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 시우(始偶) (3)
‘내 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참 곤란한 질문이다.
다른 상황에서 그런 질문을 받았다면, 예를 들어 전 여자 친구였던 지수 어머님이라든가,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지연이 어머님에게 ‘내 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면 엄청나게 당황했을 것이다.
결혼이라는 제도상의 퀘스트를 완료했거나, 부부라는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았다면, 뭐 당당하게 ‘따님은 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약혼이나 결혼 같은 사회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방 어머님께 그렇게 말하기는 쉽지가 않지. 여기가 미국도 아니고.
표면적으로만 보면 지금도 같은 상황이다.
‘제가 서현 씨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서현 씨에게도 같은 마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심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거다.
그렇다고 적당히 얼버무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나와 서현 씨, 그리고 어머님과의 관계는 일반적인 관계라고 절대 말할 수 없으니까.
일단 서현 씨와 나는 같은 집에서 지내 왔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동거’의 의미와는 좀 다르지만, 정서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공유하고 있거나 육체적인 관계로 이어지는 상황은 아니지만, 한집에서 살고 있다는 특수성은 부정할 수 없다.
거기에 더불어, 작은 어르신과 어르신을 옆에서 보필하는 가문의 일원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그냥 머리를 긁적이며 ‘좋은 친구 사이입니다’라고 적당히 얼버무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젠장. 그 망할 놈의 작은 어르신.
나는 다시 한번 심호흡을 했다.
예상했던 질문이었고,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여쭤보신 질문에 답 드리기 전에, 우선 이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솔직하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자.
“저는 지금 서현 씨 친구의 자격으로 어머님 앞에 앉아 있는 것이라고, 작은 어르신이 아닌, 서현 씨의 친구인 스물한 살의 한수라는 사람으로 말씀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 말에 어머님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신다.
“저번에 뵈었을 때 비슷한 말씀을 드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는 어머님 앞에서 부끄러운 행동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또한 저는 서현 씨 앞에서 제가 작은 어르신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내세웠던 적도 없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에 어머님은 반응을 보이시지 않는다.
그저 물끄러미 날 바라만 보고 계신다.
“…예전에 할아버지께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스무 해를 사람으로 살았고, 그렇기에,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서현 씨가 곁에 있어 주고, 보살펴 주고 했던 행동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어머님은 그렇게 말씀하신다.
이제 대답을 드리자.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저는…. 서현 씨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어머님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렇게 말씀드렸다.
“곁에서 저를 돌봐 주니까, 저의 편의를 봐줘서, 그게 편하고 고마워서 서현 씨를 좋아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이어서, 남녀 관계의 관점에서 서현 씨를 좋아한다고 말씀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면서, 서현 씨가 얼마나 현명한 사람인지, 얼마나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고, 사람으로서 서현 씨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서현 씨에게 가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나는 그렇게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내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신 어머님은 잠시 동안 물끄러미 날 바라보시다 천천히 입을 여신다.
“저도 이 말씀부터 드리는 것이 맞을 것 같네요. 솔직하게 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은 어르신이 아니라, 우리 딸의 소중한 친구에게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머님의 말씀이다.
“실례되는 질문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지만, 여쭙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저도 어르신을 모시는 강씨 가문의 일원이 아닌 서현이의 엄마 자격으로 이야기드리고 싶습니다. 괜찮을까요?”
“그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대답에 어머님은 작게 미소 지어 주신다.
“서현이가…. 당분간 본가에서 지내겠다고 했을 때,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 일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엄마 입장에서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혹시라도 한수 씨가 우리 서현이에게 무언가 실수를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기도 했었어요.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어르신을 모시는 가문의 일원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 해서는 안 되지만…. 엄마 된 입장으로서 그럴 수가 없었어요.”
“…당연히 그러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
자식을 걱정하는 것은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엄마의 권리이다.
“서현이도… 한수 씨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죠?”
“…네. 알고 있습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서현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한수 씨를 마음에 품고 있었어요. 저를 포함해 가족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어요. 처음에 서현이가 어르신을 모신다고 했을 때도 그저 가벼운 동경이라고, 서현이의 말처럼, 동화 속 등장인물을 직접 만나고, 같이 놀고 싶어 하는 동심 같은 거라고. 그렇게 가볍게 치부했는지도 몰라요.”
“…….”
“내 배로 낳은 내 딸이지만, 자라면서 단 한 번도 속 썩인 적 없고, 엄마 마음 아프게 한 적도 없어서, 그래서 이번에도 잘하겠지. 현명하게 대처하겠지. 자라면서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마지막 투정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몰라요. 저도, 아버님도.”
“…네.”
“그랬는데, 저번에 한수 씨가 저희 집에 놀러 왔을 때, 그때 어쩌면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수 씨가 무언가를 잘못했다고 말씀드리는 건 아니에요. 아니, 오히려 저는 한수 씨에게 고맙다고 생각했어요. 올바르게 컸고,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우리 서현이를 소중하게 생각해 주고 계신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
“그렇기에 잘못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서현이가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잘못된 선택이라 하심은….”
“우리 서현이가 한수 씨를, 작은 어르신을 욕심내게 될까 봐요.”
어머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속으로 쓴웃음을 짓게 된다.
작은 어르신. 그놈의 작은 어르신.
“…예전이었다면, 자식의 행복보다 가문의 명예가 우선시되던 수백 년 전이었다면,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아니, 어쩌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엄마 된 입장에서 저는 제 딸에게 그런 삶을 절대로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런 삶? 절대로 살게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삶?
“만약 한수 씨가 작은 어르신이 아닌, 그냥 한 사람의 청년이었다면…. 그랬다면 차라리 괜찮았을지도 몰라요. 꼭 결혼이라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젊었을 때,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져 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한수 씨가 그냥 한수라는 청년이 아니기에, 작은 어르신이시기 때문에…. 저는 서현이의 마음이 더 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이렇게 이기적인 말씀을 드리게 되어서.”
어머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며 작게 고개를 숙이신다.
평소 같았다면, 아니 적어도 다른 주제였다면, 나는 일단 사과하실 필요 없다고 만류부터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어머님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머님이 해 주신 말씀을 아무리 재조합해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마치 중간중간 조각이 빠진 퍼즐처럼, 그렇게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백번 양보해서, 내가 그 망할 작은 어르신이기에, 일반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존재이기에, 어머님 입장에서 걱정하시는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전 말씀하신 ‘딸에게 살게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삶’이나, ‘서현 씨의 마음이 더 깊어지면 안 된다’는 말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빠진 퍼즐 조각을 채워 넣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온 서현이를 보았을 때, 어쩌면 잘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라리 이번 일을 계기로 이쯤에서 마무리 짓는 것이 충격을, 앞으로 받을 수 있는 상처를 최소한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이어질 수 없는 인연이라면…. 그렇다면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말이죠.”
이어질 수 없는 인연.
어머님의 말씀이다.
-제가 한수 씨 곁에 있을 수 없으니까요.
서현 씨의 말이었다.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나와 서현 씨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곁에 있을 수 없다고.
“작은 어르신이 아닌, 한수 씨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우리 서현이를 위하신다면…. 서현이가 행복하길 바라신다면…. 우리 서현이를 놓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어머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며 고개를 숙이신다.
***
어머님은 말없이 날 바라만 보고 계신다.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에 대한 답을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고는 있는데, 나는 어떤 대답도 못 한 채, 어머님을 바라만 보고 있다.
이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몇 초? 몇 분? 어쩌면 몇 시간?
모르겠다. 마치 시간 감각이 마비된 것처럼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말을 해야 한다고, 답을 드려야 한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정작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정리는커녕, 조금 전 어머님께 들었던 말과 서현 씨의 이야기와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머릿속 안에서 마구 뒤섞여 오히려 실체를 잃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뭐지? 지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결례를 범한 것을 사과드립니다.”
어머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화났다고 생각하신 것일까? 내 분노가 다른 사람에게 닿을 것을 걱정하신 것일까?
아닌데, 그런 게 아닌데, 나는 다만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인데.
“…죄송합니다.”
나는 겨우 그렇게 한마디를 뱉어 낸다.
그렇게 한마디를 뱉어 내자, 마치 막혀 있던 둑이 터진 것처럼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뒤섞여 있던 생각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어머님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어떤 말씀인지도 알아들었고, 해 주신 말씀에 전혀 마음이 상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하실 수 있는 말씀이니까, 아니, 하셔야 하는 말씀이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있는데….”
두서없이 마구 뱉어 내는 나를 어머님은 긴장한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계신다.
“제가 정확히 이해가 안 가서….”
“무엇이… 이해가 안 간다는 말씀이신지….”
어머님이 조심스럽게 물어보신다.
“제가…. 서현 씨의 행복이 될 수 없다는….”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지려 한다. 다시 생각들이 뒤엉키려 한다.
“아니. 억지를 부리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서현 씨를 좋아하니까, 무조건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작은 어르신이라서, 그래서가 아니라, 제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어머님은 말없이 잠시 날 바라보고 계신다.
그렇게 몇 초가 흐른 후.
“혹시…. 모르고 계셨던 건가요?”
그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님은 잠시 아무런 말 없이, 마치, 내 마음속 깊은 곳 심연을 더듬어 보는 듯한 그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시고는,
“모르고 계셨군요. 작은 어르신께는 이미 정해진 반려가 있으시다는 사실을.”
그렇게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