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261화 (261/271)

261 : 모든 것의 시작 (4)

한양을 둘러싼 4개의 외산(外山) 중 동쪽을 지키고 있는 산을 사람들은 용마산(龍馬山)이라고 불렀다.

왜 용마산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역사에도 기록되지 않을 옛날 옛적에 이 땅에서 태어난 아이가 장군의 기질을 타고 태어났고, 역적으로 몰릴 것을 걱정한 부모에 의해 목숨을 잃었는데, 그렇게 목숨을 잃은 아이가 용마(龍馬)로 다시 태어나 높은 하늘로 날아갔다는 전설 때문이라는 옛이야기가 전해 내려올 뿐이었다.

그러한 전설 때문이었을까? 용마산 정상인 용마봉은 근방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신성시되는 장소였다.

단순히 전설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산세가 험하지 않고, 능선까지 쉽게 오를 수 있는 중턱과는 달리, 산 정상은 경사가 심한 바위봉우리였고, 인근의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너덜겅(암석폭포)까지 위치해 있어, 일반 사람들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한 특성으로 인해, 삼을 캐는 심마니나, 나무꾼, 사냥꾼 등 산을 생업의 터전으로 삼은 이들은 절대 용마봉에 오르려 하지 않았다.

바로 그 용마봉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아직 손을 꼬물거리는 아기를 안고 있는 할아버지였다.

***

할아버지의 시선은 서쪽을 향해 있다.

정확히는 한성부 성저십리 두모방 신당리계(城底十里豆毛坊神堂里契)의 한 잔칫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직선거리로 20여 리(里). 사람의 시력으로는 절대로 닿을 수 없는 거리이지만, 할아버지에게는 거리 같은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았다.

옆 사람과 쉴 새 없이 수다를 떨면서 전을 부치는 마을 아낙의 모습도,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는 노(奴:남자종)들의 모습도, 관복을 입은 손님을 맞이하는 혼주(婚主)의 모습도, 그런 혼주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는 관인(官人)의 모습도 할아버지는 보고자 하면 마치 눈앞에 있는 사람들처럼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성저십리는 물론 문안(사대문 안)에서도 가장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상인(商人) 전철기의 하나뿐인 여식(女息)이 시집을 가는 날이다.

용마봉에 서 있는 할아버지의 시선은 잔칫집을 향해 있었다.

아니, 할아버지의 시선은 한 사람을, 대궐같이 큰 저택의 한 방에서, 혼례복을 차려입은 새색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친정어머니로부터 마지막 당부의 말을 듣고 있는 새색시의 얼굴에는 긴장과 기대, 부끄러움이 섞인 표정이 떠올라있었다.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은 나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어머니.

할아버지의 품속에서 꼬물거리는 아기를, 나를 낳아준 여인이 혼례복을 입고, 자신이 혼례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

출산 후, 달이 일곱 번 차올랐을 때, 젖이 끊겼다.

할아버지는 그녀를, 필요에 의해 잠시 곁에 둔 궤주의 여식을 다시 친정으로 돌려보냈다. 젖어미로서의 역할이, 도구로서의 역할이 끝났으니, 더 이상 곁에 둘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친정으로 돌아가고 세 번째 계절을 맞이할 즈음, 전철기의 여식의 혼처가 정해졌다는 소문이 저잣거리에 퍼졌다. 익대좌명공신(翊戴佐命功臣) 마천목의 넷째 손자가 그 상대였다.

아무리 무반(武班)이라 해도, 공신의 손자가 장사치의 여식과 혼례를 맞이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고, 사람들의 입소문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마천목의 손자가 손해를 본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전철기는 조선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당대 제일의 거상이었고, 그의 하나뿐인 여식은 아름답고 현명하기로 성저십리는 물론 인근 이백 리 내에서 따를 자가 없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반가(班家)의 여식이었다면 간택(揀擇)을 받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돌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나의 어머니가, 혼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

혼례의 본식이 가까워질수록 새색시의 얼굴에 떠오른 홍조가 조금 더 진해진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혼례식에 대한 걱정, 한 지아비의 아내가 된다는 기대감이 그녀의 심장박동수를 조금씩 끌어 올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혼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새색시의 모습이었다.

그러는 것이 당연했다.

할아버지가 그녀의 기억을 지웠으니까.

할아버지는 기억을 지웠다. 단순히 기억을 지운 것만이 아니라, 애초에 그녀가 한 생명을 잉태했고, 잉태한 생명에게 빛을 보여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할아버지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었다.

그녀는, 나의 어머니는, 자신이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도, 그 아이에게 젖을 먹였다는 사실도,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혼례를 맞이하는 새색시의 표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앞으로 그녀에게 펼쳐질 미래에 대해 걱정과 기대만을 품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시선은 언제나처럼 무감정하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의 씨앗을 받기 위해 처음 할아버지의 처소를 찾아온 그녀를 보았을 때처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아이를 잉태하고 몸조리를 하는 그녀를 보았을 때처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산고를 이겨내고 처음 아이를 품에 안아보는 그녀를 보았을 때처럼,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녀를 보았을 때처럼, 젖이 말라감에 따라 점점 슬픔이 깃들어가는 그녀의 눈을 보았을 때처럼, 할아버지는 무감정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시선에는 감정이 담겨있지 않다 하여도, 20리 밖, 잔칫집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에서, 그저 필요에 의해 사용한 도구가 슬퍼하지 않도록 기억을 지워버린 할아버지의 등에서,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품 안에 아기가 몸을 꼬물거린다. 마치, 무언가를 쥐려는 듯, 짧은 팔을 억지로 앞으로 뻗는다.

그 팔이 보일 리 없는 20리 밖의 잔칫집 방향을 향한다.

할아버지의 시선이 품 안에 아기를 향한다.

그리고 말없이 아기를, 더 이상 어미를 만날 수 없는 아기를 바라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돌아가자꾸나.

품속의 아기에게 그렇게 말해준다.

***

열두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아기는 아이가 되었다.

혼자서는 움직이지도 못하던 아기는 바닥을 길 수 있게 되었고, 두 다리로 설 수 있게 되었으며,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자신의 두 다리로 서 있는 아이는 할아버지 뒤에 반쯤 몸을 감춘 채로, 궁금증 가득한 시선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

또 다른 아이. 자신보다 주먹 한두 개 정도 큰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나도 그 아이를 바라본다.

다섯 살? 여섯 살?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저 내가 아는 것은, 그 아이가 허름한 옷을 입고 있고, 아이 치고는 맑고 강인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는 것뿐.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저 아이가, 나의 목숨값 대신 되살아난, 내 생물학적 아버지가 살리고자 했던 그 목숨이고, 그리고 미래의 정지수라는 사실도 나는 알고 있다.

600년 전의 정지수. 나의 배다른 형이 당당한 눈빛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다.

할아버님을 찾아가라 하셨습니다.

눈빛만큼 당당한 목소리로 아이가 말한다.

할아버지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저 언제나 보여주던 무감정한 시선으로 눈앞의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가 살던 마을에 손님이 찾아왔다. 마마(??)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전염병이었다. 사람에게는 어떠한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죽음의 병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저, 온몸에 벌겋게 피어오르는 발진과 고열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 이외에는.

그리고 그렇게 죽어간 이들 중에 그들이 있었다.

영원한 삶을 거부한 채, 정해진 끝을 감내하겠다고 말하던 청년과 청년이 대가를 지불하고서라고 되찾으려는 아내가 있었다. 영생을 포기하고 사람의 삶을 선택한 남편도, 그런 남편이 위대한 존재의 힘을 빌려 되살려낸 아내도 마을을 휩쓴 전염병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살아남았다. 한번 죽었다가 되살아난 아이는 병에 걸리지도, 아프지도, 다치지도 않았다. 마치, 무언가의 의지가 작용한 것처럼, 아이는 두창이 휩쓴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할아버지를 찾아가거라.

청년이 걸어가고자 했던 정해진 끝을 맞이하기 직전, 청년이 사랑했던 유일한 아들에게 남긴 한 마디.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이는 그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대여섯 살의 몸으로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할아버지를 찾아온 것이다.

할아버님을 찾아가라 하셨습니다.

아이가 다시 말한다.

누가 그리 부르도록 허(許)하였더냐.

할아버지가 아이에게 말한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던 서너 살 아이는 겁을 집어먹는다. 처음 들어보는 할아버지의 냉랭한 목소리였기에.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은 대여섯 살 아이는 기가 죽지 않는다. 여전히 같은 시선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할아버지의 시선이 움직인다. 공손한 자세로 경의를 표하고 있는 네 명의 남성에게로.

보살피거라.

할아버지의 명에 길게 읍한 그들이 대여섯 살 아이에게 다가간다.

그들에 손에 이끌려 나가는 아이는 더 이상 할아버지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 시선은 겁먹은 표정의 서너 살 아이를 향하고 있다.

***

할아버지 앞에 한 소녀가 앉아 있다.

몇 살일까? 열세 살? 열네 살?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아이에서 소녀로 넘어가는 경계에 서 있다는 것과 소녀의 모습에서 마치 깊고 은은한 수선화가 연상된다는 사실 뿐.

넓게 펼쳐진 치맛자락 때문일까?

아니다. 소녀의 얼굴 때문이다.

청초함. 그런 단어를 그대로 그려낸 것만 같은 소녀의 얼굴에서, 아침이슬을 머금고 있는 수선화가 떠오른다.

소녀의 등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넉넉한 혼수를 마련할 수 없는 빈한(貧寒)한 집에서는 입을 줄이기 위해 열 살 무렵에 시집을 보낸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학문의 거울이며, 문장의 기준이며, 학자 가운데 으뜸이라고 칭송받는 정2품 대제학(大提學)의 손녀인 자신에게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어르신께서 너를 선택하셨다. 앞으로 어르신의 거처에서 그분을 모실 것이다. 거부할 수 없는 가문의 숙명이다.

단 한 번도 자신에게 엄한 눈을 보여주지 않던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냉랭한 목소리로 해주던 말.

어르신이라고 했다. 이 세상을 전부 소유하고 계시고, 천지만물과 삼라만상을 의지에 따라 주관하시는 분, 감히 그 의지를 거스를 수 없는 위대한 존재라고 했다.

소녀는 감히 그 위대한 존재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최대한 자신의 몸을 잠식하는 공포와 맞서고 있었다.

그런 소녀에게 들려오는 목소리.

먼 길 오느라 고생했구나.

이곳에 오는 동안 소녀가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목소리, 자상함이 담긴 목소리.

대답을 드려야 한다고, 아니라고, 그리 힘들지 않았다고, 그렇게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 아닙니다.

오랜 시간 끝에 소녀가 힘겹게 뱉어낸 말.

소녀는 걱정한다. 자신의 대답이 혹시나 위대한 존재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 아닐지, 분노하고 계신 것은 아닐지.

괜찮아질 것이다.

다시 들려오는 어르신의 목소리. 분노라는 감정은 담겨있지 않은 목소리.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곳 또한 너의 집이니, 괜찮아질 것이다.

소녀는 용기를 낸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그렇게 말하는 어르신을 바라보려 한다.

하지만 소녀는 그러지 못한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신도 모르게,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열린 문으로 한 아이가 들어온다.

어디서 뒹굴다 왔는지, 온몸이 흙투성이인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다 예상치 못한 손님을, 소녀를 발견하고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소녀는, 조금 전 그녀의 몸을 잠식하고 있던 두려움을 잠시 잊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의 놀란 표정이 귀엽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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