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 : “…못 있겠다. 여기.”
결국 승환이네서 하루 신세를 졌다.
혹시라도 승환이 아버님을 뵙게 되면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나, 그런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승환이 아버님을 만나는 일은 없었다.
승환이 말로는 원래 잘 안 들어오신단다. 일이 바쁘셔서 그런지 한 달 동안 얼굴 한번 못 보는 경우도 많다고 하네.
아. 그리고 승환이 이 자식 팰리스타워에 살고 있었다.
대한민국 초고층 대단지 주상 복합 아파트의 시초, 도곡동을 강남을 대표하는 신흥 부촌의 지위로 끌어올린 그 팰리스타워 100평짜리 집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뭐 큰집 사는 게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래도 1년 넘게 친한 친구라고 지냈는데,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박승환 이 자식이 그만큼 티를 안 냈다는 이야기지.
“이 집에 친구 부른 건 두 번째다.”
박승환이 그렇게 말한다. 지금은 상선 해기사라는 중학교 친구 다음에 나라는 이야기다.
이 자식 진짜 인간관계 좁구나. 그렇게 비난하고 싶어도, 나는 누구 하나 지금 집에 초대한 적이 없었네. 아니, 초대할 수가 없었지.
아무튼, 거의 내 방 크기만 한 승환이 방에서 캔 맥주를 마시면서, 안주로 친구 놈들을 씹으면서 그렇게 자정 넘어서까지 놀다가 손님방이라는 곳에서 잠이 들었다.
어색한 공간이었지만, 전날 잠을 못 자서 그랬는지, 아니면 큰 캔으로 두 개나 마셨던 맥주 덕분인지 모르겠는데, 손님용 침대에 누워서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어 버렸다.
아침에 눈을 떠 시간을 확인하니 7시 반이 넘어 있었다.
나는 잠시 누워 있는 상태로 낯선 천장을 바라보았다.
개운했다. 정신적으로는 몰라도, 육체적으로는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꿈도 안 꿀 정도로, 아니 꾸었는지 기억 안 날 정도로 숙면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식처가 되어야 할 집에서는 휴식을 얻지 못하고, 친구의 집에서 이렇게 숙면을 취했다는 사실이 우습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어제 벗어 둔 바지를 주섬주섬 주워 입고,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을 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 아니, 사람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한 남자였다.
“일어나셨습니까?”
자리에서 일어서며 나를 향해 공손히 인사하는 계주님, 아니, 승환이 아버님을 보면서 나는 그 자리에서 순간적으로 몸이 굳는 걸 느꼈다.
“안. 안녕하세요?”
한 박자 늦게, 고개 숙여 인사를 드렸다.
분명 어제 승환이와 맥주 두 캔씩을 마시고 잠이 들기 전까지 아버님은 귀가하지 않으셨는데, 새벽에 들어오셨었나 보다.
나를 보고도 전혀 놀라거나 당황한 기색이 없으시다. 마치 내가 어제 이 집에 올 것이라는 것을 알기라도 하셨다는 듯.
“아침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아침? 아침밥? 설마, 아버님이 직접 아침밥을 차려 주신다는… 그런 말씀은 아니시겠죠?
***
다행히 아니었다.
이 집에는 상주하며 집안일을 돌봐 주시는 가사 도우미분이 계셨고, 그분께서 아침을 차려 주셨다.
그리 과하지 않은, 그렇다고 바쁜 아침 시간에 대충 때울 정도로 간소하지도 않은 아침상이 식탁 위에 차려져 있다.
밥, 국, 반찬 몇 개.
식탁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다. 나, 아버님, 그리고 승환이.
당연히 대화는 없다. 그저 수저와 식기가 만들어 내는 작은 달그락 소리만 들릴 뿐, 우리 세 사람은 말없이 각자의 음식에 집중하고 있다.
와. 소화 안 될 것 같아. 진짜 불편하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승환이 녀석도 아무 말 없이 그저 밥만 먹고 있다.
그렇게 어색한 식사가 끝나고, 아버님이 ‘그럼 편히 쉬었다 가십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출근하고 나서야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너 때문이야.”
박승환이 후식으로 나온 과일을 먹으며 그렇게 말한다.
“뭐가?”
“너 때문에 겸상을 했어. 아오. 진짜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
뭐라 할 말이 없다. 무슨 말을 해?
‘그러지 마라. 어버이 살아 계실 제 섬기길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파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 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음부터는 내가 상 따로 차려 달라고 따꼼하게 말할게’ 그럴 수도 없고.
“그나저나, 집에 갈 거냐?”
승환이가 물어본다.
“…가야지.”
가야지. 어찌 되었건 내 짐이 거기 다 있는데,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나올 거냐?”
“…모르겠다.”
그렇게 대답한다. 솔직한 마음이다.
“뭐. 알아서 잘하겠지만, 현명하게 생각해라. 괜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무슨 후회?”
“무지성으로 짐 싸고 나온 다음 나중에 서현 씨에게 미안하다고 질질 짜지 말라고.”
승환이가 그렇게 말한다.
젠장. 뭐라고 받아칠 말이 없네.
“서현 씨도 출근했겠네?”
승환이가 시계를 보면서 그렇게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시간이면 출근하고 집은 비어 있을 거다.
“태워다줄까?”
승환이가 그렇게 말한다.
“…너, 차도 있냐?”
“어.”
“근데 왜 안 끌고 다녀?”
“재수 없잖아. 스물한 살이 차 끌고 다니면.”
“그건 그렇지. 혹시 삼각별?”
“아니. 너 이 자식 너무 삼각별에 집착하는 거 아냐? 삼각별 아니면 차도 아니다. 그런 생각 하는 거 아냐? 어? 그러지 마라. 내가 저번에도 이야기했던 자고로 것처럼 첫 차라는 놈은 최저 임금 기준 미만의 알바비를 받아 가면서…”
“…아니. 됐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야지. 가기는 가야지.
***
승환이 집에서 가는 가장 빠른 경로는 도곡역에서 분당선을 타고 서울 숲에서 내리는 루트다.
고작 정거장 6개, 갈아탈 필요도 없어서 빠르면 10분, 열차 기다리는 시간을 감안해도 20분 내에 서울숲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빠른 경로 대신에 선릉역에서 2호선을 갈아타고 뚝섬역으로 가는, 조금 돌아가는 루트를 선택했다.
돌아간다고 해도 사실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는다. 그래 봤자 30분, 뚝섬역에서 집에 걸어가는 10분을 포함해도 40분이면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뭐. 시간은 금이라고 20분이면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그 귀중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변명을 하자면… 그냥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해서 그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시 우울 모드로 빠져 있었으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었다. 결국 서현 씨를 다시 보기는 해야 했다.
평상시처럼 아침 인사를 하고, 같은 식탁에서 같이 밥을 먹겠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을 하고서.
웃기는 게, 그렇게라도 지낼 수 있다면, 서현 씨와 같이 지낼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떠오른다.
알고 있다. 아무 일 없었던 척, 괜찮은 척, 그렇게 지내는 건 해결 방법이 아니다.
어떠한 변명을 가져다 붙인다 해도 도피지. 현실에서 시선을 돌리는 것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계속 그렇게 어색하게 지내?
그건 더 말이 안 되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니, 나도 그렇지만 서현 씨에게는 고통스러운 나날이 되겠지.
그녀는 결정하지 않을 테니까.
같이 지낼 것인지, 말 것인지, 같이 지낸다면 어떤 형태로 같이 지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결정을 한다 해도 서현 씨는 그 결정을 받아들일 것이다.
젠장. 또 그놈의 작은 어르신.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겠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작은 어르신이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면,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를 봐 오던 시선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겠지.
승환이처럼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너 스스로에게 확실히 물어봐. 어떻게 하고 싶은지.
어젯밤 승환이가 해 줬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린다.
어떻게 하고 싶냐고?
그냥, 지금처럼, 한수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냥 지금처럼.
***
서현 씨에게서 메시지가 온 것은 성수역을 지난 열차가 뚝섬역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오늘 집에 들어오시나요?
나는 물끄러미 문자를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움직여 자판을 입력했다.
‘네. 지금 거의 다 왔어요. 지금 집에 계세요?’
나는 그렇게 문자를 타이핑하면서, 메시지는 감정이 전달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요. 저는 출근 했어요.
그렇게 돌아오는 문자에 안도감과 섭섭함이라는 이질적인 감정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이라니. 그런 혐오감도 같이.
‘죄송해요. 갑자기 외박해서.’
-아니에요. 아침은 드셨어요?
‘네. 먹었어요.’
그렇게 보내 놓고 혹시? 하는 생각이 든다.
집에 가면 식탁 위에 음식이 차려져 있는 건 아닐까?
-네. 다른 게 아니라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서현 씨의 메시지가 내 상념을 멈춘다.
‘네. 말씀하세요.’
-잠시 동안 본가에 좀 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런 메시지가 들어온다.
그리고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녀의 메시지가 바로 이어진다.
-할아버지를 좀 곁에서 도와드려야 할 일이 갑자기 생겨서요. 죄송합니다.
아니었다. 메시지에 감정이 담기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보내온 문장에서, 나는 그녀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거짓말. 그렇게 담겨 있었다.
‘아니에요. 죄송하긴요. 괜찮아요.’
나도 그렇게 거짓된 감정을 담아 메시지를 보낸다.
***
문을 열고 텅 빈 집에 들어온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위화감이 느껴진다.
서현 씨가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서현 씨보다 내가 먼저 집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이유 모를, 아니, 사실은 정확히 이유를 알고 있는 위화감을 애써 무시하면서 거실 복도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간다.
거기에는 평상시의 거실 모습이 펼쳐져 있다. 그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은 평상시의 거실의 모습이.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전 서현 씨의 메시지가 다시 떠올랐다.
아니, 목소리가 떠올랐다. 메시지였지만, 그녀의 목소리로 재생되었다.
-잠시 동안 본가에 좀 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잠시? 잠시가 얼마일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아니면….
나는 잠시 거실에 서 있다가 몸을 돌린다. 그리고 서현 씨의 방문으로 다가간다.
방문 앞에 서서, 잠시 바라보다가 주인 없는 방에 가볍게 노크를 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그리고 문가에 서서 방 안을 바라본다.
처음은 아니었다. 그녀의 방을 바라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없는 방 안을 바라본 것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방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평상시의 모습처럼 보였다. 그렇게 느껴졌다.
그녀가 이 집을 완전히 떠났다는 징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알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 안도감을 느끼는 내가 있었다.
나는 조금 더 짙어진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며, 방문을 닫았다.
몸을 돌린 내 다음 행선지는 주방이었다. 물을 마시기 위해서.
그리고 내 시야에 식탁이 들어왔을 때, 아까 전의 생각을 다시 떠올렸다.
혹시, 아침밥을 차려 놓은 것은 아닐까?
식탁 위에는 음식이 차려져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것도 아니었다.
메모지가 위에 올려져 있었다.
나는 천천히 식탁으로 다가가 메모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냉장고 안에 음식이 들어 있으니 꺼내서 데우기만 하면 된다는, 익숙한 서현 씨의 손글씨를 읽었다.
나는 메모를 손에 든 채로.
“…못 있겠다. 여기.”
그렇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