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 Professional Intern (1)
폐점 30분 전. 열심히 마감을 하고 있는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니, 무슨 마가 꼈나. 갑자기 무슨 폐점 30분만 되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마감이 30분 남았군. 알바를 괴롭히기 가장 좋은 시간이지. 후후후.’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타나는 진상손님 모임 같은 거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일단 누군지 확인하고 인사하려고 먼저 고개부터 돌렸다.
그런데….
“어? 인사 안 하네? 환영합니다. 어서 오세요. 그렇게 인사 안 하냐? 응?”
문을 열고 들어온 남녀 두 사람 중 남자가 그렇게 말한다.
“뭐야? 형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에요?”
내가 남자에게 물었다.
“일 열심히 하고 있나 감시하러 왔지. 그쵸?”
남자, 나랑 목요일에 같이 알바하는 병진이 형은 그렇게 말하고는 옆에 서 있는 여자, 점장 누나를 보며 말한다.
“한수 안녕. 마감 열심히 하고 있어?”
점장 누나가 나에게 손 흔들어 인사한다.
“일 열심히 안 하고 있는데요? 손님한테 인사도 안 하고. 누나, 한수 저 녀석 신입 교육 다시 시켜야 되겠는데요?”
병진이 형이 건수 잡았다는 표정으로 계속 그렇게 말한다.
“이번에 들어온 신입이랑 같이 교육 받으라고 하면 되겠다. 그런데, 우리 신입은?”
점장 누나가 말한다.
“네? 아, 저기 지금 화장실 청소하고 있어요.”
내가 그렇게 말하며 여자 화장실 쪽을 바라보았다.
“우와. 너 지금 신입에게 화장실 청소시킨 거야? 피도 눈물도 없네. 진짜. 학교 후배라고 안 그랬냐? 너무하네. 학교에서 괴롭히고 직장에서 괴롭히고, 진짜 나쁜 선배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교육도 다시 받아야 하겠는데?”
병진이 형이 날 그렇게 매도한다.
내가 얼마 전에 저 인간 괜찮은 인간이다. 뭐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 생각 취소.
“저 형이 갑자기 왜 저래? 뭘 잘못 먹고 온 거야? 진짜 직장 내 괴롭힘 뭔지 제대로 알려줘요?”
“누나, 봤죠? 연장자에 대한 예의도 모르는 저 무도한 녀석. 제가 진짜 목요일마다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맨날 화장실 가서 훌쩍훌쩍 운다니까요.”
나는 그렇게 어이없는 소리를 하는 병진이 형을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올해 연말에도 송년회 하겠지? 그때 술 진탕 멕인 다음, 나도 꽐라 된 척하고 한번 까야 되겠다고.
“그나저나 진짜 어쩐 일이에요? 이 시간에? 그것도 둘이?”
“신입 들어왔는데, 환영회 해줘야지!”
병진이 형이 그렇게 말한다.
“환…영회요?”
내가 물었다.
내가 이 카페에서 알바를 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신입 알바 들어왔다고 환영회를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아니, 그리고 어느 카페가 알바 새로 왔다고 환영회를 해줘?
“두 사람 고생하는데 치맥이라도 사주려고. 그리고 신입이 우리 한수의 친한 후배라고 하는데 또 그냥 넘어갈 수 없고.”
점장 누나가 그렇게 말해준다.
***
점장 누나와 병진이 형이 마감을 도와주니, 폐점 시간이 되기도 전에 마감이 끝나버렸다. 이래서 숙련된 기술자는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아야 하는 거다.
아무튼 새해맞이 카운트다운 하듯, 폐점 시간이 되자마자 우리 네 사람은 재빨리 문 닫고 근처 치킨집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주에 친구들과 치맥 달렸던 바로 그 치킨집이다.
치킨에 맥주를 주문하고 나서야 나는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를 알게 되었다.
일단 누나랑 병진이 형이랑 같이 저녁을 먹었단다.
뭐 데이트 같은 건 아니고, 병진이 형이 본사 근처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혹시나 싶어서, 누나에게 깨톡을 했단다. 시간 되면 차나 한잔 마시자고.
작업 친 건가?
아무튼, 연락을 받은 누나가 저녁을 사줬다는 거다.
그렇게 둘이서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 이야기가 나왔고, 오늘 지연이, 그러니까 신입도 같이 있으니까 가서 치킨이나 사줄까?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거다.
그래서 마감 30분 전에 들이닥친 거고.
그렇게 우리 네 사람은 치킨집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예전에는 이렇게 일 끝나고 치킨을 종종 먹었더랬지. 나, 병진이 형, 점장 누나, 그리고 지금은 그만둔 몇몇 사람들. 그렇게 모여서 한 달에 두세 번 정도 치맥 달리고는 했었다.
그때랑 달라진 점은 지연이가 같이 있다는 것하고, 점장 누나가 출근용 정장을 입고 있다는 거 정도?
아무튼, 오랜만에 이렇게 또 모이니 나름 옛날 생각도 나고 즐겁다.
“진짜로요?”
우리 지연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병진이 형에게 그렇게 물어본다.
지연이가 성격이 좋아도 그렇게 처음 본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편하게 거는 그런 사람은 아니고, 지금 지연이와 병진이 형은 친해지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공통으로 아는 사람을 씹는 거. 그것만큼 빨리 친해지는 방법이 없지.
“진짜로요. 아니, 그때 같이 마감하는 형이 한수한테 그냥 불만 꺼라. 그랬는데, 저 녀석이 코드도 다 뽑아버린 거예요. 문제는 거기에 제빙기 코드가 포함됐었다는 거죠. 다음 날 내가 오픈 조였는데, 출근해서 보니까 완전 물바다인 거예요. 하도 당황해서 어쩌지도 못하고, 진짜 한 10초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니까요. 아, 그날 생각하니 또 눈물 날 것 같아. 그리고 우리 한수가 큰 사고 친 건 어떻게들 알았는지, 그날따라 아침에 또 손님은 어찌나 많이 오던지.”
내 옛날 실수담을 늘어놓는 병진이 형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이 높다.
지금 신난 거다. 이 인간.
“어머. 그래서요?”
“물이야 뭐 닦아내면 되는데, 문제는 얼음이거든요. 얼음이 없으면 아이스 종류를 팔 수가 없으니까. 그래서 일단 급하게 근처 편의점이란 편의점에 가서 식용얼음은 몽땅 다 사 왔죠. 아이스 음료에 그 얼음 담아주는데, 아시죠? 편의점 식용얼음이 커요. 되게 크거든요. 그러니까 손님들이 음료 받으면 ‘뭐지 이게?’ 그런 눈으로 컵을 바라보는데, 내가 진짜 민망해서. 아휴. 진짜. 그때 생각하면… 아니다. 그만해야지, 우리 한수 부끄럽겠다.”
“…뭘 그만해. 다 이야기해 놓고서는.”
내가 인상을 쓰며 그렇게 말했지만, 아무도 날 신경 써주지 않는다. 아 외롭다.
마음 같아서는 병진이 형이 헤이즐넛 시럽 깨먹어서 바닥이 아주 난리가 났던 걸 이야기할까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너무 쪼잔해 보이는 것 같아서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있는 중이다. 사실 제빙기가 더 큰 실수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한수가 혹시 실수했다고 뭐라고 해도, 제빙기 코드 빼놓는 거만큼 큰 실수 아니면 당당하게 받아쳐도 괜찮아요.”
“그거보다 큰 실수가 뭐가 있는데요?”
“매장에 불내는 거?”
이런 개그 좋아하는 우리 지연이, 역시 뻥 하고 터진다. 지연이가 웃으니까 병진이 형은 한 건 했다는 표정으로 흐뭇한 얼굴을 한다.
안 되겠어. 이 인간을 우리 지연이하고 가까이하게 하면 안 되겠어.
“어때요? 일은 할 만해요?”
점장 누나가 지연이에게 물어본다.
“네. 재미있어요. 음료 만드는 것도 즐겁고, 손님들 상대하는 것도 재미있어요.”
지연이가 신입 알바로서 백 점짜리 대답을 내놓는다.
“다행이네요. 아직까지 이상한 사람은 없었고?”
이번 질문은 나에게로 향한다.
누나가 말한 이상한 사람이란 예쁜 알바생에게 지분거리는 진상 손님, 아니, 손님이라는 말도 아깝지. 그런 추잡스러운 인간들을 말하는 거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점장 누나는 잘 알고 있다. 예쁜 알바라는 소문이 나면 진짜 별의별 인간들이 다 찾아오니까.
“네. 아직까지는.”
나도 신경 써서 지켜보고는 있는데, 전화번호를 달라거나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직까지는 없었다.
“혹시라도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바로 나나 한수한테 이야기해 줘요. 절대 손님이라고 참지 말고.”
누나가 지연이에게 그렇게 말한다.
“넵! 알겠습니다.”
지연이가 당찬 목소리로 대답한다.
***
사실 처음에는 좀 걱정이 되기는 했다.
나는 같이 치맥하는 거 좋기는 한데, 지연이는 좀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
물론 우리 지연이는 성격 좋고 착한 사람이고 또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부분도 있어서, 불편하다고 해도 그런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냥 우리끼리 치맥 먹는 것처럼 편하지는 않았을 거다.
점장 누나야 알바 지원하고 면접 볼 때 한 번 봤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본 것도 아니니 편한 관계라고 할 수는 없고 더군다나 병진이 형은 처음 보는 거잖아.
불편한 게 정상이다.
그런 상황인 것치고 지연이는 어색함 없이 잘 어울리고 있다. 누가 보면 여러 번 만난 사이인 것처럼 말도 잘하고 먹기도 잘 먹고 있다.
“그럼 언니는 조만간 본사로 아주 들어가시는 거예요?”
지연이가 점장 누나에게 그렇게 물어본다.
“응. 아마도 올해 안으로 그렇게 될 것 같아.”
어느새 지연이에게 편하게 말을 하는 점장 누나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다.
“아쉬워요. 언니한테 많이 배우고 싶은데.”
“나도 아쉽네. 그래도 괜찮아. 아직 시간도 있고, 그리고 본사 들어간다고 해서 아주 못 보는 것도 아니고.”
누나가 그렇게 말하며 예쁜 미소를 지어준다.
예쁜 사람 둘이서 그런 이야기 하는 걸 옆에서 보고 있자니 뭔가 흐뭇하군.
“본사 일은 어때요? 힘들지는 않아요?”
내가 누나에게 물었다.
“힘들다기보다는… 뭐랄까? 재미가 없다고 할까? 아무래도 조금 사무적이고, 딱딱하고 그렇지.”
“익숙해지셔야죠. 앞으로 계속 그런 일을 하셔야 하는데.”
“그렇겠지? 아휴, 앞으로 걱정이다.”
누나가 그렇게 말하며 작게 한숨을 쉰다.
“누나도 그렇지만, 우리도 걱정이네요.”
병진이 형이 그렇게 말한다.
“응? 왜?”
누나가 병진이 형을 바라본다.
“누나가 본사 들어가면 새 점장 올 거 아니에요. 누가 올지 모르겠지만, 누나만 한 사람이 있겠어요? 고급 승용차 타다가 갑자기 경차 타라고 그러면 섭섭하죠.”
“어머? 내가 고급 승용차야?”
“아니, 그냥 비유잖아요.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그런 식으로 받으면 안 되죠.”
병진이 형의 말에 누나가 작게 웃는다.
그리고는.
“저번에 말했던 거. 그거 어떻게 결정은 했어?”
병진이 형에게 그렇게 물어본다.
“네? 네, 뭐 일단은….”
병진이 형은 대답을 얼버무린다.
응? 뭐야 이거? 나 모르는 이야기가 있는 건가? 지연이도 눈치를 본다.
“저번에 누나한테 상담을 받았거든. 그… 대학 가는 거, 관련해서.”
병진이 형이 재빨리 우리에게 설명해 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도 그런 이야기를 살짝 했었지.
“음. 뭐. 병진이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만….”
점장 누나는 그렇게 말하더니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시선으로 병진이 형을 바라본다.
그러더니.
“아직 완전히 결정된 것은 아닌데….”
누나가 병진이 형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