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 화기애매(和氣曖昧) (1)
오늘도 어김없이 치킨집.
지연이와 내가 알바하는 월요일, 친구 놈들이 마감 시간 즈음에 들이닥치면 다 같이 손잡고 가는 치킨집에 앉아 있다.
평소처럼 월요일에서 화요일 넘어가는 이 시간에 치킨집에 앉아 있는 건 똑같지만 평소의 월요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오늘은 친구 놈들 대신 지연이 오빠와 마주 보고 있다는 거.
“지연쓰 알바한 지 한 달 넘었다며? 그럼 알바비 받았겠네? 그러면 오늘 지연쓰가 쏘는 거네? 그렇네?”
지연이 오빠는 어깨로 지연이를 툭툭 치면서 그렇게 말하고 있고, 툭툭 칠 때마다 슬쩍슬쩍 밀리는 지연이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다.
그렇다고 지연이가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다. 이것이 찐남매의 모습이란 말인가?
아닌데? 내 고향 친구들 보면 여동생보고 다 ‘그년은 미친년이야.’ 그러고, 오빠보고 다 ‘그 새끼 미친 새끼예요.’ 그러던데.
아무튼 나는 지연이가 오빠와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다. 그나저나 지연이는 집에서 지연쓰라고 불리나 보다. 기억해둬야지.
그건 그렇고 괜찮으면 치맥이나 하자는 지연이 오빠의 말에 거절하기도 뭐해서 일단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솔직히 피곤하다. 그냥 피곤한 것도 아니고 개피곤하다. 몸도 마음도. 특히 마음이.
원래는 마감 끝나자마자 재빨리 지연이를 데려다주고 후딱 집에 가는 것이 내가 생각해둔 계획이었다.
친구 놈들에게도 ‘이번 주 금요일에 놀러 가니까 그때 제대로 달리려면 체력을 비축해둬야 하지 않겠냐? 그러니까 오늘은 기어 올 생각 말고 각자 집에서 짱 박혀 있어라.’ 그렇게 말도 해놓았으니, 계획이 어그러질 일은 없었다.
지연이 오빠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지.
“나는 불닭. 진짜 어어어어엄청 매운 게 먹고 싶어. 캡사이신 팍팍 들어간 K스파이씨 췩힌!”
메뉴판을 보며 그렇게 말한 지연이 오빠가 나에게 메뉴판을 넘긴다.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어요? 오늘은 우리 지연이가 사는 거니까 부담가질 필요 없이 팍팍 시켜요.”
“네. 하하…. 네.”
지연이에게 오빠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서 떠오르던 이미지가 있었다.
그다지 모범생의 이미지는 아니었다. 뭐랄까? 장난꾸러기와 비행 청소년의 경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 반 양아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초등학생 지연이에게 드래곤퀘스트와 파이널판타지를 가르치고, 오그리마 뒷골목에서 같이 술래잡기를 했다고 했잖아. 영화도 무슨 디즈니 영화를 같이 본 것도 아니고, 한국산 고어 액션의 대명사라는 〈아저씨〉를 같이 봤다고 하질 않나, 액션이 사실적이기로는 아저씨 뺨을 양쪽으로 두세 번은 때릴 것 같은 인도네시아 영화 〈레이드〉를 함께 봤다고 하지 않나.
아무튼, 우리 동생 우쭈쭈하는 그런 이미지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랬는데, 막상 만나 보니 훤칠한 미청년이네? 진짜 잘생겼다는 말 지겹도록 들었을 것 같은 미남인데 또 말하는 걸 들어보면, 여동생을 괴롭히고 싶어 하는 장난기 가득한 못된 오빠다.
거기서 끝도 아니지. 저 못된 오빠가 존경하는 유 선생님의 아드님 되신단 말이지….
미청년, 지연이 오빠, 유 선생님 아들. 이 세 가지 요소가 매치가 잘 안 된다.
눈앞에 실제 당사자가 앉아 있는데도 말이지. 뭔가 요소요소가 조합이 잘 안 된다. 괴리가 있다.
지금도 그렇다. 지연이 알바비를 탕진하고 싶다며, 치킨집에는 당연히 없을 위스키를 사달라고 했다가 지연이에게 팔뚝을 얻어맞는 저 모습이 뭔가 비현실적이다.
“근데, 언제 온 거야?”
지연이가 팔뚝을 때리다가 물어본다.
“오늘. 집에 도착했을 때가 1시.”
“오후?”
“그럼 새벽이겠냐. 멍청아.”
이런 게 비현실적이라는 거다. 겁나 잘생긴 오빠가 겁나 예쁜 여동생에게 ‘멍청아’라고 하는 거.
“그럼 나 만날 수도 있었겠네? 나 그때쯤 집에서 나왔는데.”
“안 그래도 집에 오니까 엄마가 너 방금 나갔다고 그러더라.”
“근데 왜 전화 안 했어?”
“전화? 전화를 왜 해?”
“한국 들어왔다고.”
“왔다고 하면? 우리 사랑하는 동생이 알바 내팽개치고 오빠랑 놀아주실 거예요?”
“아니?”
“거봐. 근데 왜 전화를 해?”
지연이가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다.
대충 알 것 같다.
우리 지연이… 자라면서 힘들었겠구나….
***
일단 지연이 오빠가 해준 이야기를 대충 요약해보면,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지연이 오빠는 이번에 한국에서 일이 있어서 잠시 귀국을 했단다.
처음에야 귀국하면 가족들도 ‘우리 아들 타지에서 공부한다고 얼마나 힘들었어? 뭐 먹고 싶은 건 없어?’, ‘오빠 보고 싶었어!’ 그렇게 첫 휴가 나온 군인 반기는 모드였지만, 유학도 길어지고 하다 보니 말년휴가 나온 아들 대하듯, ‘어? 언제 왔어? 밥 없는데. 라면이라도 끓여줄까? 아니다. 엄마가 지금 나가봐야 하거든? 알아서 끓여 먹어~’ 모드로 바뀌었다는 거지.
그리고 지연이 오빠도 그 특유의 장난기 때문인지, 깜짝 놀래키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귀국할 때 나 언제 들어간다는 말을 잘 안 하고 들어온단다.
이번 귀국도 아버님에게만 말씀드리고 왔다고 하네? 순간적으로 ‘유 선생님은 아세요?’ 할 뻔했다.
아무튼 오늘도 그랬단다. 집에 왔는데 어머님이 지연이에게 알리려 하시는 걸 말렸단다.
직접 가서 놀래켜주고 싶다고.
어머님도 그래 잘 됐다. 가서 놀래켜주고, 알바는 힘들지 않은지 한번 살펴도 보고, 그리고 집에 데려와라. 그렇게 쿨하게 넘어가셨다고.
유 선생님 아들이라고 하면, 어딘가 성리학 공부한 전통 있는 양반 가문의 맏아들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실제로 만나 보니 해외 유학 가서 신식 학문 공부하고 돌아온 지주 집 인텔리겐치아 같다.
아니, 인텔리보다는 공부하라고 유학 보내놨더니, 날라리가 되어서 돌아온 도련님 같달까?
되게 리버럴한 그런 느낌인데?
“그러면, 지연이가 알바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데에는 한수 씨의 영향이 좀 있는 거네요?”
“아니, 뭐. 제가 알바 이야기를 하기는 했는데…. 근데 말씀 편히 해주세요. 저보다 형님이신데.”
“아, 그래도 될까?”
“네. 그게 저도 편합니다.”
“그래. 고마워. 그럼 한수라고 불러도?”
“네.”
“그러면, 순진한 우리 동생을 꼬드긴 놈이 한수 너냐?”
이렇게 말하고 지연이에게 등짝 맞는 것 같은 모습이 말이지.
아무튼, 조금 당황스럽기는 한데, 그렇다고 싫다거나, 비호감이라거나 그런 건 또 아니다.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동네에서 보면 꼭 그런 형들 하나씩 있잖아. 얼굴도 잘생겼는데 공부도 잘해. 근데 또 잘 놀아. 그래서 주변에 사람들이 항상 드글드글한 핵인싸.
딱 그런 사람 같다.
***
치킨집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피곤했는데, 얼른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또 술이 들어가서 그런가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술을 마시면 뇌의 측중격핵과 안와전두피질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측중격핵과 안와전두피질은 쾌락과 보상을 담당하는 중추인데, 보상받을 무언가를 안 했다고 해도 술을 먹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고 뿌듯하고, 뭐 그렇게 된다는 이야기다.
쉽게 말해서 가짜 쾌락이고, 가짜 보상이지. 가짜 행복이다.
근데 오늘은 단순히 술을 먹었기에 그런 가짜 행복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즐거운 자리였다.
일단 지훈이 형, 그러니까 지연이 오빠하고의 대화가 재미있다.
이 양반, 어딘가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단순히 인상이 좋다거나 말을 재미있게 한다거나, 그런 보이는 부분을 넘어서 어딘가 모르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카리스마가 있다.
카리스마가 있다고 해서 자기가 얼마나 잘나가는지 그런 허세를 부린다는 말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살짝살짝 보여주는 허당기가 인간미를 느끼게 해준다.
뭐 이제 고작 한 번 만난 거니 속단할 수는 없겠지만, 지연이 오빠라거나 유 선생님 아들이라는 가산점을 제외해도, 첫인상은 확실히 멋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형과의 대화보다 더 이 자리가 즐겁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은 지연이의 표정이었다.
지연이는 항상 웃고 있다. 특히 나와 함께 있을 때는 웃는 얼굴을 많이 보여준다. 우리 친구들하고 있으면 빵빵 터지느라 정신이 없지.
오늘도 계속 웃고 있다. 그런데 평소의 지연이가 보여준 웃는 얼굴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평소의 지연이가 보여준 표정이 가식적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도 찐 표정이기는 한데, 오늘은 확실히 조금 더 편안한 표정을 보여준다.
가족이라서 그런 건가?
서현 씨도 그랬지. 어머님하고 같이 있을 때만 보여주는 표정이 있었다. 미소가 있었지.
나야 뭐, 가족이라고는 할아버지 한 사람뿐이니 잘 모르겠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을 때는 ‘이 녀석 봐라?’ 그런 생각 하면서, 스트레이트 날리기 직전이니까 행복하다거나 그런 생각은 일절 들 리가 없다. 오히려 무섭지. 죽음의 미소이니까.
그런데 지금 지연이의 미소를 보면 딱 알겠다. 저 미소가 가족들에게만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미소이고, 저 표정이 가족 앞에서만 나오는 행복한 표정이라는 걸 말이지.
지연이가 웃고 있어서, 행복하게 웃고 있어서, 저 얼굴을 보고 있어서.
그래서 이 시간, 이 자리가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지금 저 오빠 팔 때리는 거 너무 쎄게 때리는 거 아냐? 저거 진짜 아플 것 같은데?
“그나저나 지수 형이랑 친해졌다며?”
팔을 문지르던 지연이 오빠가 갑자기 날 보며 그렇게 묻는다.
“안 그래도 한국 들어간다고 전화했더니, 형이 너하고 같이 한번 밥이나 먹자고 하더라고.”
지수 형? 지수 형이 누구지?
지수? 정지수? 아… 프린스.
“아. 네. 정지수 선생님….”
프린스하고 자기 오빠하고 아는 사이라고 지연이가 그랬었지.
“그거 먹어봤다며? 과천 돈까스?”
“네? 네.”
“맛있지? 그거. 가끔 생각난다니까. 그거나 한번 때리러 갈까?”
“네. 전 좋습니다.”
“오케이. 내가 일단 지수 형이랑 이야기해보고 연락 줄게. 시간은 언제가 편한데?”
“이번 주는… 좀 그렇고. 다음 주는 월요일, 목요일 빼고 상관없습니다.”
“그래? 이번 주 주말에는?”
“친구들이랑 엠티를 가기로 했거든요.”
“그래?”
그러더니 지연이를 바라본다. 그 눈빛이 ‘너도 같이 가?’ 그렇게 묻고 있다.
“응.”
지연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허락 받았어?”
“응. 말씀드렸어.”
그 말을 들은 지연이 오빠의 시선이 천천히 나에게로 향한다.
그 눈빛이 ‘너냐? 순진한 내 여동생을 꼬신 놈이?’ 그렇게 묻고 있다.
확실히 내 친구들도 그렇고 저 형도 그렇고, 여동생 가진 오빠는 특유의 살기가 있다.
“…단둘이 가는 건 아니겠지?”
“아니요. 친구들 다 가는데요?”
“몇 명?”
“여덟 명이요.”
“여자는?”
“셋이요.”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취조실로 바뀌네.
“오빠!”
지연이가 오빠 팔을 때리고 나서야 취조가 끝난다.
***
살짝 분위기가 이상해지기는 했지만, 다시 조금 전 화기애애(和氣靄靄)한 분위기로 금방 돌아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화기애매(和氣曖昧)가 더 맞으려나?
지연이 오빠가 미국에서 같이 공부하는 친구 중에 멕시코 출신이 있는데, 착하고 성실하고, 속도 깊어서 참 멕시칸치고는 얌전한 녀석이구나 싶었는데, 여동생이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마트로 달려가 9mm 할로 포인트 탄을 사 오는 걸 보고 역시 라티노는 라티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각 잡고 듣고 있었어야 했으니, 화기애애는 확실히 아니다.
“그 얌전한 친구가 침대 한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탄두에 칼집을 내고 있더라고, 그러면 관통력은 줄어들지만, 대신 파괴력은 대폭 늘어나서 장기를 아주 박살을 낼 수 있다고 그러면서. 그 모습이 너무 재미있는 거야.”
재미있네요. 재미있습니다.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재미있습니다.
지연이도 처음에는 오바하지 말라고 뭐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더니, 나중에는 재미있는지 ‘그래서? 그 총알 썼대?’ 같은 질문을 한다. DNA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더니….
그 이후로도 그런 비슷한 이야기, 오빠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이야기를 몇 개 더 듣고 나서야 그 애매한 분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연이가 화장실을 가면서 우리 두 사람만이 남겨지게 되면서 대화가 끊겼다.
분명히 처음 만났음에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또 이렇게 둘만 남게 되니 살짝 어색해지려고 하네? 역시 지연이가 있어서 편하게 생각했던 것일까?
음. 이 침묵을 깨기 위해서 무슨 주제를 꺼내 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지연이 오빠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처음 인사드리는군요. 반갑습니다. 작은 어르신.”
그렇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