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 : 성불사(成佛寺) (4)
나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일단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기도 했지만, 승환이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살짝 고민하고 있었다.
오늘 여기 내려오기로 언제 마음먹었느냐고?
“…그게 궁금해?”
나는 대답 대신 이렇게 되물었다.
“어.”
“중요한가? 그게?”
나는 그렇게 일단 답을 회피했다.
사실 답을 회피할 이유는 없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원래는 승환이가 고향 가는 길 태워 준다고 했을 때, 호의를 거절하고 버스 타고 가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할머니를 뵈러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우리 둘 뿐이고, 시간적 여유도 있고, 그래서 괜찮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그때 마음먹었다고.
그냥 그렇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마도 그때가 아니었을까 싶어서. 내가 태워 준다고 했을 때, 그때 너는 거절하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너하고 나 둘뿐이고, 시간도 괜찮고, 그러니까, 오늘 해 버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서. 중요한 건 아니지. 중요한 건 아닌데….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승환이가 그렇게 말한다.
“…마지막 기회?”
“고향에 가면 할아버님에게 여쭤볼 거지? 우리가 이야기했던 페널티, 가업을 잇지 않겠다고 결정했을 때, 받을지도 모르는 그 페널티.”
“…….”
“혹시라도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그래서 오늘이 나에게 할머니를 만나게 해 줄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오늘 무리해서 여기로 내려온 게 아닌가 싶어서. 그래서.”
그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대충 얼버무리려 했던 건데….
“…독심술이라도 배웠냐?”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아오. 진짜 징그러운 새끼.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너 임마. 자꾸 그러면 나중에 친구 다 떨어져 나간다. 에이. 괜히 담배만 땡기네. 휴게소 들렸다 가자. 그리고 이제부터 니가 운전해. 이 자식아.”
나는 다시 그렇게 장난스럽게 마무리하려고 했지만, 승환이는 그저 녀석 답지 않은 슬픈 눈으로 날 바라만 보고 있었다.
***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서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차를 멈춰 달라고 했다.
“덕분에 편하게 왔다.”
차가 멈추고, 나는 운전석에 승환이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녀석은 말이 없다. 그저 아무런 말 없이 나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형님 가신다고. 이 자식아. 얼른 내려서 문 열고 엎드리라고. 밟고 내리게.”
그렇게 다시 개드립을 쳤지만, 승환이는 여전히 날 바라보고만 있다.
“…고맙다.”
승환이가 그렇게 말한다.
“고맙기는. 원래 형들은 다 그러는 거야. 동생들 챙기고. 보답 같은 거 바라지 않고.”
하지만 승환이 녀석은 내 개드립을 받아 주지 않는다.
저 자식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승환이 저렇게 나오니, 나도 좀 마음이 그렇다.
“걱정 마. 안 죽어. 설마 죽지는 않겠지. 그래도 하나뿐인 손자인데.”
“…….”
“조심해서 올라가. 도착하면 톡 하고.”
“…그래.”
“고맙다.”
“…고맙다.”
“그래. 고마워해라. 이 자식아.”
승환이는 그제서야 웃는다.
“나 간다. 조심히 가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차에서 내렸다.
내가 내렸지만 승환이 녀석은 출발하지 않는다.
“가라. 좀 가라. 이 자식아.”
내가 그렇게까지 말하고 나서야 차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승환이의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어랍쇼?”
나도 모르게 그런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한가서고, 할아버지의 직장. 당신의 집이자, 정원이자 무덤이 될 곳이라고 항상 말하는 이 서점 앞에 서 있다.
왜 불이 꺼져 있지? 문이 닫혀 있지?
물론 저녁 시간이기는 하지만, 문을 닫을 정도로 늦은 저녁은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보통 문을 닫는 시간은 8시 반에서 9시 사이. 친구분들과 소주 한잔하신다고 더 늦게 닫는 경우는 있어도 그보다 빨리 닫은 적은 거의 없었다. 아니, 내 기억에는 확실히 없다.
그런데 거의 8시이긴 하지만 서점에 불이 꺼져 있다.
뭐지? 무슨 일이지? 요즘은 폐점 시간을 바꿨나?
그렇게 생각하며 집으로 가보니, 마찬가지로 집에도 불이 꺼져 있다. 역시 할아버지는 안 계신다.
어디 가신 거지? 잠깐 근처 외출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전화해 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마음속으로 머리를 저어 버렸다.
전화해 보면 당장 알 수 있겠지만, 평소였다면 바로 전화부터 했겠지만, 오늘은 어쩐지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알고 계시겠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실 거다. 내가 어떤 상황인지, 어떤 마음인지, 왜 여기로 내려왔는지, 내가 어떤 말을 할 것인지.
친구분들과 소주라도 한잔하고 계실는지도 모르지.
모르겠다. 기다리다 보면 돌아오시겠지. 그때 얼굴 보고 이야기하면 되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내 방에 갔고, 대자로 누웠다.
그렇게 누운 상태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천장, 20년, 아니,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나이, 네 살? 다섯 살? 그때부터 하루도 빼먹지 않고 보아 왔던 천장이 눈에 들어 온다.
***
마음 같아서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천장만 바라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일단 더웠고, 그리고 배가 고팠다.
우선 에어컨부터 틀었다.
재작년, 고3 되던 해에 도저히 더워서 공부 못 하겠다고, 현대인답게 문명의 혜택을 받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서 겨우 내 방에 단 에어컨.
할아버지 친구이자 고물상 사장님이신 박가이버 할아버지께서 손수 달아 주신 중고 에어컨이 힘찬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혹시라도 냉매 가스가 빠진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찬 바람이 나오는 것을 보니, 아직 작동에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우우웅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에어컨을 보고 있자니, 참 철이 없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전기세 아낀다고 열대야로 잠 못 잘 정도로 더운 여름에만 잠깐씩 틀고는 했는데, 서현 씨와 같이 지낼 때는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었다.
전기세가 얼만지, 관리비가 얼만지, 나는 하나도 모른 채, 그저 입에 떠먹여 주는 것만 받아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떠올린다.
나답게 살겠다고 그렇게 잘난 척을 해 놓고서, 정작 그런 부분들에서는 눈을 돌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에휴.”
나는 상념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생각이 복잡할 때는 일단 먹고 자는 게 최고다.
어디 밥이 있나 모르겠네. 해야 되나? 귀찮은데…. 집에 올 때 라면이라도 사 들고 들어올걸.
그런 생각을 하며 부엌으로 갔다.
당연히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음식을 조리한 흔적이라고는 어디에도 없다.
뭐 사실 할아버지는 원래 음식을 많이 드시지는 않는다. 찌개나 국, 간단한 밑반찬 몇 개, 투덜거리면 가끔씩 해 주시던 계란프라이.
뭐 그것도 내가 어릴 때 이야기였지, 중학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나도 가사 활동에 참여했으니, 할아버지가 요리를 하겠다고 식재료를 늘어놓고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스산하다. 마치 단 한 번도 따뜻한 온기라고는 있었던 적 없는 것처럼 휑한 주방의 모습이 유난히 낯설다.
뭐지? 진짜 어디 멀리 유람이라도 가신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그랬는데, 거기에 내가 예상하지 못한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된장찌개가 담긴 냄비.
먹다 남은 된장찌개가 아니라, 새로 끓인, 냄비 가득 들어차 있는 된장찌개가 냉장고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다.
마치, 내가 집에 올 것이라는 것을 알기라도 하셨다는 듯, 집에 오면 이걸 데워서 먹으라는 듯 그렇게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흐음.”
나는 일단 된장찌개를 꺼내 가스렌지 위에 올리고 불을 붙였다.
평소 같으면 귀찮아서 그냥 차가운 그 상태 그대로 먹었겠지만, 오늘은 어쩐지 데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스렌지에 불을 붙이고 나서야 나는 밥솥으로 시선을 돌린다.
10년은 훌쩍 넘었을 것 같은 보온 밥솥.
이제 보온 밥솥의 시대는 지났다고, 요즘 나오는 최신형 밥솥은 취사를 시작한다느니, 증기를 배출한다는 등의 음성 안내가 나오고, 인공 지능으로 알아서 최상의 밥맛을 만들어 준다고, 이제는 보내 주자고 그렇게 말해도 할아버지는 눈도 깜짝하지 않으셨지.
압력솥에 밥을 하고, 저 오래된 보온 밥솥에 옮기는 귀찮은 방식을 계속 고집하셨더랬지.
그 보온 밥솥에 작은 불 하나가 들어와 있다.
혹시? 에이. 설마?
그렇게 생각하며 밥솥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어 보았다.
밥이 들어 있었다.
아무리 오래되었다고 해도 하루? 어쩌면 오늘 아침? 그때 만들어진 것 같은 밥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알고 계셨구나. 내가 내려온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거다.
그래서 밥을 해 놓고, 찌개를 끓여 놓으셨던 거다.
“…이럴 거면 어디 가시지를 말든가.”
나는 가득 들어차 있는 밥솥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
밥을 챙겨먹고 설거지까지 다 끝낸 후,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힘겨워하고 있다.
원래는 밥 먹고, 포만감을 이용해 그대로 잠이나 잘 생각이었는데, 멍청하게 너무 많이 먹었는지, 속이 부대껴서 잠잘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게 다 할아버지 때문이다. 하필 된장찌개를 끓여 놔서, 그냥도 아니고 또 예술로 끓여 놔서 내가 정신을 못 차린 거다. 오랜만에 양푼 가득 밥 비벼서 겁나 퍼먹었네.
포만감을 넘어 불쾌감까지 느껴진다. 이대로 누우면 잠은커녕, 역류성 식도염 당첨이다. 그러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소파에 앉아서 티비만 보고 있는 거지.
사실 티비를 보고 있지도 않았다. 집 안이 너무 적막해서 그냥 틀어만 놓은 거다.
내가 좋아하는 예능이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눈이 가질 않는다.
그렇게 잠시 시간만 보내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일단 나가서 좀 걷자. 걷다 보면 좀 괜찮아지겠지. 오랜만에 밤 산책도 하고.
그런 마음으로 집 밖으로 나와 천천히 익숙한 고향길을 걷고 있으니 조금은 편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거 조금 걸었다고 배가 터질 것 같은 불쾌한 포만감이 바로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기분이 조금 풀렸다는 거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이 있다. 여우는 죽기 직전에 자신이 살던 고향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말이다.
여우라는 동물의 생체 GPS가 그 정도로 대단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라난 곳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보니, 고향이 가지는 특유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승환이도 그랬잖아. 그 녀석 오늘 보기 힘든 얼굴을 하고 있었지.
에휴. 모르겠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그냥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내 마음이 바라보는대로, 그렇게 살고 싶다.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걷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한수 아니냐?”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분이 나를 향해 다가오고 계신다.
“안녕하세요?”
우리 할아버지 친구이시자 고물상 사장님이신 박가이버 할아버지셨다.
“오. 그래. 언제 내려왔니?”
“좀 전에요.”
“밥은 먹었고?”
“네. 좀 전에 먹었습니다.”
“그래. 잘했다. 사람이 다른 건 몰라도 끼니는 빼먹지 말고 챙겨 먹어야지.”
그렇게 말하는 박가이버 할아버지의 손에는 비닐 봉투가 들려 있다. 형태로 보니 막걸리 같다.
“근데…. 지금 한씨가 집에 있던가?”
안 그래도 우리 할아버지의 행보에 대해 여쭤볼까 싶었는데, 마침 그렇게 이야기를 꺼내신다.
“네? 안 계시던데요?”
“그렇지? 내가 잘못 알고 있나 했었네.”
“혹시 저희 할아버지 어디 가셨는지 아세요?”
“엉? 서울 간다고 하던데? 너 만나러 간 거 아니었던 건가?”
그렇게 말씀하신다.
서울? 서울을 간다고 하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