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266화 (266/271)

266 : nullit?s (3)

***

성남시 태평동,

‘인셉션 골목’으로 유명한 태평동 산동네 골목에 한 할머니가 초라하게 앉아 있다.

협소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골목에서 할머니는 노을에 반사되는 산동네의 전경을 삶의 무게에 짓눌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기훈이 할머니.’

사람들이 할머니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불린 것은 아니었었다.

어렸을 적에는 순례라는 이름으로,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고는 영진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다. 그리고 지금은 기훈이 할머니라고 불리우고 있었다.

그 어느 순간 하나 힘겹지 않은 순간이 없던 삶이었다.

부모의 사랑을 받기 힘든 가난한 집의 여섯째 딸. 중학교에 가는 대신 집안일을 돌봐야 했고,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친구들을 바라보며 공장에 나가야 했다.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하고, 그저 남들처럼, 다른 사람들 사는 것처럼, 밥걱정 없이 자식 키우며 살고 싶다고 바랬지만, 무정한 하늘은 그것 하나 들어주지 못했다.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두었지만, 막내를 남겨두고 모두 어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런 자식들이 그리웠는지, 남편 역시도 얼마 안 가 세상을 떠났다.

하나뿐인 아들을 키우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저 먹고 살라고, 이제 의지할 곳이라고는 자신뿐인 아들을 먹이기 위해서 돈 되는 일이라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행복했을런지도 모른다. 일찍 돈 벌겠다고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를 나온 아들은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 건실해 보이는 건설회사를 꽤 오래 다녔더랬다.

남들은 노가다라고, 힘든 일이라고 그렇게 흉을 봐도,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아들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산다는 것을.

아들이 결혼을 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가 태어났을 때는,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아들이 다짜고짜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불안한 느낌을 받았었더랬다. 그냥 큰 욕심 안 부리고, 이대로 회사 열심히 다니면서 소소하게 살면 어떻겠냐고 말해주고 싶었다.

믿을 수 있는 형님입니다. 어머니, 이제 제가 호강시켜 드릴게요.

자신만만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아들에게 차마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

말렸어야 했다. 안 된다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는 절대로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다면, 말렸다면, 믿을 수 있다는 형이라는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하는 일도, 며느리가 갓난쟁이 아들을 두고 도망가는 일도, 그리고 하나뿐인 아들이 알콜중독에 빠지는 일도, 유도 유망주라고 칭찬받던 손자가 집을 나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다 내 잘못이구나.

석양으로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며, 속으로 그렇게 자책하는 할머니의 귀에,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술에 취한 아들이 또 무언가를 부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아들이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저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속에 품어있는 답답함을 풀어낼 수가 없을 테니까.

손으로 눈가를 훔쳐낸 할머니의 눈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교복을 입은 학생.

순간적으로 손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할머니의 마음에 다시 어둠이 낀다.

손자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돈 벌겠다고, 숙식을 해결해주는 회사에 들어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전화를 걸어도 받는 경우는 열에 하나가 될까 말까였다.

손자일 리가 없었다. 설사 손자라고 해도, 지금 오면 안 되었다.

다시 집안에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시선은 여전히 점점 붉은색으로 물드는 노을을 향해 있었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면서, 손자의 앞길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면, 죽는 수밖에 없다고, 아들과 같이 죽는 방법뿐이라고, 그렇게 속으로 되새기고 있었다.

***

-오빠. 이제는 진짜 좀 그만해!

전화기 너머로 여동생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김창회는 그저 무감정한 시선으로 아무 말이 없었다.

-이제 더 이상 못 볼 수도 있다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다시 여동생의 고함이 들려왔다.

“…상관없어.”

김창회가 말했다.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죽게 한 그자가 얼마나 큰 병에 걸려있든지, 얼마나 위급한 상황이든지, 얼마나 큰 수술을 받아야 하는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오빠!

다시 전화기에서 여동생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딴 소리 할 거면 전화하지 마.”

동생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잘 돌봐주라고 엄마에게 부탁받은 여동생이었다. 이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 문제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양보하고 자시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흐른다.

-난 몰라. 진짜. 오빠 마음대로 해!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전화가 끊어진 것을 알았지만 김창회는 귀에서 전화기를 한동안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멈춘 듯 그 자세를 유지하다가 작은 한숨과 함께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알바 가야지.

김창회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김창회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헬스장이 있는 건물은 다른 건물과 달리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건물주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1층의 대형약국을 시작으로 각종 과목을 진료하는 병원이 이 건물에 입주해 있었다. 병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김창회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헬스장은 물론, 요가 센터, 필라테스, 태권도 학원, 검도 도장, 실내 테니스 연습장 등 운동을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업체도 입주해 있었다.

밤 11시, 대부분의 업체들이 문을 닫은 시간, 김창회가 일하는 헬스장만이 유일하게 영업을 하고 있었다.

김창회는 항상 이 시간에 분리수거 된 쓰레기를 지하 주차장에 마련된 분리수거장으로 가져갔다.

사실 이 시간밖에 없었다. 낮 시간에는 병원을 찾는 환자와 태권도장 아이들로 엘리베이터는 항상 북적거렸고, 퇴근 시간이 지난 후부터는 다른 스포츠 센터 회원들이 많았다.

그래서 항상 이 시간에 하루 동안 모인 쓰레기를 가져다 버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양손에 분리수거된 재활용품을 잔뜩 들고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 김창회가 문이 닫힌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밖에서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요!”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김창회는 재빨리 발을 앞으로 내밀어 문이 닫히는 걸 막았다. 그리고 열린 문으로 몸의 라인을 그대로 드러내는 운동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김창회도 아는 사람이었다. 같은 층에 위치한 필라테스 강사였으니까.

“기다려 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막 퇴근하는지 손에 자동차 차 키를 들고 있던 여자가 꽤나 예뻐 보이는 미소와 함께 그렇게 말해준다.

“네.”

그렇게 단답형으로 대답한 김창회는 잠시 고민하다, 다시 입을 연다.

“늦게…퇴근하시네요.”

필라테스 센터는 10시까지 열었다. 예전에는 더 늦은 시간까지 영업을 했었는데, 이런저런 문제로 지금은 10시까지만 운영한다는 말을 헬스장 사장에게서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네. 회원님께서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다고 하셔서.”

그렇게 말하는 여자의 얼굴에 순간 어두운 표정이 드리운다.

헬스장 트레이너도 그렇지만, 필라테스 강사도 따지고 보면 개인사업자의 성격이 강했다. 회원을 유치하고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 개인의 희생을 감수할 필요가 있었다.

“네.”

김창회는 그렇게 말하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같은 층에서 근무하는, 넓은 범위의 동료에게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예의는 다 했다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듯했다.

“학생이시죠?”

김창회에게 그렇게 물어본다.

“…네.”

“그럼 스물…넷?”

“스물하나입니다.”

김창회가 말했다.

“어머. 죄송해요. 전 군대 다녀오신 줄 알고.”

“…괜찮습니다.”

“그럼 2학년?”

“네.”

“그렇구나.”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김창회는 그런 그녀의 표정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어서 엘리베이터가 지하에 도착하고, 이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

하지만 여자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저번에 고마웠어요.”

“네?”

“지하 주차장….”

창회는 여자가 말하는 ‘저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린다.

두어 달 전, 지하 주차장에서 실랑이하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에게 호감을 가진 남자 회원이 추파를 던지고 있는 것을 보았고, 그래서 자신이 개입했었다.

상황이 좋게 마무리 되긴 했지만 오지랖과 거리가 먼 김창회는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후회했고, 이내 머릿속에서 그 기억을 지워버렸다.

여자는 그 일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김창회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하다는 말씀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말씀드려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좀처럼 기회가 안 나서….”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김창회의 말에 여자는 잠시 김창회를 바라본다.

그리고는 결심했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서 김창회에게 말한다.

“혹시 전화번호 알려주실 수 있으세요? 그때 고마워서 밥이라도 한번 사고 싶어서요.”

정면을 바라보던 김창회의 시선이 예상치 못한 말에 여자에게로 향했다.

아름다운 여자였다. 무엇보다 건강미가 넘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김창회의 대답은 거절이었다.

“아. 네….”

김창회의 말에 여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지하에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

다음에 또 보자고 인사하고 돌아서는 여자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본 김창회는 분리수거장을 통해 몸을 돌렸다.

알고는 있었다. 여자가 자신에게 보여준 것은 큰 의미 없는 호감이라는 것을, 아니, 애초에 호감 같은 게 아닐 수도 있었다. 영업을 하기 위한 사전준비작업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창회에게는 그 마음이 호감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타인과 쓸데없는 연을 맺을 생각은 없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졸업하고, 장교로 군대를 다녀와서, 직업을 구해야 했다.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해서, 자취방 보증금을 모으기 위해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했던 고등학생 때처럼, 지금 그에게는 친구를 만나고, 여자친구를 사귈 여유 같은 것은 없었다.

그 저주받은 집안과 연을 끊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감내할 자신이 있었다.

김창회는 또다시 그날을 떠올렸다.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엄마 장례식장에서 들었던 소리. 늦은 새벽, 낮은 목소리로 친척들이 속삭이던 그 소리를

-그 노인네가 죽인 거야. 이놈의 뼈대 있는 가문이 며느리를 잡아먹은 거야. 그랬다며? 막 남편을 잃은 슬퍼하고 있는 며느리에게 이 가문에 뼈를 묻어야 한다고. 종가의 종부로서, 종손을 잘 키우는 것만 생각하라고, 떠날 수 없다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 집안을 떠날 수 없다고. 죽어도 떠나야 한다면, 아들을 두고 가라고.

눈을 감고서, 잠든 척을 한 채로 들었던 그 말을 김창회는 단 하루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돌아가신 엄마가 그리울 때면, 엄마를 생각할 때면, 항상 기억의 마지막에는 으레 그 목소리가 떠올랐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을 했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공부를 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신입생만이 누릴 수 있는 대학 생활을 만끽하는 다른 동기들처럼, 그렇게 대학 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물론 그런 생활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도 감정이 있었고, 즐거움이라는 것이 무언지 알고 있었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도 있었고, 외로움 또한 그의 곁에 항상 머물러 있었다.

엄마 보고 싶다.

김창회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엄마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단 하루, 아니, 단 한 시간만이라도 엄마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엄마가 끓여주었던 김치 콩나물국을 다시 먹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을 다시 마음속으로 중얼거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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