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 성불사(成佛寺)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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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사님께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승환이가 할머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잠시 자리를 비켜 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도, 내가 자리를 비켜 주는 그 순간에도, 승환이는 아무 말 없이 나무만 바라보고 있었다.
승환이를 남겨 두고 홀로 그리 크지 않은 경내를 둘러보고, 스님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스님께서는 할머니 기일에 맞춰서 매년 제사를 올리고 있고, 제사 때마다 서울에서 두 사람의 중년 남자가 찾아온다는 말씀을 전해 주셨다.
누구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의 중년 남자라는 말에서 나는 그 두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스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그렇게 대략 30여 분 정도가 지났을 때, 승환이가 모습을 보였다.
스님은 내려온 승환이를 보고, 짧게나마 예불을 올리고 가는 것이 어떠하겠냐고 제안을 하셨고, 스님이 예불을 올리는 동안 우리 두 사람은 법당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30분 정도의 예불이 끝난 후, 승환이는 스님께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계좌 번호를 여쭤보았다. 시주금을 따로 준비하지 못했으니, 계좌로 보내 드리겠다는 의도였다.
“가끔이라도 할머니를 보러 와주는 것으로 시주를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인자한 미소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스님께 우리 두 사람은 깊게 허리 숙여 감사를 표하고,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다는 말과 함께 사찰을 빠져나왔다.
다시 영주시내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승환이는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좀 걱정을 하기는 했었다. 일단 지르고 보자는 생각으로 오기는 했지만, 어쩌면 승환이가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화를 낼 수도 있겠다는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승환이는 특별히 아무런 말이 없다.
그저 평소에 볼 수 없는 표정과 눈빛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 동네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
“여기냐?”
나는 눈앞에 보이는 3층짜리 학교 건물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
승환이도 학교를 바라보며 그렇게 고개를 끄덕여 준다.
연한 노랑과 빨강, 그리고 조금은 하늘빛을 닮은 파란색으로 칠해진 3층짜리 건물이, 학교 뒷 산에 우거진 나무의 초록색과 조화를 이루며 서 있었다.
영주 초등학교. 승환이의 모교.
기왕 여기까지 내려온 김에, 한번 둘러보자는 생각으로 시내에 차를 세웠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조금 걷다 보니 승환이 모교 앞에 서 있게 된 것이다.
“학교 예쁘네.”
“…그렇네.”
승환이는 학교 건물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그렇게 말한다.
나는 시선을 움직여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운동장에는 아이들 몇이 축구공 하나를 두고 열심히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아무런 걱정 따위 없는 얼굴로 열심히 뛰어다니는 어린 승환이의 모습을 떠올렸다.
한 번도 본 적없는 장면이었지만, 마치 내가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생생하게 장면이 떠올랐다.
“시간 괜찮으면…. 좀 걸어도 될까?”
여전히 학교 건물을 바라보는 승환이가 그렇게 물어본다.
“아니, 급한데? 여기서 시간 낭비하기 싫은데? 빨리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은데? 하지만 오랜만에 왔으니 조금 정도는 시간 내 줘 볼까? 오래는 힘들고 한 여섯 시간 정도?”
내가 그렇게 말하자 승환이는 씩 웃고는 내 어깨를 툭 친다.
***
승환이는 천천히 걸었다.
학교 앞에 있는 피노키오 문구점을 보고, 저게 아직도 있구나. 그렇게 중얼거리기도 하고, 한옥 모양을 한 부동산 앞에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표정으로 봐서는 그전에는 다른 게 있었던 것 같았다.
영주 가톨릭 병원 앞에서는 잠시 서서 건물을 바라보았고, 병원 옆 약국에서는 유리문을 통해 약사님을 잠시 바라보기도 했다.
대한 서림이라고 이름 붙은 서점은 직접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사장님을 보고, 잠시 말을 걸까 말까 고민하는 표정을 하다가 책만 한 권 사 들고 나왔다.
그렇게 그리 빠르지 않은 발걸음으로 옛 골목을 걷던 승환이의 걸음이 처음으로 멈춘 곳은 성당이었다.
하얀색의 타일로 외관이 장식된 2층 건물, 화려하지는 않지만 깔끔하고 정갈해 보이는 성당 입구에는 ‘천주교 하망동 성당’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여기야?”
성당을 바라보고 있는 승환이에게 내가 물었다.
“…뭐가?”
“인사드리면 웃으면서 사탕을 주셨다는 수녀님이 계셨던 성당.”
내 말에 승환이는 작게 웃는다.
“…어.”
“들어가 보든가.”
승환이는 작게 고개를 젓는다.
***
성당을 뒤로하고 몇 미터 앞에 교차로가 있었다. 그리고 그 교차로 바로 뒤에 철길 건널목이 있었다.
그리고 그 철길 건널목 너머에 연노란색으로 칠해진 단층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 보였다.
-성당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철길 건널목이 나와. 하루 종일 철길 옆을 지키고 있어도 하루에 열차 한번 보기 힘든 그런 건널목. 그 건널목을 지나 10여 미터를 걸어가 왼쪽 두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면 연노랑색으로 칠해진 5층짜리 아파트가 있어.
승환이가 말했던 바로 그 아파트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승환이는 철도 건널목 앞에 멈춰 서서 잠시 동안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어디라고 했지? 승환이가 살았던 아파트가 몇 동 몇 호였는지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승환이의 시선 끝에 그 집이 있을 거라는 사실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걸음을 멈춘 승환이는 한참 동안을 서서 아파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철도 건널목 신호기에서 열차가 들어온다는 알림음과 함께 차단기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승환이 말대로라면 하루 종일 지켜봐도 하루에 열차 한번 보기 힘들다고 했던 건널목에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승환이에게 건네주는 인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왔네. 잘 왔어. 기억나지? 우리는 그대로야.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니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렇게 해 주는 인사.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열차가 지나가고, 차단기가 올라가자 기다리고 있던 차들과 사람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승환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가 보자.”
내가 승환이에게 말했다.
처음으로 승환이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그 눈빛에 주저함이 담겨 있었다.
“가 보자고. 여기까지 왔는데, 오랜만에 인사해야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승환이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승환이는 나에게 밀러 천천히 앞으로 밀려 나갔다. 아니, 내가 밀어 준 것은 승환이의 등이 아니었다. 마음이었다.
철길을 건넌 우리는 느리지만 확실한 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고, ‘영주 로얄 아파트’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건물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승환이는 ‘나’라는 표시가 되어 있는 건물 앞에 서서 한 집을 올려 보고 있었다.
“몇 호였다고?”
“…301호.”
“나동 301호?”
승환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경상북도 영주시 하망동 292 다시 18번지, 영주 로얄 아파트 나동 301호.”
그렇게, 단 한 번도 잊어 본 적 없었던 주소를 다시 읊어 본다.
***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하교길 추억 여행은 승환이의 옛집 앞에서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다시 차를 주차해 놓은 곳으로 갔고, 차에 탔고, 영주를 빠져나왔다.
나는 이렇게 바로 떠날 생각은 없었다.
영주를 조금 더 돌아보고, 승환이 녀석이 어릴 때 먹었을 떡볶이도 같이 먹어 보고, 시간이 괜찮으면 아카시아 향기가 온 세상을 뒤덮는다던 철탄산도 가 볼 생각이었다.
“괜찮아. 이제 충분해. 고맙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승환이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영주를 빠져나오고, 인터체인지를 타고, 고속 도로를 달려 충청북도에 들어설 때까지 승환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창밖만, 아니, 승환이 기억 속 어딘가를 계속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는 그런 승환이에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고, 그저 운전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도계를 지나 단양 근처에 다다랐을 때.
“언제였는데?”
승환이가 그렇게 물어본다.
“응? 뭐가?”
“삼촌에게 이야기 들은 거.”
“흐음…. 언제였더라. 아마 그때쯤이었던 것 같은데? 고마음 영화 개봉 했을 때.”
승환이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제이슨 사건 때문에, 중앙 그룹에서 나에게 붙여 준 변호사님이 계셔. 어쩌면 니네 아버님 회사 소속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전에 변호사님하고 니네 삼촌하고 같이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쯤에 이사님에게서 전화가 온 거야. 점심이나 같이하자고.”
나는 정면에 시선을 준 채로 계속 말을 이었다.
“뭐,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도 알았지. 그 사건 관련된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만나서 뭐 제이슨 관련 이야기 듣고, 뭐였더라? 아마, 그 제이슨 아버지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으니, 민사 소송은 좀 늦추는 것이 어떻겠냐? 뭐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아무튼 그것 때문에 만나서 밥 먹다가 여쭤본 거지. 이사님이 아버님 오른팔이시라고 하니까 혹시 아실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왜?”
“응?”
“왜 물어봤는데?”
“그냥. 뭐. 흐음…. 뭐랄까나.”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승환이를 힐끗 살펴보았다.
특히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솔직히 나 자격 있지 않냐?”
“…자격?”
“친구니까. 뭐, 오지랖이라고 하면 할 말 없기는 한데, 그래도 친구니까 그 정도 오지랖 정도 부릴 자격은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고…. 아닌가? 아니냐? 오바한 건가?”
옆을 슬쩍 보니 승환이 녀석 피식 웃는다.
“그래. 자격은 있지.”
다행이다. 없다고 했으면 졸라 민망해질 뻔했는데.
“그리고, 뭐 그때 그랬잖아. 니가. 할머니 보고 싶다고.”
“…언제?”
“창회 생일날.”
승환이가 고개를 작게 끄덕인다.
“아무튼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한번 여쭤봤지. 만약 니 말대로 할머니가 널 버린 거였으면, 버렸다는 표현은 좀 그런가? 아무튼 니가 해 준 이야기가 진짜 진실이었다면, 그냥 난 입 닥치고 있으면 되는 거니까, 기분은 더러워도 손해 볼 건 없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사실 솔직히 안 믿었거든.”
“안 믿었다고?”
“그치. 생각해 봐. 할머니가 주신 사랑이 가짜일까? 진짜 아버님의 명령으로 널 돌본 걸까? 무슨 작업도 아니고, 그게 되겠냐고. 그리고 설사 그렇다고 해도, 똘똘한 우리 승환이가 그걸 눈치 못 챘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결론은 하나지. 니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
“…….”
“그래서 그 무언가를 여쭤본 거고, 다행히 이사님이 알고 계셨고, 이야기해 주셨고. 뭐 그렇게 된 거지.”
승환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해했다는 듯.
“뭐, 계기야 어찌 되었든 다행이지. 이제 오해 안 해도 되니까. 안 그러냐?”
“…그래. 다행이네.”
음. 뭐, 잘 마무리되었나 보다.
“그러니까 너는 쓸데없는 생각 말고, 아버님께 효도하고, 나를 형님처럼 잘 받들어 모실 생각만 하면 된다 이거지. 오케이?”
아우. 결국 이 진지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개드립으로 마무리하고야 만다.
진짜 한국인은 이래서 안 돼. 어색한 걸 못 참겠어.
“하나만 더 물어보자.”
그런데 승환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진지하다.
“어? 뭐?”
“언제 마음먹은 거야?”
“뭐를?”
“여기 오는 거.”
“그거? 그때, 이사님 말씀 듣고서….”
“아니, 그거 말고.”
“그럼?”
“오늘 여기 오겠다는 결정.”
승환이가 그렇게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