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256화 (256/271)

256 : 초대받지 못한 손님 (3)

***

사람들의 시선은 전부 이현웅 씨를 향해 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저희는 다른 기둥들과는 달리 혈연으로 후계를 정하지 않습니다. 묘목을 여러 그루 심고 키워 냅니다. 그렇게 성장한 나무 가운데에서 가장 주재목으로 가장 적합한 나무를 선별해 기둥으로 가공합니다. 당시에 저는 지금의 주재목인 고영건 판사를 포함해 다섯 그루의 나무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지금의 고영건 판사, 당시에는 아직 법조인이 아니었지만, 그가 제 뒤를 잇기에 가장 적합한 재목이 될 수 있다고 내심 마음속으로 결정해 놓은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첫째 작은 어르신을 알게 된 순간부터 저의 마음은 완전히 첫째 작은 어르신 쪽으로 기울어 버렸습니다. 고영건 판사가 훌륭한 재목이기는 하지만 첫째 작은 어르신에 비하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으니까요. 아니, 그 누가 견줄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이현웅 씨의 시선이 나를 스친다.

“그렇게 마음을 정한 저는 첫째 어르신에게 조심스럽게 권유했습니다. 저의 뒤를 이을 의향이 있는지. 그때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저, 전도유망한 젊은이라고 생각했던 청년이, 사실은 어르신의 핏줄을 이었다는 사실을.”

이현웅 씨의 시선이 정지수에게로 향한다.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진한 경외심이 담겨 있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인주님의 그 말씀은 너무 주관적인 의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유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서주님의 우려를 이해합니다. 저도 그 부분에서 고민을 안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감히 저의 짧은 소견으로 어르신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헤아리지도 못한 채, 쓸데없는 분란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고민들. 하지만 제 말씀을 들어 본다면, 제가 말씀드린 ‘알맞은 땅에 알맞은 작물을 심는다’는 말을 이해해 주실 수 있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현웅 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할아버지를 바라본다.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

여전히 같은 표정의 할아버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맡고 있는 기둥은 정(政)의 영역입니다. 논어에서는 政이라는 글자에 관해 ‘政者, 正也’. 즉,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항상 그 부분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 개인의 영달이 아닌, 어르신이 추구하시는 이상향을 추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것일까? 그리고 저는 그것을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현웅 씨가 말한다.

“왕도 정치 사회에서의 올바른 선택과 지금 민주 시민 사회에서의 올바른 선택은 다르다고 봅니다. 왕도정치가 우매한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위정자의 역할이 요구된다면, 지금은 이 사회에 얼마나 큰 이익을 안겨 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저는 첫째 작은 어르신이 가장 적합한 인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찌해서 그렇게 단정하십니까?”

유 선생님이 물어본다.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축적된 지혜를 가지고 계시니까요.”

이현웅 씨의 그 말에 사람들은 두 개의 반응을 보였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는 표정과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 강 회장님이 전자의 반응을 보였고, 나와 유 선생님이 후자의 반응을 보였다.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축적된 지혜?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첫째 작은 어르신께 여쭙겠습니다. 처음으로 어르신의 뒤를 잇고 싶다고 생각하신 때가 언제였습니까.”

이현웅 씨가 정지수에게 그렇게 묻는다.

“신해년입니다.”

정지수가 대답한다.

“서기로 언제입니까?”

“1617년입니다.”

정지수가 대답한다.

“…경신 대기근.”

유 선생님이 작게 중얼거린다.

***

5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조선 반도를 휩쓴 두 번의 왜란(倭亂)과 두 번의 호란(胡亂)은 조선 전역에 절망의 씨앗이 싹을 피우기에 충분했다.

조선 건국 이래 이 땅을 지탱해 왔던 사회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아니, 당장의 생존을 위해 가족을 팔고, 타인의 목숨을 해치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서, 일반 백성들은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마지막 호란이 끝나고 30년, 전쟁 중에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되어 이제 좀 숨을 쉴 수 있다고 안심하려던 찰나, 그 일이 벌어졌다.

현종 11년, 새해가 시작되는 1월 1일, 실록에 ‘日暈兩珥.(햇무리가 지고 양이가 있었다.)’라고 기록된 그 날은 앞으로 전개될 끔찍한 나날들의 시작이기도 했다.

모내기가 이루어져야 하는 봄에는 가뭄이 들었다. 논에 물을 대기는커녕, 당장 마실 물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끔찍한 가뭄이었다.

당연히 농민들은 새 작물을 파종할 수 없었고, 그저 비 대신 하늘에서 내리는 우박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파종기 내내 내리지 않던 비는 5월 말부터 폭우로 쏟아졌고, 홍수로 인해 사람이 죽고, 농경지가 망가졌다는 장계를 실은 파발이 하루가 멀다 하고 한양으로 쏟아졌다.

이 와중에 함경도에서는 메뚜기 떼가 일어나 힘겹게 파종한 작물을 갉아먹었으며, 7월에 서리와 눈이 내려 황해(蝗害 : 메뚜기로 인한 피해)를 피한 농작물은 냉해 속에서 말라 죽었다.

여기에 가축을 대상으로 하는 전염병이 돌면서 수천 마리에 이르는 소가 폐사했고, 채 겨울이 오기도 전에 조선 팔도 전역에는 고향을 등지고 먹을 것을 찾아 떠도는 유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향을 등졌어도 먹을 것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조선 팔도 어딘가에 흉년이 들어도 다른 지방에서는 평년 수준의 수확물이 나왔던 예전의 흉년과는 달리, 경술년에는 전국 360여 고을 어디에나 할 것 없이 흉년이 찾아왔다.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다른 지방으로 이동하여도, 똑같이 아무것도 없는 휑한 벌판만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그 끔찍한 한 해를 버텨 냈다. 더 끔찍한 한 해를 보낼 것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보리 수확을 기다리며 신해년을 맞이한 백성들에게 찾아온 것은 전국을 휩쓰는 전염병이었다.

부실한 영양공급으로 인해 면역력이 저하된 사람들은 쉽게 전염병에 걸렸고, 그렇게 전염병이 걸린 상태로 먹을 것을 찾아 전국을 떠돌면서 다시 전염병을 전파시켰다.

하루에 수만 명이 죽어 나갔는데, 그 죽음이 굶주림 때문인지, 아니면 전염병 때문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전염병이 궁궐 담을 넘어 궁녀에까지 감염된 사례가 발생할 정도였으니, 그 끔찍함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 와중에서 사람들의 도덕은 땅으로 떨어졌다.

충과 효를 제일의 국시로 삼았던 조선 반도에서 노인들이 가장 먼저 버려졌고, 갓난아이가 그다음으로 버려졌다. 아비는 딸을 곡식 한 줌에 딸을 팔았으며, 어미는 한 그릇의 죽을 위해 지아비의 목숨을 거두었다.

이를 실록에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全羅監司吳始壽馳啓曰: "流?之民, 投棄赤子, 指不勝屈。 六七歲兒, 挽?而從者, 至於縛樹而去。 父母兄弟, 死於目前, 而不知哀?, 無意掩土, 人理滅絶, 至於如此。" 云。 전라 감사 오시수(吳始壽)가 치계하였다. 떠돌며 빌어먹는 백성들이 아이를 버리는 경우가 이루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옷자락을 잡고 따라가는 예닐곱 살 된 아이를 나무에 묶어 두고 가기도 하며, 부모 형제가 눈앞에서 죽어도 슬퍼할 줄 모르고 묻어 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도리가 끊어진 것이 이러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주)1-현종개수실록 24권, 현종 12년 4월 3일 갑신 5번째 기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한 사내가 있었다.

먹지 않아도 굶주리지 않고, 병에도 걸리지 않으며, 또한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죽지 못하는 한 사내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

“소손의 짧은 생각으로 어찌 감히 할아버님의 생각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두 번의 왜란, 두 번의 호란, 그리고 수많은 목숨을 앗아 간 2년간의 가뭄을 보면서, 원하지 않아도 커져 가는 종기처럼,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질문을 어리석은 손자는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정지수가 그렇게 이야기한다.

“조세 제도가 무너지고, 권신들이 권력 다툼에 빠져 민초의 고통을 돌보지 아니하고, 아니, 고통을 돌보지 아니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오히려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데 앞장서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이 반도의 백성들이 점점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밀려가는 모습을, 결국에는 국권을 빼앗기는 상황에까지 이르는 것을, 그저 이 두 눈으로 똑바로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감히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힘이 있다면, 이 나에게 힘이 있었다면….”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그런 정지수의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다.

“제가 장자임을 명분으로 삼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시대에 와서 먼저 태어난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지금 시대의 적손이 아니라는 사실도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할아버님의 손자로 태어난 저에게 자격이 있다면, 할아버지가 원하시는 뜻을 이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면, 그렇다면 기회를 주십사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정지수는 숨을 한 번 고른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이내 나에게로 향한다.

“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물어본다.

“아니, 너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스스로 대답한다.

“나처럼 수백 년의 시간을 살아왔다면, 그래서 주변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경험을 수십 번, 수백 번 겪어 보았다면, 그러면 나도 아무런 걱정 없이 너에게 할아버님의 뒤를 맡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운명에 따라, 사랑하는 동생이, 적손의 명분을 가진 네가 어르신으로서 걸어가는 길을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너는 그럴 수 없다.”

그렇게 날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둘째 도련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강 회장님이 날 대신해 그렇게 앞으로 나선다.

정지수의 시선이 강 회장에게 향한다.

“강서현이던가요? 손녀의 이름이?”

서현 씨의 이름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강 회장님의 얼굴에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 들어온다.

분노. 그렇게 이름 붙일 수 있는 감정이.

“손녀를 번제의 제물로 올리실 수 있겠습니까?”

정지수가 그렇게 말한다.

“그게 무슨….”

정지수의 시선이 유 선생님에게로 향한다.

“따님의 이름이 지연이었죠.”

유 선생님의 얼굴에도 공포가 스며든다.

“대의을 위해서라면 내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한 정지수의 승환이 아버님에게로 향한다.

“아들을 잘 키우셨더군요. 하지만 승환군이 문주님의 뒤를 따르지 않겠다고 하면, 그렇다면 직접 그 손으로 아드님을 내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 질문을 받은 승환이 아버님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저 조금 전과 똑같은 표정을 한 채로 정지수를 바라만 보고 있다.

아니, 완전히 똑같다고 할 수는 없다. 조금 더 강해진 눈빛으로 정지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사주의 자리는 그런 결정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그렇게 말한 정지수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로 향한다.

“너는 할 수 있겠느냐?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있겠느냐? 그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자리에 올라설 수 있겠느냐?”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말한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왜 희생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건데!”

그를 강하게 쏘아보며 그렇게 소리친다.

“…역시 넌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정지수가 말한다.

“대답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내가 다시 소리친다.

정지수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인다. 그 시선 끝에 고마음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 동생에게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작은 어르신의 반려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희생을 겪으셨는지.”

고마음에게 그렇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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