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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을 이어라-265화 (26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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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시 한적한 외곽.

‘장호건설’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3층 건물 뒤편, 길을 오가는 행인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주차장 한 켠에 남자들이 무리 지어 모여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담배를 피우는 남자들은 어디서 단체로 맞춘 것 같은 검은 양복 재킷을 입고 있는 청년들이었다.

그중 일부는 청년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얼굴에 풋풋함이 남아 있었다. 덩치는 일반 성인들에 비할 바 없었지만, 아니, 평균적인 성인남성보다 더 건장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아직 소년티가 남아 있는 이들이 몇 있었다.

그중에 윤기훈이 있었다.

윤기훈은 우울한 얼굴로 땅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과 같이 조직, 아니, 회사에 들어온 동기들은 선배들의 눈치를 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지만, 담배를 피울 생각이 없는 윤기훈은 땅만 바라보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담배를 한 번도 피워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유도를 그만두고, 동네 선배들과 처음 술자리를 가졌을 때, 그때 담배를 처음 입에 물어봤었다.

***

중학생 때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만 해도 희망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다. 전국에서 유도로 내로라하는 명문고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을 정도로 인정받는 유망주였다.

그러나 윤기훈은 차마 할머니를 두고 갈 수 없어 기숙사 생활을 해야만 하는 명문고 대신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선택했다. 장학금을 주겠다는 제안도 매력적이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할머니에게 용돈을 줄 수 있었다. 장학금이 들어온 날, 은행에 가서 빳빳한 신권을 찾아 흰 봉투에 넣어서 할머니에게 용돈을 드릴 수 있었다.

할머니는 울었다. 봉투를 가슴에 품고, 손자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소리를 속으로 꾹꾹 눌러 참으며, 온몸으로 울었다.

그런 할머니를 보면서 맹세했다. 열심히 하겠다고, 누구보다 더 열심히 운동하겠다고. 그래서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을 딴 선배들처럼, 자신도 올림픽 금메달을 따서 할머니를 모시겠다고,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빼내겠다고, 우는 할머니를 보면서 그렇게 맹세했다.

하지만 그게 잘못이었다. 성장기의 몸은 버텨내지 못했고, 꾸준히 쌓이던 피로는 결국 부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부상을 치료하고 재활을 받기에 재활 기간은 너무 길었고, 그의 집은 너무 가난했다.

장학금까지 주며 모셔왔던 학교는 더 이상 필요 없어졌다고 판단을 하자 그나마 해주던 지원마저 바로 끊어버렸다.

유도복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국가대표도, 올림픽 금메달도, 할머니를 편하게 모시겠다는 기대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남은 것은 오직 절망뿐이었다.

***

그때 윤기훈에게 다가온 이들이 동네 선배들이었다.

알고는 있었다. 저들이 어떠한 일을 하는지, 어떠한 삶을 사는지 윤기훈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다가와 일을 주겠다고 했다. 많은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했다. 자신들과 같은 삶을 살자고 권유했다.

거절할 수 없었다.

한때는 절대로 저들처럼 살지 않겠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절망만 남은 윤기훈에게 선배들의 제안은 그에게 남은 유일한 길처럼 느껴졌다.

딱 삼천만 원만, 단칸방이라도 좋으니 딱 할머니랑 단둘이 살 수 있는 집 보증금만 모으면 그만두자.

그렇게 생각하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때 인생 첫 담배를 피웠다.

***

새끼야. 건달이 될 거면 담배는 무조건 피울 줄 알아야 하는 거야.

조직에 들어가는 것이 결정되고, 선배들이 축하주를 사주겠다고 그를 불러낸 술자리에서, 처음 보는 사람, 선배들에게 부장님이라고 불리우던 사람이 그렇게 말하며 아직 미성년자인 윤기훈에게 억지로 담배를 물려주었다.

윤기훈은 거부할 수 없었다. 싸구려 검은 양복을 입은 저들과 같이 가겠다고 결정한 이상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까.

입에 문 담배에 불이 붙고, 깊게 빨아들이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현기증이 느껴졌다. 뒤이어 역한 기운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역했다. 그게 첫 느낌이었다. 기침을 뱉어내는 윤기훈을 보고 웃음을 터트리는 인생 낙오자들처럼,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처럼, 절대로 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아버지처럼, 그리고 절망 속에 빠져, 아무렇게나 인생을 내던지는 자신처럼, 담배와의 첫 대면은 역했다.

그 이후 회식이라는 이름의 술자리에서 가끔씩 담배를 강요받고는 했었다. 하지만 윤기훈 스스로의 의지로 담배를 입에 가져간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고통 속에서 오직 담배만이 자신에게 유일한 위안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

“사장님 오셨다. 전부 올라와.”

처음 자신에게 담배를 물려준 부장이라는 사람, 실제로는 폭력조직인 장호파에서 행동대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 주차장에서 서 있던 청년들에게 외쳤다.

청년들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땅에 비벼 끄고, 침을 한 번씩 뱉고, 재킷 단추를 채운 다음 불안한 얼굴을 숨기지도 못한 채, 교육을 받기 위해서 건물계단을 서둘러 올랐다.

맡겨진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경우 그에 대한 벌을 받았다. 그걸 이 조직에서는 교육이라고 했다. 특별할 건 없었다. 그저 폭력, 그뿐이었다.

이틀 전, 재건축 현장에 투입되었다가 철거에 항의하는 주민들의 거센 저항을 받았다.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조직이 보기에는 만족스럽지 않았고, 그래서 오늘 교육이 잡힌 것이다.

3층으로 올라간 청년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벽에 등을 대고 일렬로 도열했다. 온몸에 힘을 주고, 시선을 전방 15도로 고정한 채,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얼마 뒤, 사장실이라는 금속판이 붙어 있는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계 구조물 해체공사업을 주 업종으로 하는 장호건설의 대표이사, 실제로는 경기도 광주를 기반으로 장호파라는 조직을 이끄는 조직폭력집단 두목 장영호의 손에는 테일러메이드에서 만든 3번 우드 골프채가 들려 있었다.

그렇게 걸어 나온 장영호는 아무 말 없이 벽을 등지고 도열한 직원, 아니 조직원들을 노려보았다.

매서운 시선을 느낀 조직원들은 이미 잔뜩 힘이 들어간 몸에 조금 더 힘을 불어넣었다.

“야. 박 부장아.”

장영호는 여전히 조직원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네. 사장님.”

부장이라는 남자가 대답한다.

“내가 뭐라고 지시했냐?”

“밀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치? 내가 뭐 씨발 어려운 지시 내린 거 아니지? 그냥 밀리지 마라. 그거 하나만 하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 새끼들은 왜 말을 안 듣는 걸까?”

장영호의 말에 박 부장이라 불린 남자의 몸에 힘이 들어간다.

“할머니, 아줌마들이었잖아. 아니, 뭐, 옛날처럼 대학생 새끼들이라도 있었으면 말을 안 해. 다들 할머니하고 아줌마들이었잖아. 근데 왜 우리 직원들은 씨발 밀린 거지?”

장영호는 그렇게 말하며 가장 가까운데 있는 조직원을 골프채로 툭툭 건드렸다.

“야. 니가 한번 말해봐. 왜 밀린 거냐?”

“죄송합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영호가 골프채를 힘껏 휘둘렀다.

풀스윙으로 휘두른 3번 우드의 티타늄 헤드가 조직원의 허벅지를 강하게 강타했다.

사무실에 비명이 터져 나왔고, 공포의 무게가 더욱 짙어졌다.

“그쳐라.”

쓰러진 채로 비명을 지르는 조직원에게 장영호가 말하자, 마치 인형이라도 된 듯 조직원은 비명을 멈췄다.

그 모습을 바라보지도 못하는 조직원들은 알고 있었다. 멈춘 것은 비명이지,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니가 말해봐라.”

장영호가 그다음 조직원에게 물었다.

조직원은 다시 죄송하다고 소리치고, 앞에 본보기와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당연했다. 아줌마들이라서, 할머니라서, 집에 있는 엄마가 떠올라서, 할머니가 떠올라서, 그래서 험하게 할 수 없었다고.

두 명에게 골프채를 휘두른 장영호의 시선이 다시 조직원들을 훑는다.

“야. 씨발놈들아. 니들 에미냐? 니들 할미냐고. 개새끼들아. 니들 여기 왜 와있는데? 어? 왜 여기서 이 지랄 하고 있는 건데? 니 에미 따뜻한 밥 처멕이겠다고 여기서 이지랄들 하고 있는 거 아냐? 그런데 왜 씨발 남의 에미 걱정을 니들이 처하고 있는 거냐고, 이 병신새끼들아!”

장영호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다시 클럽이 호를 그렸고, 세 번째 본보기가 땅을 굴렀다.

“박 부장아.”

“네!”

“우리 잘 하자. 응? 우리 돈 많이 벌어야지. 안 그러냐?”

장영호는 박 부장이라고 불린 행동대장의 뺨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툭툭 치면서 그렇게 말했다.

“네. 맞습니다.”

“내가 애들 하나하나 다 교육 시킬까?”

박 부장의 뺨을 때리는 소리가 조금씩 커져갔다.

“아닙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할 수 있겠어?”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뺨을 때리는 소리가 멈추었다. 하지만 이미 박 부장이라고 불린 남자의 얼굴은 벌겋게 부어 있었다.

“믿어도 되겠지?”

“믿으셔도 됩니다!”

박 부장이 소리친다.

“그래. 실망시키지 마라.”

그 말을 남긴 장영호는 사장실로 몸을 옮겼다.

***

공포와 분노의 공통점은 단계를 지날 때마다 확장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증명되고 있었다.

“일어나! 이 개새끼야!”

대리, 일반 사원이라고 불리우는 말단 조직원을 관리하는 대리들의 손에는 야구방망이가 쥐어져 있었다.

사장은 부장을 혼내고, 부장은 과장을 혼내고, 과장은 대리를 혼낸다. 그러한 단계를 지나면서 분노의 수위는 더욱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기숙사라고 불리는 무허가 건축물에서, 대리들은 그들이 당한 폭력에 고리대 수준의 이자를 더해서 엎드려뻗쳐 자세를 취하고 있는 말단 조직원들에게 폭행을 가하고 있었다.

그런 말단 조직원들 중 윤기훈도 있었다.

바로 옆에 있던 조직원에 입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제 그에게 다가올 육체적 고통이 멀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공포에 젖어있는 다른 조직원들과 달리 윤기훈은 공포 대신 다른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슬픔, 이 끔찍한 하루하루를 벗어날 수 없다는 슬픔이 그의 마음을 잠식하고 있었다.

육체적 고통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이 끔찍한 환경은 상처가 낫고 붓기가 빠진다고 해도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윤기훈은 그 사실에 슬퍼하고 있었다.

제발.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려본다.

제발 구해줘.

누구라도 좋으니.

이 끔찍한 상황 속에서 제발 나를 구해줘.

그렇게 소리 없이 간청하는 윤기훈은 무언가 알 수 없는 이질적인 느낌을 받는다.

형.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가, 형이라고 부르는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듯, 필사적으로 누군가를 떠올리던 그 순간, 윤기훈의 몸 위로 야구방망이가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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