링-!

“깜짝이야.”

그때 갑자기 핸드폰이 스스로 켜지면서 밝은 소리를 냈다. 동시에 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식 시장이 개장되면 거래 시간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질 못한다. 그래서 언제 밖에 나갔다 오나 고심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핸드폰이 부활해 주었다.

“음? 오늘 날짜가 좀 이상한데?”

오늘 날짜는 6월 1일.

그런데 핸드폰이 보여 주는 날짜는 6월 3일이었다.

아까 잠깐 맛이 가면서 날짜도 이상하게 바뀐 모양이다.

나는 다른 곳에 문제가 없나 확인하기 위해 잠금을 해제하고 그 안을 확인해 보았다.

“이건 또 뭐야?”

그런데 잠금을 해제하고 나서 나온 건 처음 보는 화면이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미래 커뮤니티 센터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료 베타 기간 동안 많은 이용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늘의 커뮤니티는 다모여 사이트에서 운영 중인 주식 갤러리입니다. 해당 날짜는 6월 3일입니다.]

[이용 시간은 총 120분입니다.]

순간 핸드폰이 해킹을 당한 것이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었다.

120분 제한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익숙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자동 접속이 되었다.

다모여 사이트에서 운영 중인 주식 갤러리.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개인 자본금으로 투자 중인 개미들이 모여 서로 교류를 하는 곳으로, 현재 우리나라 주식 시장 상황이 어떤지를 실시간으로 보여 준다.

└내 돈 돌려내!!

└주가가 이렇게 폭락하는 게 말이 됩니까?

└조세현 대표를 사형시켜라!!

└야 이 나쁜 새끼야! 내가 여기다 꼬라박은 돈이 얼만데!

└그런 회사에 투자한 사람들이 멍청한 거 아닌가? 왜 남 탓을 하지?

갤러리에 글이 실시간마다 올라오고 있다.

작성 시간대는 6월 3일.

매 1분, 아니. 매 초 글이 올라오는 것을 보아 뭔가 사건이 제대로 터졌음을 의미한다.

처음에는 해킹이 아닌가 의심했다가, 지금은 그런 것도 잊고 갤러리에 뿌려져 있는 글들에 집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이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알아챘다.

“횡령?”

코스닥에 상장되어 있는 IOC 일렉트릭 기업의 대표가 횡령을 한 정황이 포착되어 구속되었다. 사실, 며칠 전부터 IOC 일렉트릭은 여러 호재를 발표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는데, 그게 모두 거짓이라는 것도 함께 밝혀지면서 주식이 휴지 쪼가리가 되어 버린 것.

그로 인해 그쪽에 투자를 하고 있던 갤러리 사람들은 지금 난리가 났다.

“우리 회사에서도 사 놓은 게 있던가?”

만약 이대로 회사가 파산을 하게 되고 주식이 모두 휴지 쪼가리가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 투자자들에게 돌아간다.

주식 시장에서는 생각보다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난다.

작전 세력에 의해 주목받지 못하고 있던 주식이 갑자기 부풀어 올라 개미들을 유혹하다 어느 시점에서 폭락해 수많은 피해를 입힌다.

그때마다 금융위원회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만, 붙잡는다고 해도 작전주에 관여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처벌을 내릴 수가 없다.

결국 주식 시장은 도박판이다.

개미들 중에서 노련한 사람은 작전 세력이 어떤 주식에 들어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경우가 있다. 그때 그들은 작전 세력에 편승하여 이익을 보고 빠르게 빠져나온다.

이런 치고 빠지기를 잘해야 단타 매매에서 크게 이익을 볼 수가 있다.

만약 내가 며칠 전부터 어떤 회사가 망할 거라고 미리 알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혹은 어떤 회사가 주식이 폭등할 거라고 미리 알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순간 두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