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 : 성불사(成佛寺) (2)
거의 세워만 놓았다는 승환이의 말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작년 봄에 뽑았다는 이 차의 주행거리는 3000km도 안 찍혀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세워만 놓았다는 이야기다.
차도 세워 놓기만 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들었는데, 가끔씩 몰아 줘야 차도 문제없이 잘 움직인다고 했는데, 내가 직접 몰아 보니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역시 비싼 차는 돈값을 하는 건가?
이렇게 큰 차를 몰아 본 적은 처음이라서, 아니, 고향에 있을 때, 친구네 봉고 트럭을 몰아 보기는 했으니까, 비싼 차를…. 아니, 서현 씨 차도 몰아 봤구나.
아무튼, 이렇게 비싸고 커다란 차를 몰아 본 것은 처음이라서 조금 긴장을 했었는데, 막상 운전해 보니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같은 반 자율 주행 기술이 적용되어 있으니 큰 문제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에 보조석에 앉아 있는 승환이 녀석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내 운전 실력을 믿지 못해서, 생명의 위기를 느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아닐 거다. 저 녀석의 표정이 저런 것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경로로 가고 있기 때문일 거다.
원래 내 고향으로 간다면 경부 고속 도로를 타고 가는 게 가장 빠르다. 정체가 많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대체 경로보다 경부 고속 도로를 가는 게 가장 빠르다.
하지만 나는 그 경로 대신 다른 길로 가고 있다. 집에서 나와 강변 북로를 타고, 강동 대교를 건너 중부 고속 도로를 타고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중부 고속 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호법 분기점에서 영동 고속 도로를 갈아타고, 다시 여주 분기점에서 중부 내륙 고속 도로를 타자, 아무 말 없이 그냥 잠자코 지켜보던 박승환도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는지 결국에는 물어본다.
“우리 지금 어디 가고 있는 거냐?”
“그냥. 바람 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그렇게 말해 줬지만, 승환이는 당연히 믿지 않는다.
뭐 개소리이긴 하니까.
“혹시….”
승환이가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표지판을 바라보고는 묻는다.
“창회네 가는 거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얼마 전 다녀온 창회네 본가로 가던 경로와 지금까지는 완전히 똑같으니까.
“거기도 괜찮지. 창회 고모님께서 언제든 편하게 놀러 오라고 하셨으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진짜 어디 가는 건데?”
“그만 좀 찡찡거려라. 형이 다 생각이 있으니까.”
나는 그렇게 승환이 녀석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렇게 저번에 친구들과 다 같이 달렸던 길을 달렸고, 그리고 저번에 저녁 설거지를 걸고 랭킹전을 벌였던, 배팅 센터가 있는 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특유의 맛이 있는 휴게소 푸드 코트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도 한 잔씩 사서 입에 물고, 그리고 혈투를 벌였던 배팅 센터도 다시 둘러보면서 잠시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승환이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는 진짜 얼마 지나지 않은 그 기억이 엄청 멀게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판에서 남자애들 다 말아먹고, 1등한 최유라에게 첫판 연습은 국룰이라고 우겨 대던 기억도, 여자애들이, 특히 지연이가 공 맞히겠다고 무거운 배트를 엉거주춤하게 들고서 집중하고 있던 모습도, 마지막 서든 데스 결정전에서 꼴찌를 한 박찬희를 한마음 한뜻으로 놀려 대던 기억도 지금은 마치 오래전의 기억처럼 느껴진다.
즐거웠었지. 행복했었다. 그래서 뭔가 더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런 기분을 승환이에게 들키지 않도록 재빨리 머리를 흔들고 다시 차를 몰았다. 그리고 그렇게 두 시간 정도가 더 지나 우리는 고속 도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여기는 왜?”
우리가 빠져나오는 인터체인지를 확인한 승환이는 당황하고 있었다.
영주 인터체인지. 경상북도 영주, 승환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으로 이어지는 관문이었으니까.
나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냥 말없이 차를 몰아 영주 시내로 들어갔다.
작은 도시였다. 내가 자랐던 고향보다는 조금 발전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한적한 지방 도시라는 느낌이 물씬 나는 그런 곳이었다.
승환이는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승환이에게 어떠한 말도 걸지 않고, 그냥 계속 차를 몰았고, 금세 영주 시내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몇백 미터를 더 달려 좁은 시골길로 좌회전해서 들어갔다.
대형 SUV가 다니기에는 조금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편도 1차선 도로의 끝에 성불사(成佛寺)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 작은 사찰이 있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였다.
“가자.”
차를 멈추고, 시동을 끄고, 승환이에게 말했다.
승환이 녀석은 아무런 말 없이 날 바라만 보고 있다.
그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승환이가 어렴풋이 눈치챘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 보자.”
나는 그렇게 말하고 차 문을 열었다.
***
갑작스러운 대형 SUV의 등장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닌 듯, 스님 한 분이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어쩐 일로 왔는지를 여쭤보셨다.
나는 스님께 찾아온 목적을 설명해 드렸고, 내 이야기를 들은 스님은 그제서야 이해하셨다는 듯, 작게 미소를 지어 주셨다.
“제가 안내해 드릴까요?”
“아닙니다. 위치만 알려 주시면 저희가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스님과 이야기할 동안 한 발 뒤에 서 있는 승환이에게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저 뒤입니다. 표찰이 붙어 있으니 확인은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스님은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키셨다.
나는 감사의 의미를 담아 인사를 드린 후, 승환이를 돌아보았다.
승환이는 말없이 날 바라만 보고 있다.
“가 보자.”
나는 그렇게 말하고 스님이 가르쳐 주신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승환이의 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경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어딘가 기품이 느껴지는 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는 곳.
그곳에 도착한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나무에 붙어 있는 팻말을 살펴보았고, 그중에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여기다.”
내가 승환이에게 말해 주자, 승환이는 잠시 멈춰 섰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나무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나무에 붙어 있는 표찰, 정확히는 그 안에 쓰여 있는 글귀를 읽었다.
‘작은 떡잎을 묘목으로 키워 내신 심옥순 님께서 잠들어 계신 곳.’
***
승환이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정현식 이사님을 나는 두 번 만났다.
처음은 변호사님이 제이슨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을 때, 그때 불구속 상태로 나와 있던 제이슨이 판매상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었다.
두 번째도 같은 이유로 만났었더랬다. 점심 초대를 받았었고, 홍제동 한정식집에서 단둘이 만나 불편한 식사를 했었더랬다. 그리고 아이테크 건설의 임원영 대표, 그러니까 제이슨의 아버지에 관해서 언론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사실 제이슨이 체포된 이후로, 그 자식과 관련된 일들이 어떻게 흘러가든 난 크게 관심은 없었다. 그냥 뭐 중앙 그룹이나, 강우현이나, 변호사님이나 다들 알아서 해 주시겠지. 그런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정현식 이사, 그분을 만났을 때는 조금 달랐다. 따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분만이 대답해 주실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정현식 그 분은 나에게 묻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고, 두 번째 만남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나는 결국 물어보았었다.
“별건 아닙니다만…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승환이 관련된 건데요.”
그런 내 말에.
“소계주…. 아니, 승환이 할머님에 대한 말씀이시군요.”
그렇게 말씀하셨다.
***
“대모님…. 저희는 할머님, 심옥순 님을 그런 호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원래 계획은 소계주…. 아니, 승환이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아. 네.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원래 저희는 승환이를 고등학교 때까지 그곳, 영주에 있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저희가 이런 말을 드리는 건 좀 이상하지만, 서울, 아니, 변호사님 근처는 청소년 시기에 지내기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었으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바로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어 이내 표정을 고쳤다. 아무리 본인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해도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안 되지.
“괜찮습니다. 저희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계속 말씀드리면, 당초 계획은 승환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때 진실을 알려 줄 생각이었습니다.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바로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겠지만, 14살보다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셨는데, 왜….”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온다.
정 이사님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속 말을 이어 간다.
“대모님께서 원하셨습니다.”
“…네?”
“당신의 마지막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승환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이전 부터, 대모님은 이미 항암 치료를 받고 계셨습니다.”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저희의 불찰이었습니다. 조금 더 세심하게 신경 써 드렸다면, 그랬다면 그렇게 늦게 발견하지 않았을 텐데…. 발견했을 당시에는 이미 많이 진행된 상황이었고, 그리고 현대 의학으로는 손을 쓸 수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승환이는….”
“몰랐습니다. 지금도 모르고 있고.”
나는 말없이 눈앞의 중년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승환이는 알았어야 했다. 그럴 자격이 있다. 그런 의미의 눈빛을 담아서.
“대모님이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
“대모님은 승환이가 당신의 마지막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미안해하고, 그리워하고, 괴로워하기보다는, 미움받는 편이 사랑하는 손자의 마음의 짐을 덜어 준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이해할 수 있었다. 손자를 사랑하는 할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내리셨는지, 심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하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이해하기에 너무나도 슬픈 이별이니까.
정현식 이사는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그 눈빛을 보면서, 이 사람도, 할머니도, 그리고 승환이 아버님도 많은 고민을 하셨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뭐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친구라는 자격으로 침범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작게 고개 숙여 죄송함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정현식 이사님이 그렇게 말한다.
“그러면 할머니께서는 언제….”
“승환이가 서울로 올라온 후 3년 정도 치료를 받았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천하셨습니다. 저와 변호사님이 마지막을 지켰고, 편안한 얼굴로 잠드시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치료 받으시는 동안 승환이의 소식은 계속 전해 드렸고,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며 안식에 드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왔다.
할머니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손자, 그 손자가 커가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던 할머니.
그리고 건네지 못한 마지막 인사.
“…그럼 할머님은 지금 어디에….”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울음을 억지로 삼키고서 겨우 이 말을 할 수 있었다.
“계시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봄이 되면 철탄산의 아카시아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 오는 작은 암자, 성불사에 모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