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업을 이어라-210화 (210/271)

210 : Knock Knock (7)

나는 창가에 서서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자리에 서서 같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밤에 보는 바다는 낮에 보는 바다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빛이었던 바다와 하늘은, 지금은 마치 검은 벨벳 같은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수많은 별빛이 촘촘히 뿌려놓은 보석 가루처럼 바다 위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별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오늘이 이곳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즐거운 하루였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돌고래도 돌고래였지만, 특히 스노클링이 생각보다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낮의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다는 아름다웠다. 그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인어공주처럼 우아하게 가르는 서현 씨는 더더욱 아름다웠다.

서현 씨와 함께 산호초 사이를 오가는 열대어를 따라 한참을 놀다가, 지치면 바다 위에 그대로 드러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면서 여유롭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영원히 이렇게 지내도, 절대로 지겹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요트로 돌아가면, 선장님은 반쯤 얼어있는 맥주캔을 던져 주었다.

맥주는 마치 이온 음료라도 되는 것처럼, 몸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드는 느낌을 주었다.

항구로 돌아온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비큐 파티였다.

바다에 나가서 체력이 바닥날 때까지 물놀이를 하는 동안, 선장님 와이프분께서 바비큐 파티를 준비해주고 계셨던 것이다.

바비큐 그릴 위에서 각종 고기와 채소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면서 익어가고, 한쪽에는 맥주와 소프트드링크가 잔뜩 쌓여있는. 영화나 미드에서에서만 보았던 미국식 가든 바비큐 파티였다.

맛있는 바비큐, 시원한 맥주, 황홀한 석양,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의 즐거운 대화.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면서 나는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 기억이 희미해져도, 오늘의 기억은, 어젯밤 어머님과 자정 가까운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과 함께, 절대로 퇴색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확신이 들었다.

똑똑.

절대로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밤바다를 보면서 그런 확신을 하고 있을 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본능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계를 보았다.

새벽 1시까지 10분 정도 남은, 모두가 잠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시간.

이 시간에 내 방문을 노크할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지.

“네.”

“들어가도 될까요?”

문 너머에서 서현 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오세요.”

내 대답에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고, 서현 씨가 빼꼼 모습을 드러낸다.

잠옷 차림인 그녀의 손에는 티포트가 들려있었다.

***

우리 두 사람은 창가에 나란히 앉아 밤바다를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서현 씨는 인기척을 들었다고, 서성이는 발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아직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고, 숙면에 도움이 되는 캐모마일 차를 준비해왔다고 했다.

내가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서현 씨는 미안해할 것 없다고 했다. 잠 못 드는 건 서현 씨도 마찬가지였다고.

“오히려 다행이에요.”

서현 씨가 말한다.

“뭐가요?”

“마지막 날 이렇게 한수 씨랑 차를 마실 수 있어서요.”

그렇게 말한 서현 씨는 고개를 돌려 밤바다를 바라본다.

밤바다에 투영되어 반짝이는 별빛이 서현 씨 눈동자 안에서도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잠이 오지 않아서, 저렇게 아름다운 밤바다를 보면서, 서현 씨와 밤바다를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어서. 그래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말없이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차를 마셨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나였다.

“고마워요.”

고맙다는 내 말에 서현 씨는 나를 바라본다. 방향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그 눈동자에는 반짝이는 별빛이 담겨있었다.

“…뭐가요?”

나는 말없이 웃어주었다.

무엇에 대해서 고마워하는지, 서현 씨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서현 씨는 여전히 대답을 기다린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말했다.

“어머니께서 그러셨어요. 여기는 서현 씨 가족에게는 특별한 곳이라고. 특별한 곳에 데려와 줘서.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줘서, 특별한 사람이 되게 해주어서 고마워요.”

서현 씨의 반짝이는 눈동자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다시 시선을 바다로 돌린다.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공무원이셨던 외할아버지는 완고하고 엄한 분이셨대요. 늦은 나이에 얻은 막내딸, 누구보다 사랑하는 막내딸이었기에 더욱 그러셨다고 했어요.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대학마저도 할아버지 멋대로 여대로 정해버린 건 너무 심했다고 생각했어요.”

내 시선은 서현 씨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반짝반짝 빛나는 그 눈동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서현 씨 어머님, 그리고 외할아버님의 이야기.

“엄마도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대요. 하지만 외할아버지의 말은 거역할 수 없었고, 그리고 할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하고 있었기에 할아버지가 원하는 대학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했어요. 자의 반, 타의 반이었지만, 그곳에서 운명을 만나게 될 줄은 엄마도 외할아버지도 알지 못했죠.”

“…운명이라면?”

서현 씨가 날 바라본다. 그리고는 작게 웃고는 말해준다.

“스킨스쿠버요.”

“…스킨스쿠버요?”

“학기 초에 동아리에서 신입생들을 모집하려고 홍보부스를 여는데, 거기서 스킨스쿠버 동아리가 있었대요. 엄마는 수영도 못했고 물놀이를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겨울방학마다 해외로 원정 훈련을, 그것도 최소 일주일 동안 간다는 설명을 듣고서는 자기도 모르게 입부 원서에 사인을 해버렸대요.”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30년도 더 전에, 스무 살의 어머님이 충동적으로 입부원서에 사인을 하는 모습이.

“엄마 이야기로는 약간의 반항심도 있었다고 했어요. 해외 원정이라는 것도 끌렸지만, 할아버지가 반대할 것 같아서, 그래서 더 마음이 끌렸다고. 그래서 처음에는 외할아버지에게 비밀로 했었대요. 수영장에서 연습할 때는 할아버지에게는 건강을 위해서 수영을 배우겠다는 말로 허락을 받았고, 바닷가로 원정을 갈 때도 선배들하고 엠티를 간다고 거짓말을 했대요. 다행히도 외할아버지는 경계를 조금 덜했었던 것 같아요. 여대니까 별일은 없겠지. 그렇게 말이죠. 사실은 할아버지가 알았다면 당장 경을 치고도 남을 엄청난 반항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서현 씨는 그렇게 말하고 쿡쿡 웃는다. 나는 그런 서현 씨의 모습에서 스무 살 어머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비밀로 한다고 했지만, 얼마 안 가서 들켜버렸대요. 사실 안 들키는 게 이상했던 거죠. 스킨스쿠버는 장비가 필수적인 운동이니까. 오리발이야 어떻게 둘러댄다고 해도, 스킨스쿠버용 슈트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던 거죠. 엄마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대요. 겨울방학에 있을 일주일짜리 해외 원정을 가려면 결국은 넘어야 할 산이었으니까요.”

“…많이 혼나셨대요?”

“그렇게 많이 혼나지는 않았대요. 엄마는 여차하면 단식투쟁이라도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예상보다 쉽게 허락해 주셨대요. 더 이상 품 안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아셨는지, 아니면 운동을 하면서 건강해진 딸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였는지. 아무튼, 여러 가지 조건을 걸기는 하셨지만, 결국 허락해 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떤 조건이요?”

“예를 들어 매일 전화해서 보고 할 것. 원정 훈련을 가더라도 술은 마시지 말 것. 그런 조건이요.”

“…전화는 그렇다고 쳐도, 술은 너무하신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명칭이야 원정 훈련이라고 붙였다고 해도, 그래도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었다.

“네. 엄마도 그랬어요. 지키기 힘들었다고.”

서현 씨는 그렇게 말하고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나도 그런 서현 씨를 보고 웃는다.

“그때 원정 훈련지가 괌이었대요. 당시 해외여행 가는 비용은 지금보다 훨씬 많이 들었대요. 그래서 여러 대학 스킨스쿠버 동아리가 연합을 하는 방식으로 원정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썼고요.”

“그중에 아버님이 계셨군요.”

서현 씨가 고개를 끄덕인다.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첫눈에 반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었대요. 특히 아빠는 선배 그룹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편이라서, 훈련 그룹도 달랐고,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대요. 그리고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남자와 제대로 이야기 한 번 해본 적 없는 엄마였기에 아빠는 좀 무서운 인상이었대요. 사실 첫인상도 좀 아저씨 같았다고 했어요. 그냥 마주치면 인사하고, 술 먹을 때도 멀찍이 떨어져 있고 그랬대요. 그렇게 둘 사이에 특별한 이벤트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후에는 따로 만나거나 소식을 들은 적도 없고요.”

“…그런데, 두 분이 어떻게?”

내 질문에 서현 씨가 작게 웃는다.

“선이요.”

“선이요?”

“네. 엄마 대학 졸업할 즈음에 외할아버지가 선을 보라고 하셨대요. 당시 외할아버지가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셨는데, 본인이 떠나시기 전에 막내딸이 의지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엄마는 결혼할 생각은 없었대요.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엄마때에도 스물넷은 결혼하기 이른 나이였으니까, 하지만 할아버지가 아프시니까 일단 따르는 척을 하고, 선 자리에 나갔는데….”

“…아버님을 만나셨군요.”

“아니요.”

“네?”

“아빠가 아니고, 아빠 친구가 거기 있었대요. 괌으로 원정 훈련을 갔을 때 만났던 다른 학교 선배 중 한 사람이 나와 있었대요.”

“…네?”

아버님이 아니라 아버님 친구분?

“그분이 그러셨대요. 자기 기억나냐고. 그때 괌에서 같이 원정 훈련했었다고. 하지만 엄마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었대요. 분명 상대방은 엄마를 기억하고 있는데, 엄마는 그분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었대요.”

“…하지만 아버님은 기억나셨고?”

내 말에 서현 씨가 작게 웃는다.

“네. 그때 아빠가 떠올랐대요. 가장 나이도 많고, 아저씨 같고, 어딘가 좀 무서운 아빠는 확실히 기억이 났대요.”

“신기하네요.”

“그 뒷이야기는 더 신기해요. 선을 봤던 그분이 친구들에게 엄마랑 선을 봤다고 이야기했는데, 그중에 아빠가 있었대요.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아빠도 엄마를 기억하고 있었대요. 여러 대학 연합이라서 사람들도 적지 않았는데, 엄마는 스킨스쿠버 기초 연습하는 그룹이었기에 접점도 별로 없었는데, 그랬는데도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대요.”

나도 모르게 침이 꼴딱 넘어간다. 운명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선이라는 건 그렇대요. 세 번 만나는 사이에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한대요. 상대방 쪽에서는 엄마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은데, 엄마는 그렇지 않았대요. 할아버지를 위해서 결혼해버릴까?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마음을 속일 수는 없었대요. 그렇게 선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대요. 그리고. 그렇게 선을 본 뒤에 엄마가 할아버지를 설득했대요. 결혼은 아직 이른 것 같다고, 조금 더 할아버지 곁에 있고 싶다고.”

“그래서요?”

나는 참지 못하고 결국 그렇게 물어보고야 만다.

나는 이 이야기의 끝에 해피엔딩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이 지금 내 앞에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으니까.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어서 빨리 마지막 장면을, 그 행복한 해피엔딩 씬을 보고 싶다는 조바심이 들었다.

그런 내 조바심을 아는지 서현 씨는 작게 웃고 이야기를 계속 한다.

“대학원에 가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을 수 있었대요.”

서현 씨가 말한다.

“…대학원이요?”

“네. 엄마는 사실 취업을 하고 싶으셨대요. 항공사 승무원이 되고 싶으셨데요. 하지만 시집도 안 가고, 더군다나 항공사 승무원이 되겠다고 하면, 할아버지께서 절대 반대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죠. 지금은 인식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당시 어르신들 사이에서 항공사 승무원은 그리 환영받는 직업은 아니었대요. 그래서 절충안으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더 하겠다고 할아버지를 설득했고, 보수적이고 완고한 할아버지도 여자 직업으로서는 교수라는 직업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셨는지, 허락해 주셨대요. 그렇게 엄마는 대학원에 진학했고, 그곳에서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어요.”

“…아버님이요?”

“아니요.”

“그럼요?”

“한수 씨도 아는 분이요.”

내가 아는 분? 대학원에서? 누구를?

“설마….”

“유주원 교수님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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