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 같은 마음 (3)
잠에서 깨어난다.
눈을 뜨자 언제나처럼 똑같은 내 방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누워 있는 그 자세 그대로 오랜만에 내 방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처음 이 방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저 천장을 보면서 위화감을 느꼈다.마치,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곳에서 아침을 맞이한 것만 같은 그런 위화감을.
단지 익숙하지 않은 장소여서 위화감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하숙집에서 처음 일어났던 그 날, 나는 오랜 시간을 지내 온 내 방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느낌 속에서 아침을 맞이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공간은 나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위화감을 안겨 주었다.
처음에는 단지 방이 너무 커서 그런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다.
고향 집의 내 방도, 1년 조금 넘게 신세를 졌던 하숙집도 그리 크지 않았으니까.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사람 하나 누우면 방 안이 꽉 차는 느낌을 주었으니까.
남자 세 명은 충분히 누워 잘 수 있을 크기의 침대가 놓여 있어도 충분한 여유 공간이 있는 이 커다란 방 크기 때문에 위화감을 느꼈던 것이라고 그렇게 단정 지었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 방에 익숙해지면 사라질 위화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알 것 같다. 내가 왜 이 방에서 위화감을 느꼈는지.
“…역시 그건가.”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단지 육체적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고 해서 집이라고 부를 수 없다. 육체적인 휴식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안정까지 담보되어야 진정한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처음 이곳에서 잠들었던 그 첫날에,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이곳에서 위화감을 느낀 이유는 하나뿐이다.
“그거네.”
나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
그렇게 미동도 없이 천장을 바라보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10분? 어쩌면 그 이상?
아무튼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
6시 54분.
두껍게 쳐진 암막 커튼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을 보며, 아침이 되었다고 생각은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간이었다.
서현 씨와의 대화가 끝나고 내 방으로 돌아와 옷도 벗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을 때가 몇 시였을까?
모르겠다.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으니까. 확인할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적어도 두 시는 넘겼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늦었을지도.
침대에 누웠다고 바로 잠이 든 것도 아니었다. 잠들 수가 없었지.
멍한 상태로 침대에 누워 방 안을 가득 채운 어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그랬을까? 30분? 한 시간? 아니, 어쩌면 두 시간?
시간 감각이 마비된 채로, 그렇게 누워 있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어 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정신이 버텨 내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겠지.
그리고 지금이 거의 7시.
몇 시간이나 잠들었었던 걸까? 세 시간? 네 시간?
사실 얼마나 잤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몇 시간을 잤든 잠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나는 어떠한 정신적 휴식도 얻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더 잔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의 에너지 보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어제 아침에는 어떤 기분으로 일어났었지?
고작 24시간.
정신적인 휴식과 에너지를 보충해 주는 ‘일반적인 수면’을 취하고, 아무런 위화감 없이, 걱정 없이 잠에서 깨어났던 24시간 전의 어제 아침이 너무나도 멀게 느껴진다.
마치, 그 24시간 사이에 나를 둘러싼 세계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는 그런 느낌이 든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나를 바라보던 서현 씨의 슬픈 눈동자와 마지막 말.
-제가 한수 씨 곁에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그 마지막 말을 끝으로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왜냐고 묻지 않았다. 그녀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나도 알 것 같았으니까.
아니,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것 같다고 나도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서현 씨에게 여자친구가 되어달라고 고백한 것이 아니었다.
진실을, 그동안 애써 무시하고 있던 진실을 확인하려 한 것이었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고, 있고, 그녀가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해도, 우리 두 사람의 관계가 처음부터 왜곡된 채로 시작되었다는, 그리고 그 진실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현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진실을, 현실을 인정하는 나 자신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
나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같은 자세로 누워 있었지만 천장을 바라보거나, 어젯밤의 기억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온 신경을 방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났지만, 아무런 미동도 없이,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처음은 이 집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날, 아직 서현 씨와 서로 마음을 터놓고 같은 식탁에서 같은 음식을 먹는 식구가 되자는 합의를 이끌어 내기 전.
서현 씨가 출근을 하지 않는 이유가 나 때문인지 알고 싶었고, 방 안에서 청각을 집중한 채로, 서현 씨가 아침을 준비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9시가 넘어서, 출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녀가 아직 거실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서야 거실로 나가 서현 씨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더랬다.
그리고 결심했었지. 말해야겠다고. 나를 모시기 위해 이 집에 있는 것이라면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같이 지낼 수 없다고. 그렇게 말하겠다고.
나는 그때처럼 침대에 누워 방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고 있다.
그녀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 그녀가 거실을 걸어 다니는 소리, 그녀가 주방에서 무언가를 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때와는 달랐다. 지금 당장은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서현 씨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얼굴을 보면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계속 누워 있을 생각이었다.
9시가 넘든, 정오가 지나든, 방문 밖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이대로 방문 뒤에 숨어 있을 생각이었다.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한심한 것을 넘어 스스로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어른스럽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현 씨에게 아침 인사를 하고, 그녀를 배웅하는 것이 어른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억지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심을 느끼면서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고집을 부리고 싶었다.
***
처음과는 달리 서현 씨는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했고, 문밖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가 떠난 것을 확인하고도 나는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방문을 열었다.
다시 한번 서현 씨가 이 집에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나는 천천히 몇 달을 살았던 이 집을 돌아본다.
내 의지로는 단 한 번도 열어 보지 않은 서현 씨의 방문, 서현 씨가 사 온 옷들이 가득 걸려 있는 옷 방, 서로에게 미소 지어 주며 차를 마셨던 거실, 휴일에 피자를 먹으면서 영화를 봤던 대형 텔레비전 등등, 어느 곳 하나 기억이 묻어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리고 주방에 도착했을 때, 식탁 위에 차려져 있는 아침밥이 보였다.
토스트와 샐러드, 그리고 예쁘게 다듬어진 과일이 담긴 접시.
서현 씨는 어떤 마음으로 아침밥을 준비했을까?
만약 내가 서현 씨였다면, 평상시처럼 아침밥을 준비했을까?
나 스스로를 있는 힘껏 때려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서현 씨가 차려 놓은 아침밥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
집에서 나온 나는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가고 있었다. 학교에 볼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집에 있기 싫었고, 갈 곳이 없었다.
그리고 그 지하철 안에서 지연이의 깨톡을 받았다.
-오빠. 혹시 통화 괜찮으세요?
나는 지연이의 깨톡을 보고 나서야, 어제 지연이가 아팠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갑자기 열이 났고, 병원에 다녀왔지만 여전히 열이 남아 있어서 알바를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지연이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아니. 미안. 지금 지하철 안이라. 급한 일이야?’
-아니에요. 그냥 톡으로 해도 괜찮아요.
‘몸은 좀 어때?’
-네. 이제 괜찮아졌어요. 어제 죄송해요. 저 때문에 고생하셨죠?
‘아니. 맨날 하는 일인데. 그리고 병진이 형도 도와줬고.’
그렇게 톡을 보내고는 잠시 주저하다가.
‘그리고 죄송할 것 없어요. 아픈데 억지로 나왔으면 그게 더 죄송한 일이야.’
그렇게 사족을 붙여 버렸다. 깨톡에는 표정이 드러나지 않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죄송해요. 근데 지금 어디 가세요?
‘학교.’
-학교요?
‘잠깐 자료 좀 찾아볼 게 있어서.’
나는 그렇게 깨톡을 보내 놓고, 쓰게 웃었다.
어제 서현 씨와 애써 외면하고 있던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고, 현실을 인정했고, 도저히 집에 있을 수 없어서 일단 나왔는데, 어디 갈 데가 없어서 학교로 가고 있다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아. 그렇구나. 언제까지 계실 건데요?
‘잘 모르겠네. 저녁까지는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오빠. 그럼 점심 같이 드실래요?
‘괜찮겠어? 밖으로 나와도?’
-넵! 아침에 병원 가서 의사 선생님 진료받고 이제 괜찮다는 완치 판정 받았습니다!
화면에 떠 있는 건 문장이었지만, 나는 그 문장에서 지연이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지금 무언가를 먹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무언가를 먹고는 것은 둘째 치고,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한데, 지금 속이 좀 안 좋아서.’
-왜요? 혹시 탈 나셨어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점심은 좀 그렇네.’
-아…. 네. 그럼 차는 어떠세요…?
나는 잠시 동안 화면 위에 떠 있는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화면을 바라보다 이내 손가락을 움직여 메시지를 작성했다.
미안한데, 오늘은 좀 그렇다. 나중에 보면 안 될까?
그렇게 메시지를 완성했지만, 차마 전송 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계속 이렇게 어린애처럼 굴다가는 정말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언제쯤 볼까?’
-그러면…. 한 세 시쯤은 어떠세요?
‘그래. 세 시.’
-제가 학교로 갈게요. 오빠 도서관에 계실 거죠?
‘아마도. 이따가 출발할 때 연락 줘.’
-넵! 이따가 뵐게요!
마지막 말과 함께 양팔을 휘두르며 달려가는 토끼 이모티콘이 뿅 하고 떠오른다.
***
유지연은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깨톡 창을 바라보면서, 이모티콘은 보내지 말걸, 그렇게 후회하고 있었다.
이미 늦은 후회였다. 이모티콘은 전송됐고, 숫자 1도 사라진 뒤였다.
유지연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손을 들어 이마를 더듬어 보았다.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 동생 병 수발이나 들고 있다고 투덜거리며 오빠가 붙여 준 해열용 냉각 패치가 만져졌다.
유지연은 이마에서 손을 떼어 내고, 침대 위로 몸을 눕혔다. 그리고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 올렸다.
오후 세 시. 그때까지 어떻게 해서는 컨디션을 조금이라도 회복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쉬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에게 거짓말을 했다.
아침에 병원에 다녀왔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병원에 갔고, 진료를 받았다.
그리고 적어도 2~3일, 최소한 오늘은 집에서 꼼짝 말고 있으라는 진단을 받았다.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유지연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해 주었다.
열도 많이 내린 것 같고. 기침 감기가 아니니 마스크만 잘 쓰면 옮기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모르니 실내가 아니라 실외에서 보자고 해야 되겠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유지연은 스스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내 멋대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내 고집만 부리다가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폐만 끼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이내 머리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유지연은 다시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해서라도 한수를 보고 싶었다. 그 얼굴을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