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 : 종택(宗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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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비게이션 어플에 경로를 찍어보면 집결 장소인 교대역에서 목적지인 청도 향교까지 대략 320km 정도가 찍힌다.
우리나라 도로 환경을 생각하면 300km 정도는 사실 그리 멀다고 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더군다나 경로 대부분이 고속도로였으니 체감상 거리는 더 짧고.
그래서 다섯 시간 전 출발은 너무 이른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목적지 근처인 화양읍 사무소 인근에 도착했을 때가 거의 12시 임박해서였다.
뭐 중간에 길이 엄청 막혔다거나, 교통사고가 났다거나 그랬던 것은 아니고….
놀다가 늦었다.
첫 번째 휴게소에 들렀을 때, 그래도 소떡소떡이나 핫바 하나씩은 때려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우루루 몰려가 핫바 하나씩을 집었는데, 갑자기 승환이가 카드 뽑기를 하자는 제안을 한 거다.
다들 체크카드는 가지고 있으니까, 1학년도 예외 없이 7개의 카드가 꺼내어졌고, 그중에서 유라 카드가 뽑혔는데, 찬희가 지 여자친구 속상하다고, 2차전으로 음료수 사기를 하자고 징징거렸고, 또 편의점 가서 두 번째 카드 뽑기를 한 거지.
두 번째 카드 뽑기는 양상이 조금 달랐는데, 단순히 선호도로 선택했던 핫바와는 달리, 가격이 음료수를 선택하는 첫 번째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시고 싶은 음료수가 아니라, 복불복에 걸린 당사자에게 최대한 고통을 가할 수 있는 비싼 음료수를 골라대기 시작한 거지.
거기서는 박승환이 걸렸다.
쌤통이다. 그 자식 처먹지도 않을 거면서 가장 비싼 숙취해소 음료 고를 때부터 알아봤다.
역시 하늘의 그늘은 성근 것 같아도 절대로 빠트리는 법이 없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두 번의 복불복 카드 뽑기를 한다고 첫 번째 휴게소에서만 30분 넘게 있었지.
그렇게 끝났으면 이렇게까지 촉박하지는 않았을 텐데, 다음 휴게소 도착했더니 배팅 머신이 있네?
배팅 머신은 그냥 못 넘어가지.
물론 명분은 있었다.
조금 있다가 창회 할아버님과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최유라 어머님이 싸주신 유부초밥 먹었지, 어제 사놓은 과자도 까먹었지, 거기다 휴게소 핫바까지 먹었으니까, 배를 좀 꺼트려야 되지 않겠냐는 그런 명분 말이지.
거기다가 꼴찌 세 명에게 오늘 저녁 설거지를 시키자는 의견이 나오자 복불복 카드 뽑기 1차전 이후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에 옥탄가 높은 고급 휘발유를 들이부은 상황이 되어버린 거다.
한 사람당 13개. 여자는 공이 배트에 스치기만 해도 인정, 남자는 배트에 맞아서 다이렉트로 앞 그물을 맞히는 정타만 인정. 땅볼은 노 인정.
그렇게 정하고 게임을 시작했는데…. 했는데….
배팅 머신 1차전이 끝났을 때, 땅볼 3개 친 최유라가 1등을 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다.
2등은 땅볼 하나, 파울 하나의 지연이. 정타 하나 친 승환이와 땅볼 하나 친 민주가 공동 3등.
나머지는? 빵점이다. 배트에는 맞췄는데 정타가 하나도 안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을 때는?
일단 우기는 거다. 첫판 연습은 국룰이다. 그렇게.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고 나서야, 여성 동지들에게 보너스 1점씩 더 주고, 다음 판 결과는 하늘이 무너져도 무조건 승복한다는 조건을 걸고 다시 2차전을 시작했는데….
지연이가 정타 하나, 땅볼 2개, 파울 2개, 보너스 1점 해서 6점으로 1등, 유라가 정타 하나, 땅볼 3개, 보너스 1점 해서 5점으로 2등, 민주가 땅볼 3개, 보너스 1점 해서 4점으로 3등을 차지하고….
나, 승환이, 중훈이, 찬희가 정타 2개씩 쳐서 공동 꼴찌가 되었네?
그렇게 되니 이제 설거지고 뭐고 자존심 문제가 된 거다.
일단 여자애들 빠져 있어. 오늘 설거지? 그 정도로 되겠냐? 한 달간 형님이다. 꼴찌는 한 달 동안 노예야.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콜?
콜!
이 지랄 하면서 마지막 진검승부를 벌였고, 결국 승환이가 1등, 내가 2등, 중훈이가 3등 하고, 찬희가 꼴찌 하면서 ‘휴게소 홈런 더비’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아무튼, 그러고 논다고 배팅 센터에서만 40분 있었지, 또 땀 흘렸다고 화장실 가서 씻고 한다고 또 한 10분 썼지.
그래 버리니 시간이 촉박해진 거지.
***
정확히 몇 시라고 시간을 정한 것은 아니고, 대략 점심 즈음, 12시에서 1시 사이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두루뭉술하게 말씀은 드려놨는데, 막상 정오가 다가오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어른들 처음 인사드리는 자리인데, 늦으면 진짜 실례지.
속으로 그렇게 조바심을 내면서 창회가 알려준 주소에 겨우 시간 맞춰 도착했는데.
했는데….
“…여기 맞아?”
찬희가 눈앞의 거대한 고택(古宅)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묻는다.
“…모르겠다.”
내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무슨 민속촌에나 있을 것 같은, 아니, 민속촌에도 없을 것 같은 거대한 한옥 저택이 눈앞에 있다.
창회네 집이 유서 깊은 종가라는 이야기를 미리 들었으니, 한옥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었다. 했는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건 한옥이 아니라 궁궐인데?
도착했다고 창회에게 깨톡을 보내자 얼마 후 거대한 대문 옆에 나 있는 작은 쪽문에서 김창회가 나온다.
집이 주는 위압감이 얼마나 큰지, 저 덩치 큰 김창회가 보통 사람처럼 보일 정도다.
“할아버지 집이 …여기야?”
“어.”
이중훈의 질문에 김창회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으며 말한다.
“뭐야. 이 자식 엄청 부자였네?”
박찬희도 한마디 보탠다.
“부자는 무슨. 들어가자.”
김창회는 그렇게 말하고 우리를 화양 김씨 종가의 종택(宗宅)으로 이끌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종가(宗家)라고 하면 해당 지역에서 넓은 경작지와 소작농을 보유하고, 강력한 정치 권력을 가진 일종의 토호(土豪)인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종가의 가장 큰 어른이 거주하는 종택(宗宅)은 가문뿐만 아니라 지역의 대소사를 모두 관장하는 일종의 헤드쿼터 역할도 했다고 한다. 유럽으로 치면 장원의 성(城) 같은 개념이랄까?
그런 이유로 보통 종택은 규모가 크다. 풍수지리적으로 가장 좋은 입지에, 아흔아홉 칸까지는 아니더라도 굉장히 큰 한옥이 들어서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도 그건 조선시대 이야기지. 지금에 있어서 전통적인 방식의 종택을 유지하는 종가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일단 살기가 불편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지.
일반적으로 오래된 종택은 문화재로 지정되어있는 경우가 많아서 개조나 수리가 쉽지 않다.
뭐 수도나 전기 같은 기본 인프라는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니까 당연히 들여놓았다고 해도, 그 외에 다른 부분들, 예를 들어 개축이나 방수 공사 같은 걸 하려고 해도 행정적으로 절차가 굉장히 복잡하다고. 비용도 일반 건축물보다 더 많이 들고.
그렇다고 국가나 지자체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라네.
그래서 많은 종가들이 전통적인 타입의 종택을 문화재나 관광지 등으로 전환하고, 현대적인 거주지, 예를 들어 아파트 같은 곳으로 종가를 이전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들었다. 전통도 전통이지만 사람이 살고 봐야지.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창회네 집안은 이 시대에 얼마 남지 않은 고집스러운 종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 사당과 감실을 갖춘 전통 방식의 한옥에서 거주하시는 것을 보면 말이지.
전통적인 한옥 종택의 많은 방 중에 하나. 한 100년 전쯤에는 화양 김씨의 일가친척 한 스무 명 정도가 제사를 마치고 다 같이 앉아서 가문의 대소사를 논의했을 것 같은 커다란 응접실에 열 명의 사람이 앉아 있다.
일단 창회까지 포함해서 우리 여덟 명, 그리고 창회 할아버님과 둘째 고모님. 이렇게 열 명이다.
창회 큰고모님께서는 지금 점심 식사를 준비해주고 계신다.
조카의 대학 친구들에게 처음 놀러 오는 만큼 따신 밥을 해주시겠다고, 우리가 도착하고 나서야 밥을 안치셨단다.
그래서 점심 준비가 될 때까지 여기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인사를 나누게 된 거다.
당연히 우리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창회 할아버님을 만나는 것도 긴장되는데, 이렇게 엄청난 위압감을 주는 종택을 마주하니 그럴 수밖에 없지.
“먼 길 와주어서 고맙네. 창회 할애비 되네. 내가 말을 편히 해도 되겠는가?”
할아버님이 우리를 보며 말씀하신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회 할아버님은 저희에게도 할아버님이시니 말씀을 편히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한수입니다.”
그나마 가장 할아버지를 많이 상대해 본 내가 대표로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 가지런히 모으고 깊게 허리 굽혀 인사를 드렸다.
“반갑네, 한수 군.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그리고 불편하게 일어날 필요는 없네.”
할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래요. 친구 집에 놀러 온 건데, 그렇게 예의 차릴 것 없어요. 그러면 오히려 우리가 더 불편해요.”
고모님까지도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공기가 조금 누그러드는 느낌이 든다.
두 분 말씀에 따라 우리는 자리에 앉은 채로 한 명 한 명 인사를 드렸다.
인사를 드릴 때마다 할아버님은 눈을 맞춰주시고 짧게 덕담을 해주셨다.
인자하게 웃으시거나 그러시지는 않으셨지만, 그래도 처음에 상상했던 것처럼 엄청 무서운 분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모두의 인사가 끝나자 할아버님께서 날 바라보며 물어보신다.
“한수 군은 조부님이 계시다고 들었네.”
“네. 고향에 할아버님이 계십니다.”
“조부님께서는 올해 춘추가 어찌 되시는가?”
할아버지 나이?
모르지. 이 땅을 관장하는 수호신이시라잖아.
그렇다고, 저희 할아버지 몇 살인지 저는 모르겠는데요? 저희 할아버지가 뭐랄까, 그 특별한 사람이라서, 어르신, 그러니까, 이 땅의 수호신이시라서, 아마도 백 살은 넘지 않으셨을까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
“재작년에 산수(傘壽, 여든 살)를 맞이하셨습니다.”
그렇게 답변드렸다.
갑자기 꾸며낸 것은 아니고, 그게 할아버지의 공식적인 나이다.
공식적으로 할아버지도 생년월일이라는 걸 가지고 있다. 사회생활도 하고, 경제활동도 하려면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하니까.
나도 얼마 전, 할아버지에게 ‘가업을 이어라.’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 어르신이시라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할아버지의 나이를 그렇게 알고 있었지.
아무튼, 나는 당황하지 않고 그렇게 대답을 드렸고, 내 대답을 들은 할아버님은 고개를 끄덕이신다.
“건강하신가?”
“네. 건강하십니다.”
건강하시죠. 너무 건강하시죠. 아직까지 오른손 스트레이트가 얼마나 빠른데요.
“다행이시로군.”
할아버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중훈이에게로 시선을 주신다.
그리고는.
“영상 잘 봤네.”
그렇게 말씀하신다.
영상? 무슨 영상?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말씀에 중훈이도 이해하지 못했는지 대답 못 한 채 동그래진 눈으로 할아버님을 바라만 보고 있다.
“우리 창회 생일 챙겨준 영상이요.”
고모님이 그렇게 부연 설명을 해 주시고 나서야 우리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거 말씀이시구나. 창회 생일 파티 찍은 영상.
“아. 네. 아닙니다.”
이중훈이 쑥스러운 듯 작게 웃으며 그렇게 대답한다.
“너무 잘 만들었던데요? 처음 봤을 때, 어디 업체에 의뢰해서 만든 영상인 줄 알았어요.”
고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고 할아버님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신다.
“중훈 군이 고생했다고 들었네.”
할아버님이 그렇게 중훈이를 칭찬해주신다.
아, 입이 근질근질하다.
할아버님, 그 영상이 사실은 이중훈 저 녀석이 할아버님의 손녀에게 품었던 더러운 마음의 결과물이거든요.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진실을 알려드리고 싶다.
승환이 녀석도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걸 보니 나랑 같은 생각인 것 같다.
***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세요.”
오늘 점심 식사를 준비해 주신 창회 큰고모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
분명 말씀은 차린 거 없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시기에는 너무 엄청난데요?
마을 잔치를 벌여도 될 정도로 많은 음식이 커다란 교자상 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음식 가짓수가 너무 많아서 한정식이 아니라 뷔페 스타일로 먹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맛도 훌륭했다. 저번에 창회 어머님이 해 주신 음식도 그랬지만, 이 집안만의 무슨 비전(?傳) 조미료 같은 게 있는 걸까?
우리는 열심히 먹었다. 뭐 맛있기도 했지만, 손주 친구들이라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지.
그렇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대량 생산된 공산품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깊은 맛의 식혜와 수정과를 마시면서 이번 여행의 첫 번째 퀘스트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 식사 끝나고, 미리 준비해온 홍삼도 전해드렸다.
“어머? 뭘 이런 걸 가져왔어요. 학생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그리고 우리 것도 있는 거예요?”
할아버님은 특별히 말씀이 없으셨지만 싫어하시는 눈치는 아니셨고, 고모님들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고모님들 것까지 준비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어른들 선물은 건강보조식품이야.
그렇게 모든 임무를 다 마치고 작별 인사까지 드리고 이제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한수 군.”
할아버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신다.
“네? 네.”
할아버님은 나를 부르시고는 더는 말씀이 없으시다. 그저 가만히 날 바라만 보고 계실 뿐이다.
왜 그러시지?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신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고맙네.”
할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되묻지 않았다. 무엇에 대해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 건지, 되물을 필요가 없었다.
“…아닙니다.”
그저 그렇게 말씀드렸다.
“또 놀러 오게.”
“네. 다음에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씀드렸다.
그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