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 : 후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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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라고?”
이중훈이 그렇게 중얼거린다.
“어.”
김창회가 그렇게 대답한다.
창회의 대답을 들었지만, 이중훈뿐만 아니라 우리 전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건물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지금 우리 눈앞에는 외벽이 새하얀 색으로 칠해진 2층짜리 건물이 있다.
여기가 어디냐고?
창회네 본가에서 자동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떨어진 리조트. 그냥 리조트도 아니고, 골프장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골프 리조트, 그것도 본관도 아니고 독채 건물이다.
내가 아무리 서민의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골프라는 운동이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운동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예전보다 많이 대중화되었다고 해도 장비나 골프장 비용 등을 생각하면 생활스포츠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하물며 골프장 내에 위치한 골프 리조트, 그것도 독채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숙박비가 그리 저렴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더군다나 오늘 금요일인데,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말 2박 3일인데, 이 독채를 2박 3일 동안 우리가 독점으로 쓸 수 있다고?
***
2층. 다락방까지 포함하면 3층 크기에, 사람이 먹고, 자고, 씻고, 놀고 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진 호화 골프 리조트 독채를 돌아본 우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와. 이거 소파도 가죽이네. 딱 봐도 개비싸 보이네.
아무튼, 소파에 앉아서 창회로부터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을 듣고 있었다. 나는 이미 들었던 이야기이긴 한데, 다른 녀석들은 처음 듣는 이야기니까.
간단하게 요약하면, 창회 큰고모님께서 맛있는 거 해주신다고 우리를 데려오라고 하셨고, 둘째 고모님께서는 여기까지 오면 자고 가야 할 테고, 종택에서 자라고 하면 우리가 불편할 테니, 잘 곳을 마련해 주신다고 하셨단다. 확실히 당일치기할 거리가 아니기는 하지.
그렇다고 창회가 바로 ‘알겠습니다!’ 한 건 아니다. 저 녀석 성격에 그럴 수가 없지.
그럼 어떻게 된 거냐? 여기도 또 지우가 등장을 한다.
창회가 지우랑 깨톡을 하다가, 그 이야기를 했다는 거다. 부산 여행 가려고 했는데, 숙소 못 구했다. 뭐 그런 이야기.
그 이야길 들은 지우가 바로 고모님께 일러바친 거지. 고모님은 바로 할아버지에게 보고하고, 할아버님이 ‘그럼 진행시켜.’라고 하셔서 이렇게 되어버린 거고.
창회 녀석도 좀 쑥스럽고 그래서 안 하려고 했는데, 막상 판이 만들어지니까 자기도 우리들에게 좀 고마운 것도 있고 해서 못이기는 척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김창회도 몰랐던 거지. 고모님께서 구해주신다는 숙소가 비수기에도 1박에 80만 원이나 하는 리조트 독채일 거라고는.
여행 얘기를 한창 할 때 창회 녀석이 그랬었다. 방 두 개 정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 녀석 생각에는 둘째 고모님이 근처에 펜션 같은 거를 알아봐 주시는 건가 싶었단다.
그랬는데, 이 비싼 골프 리조트를 준비해주실 줄이야.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골프장이라는 것이 되게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다네?
단순히 ‘여기에 골프장을 지어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땅 사고, 허가받아서 뚝딱 만들어 운영하는 게 아니라, 투자자와 지자체, 지역 주민, 시공업체 등 다양한 주체가 지분을 모아 법인을 구성하고, 운영한다는 거다. 은근 되게 큰 회사라는 거지.
그리고 창회의 집안인 화양 김씨 문중이 이 골프장과 리조트의 지분 소유자 겸 운영 주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 골프장과 리조트가 니네 거라고?”
아버지 따라서 골프 좀 쳐봤다는 이중훈이 그렇게 물어본다.
“…우리 집안 게 아니고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둘째 고모님이 대표님이시라며?”
창회 둘째 고모님이 이 골프장과 리조트 운영사의 대표이사님이시라네.
“뭐….”
“할아버님은 대주주시고.”
“…나는 모르지. 지분이 얼만지. 관심도 없고.”
김창회가 진짜 관심 없다는 얼굴로 그렇게 말한다.
실제로 관심이 없는 건지, 없는 척하는 건지 속은 모르겠지만, 김창회 이 자식 진짜 나쁜 녀석이다.
아니, 할아버님께서 이렇게 큰 재산, 아니, 힘들게 사업체를 운영하고 계시면 열심히 공부하고 어서 빨리 졸업해서 할아버님 어깨의 큰 짐을 덜어드릴 생각은 안 하고, 연을 끊는다느니, 그딴 소리를 하고 있었단 말이잖아?
“창회야.”
잠자코 듣고만 있던 찬희가 창회를 부른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 골프장의 소유자가 니네 가문이고, 너는 그 가문의 종손이다. 이 말이지?”
그렇게 묻는다.
창회는 뭔가 말하려 하다가, 작게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찬희가 그런 창회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혹시 내가 그동안 너에게 뭐 잘못한 게 있었다면 사과한다. 친구야.”
아우. 비굴한 자식. 옆에 여자친구도 있는데 그렇게 말하고 싶냐?
그런 생각을 하는데 유라가 잘했다는 듯 찬희 어깨를 토닥여준다.
아주 부창부수네. 부창부수야.
“이 자식아. 너는 임마.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승환이가 바로 찬희에게 핀잔을 준다.
“뭐가?”
“형님에게 그렇게 말 짧게 하고 그러면 되겠냐? 버릇없이?”
박승환은 그러고는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모으고는, 창회를 바라보면서.
“저는 항상 형님의 튼실한 근육을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개드립을 친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제가 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창회 형님.”
중훈이도 바로 이런다.
***
우리 창회 형 최고예요! 창회 형 사랑해요! 최고존엄 김창회! 우윳빛깔 김창회! 하며, 김창회를 추앙하는 그런 분위기가 잠깐 만들어졌지만, 그래봤자 10분이다.
뭐 당연하지.
그 녀석들이 농담은 그렇게 해도 집안이 어떻고, 재산이 어떻고 그런 걸 따져서 친구를 사귀는 그런 놈들은 아니다.
만약 그런 놈들이었다면 애초에 나랑 친구도 안 했겠지. 표면적으로 봤을 때, 내가 제일 가난하거든.
일단 이중훈은 지금 일산에서 살기는 하지만, 강남에서 태어나 그쪽에서 계속 학교 다녔지, 일산 사는 것도 아버지 병원이 일산에 있어서 그런 거지, 강남에 아파트도 가지고 있잖아.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승환이 녀석도 아버님이 잘나가는 로펌 대표변호사님. 찬희도 다른 놈들과 비교하면 좀 평범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아버님이 천호동에 단독주택 가지고 계시지. 먹고살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집안이다. 유라도 삼성동 살고, 지연이는 서초동, 민주는 목동.
뭐야? 생각해보니 다 잘 사네?
아무튼, 그런 녀석들이 같은 계급에서만 친구를 찾았다면 나랑 친구가 되었을 리가 없다.
표면적으로 나는 지방에서 가방 하나 들고 올라와 하숙집-친척집 테크트리 타고 있는 고학생이잖아. 창회도 마찬가지고.
근데 나는 녀석들이랑 1년 반 가까이 친구로 지내면서 저 녀석들이 돈 가지고 건방 떠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애초에 그런 놈들이었으면 내가 친구 안 했지.
아무튼, 그런 녀석들이라서 창회가 골프장과 리조트를 보유한 종가의 종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개드립이나 치고 말지, 창회가 자기네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 될 것인지, 떨어질 콩고물이 얼마나 될지 계산을 때리는 놈들은 아니다.
사실 먼 미래의 상속이 뭐가 중요하겠어.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짐부터 정리하는 거지.
차에 실을 때부터 생각했는데, 풀어놓고 보니 진짜 많이도 샀다.
내가 뽑아준 리스트는 이랬다.
바비큐용 목살과 삼겹살, 쏘세지, 상추와 깻잎 등 쌈 채소, 쌈장 고추장 등 양념, 아침에 먹을 라면, 참치, 햇반, 계란, 김치, 생수하고 탄산음료, 맥주와 소주 적당히.
내가 분명 그렇게 써줬다. ‘적.당.히’라고!
그랬는데, 이 미친놈들이 목살 다섯 근, 삼겹살 다섯 근, 쏘세지 업소용 한 팩, 쌈 채소는 농장에서 소 키워도 될 정도고, 양념도 업소용 초대용량. 참치는 왜 저건데? 왜 업소용 3kg 대왕 큰 캔이야! 저거는 캔 따개 없으면 못 딴단 말이다!
라면은 또 지들 먹고 싶은 거 산다고 푸라면, 삼*라면, 짜*게티, 너*리, 틈*라면 한 팩씩 총 다섯 팩!
틈*라면 고른 놈 누구야? 이거 다 안 처먹으면 가만 안 둔다. 진짜 가만 안 둬!
그렇게 많은 음식들을 풀어놓고 보니 기가 찬다.
이게 끝이 아니지. 여기에 민주 어머님이 재워주신 불고기와 또 창회 고모님께서 오늘 먹으라고 따로 싸주신 음식까지 하면 푸드 뱅크까지는 아니어도 푸드 신용금고 정도는 될 것 같다.
“…틈*라면 누구냐?”
내가 물었다.
“어? 그거 나.”
유라가 말한다.
최유라였어? 니가 고른 거야? 너 이렇게 와일드한 녀석이었어?
“먹는다고?”
“응. 나 좋아하는데? 지연이하고 민주도 좋다고 했어. 그치?”
“네. 가끔씩 땡겨요.”
지연이가 말한다.
이 아가씨들아.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야! 실제로는 열감과 통각이라고!
매운 거 먹었을 때, 뭔가 스트레스 풀리고 깨운해지는 그 느낌 그거, 엔도르핀 분비 통각 조건반사라고! 아프니까 덜 아프라고 엔도르핀 뿜뿜 뿜는 거라고!
모르겠다. 지들이 알아서 먹겠지.
“근데 이거 돈 안 부족했냐? 백 퍼센트 회비 오바되었을 것 같은데?”
“아버지 협찬.”
이중훈이 말한다.
“아버님?”
“어. 콘도 예약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이것도.”
그러면서 자기 가방에서 네모난 박스를 두 개 꺼낸다.
잠깐만, 저거 뭐야? 양주?
“오. 잭 다니얼!”
박스를 알아본 찬희가 그렇게 말한다.
“비싼 거예요?”
민주가 물어본다.
“아니. 비싼 건 아냐. 한 오만 원?”
이중훈이 말한다.
“…비싼데요?”
“위스키치고는 안 비싼 거지. 사실 아버지 몰래 싱글몰트 가져오려다가 걸렸거든. 아빠가 그런 거 가져가봤자 우리는 맛도 모른다고, 이거 가지고 가서 콜라나 타 먹으라고 두 병 내주셨어.”
“잭콕. 좋지. 홀짝홀짝하다가 골로 가고.”
박승환이 말한다.
“…민주도 그렇고, 유라도 그렇고, 창회도 그렇고, 괜히 놀러 간다고 해서 부모님들 귀찮게 해드린 것 아닌가 싶네. 나중에 감사 인사 따로 드려야겠네. 혹시 또 숨겨놓은 거 있어? 있으면 지금 말해. 나중에 나오면 혼자 다 먹게 될 거야. 그리고 빨리 정리하자. 와, 이거 진짜 식당 차려도 되겠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맥주 팩을 집어 들었다.
***
정리를 다 끝냈으니, 그 사람 다음 일정은?
낮잠이다.
편하게 왔다고 해도 몇 시간 동안 차를 탔으니 피곤하지 않을 수가 없지. 또 간만에 배트 돌린다고 안 쓰던 근육 썼더니 몸 이곳저곳 뻐근하기도 하고, 거기다가 점심도 엄청 푸짐하게 먹었고, 무엇보다 어르신들 뵙는다고 긴장하고 있었으니, 나를 포함해 몇 명은 낮잠을 자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솔직히 나는 자둬야 한다. 어제 얼마 못 잤으니까. 있다가 밤에 달리려면 지금 좀 자둬야지.
낮잠 안 자도 되는 사람들은 창회랑 같이 산책을 한다고 나갔다.
리조트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서 골프 말고도 다른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여가 거리도 마련되어 있다고 하니. 알아서 놀다 오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다.
또 그 꿈을 꾸었다.
꼬마 아이가 되어, 소녀를 바라보는 꿈.
진한 슬픔이 일렁이는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한복 입은 소녀를 마주 바라보고 있는 그 꿈을.
그러나 이전과는 달랐다. 이번에는 꿈의 시작에서부터 확실히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자각몽(自覺夢)이었으니까.
그래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커다란 전각. 조금 전 보았던 창회네 종택과 비슷한,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크고 화려해 보이는 커다란 전각에 내가 서 있다.
전각 너머로는 미세먼지라는 단어조차 존재하면 안 될 것 같은 티 없이 맑고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다.
그 어디에도 현대의 인공적인 건축물은 보이질 않는다. 마치, 사극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시선을 조금 더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멀찍이 서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계셨던 건가?
할아버지도 한복을 입고 있다. 한복을 입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내가 아는 할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이다.
아니다. 내가 아는 할아버지와는 다르다.
얼굴이나 외형은 같을지 몰라도, 할아버지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범접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위압감이 할아버지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저 눈. 나를 바라보는 저 눈, 사람의 감정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할아버지의 저 눈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눈이었다.
누구인지 모르는 소녀, 고풍스러운 전각, 푸른 하늘, 깨끗한 공기. 그리고 전혀 다른 분위기의 할아버지.
이질감을 느꼈다. 동시에 익숙함도 느꼈다.
이질감과 익숙함, 그 두 개의 감정이 만들어낸 괴리감이 나를 잠식하려 할 때.
“소녀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다시 시선을 소녀에게 주었다.
소녀는 흑진주 같은 눈동자에 일렁이는 슬픔을 가득 담고서, 눈물 담긴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이번 생이 끝나면 그다음 생에, 그다음 생이 끝나면 또 그다음 생에. 언젠가 다시 뵈올 그때까지, 소녀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소녀를 나는 바라보고만 있다.
나는 그렇게 그녀를 바라보면서,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