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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훈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장을 입은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졸업 선물로 아버지가 맞춰준 정장이었다.
‘정장은 성인 남자의 전투복이다.’
이중훈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최고급 원단으로 방에 있는 컴퓨터보다 비싼 가격의 맞춤 정장을 선물해 주었다.
나쁘지 않았다. 온전히 그의 신체 치수에 맞춰 제작된 정장은 마치 그의 신체 일부라도 되는 것처럼 완벽한 슈트핏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중훈의 얼굴에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개시하는 건 싫은데.
이중훈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리다, 이내 고개를 가볍게 젓고는 침대 위에 던져놓은 넥타이를 집어 들었다.
정장을 맞출 때, 같이 구입했던 3개의 고급 실크 넥타이 중 하나.
오로지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넥타이였다.
***
서울중앙병원 장례식장.
단정해 보이는 양복을 입은 박찬희는 그렇게 쓰여져 있는 글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인생에서 첫 장례식장, 정확히 말하면 그가 성인이 되고, 혼자서 찾아가는 첫 장례식장이었다.
박찬희는 현판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다시 절차를 점검했다.
부의록을 작성하고, 부의금을 부의한다. 상주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영정 앞에 바른 자세로 선다. 향을 집어 들 때는 오른손으로, 왼손으로는 손목을 받치고, 향에 붙은 불을 끌 때는 손가락으로, 절대 입으로 끄지 않는다. 두 번 절하고, 상주와 맞절, 그리고 위로의 말.
그렇게 다시 절차를 점검했지만, 긴장이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긴장이 아니었다. 무거워지는 마음을 긴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현판을 바라보던 박찬희는 작게 숨을 내쉬고는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통화목록에서 이름 하나를 찾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잠시 울리고 바로 전화가 연결되었다.
“난 도착. 어디야?”
-나도 거의 다 왔어. 택시 내린다.
전화기 너머로 동기인 이중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기 입구에서 왼쪽을 보면 흡연 구역 있거든. 거기 가 있을게.”
-알았어. 금방 간다.
그렇게 통화를 끝낸 박찬희는 다시 장례식장이라고 쓰여 있는 이름을 보고, 작게 한숨을 쉬고, 흡연 구역 쪽으로 몸을 돌렸다.
***
“와줘서 고맙다.”
조문을 마친 이중훈과 박찬희가 육개장을 막 한술 뜨려던 순간, 상주(喪主)임을 표시하는 검은 줄이 들어간 완장을 찬 남자가 다가와 두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당연히 와야죠.”
이중훈이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그렇게 말한다.
“식사는 하셨어요?”
박찬희는 상주에게 그렇게 말을 건넨다.
“어. 먹었어. 뭣 좀 더 갖다 줄까?”
상주 완장을 찬 남자가 테이블을 바라보며 말한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더 필요하면 말씀 드릴게요.”
“아. 그래. 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줘.”
그 말을 끝으로 세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근데 다른 형들은 언제 오신대요?”
어색함을 참지 못한 박찬희가 그렇게 물어본다.
“어. 친구들은 내일 밤늦게. 모래 운구해주기로 했거든.”
그렇게 말한 상주는 고맙다는 듯, 조금은 미안하다는 듯 작게 웃는다.
“안 그래도 준호 형한테 혹시 운구할 사람 필요하지 않나 물어봤는데, 형들만으로 충분하다고 하시더라구요.”
“아. 그랬어? 고맙다. 그렇게까지 신경 써주고.”
“아니에요. 당연히 신경 써야죠.”
박찬희가 말한다.
“…그래.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다.”
상주, 이중훈, 박찬희 보다 세 학번 높은 과 선배 박진철은 그렇게 말하며 후배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다지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후배들도 아니었다. 가끔씩 후배들에게 밥을 사주거나, 술자리를 가지는 다른 선배들과 달리, 공부에만 매진하고 있는 박진철은 그리 후배들에게 살가운 선배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직접 이렇게 찾아와 주고, 도와주려고 하는 후배들에게 고맙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제대로 선배 역할도 못 했는데. 찾아와줘서 고맙다.”
“아니에요. 당연히 와야죠. 다시 한번 아버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렇게 말하는 박찬희의 시선은 박진철 아버지의 영정사진이 걸려 있는 분향실을 향해 있었다.
선배의 아버님이 오랜 시간 동안 병마에 고통받아오셨음을, 그리고 끝내 이겨 내지 못했음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맙다. 어. 손님 오셨나 보다. 편하게 있고, 또 필요한 거 있으면 달라고 하고.”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그리 친하지 않은 선배의 모습을 두 사람은 무거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밥 한 공기, 육개장 한 그릇, 편육 한 접시, 맥주와 사이다 한 병씩을 처리한 박찬희와 이중훈은 잠시 말없이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었다.
접객실을 둘러보던 이중훈이 박찬희에게 물었다.
“애들한테는 연락한 거지?”
“뭐. 단톡방에 알리긴 했지.”
그런 것 치고는 동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2학년은 자신들 뿐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어떤 녀석들이 답을 했는지 동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역시 최유라. 어색할 텐데 혼자서라도 다녀왔다 갔다네. 지수는 오늘 일이 있어서 내일 선배 누나들하고 온다고 했고. 그리고 또 누가 있지? 아. 창회는?”
“따로 연락 안 해봤어. 뭐, 평소에 전화하고 그런 사이도 아니고.”
박찬희의 말에 이중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창회, 같은 과 동기였지만,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눠 보지는 않았다. 커다란 덩치와 우람한 근육이 위압적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가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고 있었다.
“또 누가 있지? 박승환?”
그 이름을 꺼내는 이중훈을 보고 박찬희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오겠냐?”
“하긴.”
그렇게 말하는 이중훈은 머릿속에 동기 중 한 명인 박승환을 떠올렸다.
단순히 무뚝뚝한 김창회와는 달리 박승환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기는 냉소적이고 적대적이었다. 어린 시절 어떤 트라우마라도 입었는지, 사회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이 동문이라는 이유로 잘 알지도 못하는 선배의 장례식장을 찾아온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민망하다. 진짜.”
“역대 최악의 학번이라더라.”
“우리가?”
“어. 지금까지 축제 말아먹은 학번이 없었대. 우리가 처음이래.”
박찬희의 말에 이중훈이 쓰게 웃었다.
지난 학기에 있었던 축제는 부끄러운 기억이었다. 2학년이 주축이 되어서 주점을 운영하는 전통에 따라 제대로 한 번 해보려고 했는데, 제대로 도와주겠다는 녀석들도 없었고, 그나마 도움 주는 동기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 오히려 더 서먹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던 1학년들까지도.
“뭐, 졸업하면 볼일 없으니까.”
“그래. 볼일 없으니까. 뭐 지금도 그렇고.”
박찬희는 그렇게 말하며 맥주병을 집어 들었다.
자조 섞인 한숨과 함께, 잔을 들어 술잔을 받던 이중훈은 순간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잠깐만. 뭐가…. 좀 이상한데?
그리 많지도 않은 과 동기, 무늬만 동기인 박승환 이름까지 나왔으면 나올 사람은 다 나왔다는 이야기일 텐데, 누군가 더 있는 듯한, 아니 더 있어야 맞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왜 그래?”
이상한 표정을 짓는 이중훈을 보고 박찬희가 물었다.
“우리, 다 확인한 거…맞지?”
이중훈이 그렇게 중얼거린다.
그렇게 중얼거리는 친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박찬희는 알 수 없다는 눈으로 눈앞의 친구를 바라만 보고 있다.
“우리 동기들은 전부 확인한 거 맞지?”
이중훈이 다시 묻는다.
“맞지. 내가 학년 대표인데 누굴 또 빼먹었을까. 동기가 뭐 몇십 명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그치. 왜 그러는데?”
“…그런데 왜 자꾸 누군가 빼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들지, 나는?”
“단톡방에 말 안 하고 나갔으면 모를까 지금 그거 보면서 얘기하고 있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핸드폰과 이중훈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가던 박찬희의 말이 멈췄다.
박찬희에게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찾아온다.
그럴 리가 없었는데, 분명히 동기들을 다 확인했는데, 단톡방 명단을 보면서 확인했는데, 그런데도 친구의 말처럼 누군가가 빠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지? 누가 또 있지?
착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강렬한 느낌.
하지만 떠오르지가 않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 서 있는 것처럼, 그저 답답하다는 느낌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분향실에서 조문객을 맞이한 박진철은 잠시 숨을 돌리고 접객실을 바라보았다.
접객실에는 그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지만, 박진철은 무거워지는 마음을 느꼈다.
알고는 있었다. 아버지가 다시 건강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보여 드리고 싶었다.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 예전에 행정고시라고 불리우던 그 시험에 붙은 아들의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
이제는 걱정할 필요 없다고, 여동생과 어머니는 자신이 챙기겠다고, 그렇게 당당하게 보여 드리고 싶었다.
조금의 시간만 더 있었다면, 몇 달의 시간만 더 주어졌다면, 아버지가 계셔 주셨다면, 보여 드릴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부자에게 그러한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박진철은 그게 죄송하고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의 눈에 음식을 나르는 여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집안 걱정은 하지 말라고, 자신이 집안을 챙길 테니 다른 생각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말하던 동생,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하고, 실업계를 선택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과 동시에 취업해버린 여동생, 평일에 일하는 것도 부족해 주말에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까지 집안을 지탱해온 여동생을 바라보는 박진철의 눈동자에는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깃들어 있었다.
박진철은 시선을 돌렸다. 비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여동생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싶었다.
담배가 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 안 가득 들어찬 연기를 내뿜으면, 그러면 담배 연기처럼 지금의 이 괴로움이, 부끄러움이, 미안함이 흩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리 눈을 돌리고 도망가려 해도, 현실은,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되어온 병원비 같은 현실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박진철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버텨야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버텨야지.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렇게 말하며 이빨을 사려물고 앞으로 걸음을 앞으로 옮겼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진심은 여전히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제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제발 도와달라고.
박진철은 소리 내어 말하고 싶었다. 아무나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아무나에게, 그리고 그에게.
그?
박진철의 발이 멈추었다.
그가 누구지?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가 있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그가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